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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로" 내용보기
"누구를 위해서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과학적 탐구의 중립성이란 이름으로 몸을 도사리는 교육자 집단"에게 보내는 좀 과장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장되었다고 하는 것은 교육 전체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지만 이 책은 교사들에게 쓴 약과 같다. 교사들의 고민은 교과서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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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서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과학적 탐구의 중립성이란 이름으로 몸을 도사리는 교육자 집단"에게 보내는 좀 과장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장되었다고 하는 것은 교육 전체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지만 이 책은 교사들에게 쓴 약과 같다. 교사들의 고민은 교과서 내용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효율적인 수업 방법의 연구에 매달리다 보니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에 대한 숙고는 멀어지고 말았다. 교사들이 교육의 내용이 타당하고 진정 교육적인지 철저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금과옥조처럼 교과서를 아이들의 머리 속에 밀어 넣으려는 현재의 교실이 특정 계급의 가치관과 이득을 위해 봉사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교육의 기능을 교사 스스로 축소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민주주의의 지평을 확대하고 비판적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학생을 준비시키는 터전으로써 다양한 집단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공간"으로서의 학교에 대한 촘스키의 인식은 교사들에게 생활에 떠밀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명절과도 같다. 좋은 대학에 더 많은 학생을 입학시키기 위한 교실에서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우위를 점하게 된다. 요즘 교단은 ICT 활용 수업에 대한 연구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 더욱 방법적인 고민에 교사들을 빠뜨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 때 이 책은 진정 "무엇을 가르치는가"에 대한 전환을 촉구하는 경종이라고 받아들인다.

[인상깊은구절]
교육의 목표는 " 지배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가치 감각을 길러주는 것이고, 자유로운 공동체의 지혜로운 시민을 양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며, 자유과 개인의 창의성을 시민의식과 결합시키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q******c 2001.07.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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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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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는 우리처럼 이념이 다른, 같은 민족의 반쪽과 대치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가 확립안된 독재정권에 맞서서 반정부운동을 펼쳐야할 상황의 우울한 나라도 아니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따라서 노암 촘스키같은 깨어있는 지성인이 미국사회에서 끊임없이 의견을 개진하고 정부의 잘못된 처사와 조작된 역사에 대해 진실을 밝히려 시도하고 있는 것에 사뭇 의문이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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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는 우리처럼 이념이 다른, 같은 민족의 반쪽과 대치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가 확립안된 독재정권에 맞서서 반정부운동을 펼쳐야할 상황의 우울한 나라도 아니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따라서 노암 촘스키같은 깨어있는 지성인이 미국사회에서 끊임없이 의견을 개진하고 정부의 잘못된 처사와 조작된 역사에 대해 진실을 밝히려 시도하고 있는 것에 사뭇 의문이 가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니 어떻게 해서 이런 사실이 제대로 보도되거나 논의되지 않고 있었나를 의심할 정도가 된다.

대학시절 언어학개론시간에 만난 촘스키 단순히 현대언어학의 대부이자 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현대지성계의 별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분이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정치사회의 진실대변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존경의 마음이 우러났다. 촘스키는 이 책에서 미국사상의 중심인물인 존 듀이의 교육철학에 근거하여 현재의 교육을 비판한고 있다. 이는 시스템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이념적인 것이고 나아가 사회정치경제 전반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인간교육의 근본에 관한 것이다. 

듀이는 상품의 생산이 아니라, 평등한 조건에서 서로가 연대하는 자유로운 인간을 생산하는 사회가 되어야 보다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가 구현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런 듀이의 정의와 상반되게도 근대사회의 지식인의 삶을 지배하는 두 흐름을 촘스키는 언급한다. 동유럽의 계획경제와 미국및 서유럽에 건설된 자본주의산업사회가 그것이다. 한편 이 둘은 18세기 계몽운동에 뿌리를 둔 또다른 전통 즉, 좌익 자유론자와 대립관계를 유지해왔다. 촘스키는 듀이를 대표로 하는 이 좌익 자유론자들을 독행적 좌익세력이라고 규정하고 고전자유주의의 직계인 이것은 국가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라는 절대적 경향과 완전히 대립되는 세력이라고 말한다. 

