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서 작가 심훈은 1901년에 태어나 소설가, 시인, 영화인으로 1919년 3.1운동에 참가해 투옥되었다. 25년에 탈춤을 연재하고 먼동이 틀 때라는 영화를 만든다. 그후에도 몇권의 책을 썼으며 일제탄압을 피해 있으면서 상록수를 쓰게 된다. 이 작품은 1935년을 즈음하여 쓰여졌다.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일본의 탄압으로 영화가 되지 못했다. 작가는 3.1운동 세대로 일본의 압제 속에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지식인이었다. 일부 지식인들은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작가는 이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겠다. [학생 계몽운동에서 만난 동혁과 영신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자 동지가 된다. 결국 두 사람은 학교를 그만두고 계몽운동에 투신하기로 약속하고 각자 자기의 일터로 돌아가서 열심히 그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영신은 과로와 맹장염으로 치료를 받아야했고, 그후 동혁은 동생의 방화문제로 인해 감옥에 갖히게 된다. 영신은 학업을 위해 일본으로 갔다가 병에 걸려 귀국하지만 결국 죽게 된다. 영신의 죽음 앞에서 동혁은 슬퍼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한다. 그러나 동혁은 고민을 끝내고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이 글을 통해 당시의 지식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쌍두취 행진곡]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지식인들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대해서 비판한다. 작가는 배운것이 사용되지 않으면 배우지 않음보다 못하다는 것을 주인공들이 학업을 중단 한 것에서 보여준다. 다시 말해 배운 사람은 그 배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농촌과 당시의 문맹을 깨우쳐 보려는 자세를 가지라고 당부하고 있다. 작가는 함께 꿈을 꾸었던 영신이 죽는 것으로 하여 비극적인 이야기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작가는 마지막 장의 제목을 '최후의 일인'이라고 하였다. 비극적인 이야기 다음에 이러한 제목을 붙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있다. 작가는 영신이 일본에서 학업도중 병이 걸려 돌아 온 것을 통해 영신이 죽은 것이 일본과의 싸움에서 순교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영신과 동혁이 하고 있는 일은 사실 일본이 억압하고 있는 일, 즉 창씨개명, 우리말 사용금지에 대한 정면 도전인 셈이다. 결국 영신의 죽음은 일본과의 싸움이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러나 영신이 비록 죽었다고는 하지만 최후의 일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살아 있음을 알게 한다. 누군가 싸우다가 죽어도 우리 민족을 살릴 사람은 언제나 남아서 상록수 그늘을 걷게 될 것임을 알려주는 제목이다. 이 작품에서 나타난 농촌 계몽운동은 1935년대의 시대적 상황이다. 오늘날 동혁과 영신이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이들은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어쩌면 이것은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인지도 모를 일이다. 잔잔한 감동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