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때부터 사막에 대해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을 품고 살았다. 사막에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인간의 근원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한 동경에 불을 붙인 것이 있다면 아마도 어린 왕자였을 것이다. 사하라 사막에 홀로 불시착해 막막해 하고 있는 조종사에게 다가와 “양 하나만 그려 줘”하며 천진스럽게 말하는 어린 왕자를 보면서 나도 그 사막에 가서 어린 왕자를 만나 보고 싶었다. 금빛 모래 언덕에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금발 머리를 한 어린 소년이 나타나 자기별에 대해서, 여우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만 같다.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있으면 생의 비밀을 한가지 알려 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 책은 바로 그 사막이야기이다. 사하라 사막... 보이는 것은 끝없는 모래언덕과 바람과 출렁거리는 따가운 햇빛. 그 사막은 섭씨 50도의 기온과 달의 표면과 비슷한 습도만을 유지하며 단조로움만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천변만화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저주의 땅, 죽음의 땅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삶의 덧없음, 존재의 덧없음이 어떠한 것인지 깨닫게 해 주는 곳이다. 그 곳에 서면 자연의 위대함과 광대함을, 인간의 한계와 나약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막에 오르면 인간은 좀더 겸허해지고, 순연해질 것 같다. 작가도 “사막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일은 없다. 어떤 사막도 다른 것과 닮지 않았지만, 사막에 들어갈 때마다 심장은 더욱 세차게 고동친다”(p29)고 말한다. 작가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이 책을 읽으면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세상을 밝힌 위대한 문명은 낙원에서 생겨나지 않았다고 했다. 위대한 문명은 오히려 지구상에가 가장 살기 어렵고 기후 조건이 가장 나쁜 지역에서 출현했다. 이를테면 이라크의 불타는 듯한 사막이나 소아시아, 유다 지방, 이집트, 수단에서. 또 파미르고원의 차디찬 고독 속에서, 페루와 멕시코 고원 지대의 혹독한 조건에서... 그렇기 때문에 문명이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장소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좀더 겸허해져야 한다. 이 지구상의 모든 문명과 업적은 인간의 손과 힘으로 만들었다고 교만해져 있으니...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사막에 산다는 것은 단지 거칠고 냉엄하고 혹독한 세계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표지가 없어도 하늘과 별을 바라보면서 길을 찾을 수 있으며, 아득하게 먼 곳에서도 조약돌 하나를 식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처럼 용감하고 너그러우면서도 냉혹한 사람들이다. “사막에 산다는 것, 그것은 절제하며 간소하게 사는 것이고, 태양의 열기를 견디는 법과 온종일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갈증을 참아내는 법, 열병과 이질에 신음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기다리는 법과 설령 양의 고기는 남들이 다 먹고 뼈에 힘줄과 가죽만 달랑 남는 한이 있더라도 남보다 나중에 먹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두려움과 고통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p75) 똑같은 해 아래 숨쉬며 살고 있지만 이토록 이질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의 소음과 현란한 네온싸인과 하늘을 향해 저돌적으로 서 있는 건물들 사이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막의 사람들은 너무나 생경하고 낯설기만 하다. 사하라의 여인들은 자녀들에게 사막의 교훈을 전수한다. 불손과 무질서를 용인하지 않고, 땅의 이치를 존중하며 신비한 힘과 기조와 정성과 인내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르침을... 비록 그들은 끝없는 가뭄과 건조한 바람과 높은 온도와 낮은 습도에 묶여 있지만, 그들의 빈곤이 우리의 풍요보다도 더 넉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천,히 작가와 함께 척박하고 건조한 사막 여행을 하고 왔다. 하지만 내 가슴은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
| 르 클레지오가 그의 모로코인 아내 제미아와 함께 쓴 사하라 사막 기행집 <하늘빛 사람들>(원제: 구름 부족 Gens des nuages)은 그가 1980년에 썼던 장편소설 <사막>의 속편처럼 보인다. 그러나 17년이라는 오랜 간격을 두고 발표된 이 속편은 그 전작(前作)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또한 친절하다. <하늘빛 사람들>에는 <사막>을 읽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갈증이나 현기증이 없다. 현재와 과거가 접점 없이 평행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에서 비롯되는 의혹의 모래바람도 없고, 정밀하게 조준된 카메라의 렌즈처럼 매우 건조하게 세부에 집착하던 그의 문체에서 비롯되는 메마름과 눈부심도 없다. 그것은 <사막>이 사하라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시절에 오직 상상력과 역사 연구와 구전을 바탕으로 쓴 ‘허구’의 소설인 반면, <하늘빛 사람들>은 그곳에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실제’의 여행기라는 점에서 오는 차이일 것이다. 때로 우리의 상상력은 실제의 현실 세계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구(fiction)와 실제(non-fiction)의 차이 말고도, 함께 동행했던 사진작가 브뤼노 바르베가 찍은 아름다운 사막의 풍경들이 우리의 부족한 상상력을 메우고 있고,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르 클레지오의 풍부한 지식과 농익은 사유가 조금도 비틀거리지 않는 단정하고 엄결한 문장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에, <하늘빛 사람들>의 문장들을 따라 가는 우리의 눈과 마음은 <사막>을 읽을 때와는 달리 편안하고 여유롭다. 따라서 나처럼 <사막>을 읽고 어지럽고 뭔가 미진한 느낌을 가졌던 독자라면 <하늘빛 사람들>을 읽고 다시 <사막>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속편에 의해서 그 전편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지고 풍부해지는 시리즈 영화들처럼 <사막>도 <하늘빛 사람들>을 읽고 난 후에 다시 읽어야 비로소 그 진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하늘빛 사람들>은 ‘어떤’ 뿌리찾기 여행에 관한 보고서이다. 