러셀의 표현대로, 교육은 지배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가치감각을 길러주는 것이고 자유로운 공동체의 지혜로운 시민을 양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며 자유와 개인의 창의성을 시민의식과 결합시키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이 정상적이고 창의적으로 꽃피워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교육이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모순의 역사를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중미 몇 나라에 대한 정치적 태도와 행동의 거짓된 면모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 책에 실패한 교육, 그리고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원제의 미스에듀케이션이 갖는 좁은 의미를 번역과정에서 더 확장시키고 싶었던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촘스키의 잘못된 교육은 국민들에게 제대로된 진실정보를 주지못한, 자국의 안보와 이익이란 차원에서 주변국과 이해관계국에 몹쓸 행동을 한 사실을 숨긴 정부의 그릇된 처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하다. 

촘스키는 올바른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깨닫는 최선의 방법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민주주의를 실천해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나 사회가 얼마나 민주적인가의 척도는 이론과 현실의 근접성에 있다는 것이다. 민주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신들의 삶과 직결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론과, 정부에 모든 힘이 집중되어 개인이나 집단은 그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현실사이에는 분명한 괴리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현대사회에서도 자신이 귀족주의자가 될 것인지 민주주의자가 될 것인지(제퍼슨이 정의한)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 제도권이 보상하고 부와 특권과 권력이 보장된 길인 귀족주의자의 길과, 반대로 투쟁또는 패배의 길이 될 수 있는 민주주의자의 길이다. 그러나 후자의 길은 새로운 시대정신에 영합한 사람은 상상조차 못할 보상이 있는 길이라고 촘스키는 전한다.


f****e 2009.09.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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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본래의 목적실현에 실패한 미국 교육 [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
"[서평] 본래의 목적실현에 실패한 미국 교육 [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 내용보기
전세계인들의 부러움과 칭찬을 한 몸에 받는 북유럽 국가와 '교육지옥'으로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교육 실태를 공부하면서 '미국의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한 때는 민주주의 뿐 아니라 교육과 문화에서 아시아와 유럽사회로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국사회의 교육. 우리나라처럼 초등학교부터 아이들을 무한경쟁 시스템에 몰아넣고 입시전쟁이 치열하고 사교육이 교육을 지배하고
"[서평] 본래의 목적실현에 실패한 미국 교육 [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 내용보기

전세계인들의 부러움과 칭찬을 한 몸에 받는 북유럽 국가와 '교육지옥'으로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교육 실태를 공부하면서 '미국의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한 때는 민주주의 뿐 아니라 교육과 문화에서 아시아와 유럽사회로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국사회의 교육. 우리나라처럼 초등학교부터 아이들을 무한경쟁 시스템에 몰아넣고 입시전쟁이 치열하고 사교육이 교육을 지배하고 있을까?

20세기 들어서면서부터 자본주의 체제의 최첨병 국가로 등극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선두주자를 달리고 있는 미국이다.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경제구조와 신자유주의적 교육방식이 철저하게 적용되지 않을까하는 선입견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교육이라는 표현을 적고 보니 언젠가 케이블TV에서 봤던 영화에서 미국 중소도시 내 극빈자들의 교육실태가 1990년대 초반이었음에도 아주 열악했던 기억이 나기도 했다.

미국의 교육현황을 알아볼 수 있는 책을 고르던 중, 인터넷서점에서 노엄 촘스키 교수의 저서를 발견했다. MIT 언어연구소의 교수로 재직하는 그는 촘스키는 1967년 [뉴욕 리뷰 북스]에서 특별부록으로 발행한 '지식인의 책무'라는 글을 통해 '지식인은 거짓을 세상에 드러내야 하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 고 역설하면서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등 이후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미국의 대내외 정책에 대한 뛰어난 사회 비평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서구사회에서는 플라톤, 셰익스피어, 프로이트와 더불어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 시대의 가장 소중한 지식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미국사회에서 나타나는 교육의 문제점을 포괄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학교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공공교육의 새로운 본보기를 향해 우리의 시각은 어떻게 넓혀가야 하는가? 촘스키는 범세계적인 테크놀로지의 발전, 언론의 중요성, 학교와 고등교육의 민주적 역할을 꼼꼼하게 지적한다. "어떤 형태의 교육이든지, 교육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개혁되지 않는 한, 진정한 민주사회는 요즘처럼 급변하는 사회에서 결코 꽃피지 못할 것이다"라고 촘스키는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의 교육체계는 학생들에게 거짓을 가르치고 있다"는 촘스키의 비판은 미국 뿐 아니라 미국을 모방하려고만 하는 이 땅의 교사, 부모, 학교 운영자, 시민운동가만이 아니라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귀기울여야 할 말이라고 할 수있다.

