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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를 공부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일본서기다. 일본역사서로서의 일본서기는 최고다. 8년 앞서 찬록된 고사기가 있지만 내용의 풍부함에 있어선 일본서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일본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천지가 개벽하는 神代로부터 시작하는 일본서기는 역사서에 신화속의 인물의 활약상을 기록한 神代가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만 봐도 일본서기가 그 역사적 진실의 진위여부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神代이후에 기원전 660년 처음 왕위로 즉위하는 신무천황도 가공의 인물이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 기원전 660년에 일본열도에 국가가 성립됐다는 것은 아무런 역사적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말이다. 초기 천황은 한반도에서 도래한 가야계이고 제 15대 천황부터는 백제계, 고구려계, 신라계라고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면 초기의 가공의 천황들은 고조선과 가야의 왕조설화가 건너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서기는 가장 중요한 일본의 역사서임에도 조작논란과 가공의 인물의 등장이라는 사서로서의 치명적 결함때문에 그 가치가 많이 손상된 상태다. 앞으로 일본서기의 비밀을 완전히 밝혀내는 일은 우리 후세 사람들의 몫이다. [인상깊은구절] 12월 丁卯朔 庚寅 ( 24일 ), 天皇이 難波宮에 행차하였다. 天皇은 福信의 원에 따라 筑紫에 가서 구원의 군사를 보내려고 생각하여, 처음 이곳에 와 여러 무기를 비치하였다. 이해, 百濟를 위하여 장차 新羅를 치려고 생각하고, 駿河國에 칙하여, 배를 만들게 하였다. 다 만들고서 續麻郊에 끌고왔을 때, 그 배는 밤중에 까닭없이 머리와 고물이 상반이 되었다. 사람들은 싸움에 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科野國에서, "파리가 떼를 지어 서쪽을 향하고, 巨坂을 날아 넘어갔습니다. 크기는 열 아름 쯤입니다. 높이는 하늘에 닿았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어떤 사람은 구원군이 패할 징조라고 하였다. 童謠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