여기서 ‘어떤’이란 물론 르 클레지오의 모로코인 아내인 제미아를 뜻한다.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서 태어난 ‘구름 부족’, 즉 비를 쫓아 사막을 수천 킬로씩 가로지르며 살았던 하늘빛 사람들의 위대한 족장이자 정신적 스승이었던 시디 아흐메드 알 아루시의 후예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여행은 모로코 남단의 드라 강을 건너고, 자갈투성이의 가다 고원을 지나서, 이제는 군 주둔지와 상업도시로 변한 성도(聖都) 스마라를 거쳐, 시디 아흐메드 알 아루시의 묘소와 그가 명상과 기도의 장소로 이용했던 트베일라 바위가 있는 사기아 엘 함라 계곡, 곧 ‘붉은 강’에 이르러 끝난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만난다는 것은 단지 여행을 하고 새로운 지평을 마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시원(始原)의 땅으로 되돌아가는 르 클레지오와 제미아의 사하라 여행은 잊혀진 고향을 찾아가는 공간적 회귀의 도정(道程)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이기도 하다. 제미아는 아직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사촌 시드 브라힘 살렘 족장과 그의 아내와 여인들과 아이들을 만난다. 그들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어수룩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텔레비젼을 보고 콜라를 마시며 자기들의 낙타 떼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4륜구동 지프차를 이용한다. 시디 브라힘 살렘 족장은 아라비아에서 열리는 낙타 경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나 사막으로 되돌아온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진보를 해왔지만 이들은 계속 자기들의 전통에 따라서 사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하늘빛 사람들이 사는 사기아 엘 함라 계곡에서는 과거는 그냥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뒤섞인다. 시디 브라힘 살렘 족장이 들려주는 500년 전 시디 아흐메드 알 아루시가 행한 기적의 이야기들은 지금 현재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믿음이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땅은 그들의 삶을 받아주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땅이다. ‘붉은 강’이라고 불리기 이전에는 ‘푸른 강’이라고 불리었을 정도로, 아주 오랜 옛날에는 풀밭으로 뒤덮이고 강물이 넘쳐흐르는 낙원이었을지도 모르는 사기아 엘 함라 계곡은 지금은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다. 강바닥은 메말라 튼 살갗처럼 쩍쩍 갈라져 있고 어쩌다 만나게 되는 물도 수백만 마리의 날벌레들이 부화하는 진흙탕 웅덩이일 뿐이다. 크롬 도금한 수도꼭지에서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우리들의 문명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곳이다. 그래도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이 부과하는 법칙을 철저하게 존중하고 자기들의 조상 시디 아흐메드 엘 아루시를 믿으며 사는 이들 하늘빛 사람들은 거칠고 냉혹하고 혹독한 이 사막에서의 삶을 결코 고단함과 궁핍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처럼 용감하고 너그러우면서도 냉혹해짐으로써, 온 종일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갈증을 참아내고 남보다 나중에 먹는 법을 배움으로써, 두려움과 고통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그리고 절제하며 간소하게 살아감으로써 그 고단하고 궁핍한 삶의 조건들을 이겨낸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광대무변한 사막의 풍경 속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파악할 수 있고 사소한 기미를 포착할 수 있으며 덧없는 그림자나 건듯 스치는 바람결을 느낄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다. 그들의 눈은 예리하게 발달하여 돌이나 모래의 아주 작은 변화도 감지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따분함이나 두려움밖에 느끼지 못할 곳에서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시디 아흐메드 엘 아루시가 명상과 기도의 장소로 사용했던 트베일라 바위에 올라가 그 광대무변한 사막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르 클레지오와 제미아는 이러한 사실들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 사기아 엘 함라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모두 다 있다”라고까지 말한다. 르 클레지오와 제미아가 이들 하늘빛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도시 사회의 그 어떤 권리와 의무에도 매여 있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이었으며,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발견한 것은 우리의 삶을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영원에 이르는 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늘빛 사람들>을 읽는다는 것은 존재의 시원을 좇아 펼쳐지는 이들의 여행을 따라가는 것인 동시에 자신의 내부에 숨죽인 채 잠자고 있는 자유와 영원에의 갈망을 새롭게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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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는 그의 부인 제미아와 함께 처가의 고국인 모로코의 사막여행에 나서고 있다.부인과 함께 떠나는 사막여행은 작가만의 감성과 서사적인 광경을 멋지게 그려내고 있지만,내심 부인 제미아의 뿌리찾기를 나서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서북단에 위치한 나라로 스페인에서 가까운 나라이다.모로코의 대부분이 사막인데 그들은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슬람 색채가 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대상(隊商)과 유목민,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는 열사와 같은 모로코에 대한 르 클레지오의 찬미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아 엘 함라 계곡을 기점으로 펼쳐지는 사막의 장관은 인류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았던 듯 고요하고 경건하기만 하다.낙타떼와 염소떼,타조의 무리,제미아의 어머니가 들려 준 전설과 부족,하늘빛(사하라 사막의 사람들)여인들,금요집회,대예언자 마호메트의 후예인 쇼르파 부족,낙타의 민족 아헬, 즈말,구름의 부족 아헬 무즈나 등을 두고 르 클레지오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차 있다.