그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르쳐야 하는 미국의 학교가, 순종을 강요하고 독립적인 사고를 막는 통제와 억압 시스템으로 제도화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누구라도 이런 시스템 내에서 교육을 받게 되면, 권력구조를 지탱하도록 사회화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사는 권력층에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다른 전문가 집단과 다르지 않다. 국가에서 봉급을 받는 교사는 지배계급의 의도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고 역설한다. 그러므로 12살의 학생도 알 수 있는 진실을, 교육받은 교사들은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교사만이 아니다. 공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의 정책과 언론이 모두 촘스키의 비판에 올라 있다. 그 동안 촘스키가 다른 저작물에서도 다루었던 미국 정치의 음모를 이 책에서도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국제 분쟁과 지역 분쟁에 미국 정치의 계산이 깔리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중남미 국가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미군이 개입하고 폭력도 서슴지 않은 사례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이런 사실을 부인하면서 교묘하게 언론을 조작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발표하지 않았다고 그 진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촘스키는 아니라고 말한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이면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캐어보려는 노력이 있다면 언제라도 그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촘스키가 서구 강대국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지만,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그 대안으로 깨어있는 교육을 말하고 있다. 진실을 가르치고, 진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연대하고, '방관자'가 아닌 '행동하는 참여자'로 나서라고 말하고 있다. 촘스키가 말하는 훌륭한 교사란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고, 진실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학생들이 스스로 진실을 깨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교사라고 말한다. 민주적으로 살기를 열망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비판적인 안목으로 보라고 말한다. 현 사회의 지배계급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것 이면의 위선적이고 비인간적인 관행을 직시하면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지식인은 스스로 역사의 방관자로 남지 말고 역사의 참여자가 되라고, 그리고 그 대열에 학생들을 제외시키지 말고, 동참하게 하라고, 지식인 교사들에게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교육제도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교육 내용과 정책, 그리고 교사들의 역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애초에 이 책을 선택하면서 알고자했던 미국의 교육제도나 시스템, 대학입시제도, 교육문화, 사교육 등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맹목적으로 ?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정부의 행태를 보면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교육제도나 시스템 뿐 아니라 교육철학과 내용도 홀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상식과 진실과 합리성이 아니라 전경련 등 재벌기득권의 이해와 요구에 맞추어 교과서를 개편해야 한다거나 일제 식민지나 해방 후 한국현대사에 대한 내용을 교과서에서 제거하려는 '불순한 목적'가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 2012년 4월 30일 ]
c****n 2012.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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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선생의 까발리기, ''교육''편.
"촘선생의 까발리기, ''교육''편." 내용보기
촘선생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언제나 상반된 기분을 전해준다. 지속적인 방법과 수단을 사용해, 자발적인 민중을 와해시키려 하는 권력에 대해 끊임없는 분노를 일으키게 하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민중의 단결과 사태의 진실을 밝히고, 알리려 노력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촘선생의 이야기에 희망을 갖기도 한다. 촘선생의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시리즈를 접하고
"촘선생의 까발리기, ''교육''편." 내용보기
촘선생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언제나 상반된 기분을 전해준다. 지속적인 방법과 수단을 사용해, 자발적인 민중을 와해시키려 하는 권력에 대해 끊임없는 분노를 일으키게 하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민중의 단결과 사태의 진실을 밝히고, 알리려 노력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촘선생의 이야기에 희망을 갖기도 한다. 촘선생의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시리즈를 접하고 나면, 그의 다른 저서들을 읽는 것이 많이 수월해진다. 이 책은, 촘선생이 그렇게 알리려고 하는 진실에 대해, ''교육''의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디딤돌이라 본다. 이 책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2장은 ''교육''에 관련해서 얘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3~5장의 경우에는 얼핏보면, 교육과 거리가 있는 것 같은 정치·시사에 관련된 이야기로 그득하다. 이미 촘선생의 책을 많이 접해봤다면, 읽지않아도 좋을 부분이다. 대신, 이 책은 약간 독특하다. 옮긴이의 글과, 이 책을 엮은 도날도 마세도의 서문은 꼭 읽어야한다. 옮긴이의 글과 서문에서 이 책의 정수를 다루고 있다. "민주주의는 실패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부와 행복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어, 지적이고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을 꿈꾸지만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다. (중략) 얽히고 설킨 모든 모순이 해소될 때, 그런 세상은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자본, 이자, 재산, 황금에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W.E.B. 뒤 브와 | 서문에서 재인용 대한민국에서 모범생의 궤를 따라 달려왔다면, 그리고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자유민주주의를 절대 이상으로 여기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서문에서부터 ''지르고 있는 것 같은'' 촘선생의 선언은 ''전기의자''의 괴로움과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개념은 일종의 통치방식으로, 기업계에 기반을 둔 소수집단이 민간사회를 지배함으로써 국가를 관리하는 반면 국민은 묵묵히 관찰하는 제도이다." 이 설명에 동의하는가? 그럼, 이어지는 촘선생의 설명에도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미국에서처럼 소수집단이 결정한 사안을 국민이 비준하는 제도가 된다." 만약, 이 부분에도 고개를 끄덕였다면, 당신은 루소와 마선생─맑스─, 그리고 촘선생의 제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정책의 결정에 국민이 참여하는 것은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된다"는 설명에 이르면, 전율이 온다. 학교는 상충되는 두 개의 목적을 두고 갈등한다. 