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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로터스-동물원과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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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로터스(Lotus) -동물원과 김광석   1992년 중3이었던 난 사춘기를 관통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가게 일로 바빴고, 집에는 늙은 아비와 더 늙은 할머니뿐이었다. 언니들은 죄다 수원으로 유학을 갔고, 난 외로웠다. 딸 넷 막내로 북적이며 자란 탓인지, 아직 외로움이란 단어의 의미를 미처 알기도 전에 외로움을 탔다. 그 때 내 외로움을 달래준 두 벗이 있었으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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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로터스(Lotus) -동물원과 김광석

 

1992년 중3이었던 난 사춘기를 관통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가게 일로 바빴고, 집에는 늙은 아비와 더 늙은 할머니뿐이었다. 언니들은 죄다 수원으로 유학을 갔고, 난 외로웠다. 딸 넷 막내로 북적이며 자란 탓인지, 아직 외로움이란 단어의 의미를 미처 알기도 전에 외로움을 탔다. 그 때 내 외로움을 달래준 두 벗이 있었으니, 바로 음악과 친구였다. 유년시절 언니들이 전축으로 듣던 팝과 가요에 익숙했던 조숙아는 문제집 산다고 받은 돈을 레코드 가게 테잎과 바꾸는 것으로 팝송키드의 길로 들어섰다.

 

비틀즈, 사이먼과 가펑클, 스콜피언즈, 딥 퍼플, 주다스 프리스트, 퀸, 글렌 메이데로스, 케니지, 빌리 조엘, 엘튼 존 등 닥치는대로 (레코드 가게 아저씨가 권해주는 대로!) 듣고 들었다. 비틀즈와 엘튼 존은 지금도 즐겨듣는 뮤지션들이다. (팝송 가사 해석이나 했으면 영어공부에 도움이나 됐겠지만) 들리는 대로 부르는 대로 그저 좋았다.

 

(Popular Song라는 뜻에서) 내게 팝송은 동서양은 넘나들었다. 산울림, 유재하, 이문세, 조덕배, 김현식, 들국화, 시인과 촌장,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철을 좋아했다. 특히 산울림과 봄여름가을겨울, 유재하는 지금도 내게 18번으로 남았다.

 

팝송 키드로 살다

 

막내를 유독 예뻐한 셋째 언니는 주말마다 고향집에 내려와 내 말벗이 돼 주었다. 같이 수다도 떨고, 음악도 듣고, 떡볶이나 라면을 해 먹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내 15번째 생일이 돌아왔다. 언니는 무심한 듯 선물을 내밀었다. ‘워크맨’이었다. 생일 때마다 엄마에게 그렇게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바로 그 워크맨이었다. 난 기뻐서 방방 날았다. 언니는 그렇게 좋아, 라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언니가 사준 워크맨 속에는 테잎이 하나 들어 있었는데, 바로 1987년에 나온 <동물원> 1집이었다. 난 그전까지 동물원은 과천이나 용인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언니가 사준 동물원 테잎으로 워크맨을 개시했다. 동물원의 음악은 처음 내게 아마추어 같은 연주로 별 매력을 못 주었다. 그러나 가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마치 수필집을 읽는 듯 가슴에 와 닿는 구석이 많았다. 또한 <거리에서>의 김광석의 음성은 미성이면서도 호소력이 있었다. <잊혀지는 것>의 김창기는 쓸쓸하면서도 울림이 있었다.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의 유준열은 마치 산울림의 김창완 같았다. 난 동물원 2집, 3집, 4집, 5집을 연거푸 샀다.

 

솔로로 독립한 김광석의 음반들도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다. <안녕 친구여>가 실린 김광석의 1집, 김형석의 프로듀싱으로 한결 세련된 김광석 2집, 다시부르기 시리즈, 그리고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의 3집, <홀로 남은 밤>의 4집까지. 동물원과 김광석,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고등학교를 버텼다. 배신은 이리도 빠른가. 동물원을 빠져들면서, 난 다른 음악은 일절 듣지 않았다. 등하교를 하면서도, 자율학습을 하면서도, 잠자기 전까지 난 김광석과 동물원에 살았다. 공부하다 지칠 땐 동물원의 <그럴 땐 생각해봐>를, 성적이 올랐을 땐 김광석의 <행복의 문>을, 열 받을 땐 동물원의 <세상에 속을지라도>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들의 음악은 내 곁에 있었다. 특히 맘 맞는 친구들도 같이 좋아할 때의 그 가슴 벅참이란. 대학에 가서 동물원과 김광석처럼 그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자고 다짐하곤 했었다.

 

 

김광석과 동물원에 살다

 

그렇게 동물원, 김광석에 기대어 고3을 견뎌내고 대학 진학을 목전에 둔 1996년, 돌연 김광석이 죽었다. 난 그의 부재가 실감되지 않았다. 방학 때마다 엄마 몰래 친구들과 상경하여 콘서트를 찾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그가 세상에 없다니. 1000회 기념 콘서트에서도 별 의미 없이 시작했는데 천 회를 넘겼다고 예의 얼굴을 무너뜨리고 웃던 그였다. 노래만을 남겨두고 그가 갔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난 한동안 우울했다. 그래서일까. 대학 시절 동안에는 고교시절만큼 동물원과 김광석을 끼고 살지 않았다. 대신 브릿팝이나, 이승환, 토이, 전람회, 롤러코스터 등에 심취했다. 가끔 학교 앞 맥주집에서 그들의 음악이 흘러나오면 추억에 잠길 뿐이었다.

 

그러다가 대학 4학년 때 난, 인간관계에서 빚어진 오해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세상이 온통 내게 적대적인 것만 같았다. 난 홀로 남았고,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대학에서 내가 좋아했던 음악들은 대부분 그 사람들과 관련이 되어 있어서, 그 음악을 듣는 일도 힘에 겨웠다. 결국 지치고 외로웠던 난, 다시 그들의 음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노래들은 내가 떠난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이 취해 있던 날이 많았던 그 시절, 김창기 의 <그럴 땐 생각해봐>, 박경찬의 <길을 걸으며>, 김광석 <홀로 남은 밤> 등을 나직이 부르면 거짓말처럼 기분이 나아지곤 했다. 그 노래들이 있어, 고맙고 다행한 날들이었다.

 

음악이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들의 음악은 분명 내 영혼의 로터스였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먹으면 세상 근심을 잊는다는 그 로터스 말이다. 그들의 음악의 없었다면, 아마도 내 삶은 더 황량하고 더 처연했을 것이다. 그들의 노래는 오래도록 남아서 오늘도 나를 위로한다. 이 글은 지난 내 삶이 홀로 쓸쓸하고 바람 불 때, 곁에서 위로해준 동물원과 김광석의 음악에 대한 헌사다. 고개숙여 감사의 마음을 유준열의 가사에 빗대어 전한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동안 그들의 음악이 있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e*******7 2009.06.28. 신고 공감 1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