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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년에는..." 또는 "내가 소싯적에는..."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뒤끝은 언제나 씁쓸하다. 때로는 허무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이야기인 즉 자신의 과거에 비해 지금의 현실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딴에는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의 기억이라는 게 지금의 형편에 따라 화려하게도, 또는 초라하게도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예컨대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는 한 사람이 자신의 초라했던 과거를 대중에게 솔직하게 말해준다고 해서 그 기억이 더욱 초라하게 변하는 것도 아니요, 현재의 위상이 새롭게 알려진 그의 과거로 인해 깎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가 들려준 자신의 초라했던 기억은 현재의 위상으로 인해 다소 낭만적인 어떤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반면에 지금은 쇠락한 한 사람이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 기억을 들려준다고 해서 현재의 위상이 조금 높아지는 것도 아니요, 그가 들려준 화려한 기억들이 곧이곧대로 믿기지도 않을뿐더러 화려함이 더욱 증폭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의 과거는 반쯤 차감된 채 대중에게 전달되곤 한다.
김종옥의 소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에는 실업자로 전락한 40대 남자가 등장한다. 비록 지금은 보잘것없는 그이지만 그도 한때는 잘 나가던 때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때의 기억들은 대개 과천과 얽혀 있었고, 지독히도 길치였던 그였지만 그는 단순히 지리상의 길만 못 찾았던 게 아니라 자신의 인생행로를 분간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길을 찾는 데 영 젬병'이었다는 뜻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중의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여자는 내가 서른넷이었을 때 만나서, 서른다섯에 헤어졌다. 그러니까 그게 오 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 오 년이 마치 육 개월처럼 느껴진다. 오 년 전에는 이런 오 년 후의 나를, 정확히 말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가 내 마지막 여자가 될 줄은 몰랐다. 당시 나는 막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었는데, 그 후로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와 같은 번듯한 직장을 다시 구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몰랐다. 나이가 마흔인데, 직장도 없고, 여자도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요즘 나는 완전히 좆 됐다." (p.60)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자신의 나이를 속이며 '나'와 만났던 한 여인을 떠올린다. '나'와 만나면서도 유부남과 양다리를 걸쳤던 그 여인은 결국 유부남과의 위험한 사랑을 선택하면서 '나'와 헤어진다. 그녀가 '나'를 불러냈던 곳도 과천이었다. 길눈이 어두웠던 '나'는 그녀가 일러주는 곳을 간신히 찾아갔었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지금은 그곳이 과천이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그녀와 헤어진 후 직장마저 그만두었던 '나'는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대형 유통업체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나'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여자를 만나게 된다. 건강하고 활발했던 그녀 역시 어떤 오해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 유부남과 사귀었던 그 여자와 헤어진 지 사, 오 년쯤 지난 후의 어느 날 그녀로부터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나는 여전히 여기 그대로 있는데...'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나'는 그녀에게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있으면 안 되잖아'라는 답을 보낸다.
"하지만 당신들도 알다시피 어떤 판단을 내리기엔 인생은 너무나 복잡하고, 결정의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아니, 대체 인생이란 게, 우리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우리 앞에 놓여 있기라도 한 걸까? 그게 보이기라도 하나? 우리는 그저 어떤 판단, 마치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판단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p.75~p.76)
헤어진 여자에 대한 회상에서 비롯된 '나'의 상념은 과천과 연결된 여러 갈래의 추억들로 이어진다. 제대 후 만났던 여자에서부터 중학생 때 같은 반 친구였던 부잣집 아들에 이르기까지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당동에서 남태령 고개를 넘으면 경마장과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랜드와 동물원 등이 있는 과천.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과천과 얽힌 추억 한두 개쯤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작가가 굳이 과천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그만큼 흔한 기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귀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이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에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어쩌면 그건 그녀가 나를 두 번이나 엿 먹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 남자가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p.72)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헤어짐의 원인이 서로에게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일어난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은 너무 많아서 하지 않은 일이 뭔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생각할 때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올려다볼 때처럼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길이란 게 숫제 없는 까닭에 별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는 건 있을 수 없으므로.
