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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웃긴 남자1에 흥행에 힘입은 또 하나의 비극
"노자를 웃긴 남자1에 흥행에 힘입은 또 하나의 비극" 내용보기
갈수록 쇠퇴해가는 사회 자체의 문화선별기능의 현 상황를 반영해 주는 노자철학과 관련하여 출판된 서적 중 최악의 서적이다. 진지한 학문적 접근의 희소하며, 일관되게 한명의 학자에 대한 고집스럽고 완고한 혹평으로 가득한 책. 원래 노자를 웃긴 남자1이 통신상에서 지인들간의 가십거리로 스여진 글이었으나, 그 표현상의 재미와 관점의 기발남으로, 출판사의 눈에 띄여 저자도 원
"노자를 웃긴 남자1에 흥행에 힘입은 또 하나의 비극" 내용보기
갈수록 쇠퇴해가는 사회 자체의 문화선별기능의 현 상황를 반영해 주는 노자철학과 관련하여 출판된 서적 중 최악의 서적이다. 진지한 학문적 접근의 희소하며, 일관되게 한명의 학자에 대한 고집스럽고 완고한 혹평으로 가득한 책. 원래 노자를 웃긴 남자1이 통신상에서 지인들간의 가십거리로 스여진 글이었으나, 그 표현상의 재미와 관점의 기발남으로, 출판사의 눈에 띄여 저자도 원래 의도와는 달리 '엉겹결'에 출판이 이루어졌음을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후 예상외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켜 저자도 많은 행동방향의 수정을 해서 이 책이 연달아 세상에 나오게 되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아래 책속으로에서 발췌된 부분에서 보듯이, 옥편하나 놓고, 노자도덕경을 대할 때 언뜻 언뜻 떠오른 개인적인 상념하나에만 의지해서 쓰여져가는 지극히 혼자만의 노자도덕경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문'에 불과하다. 진지하고 꼼꼼한 학문적인 접근을 '넘어갈 것은 넘어가야 한다는' 類의 특유의 독선과 아집으로 경멸하며, 보는 이의 눈을 미혹시켜가며 나름대로 자신감있는 필치로 호소력을 이끌어내는 종류의 기교들로만 가득찬 책이다. 지나친 언어유희가 그것을 구사하는 자의 사고를 얼마만큼 분산시킬 수 있으며, 자신을 왜곡하고 혼란되게 만들수 있는가를 충분히 보여준 책. 저자는 일통관지한 해석을 보여주겠노라고 말하고 잇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러한 하나의 흐름이 되는 것을 적나라하게 제시하지 못해내고 있다. 책 전반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어떻게 하던지, 이해하기 쉽고 평이한 문장으로 '원전'을 손상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두리뭉실하게 용해시켜내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의미를 얻은 듯한 '착각'을 유도하려는 필자의 노력이다. 아무래도 이 책은 세상에 너무 알려진 선비의 이름을 뒤에 엎고 한때나마 또하나의 헛된 이름을 얻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기 힘든 책이라 할 것이다. 다시는 이런 종류의 책은 출현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게 해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復命曰常 知常曰明 복명왈상 지상왈명 '만물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을 상(常)이라 한다'는 말이 있다. 잘도 갖다 붙인다. 노자가 '상(常)'이 아니라 '상(相)'으로 썼어도 시비 걸 일 없고, '상(象)'이라 했으면 또 어때? 밥상이라 해도 관계없다. '지상왈명(知常曰明)'이라. 음냐리 하품 나온다. 졸립다. '상(常)을 아는 것을 일컬어 명(明)'이라 한다네. 명(名)이면 어떻고 명(冥)이면 어떠하리. 이런 것은 그야말로 오야 맘이다. 노자 말마따나 지가 처음 지어내는 건데 뭐라고 갖다 붙이건 그건 지 맘이지, 안 그래? 이런 문장을 번역한답시고 '상(常)'의 뜻이 뭐냐? '명(明)'이 도대체 웬 말이냐? 해쌓는 건 지랄육갑떠는 짓이다. 저 글자들에 무슨 놈의 뜻이 있겠어? 그냥 노자가 붙여본 거다. 저걸 해석하겠다고 달라들어서 오도방정을 떨면서 촐싹거리는 것이 철학이 아니다. 할 걸 하고 넘어갈 건 넘어갈 줄 아는 것이 철학이다.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 상(常)이나 명(明) 같은 글자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존재도 명을 다하면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느니라'는 뜻만 새겨들으면 된다.