이 사회의 문화와 체제를 보존·유지하기 위한 목적과, 사회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개혁 또는 개선하기 위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는 것, 포수가 총이 아닌, 혁신적인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교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려간다. 보수와 혁신이라는 두 개의 큰 힘이 충돌하고 있는 장소가 바로 학교다. 그러나 촘선생의 이야기도 그렇고, 나의 시각도 그렇고, 교육은 사회의 체제를 공고히 다지고,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충실한 국민을 기르기 위한 역할에 더욱 노력해 왔다고 본다. "젊은이의 교화를 책임지는 기관"이라는 카터 시절의 학교에 대한 정의는, "민주적"인 학교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순종을 강요하고 독립적 사고의 가능성을 저해하기 위한 기관"으로 받아들인다면 억측일까? 하지만, 사실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나는 촘선생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촘선생이 말하길. "학교는 통제와 억압 시스템 내에서 운영되는 하나의 제도적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란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촘선생과 보스턴 대학의 총장을 지낸 존 실버라는 인물과 라디오 대담을 벌인다. 재미난 부분은, 즐겨보는 손석희 아저씨의 패널들과 너무하다 싶을만큼 닮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좀 더 나은 느낌을 받는 것은, 촘선생은 누구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증거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은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하고, 학생들에게 그것을 경험하게 해야한다. 민주주의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서 이해시키기 위해, ''일반사회''와 ''윤리'' 교과를 구성하면서 단원에 넣어 "교화"시킬 필요는 없다. 학생들 스스로 자치활동과 민주주의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체화(體化)해야하는 부분일 것이다. 낯설은 것, 당연하지 않은 것이 일상화 되었을 때의 공포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인상깊은구절]
교사는 학생들에게 사회 구조와 정치 구조를 분석해서 그들의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요구할 틈이 없는 셈이다. 또한 학생들에게도 현실 구조를 파악해서 진정으로 그들을 위한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오로지 학생은 기계적으로 암기해서 나중에 국가에서 시행하는 규격화된 시험문제에 쏟아내야 하는 지식을 단순히 전달 받고 있을 뿐이다. pp.17 학교는 진리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선동적 주장을 학생들 머릿속에 주입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가 민주적이라면, 민주주의의 상투적 선전문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킬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가? 그저 민주적으로 행동하고 처신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이상을 떠들어댈수록, 그 시스템은 덜 민주적이라는 증거입니다! pp.33 우리는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된 나라입니다. 부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굳건히 지켜가기 위해서라도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기업 계급이 살아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국민들은 계급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불행히도, 학교는 이런 헛된 신화를 면면히 이어가는 데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pp.57
YES마니아 : 골드 c***m 2006.08.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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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의 교육관과 진실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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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개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삼분이 일에 해당하는 전반부에는 교육에 대한 촘스키의 생각이 쓰여져 있고, 나머지 부분인 후반부에는 미국의 추악한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글들로 채워져있다. 전반부에서 촘스키는 현재 미국의 학교 교육은 창의적인 사색가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가르치는 것으로 통제와 억압 시스템 내에서 제도적 역할에 만족하는 노예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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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개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삼분이 일에 해당하는 전반부에는 교육에 대한 촘스키의 생각이 쓰여져 있고, 나머지 부분인 후반부에는 미국의 추악한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글들로 채워져있다. 전반부에서 촘스키는 현재 미국의 학교 교육은 창의적인 사색가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가르치는 것으로 통제와 억압 시스템 내에서 제도적 역할에 만족하는 노예들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교육의 대상자들이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에 대한 그 특유의 솔직한 비판을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은데, 공공교육을 받는 12년간의 시간도 부족해서 대학에서도 취업을 위한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은 그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최고의 교육기관이라고 인정받는 대학의 총장이 엘리뜨 교육을 위해 최고의 수재들만을 대학에서 선발하여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당당하게 하는 우리나라에서 "교육이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커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다"라는 교육개념은 벌써 오래전에 패기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교육의 결과를 효율성과 생산성으로 평가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은 아이를 망치려고하는 반교육적 행동으로 비난 받기 딱 좋다. 교육의 결과는 점수가 말해주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비효율을 상징할 뿐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효율을 촘스키식의 솔직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키워나간다"는 것이다. 교육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촘스키가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고 가서 쓴 글이 아닐까하는 상상도 해봤다. 그리고 후반부는 미국의 추악한 행위들에 대한 폭로에 집중했다. 그들이 자행한 중남미 국가들에서의 테러와 위선들에 대한 기록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군부독재국가인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등에서의 민간인 학살에 개입한 미국과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민주정부를 수립한 니카라과에서의 반군지원에 대한 상세한 피의 기록을 제공한다. 촘스키의 책은 읽을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번역의 매끄러움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 책도 촘스키가 그의 특기인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그 내용을 한층 강조하기 위해 반어적 기법을 사용한 부분에서 번역의 껄끄러움이 느껴졌다. 그점이 아쉽다.