인생에서 자신의 길을 확실히 아는 까닭에 길을 잃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누구나 처음인 이 길에서 말이다. 그러므로 후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좋다. 자책하거나 지나친 후회를 하면서 괜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암담한 현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과거에만 머물러서도 안 될 것이다. 2021년 한 해도 벌써 반나마 흘러가고 있다. 문득 하일지의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이 생각나기도 하고, 문성근과 강수연이 출연했던 영화 '경마장 가는 길'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사라지고 예전처럼 청명한 가을이 찾아오면 과천 서울랜드로 향하는 그 고즈넉한 길을 다시 한번 걸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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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년에는..." 또는 "내가 소싯적에는..."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뒤끝은 언제나 씁쓸하다. 때로는 허무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이야기인 즉 자신의 과거에 비해 지금의 현실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딴에는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의 기억이라는 게 지금의 형편에 따라 화려하게도, 또는 초라하게도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예컨대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는 한 사람이 자신의 초라했던 과거를 대중에게 솔직하게 말해준다고 해서 그 기억이 더욱 초라하게 변하는 것도 아니요, 현재의 위상이 새롭게 알려진 그의 과거로 인해 깎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가 들려준 자신의 초라했던 기억은 현재의 위상으로 인해 다소 낭만적인 어떤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반면에 지금은 쇠락한 한 사람이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 기억을 들려준다고 해서 현재의 위상이 조금 높아지는 것도 아니요, 그가 들려준 화려한 기억들이 곧이곧대로 믿기지도 않을뿐더러 화려함이 더욱 증폭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의 과거는 반쯤 차감된 채 대중에게 전달되기 십상이다.
김종옥의 소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에는 실업자로 전락한 40대 남자가 등장한다. 비록 지금은 보잘것없는 그이지만 그도 한때는 잘 나가던 때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때의 기억들은 대개 과천과 얽혀 있었고, 지독히도 길치였던 그였지만 그는 단순히 지리상의 길만 못 찾았던 게 아니라 자신의 인생행로를 분간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길을 찾는 데 영 젬병'이었다는 뜻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중의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여자는 내가 서른넷이었을 때 만나서, 서른다섯에 헤어졌다. 그러니까 그게 오 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 오 년이 마치 육 개월처럼 느껴진다. 오 년 전에는 이런 오 년 후의 나를, 정확히 말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가 내 마지막 여자가 될 줄은 몰랐다. 당시 나는 막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었는데, 그 후로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와 같은 번듯한 직장을 다시 구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몰랐다. 나이가 마흔인데, 직장도 없고, 여자도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요즘 나는 완전히 좆 됐다." (p.60)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자신의 나이를 속이며 '나'와 만났던 한 여인을 떠올린다. '나'와 만나면서도 유부남과 양다리를 걸쳤던 그 여인은 결국 유부남과의 위험한 사랑을 선택하면서 '나'와 헤어진다. 그녀가 '나'를 불러냈던 곳도 과천이었다. 길눈이 어두웠던 '나'는 그녀가 일러주는 곳을 간신히 찾아갔었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지금은 그곳이 과천이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그녀와 헤어진 후 직장마저 그만두었던 '나'는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대형 유통업체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나'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여자를 만나게 된다. 건강하고 활발했던 그녀 역시 어떤 오해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 유부남과 사귀었던 그 여자와 헤어진 지 사, 오 년쯤 지난 후의 어느 날 그녀로부터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나는 여전히 여기 그대로 있는데...'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나'는 그녀에게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있으면 안 되잖아'라는 답을 보낸다.
"하지만 당신들도 알다시피 어떤 판단을 내리기엔 인생은 너무나 복잡하고, 결정의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아니, 대체 인생이란 게, 우리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우리 앞에 놓여 있기라도 한 걸까? 그게 보이기라도 하나? 우리는 그저 어떤 판단, 마치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판단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p.75~p.76)
헤어진 여자에 대한 회상에서 비롯된 '나'의 상념은 과천과 연결된 여러 갈래의 추억들로 이어진다. 제대 후 만났던 여자에서부터 중학생 때 같은 반 친구였던 부잣집 아들에 이르기까지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당동에서 남태령 고개를 넘으면 경마장과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랜드와 동물원 등이 있는 과천.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과천과 얽힌 추억 한두 개쯤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작가가 굳이 과천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그만큼 흔한 기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귀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이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에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어쩌면 그건 그녀가 나를 두 번이나 엿 먹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 남자가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p.72)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헤어짐의 원인이 서로에게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일어난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은 너무 많아서 하지 않은 일이 뭔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생각할 때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올려다볼 때처럼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길이란 게 숫제 없는 까닭에 별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는 건 있을 수 없으므로.
