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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상 가장 대외 전쟁이 적었던 나라를 뽑는다면 조선일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우리는 팽창정책을 폈었다. 물론 요나라, 원나라의 전쟁을 하다보니 제대로 된 팽창정책을 펼 칠 수는 없었지만 나름 북쪽 북쪽으로 밀고 올라갔던 나라가 바로 고려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했던 것이다. 그만큼 대외 원정도 제법 되었다. 하지만 조선은 이런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팽창정책이라는 것이 없었다. 무인이 세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대외정벌이 거의 없던 조용한 나라 그것이 바로 조선이다. 조선 역사상 조선의 군대가 조선의 영토를 벗어나 전투를 벌인 경우가 내가 알기론 네 번 있었다. 조선 초 대마도 정벌과 4군 6진 개척을 위한 야인 토벌전. 조선 중기에는 명나라의 요청에 의해 후금과의 전쟁에 병력을 파병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와 청나라의 국경 분쟁 때 우리 병력을 파병은 나선정벌이다. 이중 대마도 정벌, 야인 토벌전 그리고 나선정벌에 대해서 기술한 책이 바로 이 책 <조선의 대외정벌>이다. 이 중 광해군 때 명과 청의 전쟁에 파병한 병사들은 거의 전투를 하지 않고 바로 항복함으로서 전투를 하지 않았다. 물론 이유는 광해군이 명청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교전을 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빠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 세 건의 대외정벌에 대해서 이 책은 대외정벌 역사의 이전부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 조선 세종조에 가장 활발하게 대외정벌전이 있었다. 대마도 정벌과 4군 6진 개척이다. 역대 최고의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이지만 그도 사람이니 만큼 실패한 정책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북방으로 이주 정책이다. 거의 강제적으로 이뤄진 이 조치로 인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이 책은 거창하게 대외정벌이라는 단어를 붙여가며 우리 조선의 빛나는 역사를 알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읽고 난 후 나는 정말 조선은 무력하다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두껍다. 분량도 만만치 않다. 대외 정벌의 정당성을 알리고 싶었는지 과거 이야기부터 시시콜콜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실제 대외정벌전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맥이 빠졌다. 대마도 정벌의 경우 분량이 대략 120페이지가 정도다. 하지만 실제 대마도 정벌전에 대해서는 겨우 10페이지를 할애했다. 전후 사정만 주구장창하여 페이지만 늘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저자는 기록에 의해 확인 부분만 책으로 엮기 위해서 이렇게 적었는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삼국시대 내용도 시시콜콜하게 썼는지 이해가 안 간다. 개략적인 내용만 설명하고 넘어가도 되었을 것을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기록된 대마도 정벌도 읽고 난 후 이게 과연 성공한 작전인지 의심스러웠다. 이종무를 주장으로 무려 17,285명 전선 227척, 군량 65일치를 가지고 대마도를 공격했다. 기습의 성공으로 교두보를 확보했지만 왜구의 수괴를 잡은 것도 아니고 섬내 수색전에서 오히려 기습공격에 상당한 병력을 잃기까지 했다. 결국 작전 기간은 2주가 채 안 돼 서류 한 장 받고 철수한다. 그리고 이후 왜구가 진정되었다지만 삼포왜란, 을묘왜란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임진왜란까지 겪었으니 과연 성공한 대외정벌인지 의심스럽기만 했다. 두 번째 정벌전인 보주강 야인토벌작전은 이전 대마도 정벌 부분보다 괜찮았다. 우리의 사는 영역인 두만강과 압록강 남안까지 우리의 영토를 확장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큰 성과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당시 복잡했던 여진의 정세와 이와 더불어 명나라와 조선의 여진족에 대한 정책을 잘 다루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에 대해서 불만 중 하나가 고구려의 영토를 다시 찾겠다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보면 조선 굉장히 현실적이지 않았나 한다. 북쪽의 험지에 대한 정보도 부족할 뿐더라 야인들을 토벌하기 쉽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여진족과 오랜 생활을 해온 태조 이성계의 경험에서 나왔을 가능이 있는 것 같다. 보주강 야인토벌 역시도 과연 완벽한 군사적 성공이라 보기 힘들지 않을까 한다. 조선의 성군 세종의 치세에서 가장 삽질 한 정책으로 뽑는 것이 바로 북방 이주 정책이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끌고 올라가서 제대로 보호를 해 주었느냐는 것이다. 4군 6진 개척 이후로도 여진족의 약탈은 끊이지는 않았다. 이순신 장군도 임관 초기 북쪽에서 근무하였다. 