[인상깊은구절]
교육이 물로 잔을 채우는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니라 꽃이 나름대로 커가도록 옆에서 돕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s******m 2005.08.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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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교육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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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영국 그룹 핑크 플로이드가 "The Wall"이라는 앨범을 발표했을 때 그 반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벽 속의 다른 벽돌(Another brick in the wall-촘스키의 책에 제시된 노래이다)이라는 노래는 세 파트로 나뉘어져 계속되는데 교육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우리가 자라서 학교에 가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 조롱을 퍼부어 대며 우릴 아프게 하는 선생님들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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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영국 그룹 핑크 플로이드가 "The Wall"이라는 앨범을 발표했을 때 그 반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벽 속의 다른 벽돌(Another brick in the wall-촘스키의 책에 제시된 노래이다)이라는 노래는 세 파트로 나뉘어져 계속되는데 교육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우리가 자라서 학교에 가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 조롱을 퍼부어 대며 우릴 아프게 하는 선생님들이 있었죠 (When we grew up and went to school, there were certain teachers who would hurt children anyway they could by pouring their derision upon anything we did)…… 우리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사고의 통제는 필요 없어요, 교실에서 어두운 빈정댐은 없어야 해요, 선생님들 아이들을 가만 나둬요, 이것봐 선생, 아이들을 가만 놔두란 말야! 모두 벽 속의 다른 벽돌일 뿐이에요(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Teachers leaving the kids alone Hey, teacher, leaving kids alone All in all it's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The Wall"이 가지는 구조는 노암 촘스키가 이야기한 바와 상당히 유사하다. 교육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여 전쟁에 대한 비판, 정부와 위정자들에 대한 비꼼 등 사회체제에 대해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이 그러하다. 촘스키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몇 가지로 나뉘어서 생각될 수 있는데 우선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다. 교육이 민주주의의 신화를 심고있다는 그의 주장은 명백히 사실이며 그래서 또한 위험하다. 교육이 민주주의의 신화를 심고있다는 사실은 또한 매우 위험하다. 교육이 갖는 영향력은, 비록 촘스키 본인도 "학생의 성취도를 결정하는 데 학교에 관련된 변수보다 가정이란 배경이 갖는 영향력이 훨씬 크다고 결론내"리고 있지만, 그 자신이 또한 이야기하기를, "학교에서는 교과내용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처신하고 옷을 입는 방법, 기존 집단과 마찰을 빚지 않으면서 어울리는 방법, 질문을 던지는 방법 따위도 배우"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이 무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커서 애국심에 대한 교육은 아침저녁으로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하고 끝날 때마다 나오는 애국가에도 코가 시큰해지도록 한다.비록 생활자체는 민주적이지 못하더라도 학교가 교과 내적·외적으로 주입하는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민주적이지 못한 사회를 그대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중요한 교두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지식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식인들은 사회의 교조적인 체제를 알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보상에 눈이 어두워 지배체제에 유리한 가치관을 일반 대중에게 주입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특히 교사를 무비판적으로, "지식의 눈속임에 현혹되어 세상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비판 능력을 상실한 기술자 집단이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배운 놈이 더하는" 세상에 대해 촘스키는 비판하지만 사실,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자는 진정한 지식인일 수 없고 그가 이야기하는 인민위원일 뿐이라고 본다. 또한 그는 언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수단화되어 있다고 한다. 교묘한 틀 속에 구조적 문제는 모두 감추고 세상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우리 언론도 다르지 않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뉴스조차 실은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미국정부나 역사에 얽매여 교육내부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간과한 것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간략하게나마 "모든 학생이 큰 거짓말로 일관된 교육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고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가 일관되게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교육이 거짓말을 하고 있고 현재의 교육은 길들이기 교육일 뿐이라는-에서는 교육의 대상인 학생과 교육의 담당자인 교사의 입장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지식인으로서 혹은 교육자, 학생으로서 스스로의 비판정신을 구조 속에 묻어버리지 않도록 촘스키의 비판들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교육이 물로 잔을 채우는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니라 꽃이 나름대로 커가도록 옆에서 돕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는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제도는 부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일 뿐입니다. 부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굳건히 지켜가기 위해서라도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기업 계급이 살아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국민들은 계급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불행히도 학교는 이런 헛된 신화를 면면히 이어가는 데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m*****7 2001.05.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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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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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든지간에 "제대로 하기"라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하다못해 동네 오락실에 가서 오락한판을 해도 오랜시간 즐기면서 하기란 참 힘이드는 일이다. 하물며 교육이라는 백년지대계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인격과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인격을 갖추기 전 미완성된 인격으로 다루어지던 청소년기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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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든지간에 "제대로 하기"라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하다못해 동네 오락실에 가서 오락한판을 해도 오랜시간 즐기면서 하기란 참 힘이드는 일이다. 하물며 교육이라는 백년지대계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인격과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인격을 갖추기 전 미완성된 인격으로 다루어지던 청소년기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교육을 다루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 책은 우리가 이제까지 옳다고 생각되어지던 것에 물음표를 던짐으로 모범생들의 집단인 교육사회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는 것이다. 급진적이고 진보적이라고도 할수 있으나 원래 해야하는 일을 우리는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우리는 반성을 해야 한다. 어쩌면 촘스키가 말하는 것에도 모순이 있고 잘못된 점이 있을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생각없이 믿어버리는 것이고 위험한 것은 생각없이 실천하는 것이다.
