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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사회를 진단하는 수많은 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현대사회에 대한 비관론, 아니면 낙관론? 나는 둘 다 아니라고 본다. 책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바로 "난해함"이다. 이런 의미에세 찰스 테일러의 <불안한 현대사회="">는 '현대사회를 알고자 하는 소박한 일반인들의 주적(主敵)'인 "난해함"을 적절히 극복해낸 책이다. 게다가 번역을 맡으신 송영배 선생님의 [ ]속의 보충 설명은 영어에서 우리말을 옮길 때에 발생하는 의미의 상실을 적절하게 메꾸어주려는 좋은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여러가지의 사회적 시각을 제시하고, 각각의 이론을 연결하고 비판하며 자신만의 구조 속으로 현대사회를 분석해 간다. 그가 바라보는 '현대사회의 불안함의 요소'는 2가지이다.그 첫째는 근대에서 시작된 개인주의이다.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등장으로 인간은 '자기진실성'을 갖고서 타인과의 연결점을 상실할 우려에 빠져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기진실성'에 대해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진실성'이 등장할 당시의 미덕들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이것을 바탕으로 타인과의 연계가능성을 타진한다. 그가 내놓은 대책은 바로 "자기진실성에 충실하되, 자기의 주위에 포진해 있는 삶의 지평 속에서 타인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는 니체를 이론적 근원으로 하는 포스트모던 사상가에서부터 칸트나 헤겔의 사상까지도 전개시킨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자기진실성'을 바탕으로 한 '도구적 이성'이다. 그는 '도구적 이성'에 대한 기존의 비판적인 이론에 대해서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앞서 말했던 <'자기진실성의 원리'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자신의 창조적 사유의 이상'이라는 개념에서 시작했다는 것>과, <'도구적 이성' 속에 실린 일상성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바로 인간 삶의 질적인 고양을 도출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자기진실성"이 가치있다면, 그것의 이면(裏面)인 도구적 이성 역시도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이러한 두가지의 개념을 통해 그는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현대사회의 불안요소-자기진실성과 도구적 이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잘 나가다가 식상한 결론에 이르른다. "대화"와 "삶의 지평에 대한 관심"에서 이미 나왔지만, 그의 대안은 위의 두가지 가치를 고수하되, 타인과의 적극적인 삶의 교류를 실시하라는 것이다.
애초의 글을 읽던 나의 생각은 책의 후기에 와서, 약간 "사기당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과 저것을 다가지고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도대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저자의 글솜씨와 웅대한 사회구상에는 충분히 호의를 베풀만하다. 그러나 말미의 어정쩡한 결론은 약간 답답했다. 차라리 저자가 비판했던 포스트 모던 사상가들의 결론처럼 "철학적 웃음(미셀 푸코)"을 보였다면, 차라리 속이 편했을텐데......
그러나 현대사회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해보고 싶은 나와 같은 일반독자들에게는 난해하지 않고, 부피의 부담도 적은 '양서'가 아닐까? [인상깊은구절] 우리의 상황이 요구하는 거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투쟁, 즉 지적, 정신적, 정치적인 투쟁이다. 따라서 공공의 장에서의 논쟁은 병원, 학교 등과 같은 많은 제도적 장치들에 대한 논쟁들과 상호 연결되어 있다. 이런 제도적 장치들에는 기술을 새로운 틀로 묶으려는 문제들이 구체적인 형태로서 체험되고 있다. .... 이런 다면적인 논쟁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대사회의 문화속에 있는 위대한 점과 동시에 천박하거나 위험스러운 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파스칼이 일찍이 인간에 대하여 말했던 것처럼, 현대사회는 장대함과 동시에 비참함에 의해서 특징지워진다. 이 두가지 점을 포용하는 시각만이 이 시대의 최고의 도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우리 시대에 대한 굴절없는 통찰을 우리들에게 허용할 것이다.불안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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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라는 유령이 주변을 떠돈다 불안은 우리시대의 키워드이다. 삶의 낙관 대신 절망이 앞을 가린다. 내일이 없다는 믿음에 달라붙어 이 유령은 우리를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한국사회도 보이지 않는 이 불청객에 자유롭지 못하다. 작년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정의’라는 화두도 그 배경에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미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 부조리의 원인을 탐구해야 한다. 찰스 테일러의 ‘불안한 현대사회’는 우리시대 자화상의 현재와 해법을 제시한다. 짧은 분량(150쪽)에 담긴 저자의 통찰은 대단하다. 발간된 지 이미 10여년이 넘은 책이지만, 일반 독자에게 현대사회의 지평을 조망하는데 나치반 역할을 한다. 이 책의 모태가 캐나다방송(CBS)의 강연이기에 일반 독자가 읽고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현대사회 찰스 테일러가 이 책에서 진단하는 현대사회 병폐의 원인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왜곡된 ‘자기실현성(authenticity)’ 이다. 둘째, 도구적 이성이다. 셋째, 앞선 자유의 상실이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첫째로 언급한 자기실현성의 이상의 왜곡을 바로잡는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자기실현성’이란 다름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라는 주장이다. 근대사회에서 개인주의의 확산은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실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 결과 타인과 관계는 소홀해지고 공동체의 관심사는 멀어진다. 테일러는 ‘자기실현성’이라는 이상이 폐쇄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넓은 지평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의 전선을 가지자 조각조각 나눠져 쇠우리(iron cage)에 갇힌 자포자기론 결코 현대사회의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 공동체의 이상을 위한 투쟁만이 파편화를 막을 수 있다. 투쟁에 참여하는 공동체는 특정한 이익을 따르는 집단이나 이념에 사로잡힌 집단이 아니다. 삶의 지평을 폭넓게 공유하는 공동체가 투쟁의 연대에 동참할 수 있다. 과거에 신이나 이념이 담당하던 삶의 지평은 사라졌다. 저자는 도덕적 이상에 기대 공동의 전선에 참여하라고 독려한다. 테일러는 성공한 공동전선 사례를 들어 공동의 싸움이 진행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펼친다. 그러나 이 투쟁은 끝나지 않는 영원한 전쟁이다. 투쟁은 계속된다(la lotta continu)!. 아리스토텔레스의 부활 찰스 테일러는 새로운 의미를 우리 모두에게 제시하려 노력한다. 도덕적 이상이든 삶의 지평이든지 의미를 어떻게 부르든 그의 해법에는 목적이 이미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에는 어떻게 의미가 정해지는지 해명은 없다.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사회라면 동의할 만한 이상이 있다! 이것이 저자의 해법이 출발하는 출발선이다. 그 이상이란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시대의 산물인가? 찰스 테일러는 이것이냐 저것이냐하는 한쪽을 선택하지 않을 듯 하다. 그의 말처럼 인간이란 정체성은 대화를 통해 형성되고 결국 우리의 이상도 계속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