인생에서 자신의 길을 확실히 아는 까닭에 길을 잃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누구나 처음인 이 길에서 말이다. 그러므로 후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좋다. 자책하거나 지나친 후회를 하면서 괜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암담한 현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과거에만 머물러서도 안 될 것이다. 2019년의 첫 주가 흘러가고 있다. 문득 하일지의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이 생각나기도 하고, 문성근과 강수연이 출연했던 영화 '경마장 가는 길'이 떠오르기도 한다. 봄이 오면 과천 서울랜드로 향하는 그 고즈넉한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그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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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하나. 그때 그곳은 자연 농원으로 불렸다. 유치원 소풍이었다. 젊은 엄마는 단체 사진을 찍을 때 걱정을 했었다. 특징 없는 내 얼굴 때문에 말이다. 똑같은 옷을 입혀 놓고 찍는 사진이라 그 속에서 나를 찾지 못할까 봐 노란 모자를 뒤쪽으로 끌어내려 주었다. 얼굴이 잘 보이게 말이다. 엄마는 내 뒤쪽에서 바로 사진을 찍었고 한없이 젊고 젊었다. 지금의 내 나이에도 못 미치는 나이였다. 기억 둘. 그곳에서 코끼리를 봤다. 코끼리는 컸고 나는 거대함에 조금 겁먹은 얼굴이었다. 엄마가 코끼리가 잘 보이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코끼리와 나. 유치원 소풍도 그렇고 코끼리를 본 것도 그렇고 그것은 모두 사진 속에서의 일이었다. 얼굴이 잘 보이도록 모자를 끌어당겨준 것은 기억에 없는 일이었다. 코끼리를 봤다고 했지만 그건 사진으로 남았기에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진과 엄마의 증언이 없었다면 나는 기억 두 개를 세월 속에 수장한 채 지냈을 것이다. 그 일은 내가 한 일이었지만 어쩌면 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젊은 엄마가 나를 위해 해 주었던 일로 퉁친다. 그래서 못생긴 나의 얼굴은 다른 아이들의 얼굴보다 유난히 환하게 나왔고 코끼리는 심드렁하지만 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코끼리에게 다가가려고 한, 사진이 남았다. 김종옥의 소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에서 '나'는 그녀들 중에 하나인 지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마 우리가 헤어진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 때문일 거라고.' 과천이라는 지명을 떠올리며 뻗어 나간 기억은 '나'와 만났던 그녀들과의 일이다. 세계는 '서로에게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이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걸 소설이 말해주지 않아도 살아가는 동안 알아 버렸다. 하지 않은 일이 죽음을 만들고 기억을 부풀린다. 실직 후에 불면증을 앓는 '나'의 넋두리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을 읽다 보니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버스 노선도를 보며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오는 걸까 의문을 하면서 앉아 있다 보면 '과천'으로 가는 버스가 덜컥 올 것도 같다. 버스가 오면 돈을 내고 탄다. 아무 자리나 앉아서 기사가 틀어주는 라디오를 들으며 과천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녀들과 한 일과 하지 않았던 일의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날 내가 말한 대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어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일어난다면. 지금의 내가, 내가 한 일들의 결과가 아니라 하지 않은 일의 결과라면, 우리는 뭘 후회해야 할까? 우리는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우리는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이 뭔지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것을 생각할 때, 그 무한한 일들을 떠올려 볼 때, 나는 오히려 이상한 안도감을 느낀다. 마치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올려다볼 때처럼. 아무도 저 별들 사이에서 길을 잃을 수는 없다. 아예 길이란 게 없으니까 말이다. (김종옥,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中에서)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을 읽으며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엄마가 내 모자를 뒤로 넘길 때 까탈스러운 나는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다기 보다 지쳤고 빨리 사진을 찍고 집에 가고 싶어서. 성질부리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나는 누가 봐도 나인 얼굴로 사진 중앙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무섭다고 코끼리는 보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이끌어주는 대로 코끼리와 사진을 찍었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나는 사진에 박제된 기억을 갖게 되었다. 기억만이 남았다. 젊은 엄마도 사진도 이제는 내 곁에 없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의 화자인 '나'는 그녀들과의 기억을 불러오며 무엇을 후회해야 하나 곤혹스러워한다. 했던 일의 결과에? 아니면 하지 않아서 다행스러운 일의 원인에 대해서? 소설은 말한다. 그저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이 우리를 살게 한다고. '어떤 일은, 어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어서 남아 있는 우리를 버스 정류장에 앉혀 놓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라고. 그러다가 불쑥 떠오르는 '하지 않은 일'의 기억이 당신과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이라고 말이다. 