g******m 2001.03.06. 신고 공감 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판타지의 여왕
"판타지의 여왕" 내용보기
노자를 웃긴 남자 1편을 보았을 때 참으로 탄복을 했습니다. 해석이나 번역에 누가 우위인가 하는 것은 모릅니다.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한문은 물론이고 노자에 나오는 한자의 반 정도를 모릅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도덕경이라는 책의 가치입니다. 신앙심 없는 사람에게 경전이 무의미하듯 도덕경 역시 내게는 뜻 없는 고전에 지나지 않았고, 그 의미가 제 아무리 심오해도 나와는
"판타지의 여왕" 내용보기
노자를 웃긴 남자 1편을 보았을 때 참으로 탄복을 했습니다. 해석이나 번역에 누가 우위인가 하는 것은 모릅니다.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한문은 물론이고 노자에 나오는 한자의 반 정도를 모릅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도덕경이라는 책의 가치입니다. 신앙심 없는 사람에게 경전이 무의미하듯 도덕경 역시 내게는 뜻 없는 고전에 지나지 않았고, 그 의미가 제 아무리 심오해도 나와는 별 상관없고 그거 아니라도 배워야 할 게 너무나 많은 나에게 귀찮은 또 하나의 고전 이름이었을 뿐입니다. 모든 고전 번역자들이 그 번역의 결과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가르침이 되거나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자기들끼리 오로지 학문적 성과의 비교를 위한 것이면 책으로 출판할 게 아니라 논문으로 발표를 하는 게 다른 사람 헷갈리게 하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경숙씨의 노자를 웃긴 남자 1편은 내게 또 하나의 볼 가치가 있는 좋은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자가 실제로 무어라고 썼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읽는 책 속에서 내 마음을 실제로 움직이는 가르침을 얻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2편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제2편을 보다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상당 부분을 도올 까기에 바쳐버린 것입니다. 그 책의 목적은 도올이 해석이나 번역을 잘 못한 부분을 지적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로지 비방을 위한 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던 것입니다. 내가 돈 주고 산 책에서 쓸데없는 정도의 비방을 보는 것은 참담한 것입니다. 내가 안티 도올은 아니더라도, 그런 욕설에 카타르시스를 전혀 안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만 비판이 지나쳐서 근거가 황당해 질 때에는 비판자의 인격을 의심하게 됩니다. 나는 제1편에 이은 신선한 해석을 바라고, 또한 그 방면의 전통적 해석과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즐기려 하였습니다. 이제는 물론 도덕경 완역본이 나왔으니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처음 도올 까기가 너무 늘어지는 것에 대해 본 영화 시작 전에 광고를 한 20분씩 해대는 주말의 명화처럼 짜증이 났습니다. 비방의 양에서뿐만 아니라, 비방의 자료로 도입된 수레바퀴 이야기가 도올 못지 않은 억지와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제2편의 양적 빈약함을 이런 우스개로 때우려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도올의 동양학 강의가 자주 주제에서 벗어나 서양 철학자의 이야기로 외도를 일삼는 때가 많지만 그건 그런대로 봐 줄만 한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제2편 앞 부분의 도올 할퀴기는 외도의 가치를 인정하기 힘든 그냥 비방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레바퀴 이야기는 자기상식이라는 선입견에 빠져 실족한 느낌입니다. 또한 중국어가 글과 말이 따로 노는 언어라는 식의 타문화에 대한 몰이해까지 노출되는 것은 정말 기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런 자료가 남을 비판하는 자료로 쓰일 때에는 글자 하나까지도 심사숙고를 해야 할 줄 압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가벼운 행동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 도올이 이경숙에게 반론을 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흔한 무책임한 글빨 좋은 네티즌 중 하나로 치부했기 때문인 듯 한데, 과연 그러한 것인지? 노자를 웃긴 남자 2편은 그러한 사유로 다 읽지 못했습니다. 지금 완역 도덕경을 사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깁니다만 오늘 처음 들어와 본 이경숙의 홈페이지에서 개천록을 좀 읽어 봤습니다. 판타지 소설로 뛰어난 소재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황당무계함을 미리 밝혀두는 것이 책임 있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서양인과 우리 민족을 생물학적으로 달리 분류를 하거나 남의 종교를 희화화하는 등 편견과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극우파들처럼 자기들끼리만 주고받는 이야기로 세계를 재단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딴지일보를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개천록에서 보여준 판타지소설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은 그 어떤 재료라도 손에 닿는대로 그럴 듯하게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노자를 웃긴 남자의 진정성까지 의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o*****i 2004.05.05.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