처음 백의종군 한 것도 북쪽에서 근무할 때였다. 조선 중기까지 여진의 침탈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함경도와 평안도는 그렇게 국가의 적절한 보호 없이 스스로 살아가야 했고 그 덕에 이 지역 사람들은 그리 정부와 좋은 관계를 갖지 못했다. 게다가 이 지역 사람들은 중용하지 않는다는 조선의 정책은 지역 차별로 인한 민란까지 발생하게 했다. ![]() 마지막으로 소개한 나선정벌은 규모에 일단 실망을 했다. 1차 파병에는 100명의 포수와 지원병 2차 파병에서는 200명을 파병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중대규모 정도 되었을 것이다. 나선 정벌의 원인은 러시아의 동진정책의 결과 청나라와의 충둘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유럽의 모피가 유행하며 러시아는 담비 모피 수출에 호황을 보인다. 이를 더 얻기 위해 러시아는 끊임없이 동진으로 하게 된다. 그래서 도달한 것이 바로 연해주였다. 이 곳에서의 청나라와의 교전이 있었고 상당한 타격을 입지만 결국 러시아는 연해주를 얻어낸다. 이런 과정에 우리 조선의 포수들이 전쟁에 동원된 것이다. 러시아와의 교전으로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면 이 대외정벌에서 실익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청나라는 중국 정통의 전략인 이이제이 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를 전쟁에 끌어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보다는 우리군 포수들의 실력이 우월했기 때문에 파병했다고 한다. 물론 청나라 포수들에 비해 우리 포수들이 실력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과연 청나라가 러시아와 전쟁을 이기기를 원했는지는 모르겠다. 만주는 청나라의 발원지로 분명 사수해야 하는 곳이였지만 청나라는 중원 통치를 위해 거의 비워놓다시피한 곳이 만주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대규모가 아니 소규모만 파병했다. 초창기 지휘관에 비해 보내준 지휘관이 훌륭한 지휘관이라지만 그에게 주어진 병력은 보잘것 없었다고 본다. 이에 비해 러시아군은 내가 알기로 우크라이나의 코사크 군대로 꽤나 용맹한 군대로 알고 있다. 이들의 실력은 이미 최초 교전에서 알 수 있었겠지만 그 파병한 병력의 수와 질은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고 본다. 이 전투를 통해 우리의 군사전략적 전술적 의미가 바뀐것도 없고 그렇다고 수석식 머스켓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선 정벌에서 얻은 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동안 우리의 대외 정벌이라는 거창한 제목과 달리 난 조선의 한계를 극명히 보여준 파병쯤으로 해두고 싶다. 모름지기 정벌이라 함은 명분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라고 본다. 내치가 안정되고 나라의 역량이 국외로 뻗어나갈 수 있을 때 대외원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조선조에 있었던 세 번의 대외원정 중 그 능력이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작전이 수행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대외정벌이라는 명명한 것은 나름 강력했던 한때가 있었다고 스스로 올려주는 게 아닐까 한다. 내가 보기엔 과거 조선시대의 정벌을 통해서 배워야할 새겨야할 교훈은 대외원정은 충분한 역량이 있을 때 확실히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배울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결국 조선처럼 외교와 국방 모두를 실패하는 전례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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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군사사에 관한 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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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대외 정벌의 역사적 실체를 재구성하고, 재조망하고, 재평가함으로써, 오늘날의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자 한다. 흔히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공허한 수식어로 얼버무리는 역사 아래에 실상은 끝없이 되풀이된 참담한 비극과 커다란 위기가 엄존해왔다고 말한다 조선이 무를 천시했다고 하지만 최소한도는 했다고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조선이 시도했던 대외정벌에 관한 정보가 많습니다 대왜구 전쟁과 대여진 전쟁, 나선정벌 3개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흥미로왔던 부분은 임란 후 벌어졌던 여진과 조선의 전쟁입니다. 선조말 조선은 누르하치가 통일 이루기 전인 여진과 본격적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군요. 일진 일퇴를 했지만 좀더 힘이 있었다면 누르하치가 벌였던 통일전쟁에 훼방을 놓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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