서울 남쪽의 어느 도시, '과천'에서 만난 기억들을 들려주는 소설 속 '나' 덕분에 현실의 나는 과거에서 다행히도 무엇을 하지 않아 생겨난 일의 결과인 사진 두 장을 추억해 내었다. 에버랜드 이전에 그곳은 자연농원이었다. 나는 자연농원에 간 것일까. 그것을 증명하는 젊은 엄마도 사진 두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사진 두 장에 관한 일을 말하던 엄마의 힘없는 음성만이 남았다. 고집을 피우거나 심술을 부리지 않았기에 남을 수 있었던 '하지 않은 일'의 결과인 기억속 장면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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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소설가의 소설집을 읽는 일은 약간의 모험심이 필요하다.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발동해서다. 창작의 어려움을 공감하는 것으로 책을 읽어야하는 일은 고통이다. 의리로 책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떤 때는 책장 넘기는 속도가 너무 빠르지는 않는지, 남은 책장의 두께가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서 자꾸 딴 짓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너무 커서 그 행복감을 조금이라도 더 지속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그런 책을 읽게 된 사실이 뿌듯해지며, 다 읽은 후에도 좁은 책장을 비집어 잘 끼워놓는다. 하지만 그런 책은 또 “발견”에 가까워서 드문 일이긴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살짝 긴장했다. 신인 소설가의 첫 소설집이어서 그냥 그런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한 장 두 장 넘기다보니 생각보다 잘 넘어간다. 더군다나 재미있기까지 하다. 재미있는데 또 뭔가 아련한 것도 있다. 뭐지? 그래, 이건 세대와 성별이 다르지만 같은 생각과 같은 느낌에 다다른 듯한 공감이다. 멋지네! 첫 소설집인 만큼 작가가 이미 보낸 시절의 회상이 대부분이다. 그녀가 있지만 아직 결혼 상대는 아니다. 그래서 늘 이별이 있다. 이별 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을 곱씹어본다. 군대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친구들 이야기, 더 어린 시절의 이야기 등. 한 사람이 어른이 되기까지 거쳐야 할 시간들을 골라 담았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아주 고상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이 사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제 짝을 만나서 후손을 남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거의 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또 헤어지는 것을 반복하면서 이 땅에 자신을 대신할 후손을 남겨보려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그 그림의 표면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결국 그런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식물이나 동물이 사는 이유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이유를 작가는 골목을 통해 찬찬히 이야기하고 있다. 골목 안의 모습은 대로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스치며 지나는 골목길이란 우리 기억에도 남지 않는 것. 골목길 안까지 걸어들어 가봐야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냥 입구를 흘깃 쳐다만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정막 뿐인 골목이라도 그 안으로 몇 발자국만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있고, 삶이 있다. 작가는 그 생의 골목에 들어가서 본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미 헤어져버린 연인의 이야기,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시간들, 이십대의 불안과 그 불안을 어떻게 구슬러야 좋을지 몰라서 헤매는 시간들, 내 손에 닿지 않게 부풀어버린 소문들에 휩싸인 때, 너무 일찍 내 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에 대한 추억, 개인과 세계관의 충돌에서 오는 방황, 무모한 열정의 결과, 무엇이 정답인지도 모른 채 오답을 놓고 오래 바라보는 일들, 내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한 책임들....... 이런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소설집 한권을 아껴가며 읽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이 작가의 다음 책은? 아마 골목을 나와서 조금은 넓은 대로를 걸어가지 않을까. 거기서 바라보는 시선은 골목 안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또 많이 다를 것이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를 만나는 일은 독자로서 행복한 일이다. 단편도 좋지만 장편이라면 더 좋겠다. 어떤 작품이 나오더라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가진 즐거움을 기억하며 미래의 그 소설책을 기꺼운 마음으로 펼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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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옥의 소설집은 어딘가에 실제하는 남자 사람 선배의 경험담같이 읽혔다. 그만큼 튀지 않고 어디선가 보고 들은 것처럼 친숙하다. 열두편의 단편 속 주인공들이 서로 조금씩 닮은 모습을 갖고 있어서 두, 세 명의 인생을 엮은 연작처럼 다가온다. 왕가위 속 남자주인공들이 변주되는 것 같달까. 이십대와 삼십대, 마흔살에 다다르기까지 남자들이 여자를 사귀고 실연을 겪고 군대를 가고 자신을 돌아보는 보편적인 스토리들이다. 소년이 방학한 날의 『방학식』,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왕따의 내막 『거리의 마술사』, 겨울날 무모한 도박판의 해프닝 『크리스마스 포커』는 연애 아닌 독특한 일들을 다루었다. 세 소설에서 김종옥은 인간이 마주치는 냉혹한 현실과 비겁한 나약함, 고독을 생경하지 않게 다룬다. 그러면서 환상적이고, 통찰력 있게 그려낸다.