d*****g 2001.09.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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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조작을 행하는 제도교육과 언론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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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변형생성문법으로 현대언어학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정치학, 교육학, 심리학등에도 탁월한 업적을 이룬 대학자이다. 그의 진보적 생각과 줄기찬 현실참여로도 많은 이의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에 나와 있는 "교육"이라는 말은 단순히 학교교육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도교육을 포함해 조작과 왜곡으로 민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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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변형생성문법으로 현대언어학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정치학, 교육학, 심리학등에도 탁월한 업적을 이룬 대학자이다. 그의 진보적 생각과 줄기찬 현실참여로도 많은 이의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에 나와 있는 "교육"이라는 말은 단순히 학교교육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도교육을 포함해 조작과 왜곡으로 민중을 기만하고 있는 언론등도 포함하고 있다. 극소수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교육,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제대로 보지 못 하도록 눈을 가리는 교육이 민주적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지고 있다. 또 언론은 남미나 공산권에 대한 보도에서 여러 증거를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그 피해국가를 오히려 도와 주고 보호해 주고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단순히 문제제시에만 그치지 않고 존 뒤이가 주장했던 민주적 교육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존 뒤이의 이상을 실현하는 일은 본래 미국을 세웠던 국부들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세계질서를 세우기 위한 조건이라는 점에서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요즘의 학교는 민주 교육을 유난스레 강조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민주적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이상을 가르쳐야 한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이 아닐까요? 학교가 진실로 민주적이라면, 다시 말해서 학생들에게 실천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학교라면, 구태여 민주주의에 대한 상투적인 구호를 학생들에게 주입시킬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a****d 2001.06.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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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삶에 대한 감추어진 진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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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막상 대단한 각오로 책을 구입했었는데... 역시 촘스키의 글은 어려워서 다 읽는데는 한참이 걸렸다. 솔직히 다 읽었어도 머리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상황에서의 내용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학교 교육에 대한 미국의 잘못된 점을 정말 잔인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은 책의 모든 장에서 보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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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막상 대단한 각오로 책을 구입했었는데... 역시 촘스키의 글은 어려워서 다 읽는데는 한참이 걸렸다. 솔직히 다 읽었어도 머리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상황에서의 내용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학교 교육에 대한 미국의 잘못된 점을 정말 잔인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은 책의 모든 장에서 보여진다. 제목이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이지만... 처음 읽을 때는 이것들이 왜 교육과 관계 있는지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과감히 책을 덮어 두었다가 다시 읽으니 저번보다는 낫다. 이제 한 번 더 보면 더 잘 이해되겠지... 책 덮개를 덮고나니... 교육에 대한 문제보다 미국에 대한 시각이 또 새롭게 바뀌어졌다. 결국은 이것이 바로 잘못된 교육의 문제이리라... 미국의 학생들이 교육받는 것처럼 나도 우리나라에서 같은 교육을 받아온 것이다. 교육이 지배계급의 논리로만 해석되어, 그 계급의 유지, 발전에 기여하고만 있다는 이야기는 전 세계의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결국은 진정한 교육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점을 던져 주는 것이리라. 존 듀이와 관련하여 민주주의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제법 나온다. 어렵지만... 꼭 읽어 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교사로서의 올바른 철학을 세우는 것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f********i 2003.1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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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다인종 교실에서 배운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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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대학교수가 되고 몇년이 지나서야 미국에서는 흑백통합교육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저자에게 책제목과 똑같이 mis-educate하는 듯하다고 가혹하게 평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자는 아직도 흑백분리교육이 이루어 지던 때, 다인종 교실이라고 해봐야 유대인, 가톨릭 교도 등, 아무리 잘해도 일본인 등이 섞여있던 교실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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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대학교수가 되고 몇년이 지나서야 미국에서는 흑백통합교육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저자에게 책제목과 똑같이 mis-educate하는 듯하다고 가혹하게 평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자는 아직도 흑백분리교육이 이루어 지던 때,

