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은 책의 쪽수임. 저자는 30년 이상을 과학 전문기자로 일했다(신이 된 남자를 읽기위해 12). 저자는 천지를 창조한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임은 인정하되 예수님의 부활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복음서의 분석을 토대로 하여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사망하지 않았음을 확신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이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몇 번이나 번역이 된 성경을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저자는 세례 요한이 엣세네파였다고 주장(1권 222)하며, 예수님의 사촌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예수님도 엣세네파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1권 307). 예수님이 쿰란은 떠난 이유는 엣세네파가 안식일의 절대적 준수와 철저한 손의 위생 등 율법의 부수적인 규칙들까지 철저하게 고수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고, 적어도 공생애 전반부에는 엣세네파의 종말론적 절망과 은둔생활을 찬성하지 않았다(신이 된 남자를 읽기위해 188). 저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복음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특히 부활부분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약성경에서 먼저 쓰여진 마가복음도 원본에서는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고도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예수님의 생존설에 대한 근거는 십자가에 못 박혀 있던 시간은 단 세시간 정도라든가, 정경복음서의 두 가지 증언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5권 10-11). 그리고 예수님이 인도에 가셔 사셨다는 것이 5권과 6권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3권과 4권은 바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서는 바울이 권력을 위해 기독교도가 되며, 베드로 등 제자들과 대립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새로이 느꼈다. 지금까지 의문이 있던 부분의 일부는 풀리었고, 어떤 내용은 의문을 더하기도 했다. 다른 책에서 류영모는 이러한 부활을 영적인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리고 류영모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 병립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몸이 다시 사는 것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고민이다. 믿음은 과연 성장하는 것일까. 자꾸만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무조건 믿어라하는 것이 현대에서 가능한 것일까. 진정한 믿음은 무엇일까. 하늘 나라는 무엇일까. 오늘도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면서 믿음적 성장을 기원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이다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