아주 먼 옛날,아프리카가 브라질과 한데 붙어 있었고 지중해는 보잘것없는 내륙호에 지나지 않았던 시대에 바다가 남겨 놓은 자취를 따라 나서면서 인류의 시원과 지구의 변동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유목 부족들의 다양한 제도와 아랍인들의 동화가 필연적임을 알게 되었으며,사기아 엘 함라는 유목민들의 집결지이고 그 동화를 돕는 문화의 용광로 구실을 했다는 점이다.
사막에 산다는 것,그것은 단지 거칠고 냉엄하고 혹독한 세계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다.일중의 온도가 50도를 넘고 습도가 달 표면과 비슷한 곳인 사막의 대상과 유목민들은 하늘과 별을 바라보면서 길을 착고,아득하게 먼 곳에서도 조약돌 하나를 식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그 유목민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처럼 용감하고 너그러우면서도 냉혹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막은 흔히 도전과 모험의 장소로 알려져 있지만 이 글을 통해 느끼는 점은 모로코의 유목민들은 극한 상황에서도,작은 변화도 쉽게 식별하고 다채로운 변화에 경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그만큼 오랜 세월 유목민들은 거친 사막의 환경에서 생존법을 터득하면서 그들만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모로코의 사막 기행을 통해 유목민들의 역사와 문화,풍물,각종 제도,생존법 등을 느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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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하루 하루 삶이 고단할 대 그리고 시간이 너무 나지 않을 때...그야말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밥먹을 시간도 없이 일에 매여 있을 때 내가 오늘 과연 숨은 제대로 쉬면서 살았는지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책이 정말 와닿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여행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높은 고층 빌딩이 숨쉬고 있고 사람들도 앞사람을 가로질러서 빠르게 흘러가는 그런 여행지가 아니라 그야말로 문명이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황량한 사막을 여행하면서 쓴 글이다. 여행을 하면서 시계를 차지 않고 그냥 앞만을 바라보면서 좋아하는 사람이랑 떠나는 여행이 얼마나 감미로운지를 이 책은 설명을 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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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육칠년전쯤이 되려나, 쎄씨라는 제목의 퍠션지와 관련하여 아르바이트를 잠깐 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여행가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녀에게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 하나를 말하라고 했더니, 인적없는(인적 가득한 사막이라는 표현에 대해 잠시 생각)사막에서 바라본 하늘을 꼽았다. 하늘과 땅이 뒤범벅되어 있는 듯, 가만히 누워 들여다보고 있는 저곳이 하늘이구나 하는 심정조차 가질 수 없도록 부신, 그 사막에서의 밤을 그녀는 황홀한 표정으로 내게 전달했더랬다.