다인종 교실이라고 해봐야 유대인, 가톨릭 교도 등, 아무리 잘해도 일본인 등이 섞여있던 교실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내용 별이 2개이다.

 

미국이 우파 중심적이라는 점에 대해서

예전에는 "왜 그러나?" 싶은 생각이었는데

이제와서는 "미국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래야지"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좌파 - 넓게 보든, 좁게 보든 - 좌파는 아무래도 "투쟁"이라는 과정을 당연시한다.

그런데 인종이 같거나 민족이 같은 상황에서의 투쟁이라면 - 예를 들면 러시아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 등의 경우라면 "투쟁"이 일어나도 "혁명"이라고 불리고 어느정도 세월이 지나면 어느 정도 봉합이 된다.

 

그러나,

인종이 다르거나 민족이 다른 상황에서의 투쟁이라면 -  예를 들면 미국 남북 전쟁이나 서대서양의 섬나라들에서의 독립투쟁 등의 경우라면 "투쟁"이 일어나면 전쟁이라고 불리고 결국 승리한 쪽이 지배할 뿐이다.

 

실재 교실에서 너무나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고

특히 노예의 후손인 인종과 노예주의 후손인 인종이 섞여있는 미국의 상황에서

물론 자연스럽게 같은 인종, 같은 배경의 아이들이 무리를 짓는 상황에서

저자에게 직접 수업을 해보라고 하면 저자는 저자 말대로 할 수 있을까?

 

 

g*****l 2015.12.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