나머지 작품들은 한 남자의 연대기로 여겨질 만큼 지나간 로맨스에 대한 솔직담백한 토로들이다. 유별나지 않고 포장되지 않은 덤덤한 고백들. 감개무량이나 뭉클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시크하고 건조하지도 않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어긋남으로 실연을 당하는 건 매번 아프고 슬프지만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몸부림을 치며 다른 만남을 준비하는 남자들에 애정이 갔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속 인물들처럼 나도 애매한 연인관계를 지속한 적이 있고 6개월이 5년같았던 인연이 있었다. 김종옥의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무작정 기다리며 바라볼 자신은 이제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사랑의 순도와 밀도마저 부재한 건 아님을, 작가의 목소리가 내게 들려줬다. 마냥 무덤덤하지 않고 긴장의 강도가 정신을 옥죄지 않는 균형감 있는 문체와 이야기가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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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자주 투정을 부리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은 나도 확 짜증이 나서 내가 뭘 했냐고 따졌더니 그 애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무것도 안 했어. 때로는 그런 게 제일 큰 문제가 된다. 하지 않은 일들. 하지 못한 일들. 그런 건 전부 미련이야, 라고 고개 저을 때도 있지만... 글쎄, 그냥 미련이라기엔 자꾸 마음이 쓰인다. 그때 뭔가를 했다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나는 물론 예외지만, 일반적으로는 역시 연애에서 그런 생각을 가장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연애라는 건 결국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감정의 소모가 심한 일이니까. 김종옥은 그런 연애 후 감정에 대한 생각을 깊게 했던 작가인 듯하다. 그의 소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의 <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신호대기>, 그리고 표제작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은 그러한 그의 생각이 진하게 녹아들어가 있는 소설이다. 의도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다른 소설들이 묶인 책들과는 달리 소설집이 아닌, '소설'이라고 되어 있다. 짐작하는 바로는, 세 소설의 세 화자들이 각각 다른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같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미련이 세 가지 방식으로 그려지는 연작소설 같았다고 할까. 그래서 이 책은 장편소설로도, 소설집으로도 분류를 하기가 어렵다. 결국 하나의 이야기니까. 제목 또한 그렇게 보이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고,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고, 목적지인 과천과 우리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한 사람이기도 한 세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뒤돌아서 후회되는 일의 대부분은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생긴다. 그때 당시에는 최선을 다한 것 같았어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지 않은 일이 너무 많다. 어쩌면, 산다는 건 하지 않은 수많은 일을 하나씩 지워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역시나 제일 무서운 건 방관과 회피, 외면과 침묵이라는 걸 다른 방식으로 일깨워주는 소설이었다. 그 외에 내가 가장 매력을 느끼면서 읽은 소설은 <거리의 마술사>와 <방학식>이었다. <거리의 마술사>는 특히 작가의 등단작이면서 동시에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인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스토리가 거의 두 인물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공통 분모를 갖는다. 그건 딱히 어떤 장르라고 규정짓기 어렵지만 쓰기에는 매우 어려운 장르다.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소설 내의 긴장감을 줄곧 유지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거리의 마술사>는 남우라는 신비스러운 캐릭터와 남우의 사건이 점차 밝혀지면서, 그리고 <방학식>은 집에 혼자 있는 어린 소년과 그 집에 찾아온 낯선 아줌마라는 상황으로써 '대화로만 이루어진 소설'의 단점을 무력화시켜나간다. 또한 의도된 부분은 아니겠지만 인물들의 대사가 묘하게 연극적이기도 해서, 마치 희곡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저번 학기 들었던 소설 수업에서 교수님은 인물의 대화를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대화는 사건과 인물의 성격, 나아가 소설의 주제까지 잘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표현 수단이다. 그만큼 잘 쓰기가 어려운 게 대화다. 필요한 만큼, 과하지도 않게, 덜하지도 않게. 그래서 대화를 잘 쓰는 작가는 자연스럽게 그 다음 작품이 항상 기대된다. 김종옥은 대화를 참 잘 쓰는 작가다. 나는 그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등단작이 젊은작가상 수상작이라니, 앞으로는 얼마나 더 날아오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