『하늘빛 사람들(원제는 구름 부족)』은 프랑스의소설가 르 클레지오(난 이 작가의 작품 두 권을 가지고 있고 그 중 한 권인 『조서』만 읽었는데 따분하고, 뜬금없이 지루하고, 철학적 상념의 과잉으로 머리가 뽀개질 것처럼 허위적거렸다는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가 그의 아내의 뿌리를 찾아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면서 쓴 부부 합동 여행기다. 약간의 두려움(그의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찝찝한지루함)으로 거리를 두고(그러니까 사고 나서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읽었는데, 사막 부족의 족보를 읊는 듯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사막에 대한 경외를 감추려 하지 않는 아름다운 문구들과 바로 그 사막으로부터 뽑아 올린 내적 성찰의 문구들이 무척 볼만하다. '바람의 풍광, 공허의 풍광'이면서 동시에 '가장 오래된 땅이면서 가장 새로운 땅, 인간의 세월이 자국을 남기지 않은 땅'이며 '풍요로운 것은 시간과 모래밖에 없는' 사막. 그 사막에 '아마조니아나 시베리아, 북극 지방의 숲,테네레 지방의 오랜 벌판, 그 어디에서든 길이 나면 고독이 유린된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면서도 들어선 르 클레지오 부부. "...그렇다면 문명을 만든 것은 인간이 아니라 장소라고 볼 수도 있다. 마치 장소가 적대성을 드러냄으로써 약하고 겁 많은 피조물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집을 짓도록 강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도록 여행중인 이방인을 압도하는 사막 중에서도, 그들은 아루시 부족의 창시자인 시디 아흐메드 엘 아루시가 정착해 일가를 이루기 시작했다는 사기아 엘 함라(붉은 강이라고 번역되는)지역에서 제미아(르 클레지오의 아내)의 조부모, 그 조부모의 시조에게 다가선다. 그리고 그 사막의 모래 속에,바람 속에 숨겨져 있는 세상의 지혜를 배운다. "사막에 산다는 것, 그것은 절제하며 간소하게 사는 것이고,태양의 열기를 견디는 법과 온종일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갈증을 참아내는 법, 열병과 이질에 신음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기다리는 법과 설령 양의 고기는 남들이 다 먹고 뼈에 힘줄과 가죽만 달랑 남는 한이 있더라도 남보다 나중에 먹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두려움과 고통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유목민들의 삶을 특징짓는 것은 고단함과 궁핍이 아니라 조화이다.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땅에 대한 완전한 지식, 이를테면 자기들 자신의 한계에 대한 정확한 평가이다. 틀에 박힌 지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그 단순한 지혜에 다가가거나 이해하기가 어렵다." 바람이 실어 나르는 모래 한 웅큼, 아무런 거리감도 공간감도 때로는 시간에 대한 감각마저도 일거에 무너뜨리는 사막의, 인간으로서는 조응하기 힘든 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일류 지성이라 할 수 있는 르 클레지오가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낯선 자연 앞에 고개 숙이는 모습이 숙연하다. 간간이 실려 있는 사막의 풍경도 경이롭기 그지 없다. 아무것도 없는 모래 위에 하늘의 흔적만이 무늬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이건 그림인가 봐 하고는 들여다본 아래쪽에 몇 미리로 축약된 인간의 모양을 확인하면서 사진이구나 한숨쉬게 만드는 것도 그렇다. ps.내가 놓치지 않고 보는 티비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TV 인간극장(산골소녀 영자 이야기 이후 이 프로그램을 별일 없는 한 본다)이다. 매일 한 편씩 매주 다섯 편을 방송하는 이 프로그램의 이번 주 주인공은 전재산을 털어 일가족을 이끌고 세계일주에 나선 어느 고위 공무원의 이야기다. 그 공무원 가족이 잉카제국의 마추피추에 다가서는 것이 오늘의 이야기였다. 그 이십분짜리 짧은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마음 속의 현실이 내지르는 역정에도 불구하고, 미칠 것 같은 여행에의 유혹을 느꼈다. 아직 그 유혹이 가시기 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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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르 클레지오의 단어는 언제 읽어보아도 사색을 머금고 있다. 얼마전 나온 다빈치의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를 감명깊게 읽었다. 프랑스 작가로 멕시코를 편애하고, 멕시코의 대표적 화가 디에고와 프리다를 다룬 그의 평전은 치열한 예술가의 삶이란 게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수작이었다. 국내에 잘 소개안된 디에고의 그림과, 프리다의 강렬한 그림이 가득 들어 있어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는 좋은 독서 체험을 안겨 주었다. 그 책을 하도 재미있게 읽어서 다른 르 클레지오의 책이 없나 찾다가 이 책을 읽었다.
모로코 부인과 함께 나선 문명인의 사막탐험이라 할까. 르 클레지오의 글은 무엇보다 좋았으나 좀 터무니 없는 책 크기에 조금 실망했다. 왜 이런 크기로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갔다. 그냥 보통 책크기로 담아도 될 것을... 뒷편에 있는 비싼 책값에 사막의 끝이 있구나 싶었다. [인상깊은구절] 사막에 산다는 것, 그것은 단지 거칠고 냉엄하고 혹독한 세계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불요불급의 청의 전사에게나 어울리는 전설이다. 그들은 온도가 50도를 넘고 습도가 달 표면과 비슷한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아무런 표지가 없어도 하늘과 별을 바라보면서 길을 찾을 수 있으며, 아득하게 먼 곳에서도 조약돌 하나를 식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처럼 용감하고 너그러우면서도 냉혹한 사람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