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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 나는 아마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장미가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는지, 여우가 말하는 '길들임'이 왜 그토록 특별한 것인지, 왕자가 결국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물리는 장면이 왜 슬픔이 아니라 선택처럼 읽혀야 하는지...아무것도. 그러나 이상하게도 책은 재미있었고, 삽화는 예뻤으며, 나는 별 감흥 없이 책을 덮었다. 어린이는 그렇게 어린 왕자를 지나쳤다. 어른이 되어 다시 펼쳤을 때, 나는 첫 페이지에서 이미 멈추었다. 생텍쥐페리가 그린 보아뱀 그림을 보고 어른들이 모자라고 말한다는 대목. 어릴 때는 그 '어른들'이 남의 이야기였는데, 이제 나는 그 어른들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보아도 모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어른들. 놀랍게도 나는 그게 슬펐다.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얻는 과정처럼 보인다.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두터워지며, 세상을 읽는 눈이 생긴다. 그런데 어린 왕자는 조용히 반문한다. 당신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었느냐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던 감각,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던 힘, 관계를 '쓸모'가 아닌 '고유함'으로 느끼던 마음, 그것들은 언제 어디서 사라진 걸까. 우리는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그 상실을 기꺼이 정당화했던 건 아닐까.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한다. 나를 길들여 달라고. 프랑스어로 '아프리부아제(apprivoiser)', 사적인 것으로 만들다는 뜻의 이 단어는 단순히 친해지는 것을 넘어선다. 서로의 마음에 길을 내는 일, 시간을 들이고 책임을 지는 일,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재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일. 어른의 언어로 말하자면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러나 여우는 말한다. 길들여진 것만이 진정으로 알 수 있다. 나는 요즘 얼마나 많은 관계를 '기능'으로 대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필요할 때 연락하고, 일이 끝나면 잊어버리는 관계들. 상대방을 하나의 고유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역할로, 어떤 수단으로 인식하는 순간들. 어린 왕자의 장미가 까다롭고 허영 가득해 보여도 왕자가 그토록 그리워한 것은, 바로 그 꽃과 나누었던 시간과 정성의 무게 때문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장미들 중에서 그 꽃이 유일한 것은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길들임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을 얼마나 내어주고 있는가. 별별 소행성을 돌아다니며 왕자가 만나는 어른들은 우스꽝스럽다. 권력만 원하는 왕, 칭찬만 원하는 허영쟁이, 숫자만 세는 사업가. 읽으면서 나는 웃었다가, 이내 멈추었다. 그들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들의 인정 없이는 불안한 나, 숫자로 환산되지 않으면 가치를 의심하는 나, 가진 것을 세느라 정작 누리지 못하는 나. 생텍쥐페리는 그 인물들을 조롱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 스스로가 거울을 보게 만든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어린 왕자는 우물을 찾는다. 어른인 나는 지도가 없으면 길을 나서지 않으려 한다. 실패의 가능성을 먼저 계산하고, 성과가 보장되지 않으면 마음을 거두어들인다. 그런데 왕자는 그냥 걷는다. 사막에 우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희망이란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능성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행위 그 자체임을, 어른이 된 나는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는 잊어버렸다. 왕자가 뱀에게 물리는 마지막 장면을 다시 읽으며,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그것이 죽음인지 귀환인지 모호하게 그려진다는 것을 이번에는 알아챘다. 어쩌면 그 모호함 자체가 생텍쥐페리의 말이었을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 곧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별을 보면 웃음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조종사에게 왕자는 말한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철학이었다. 이별 이후에도 의미는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는 것. 책을 덮고 나서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여러 해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얻었고, 조용히 잃었다. 이 책이 슬픈 것은 어떤 비극 때문이 아니라, 읽는 내내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명함 속에서, 아직 늦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작은 가능성도 함께 보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지만, 깊이 살기 위해서는 다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 어린 왕자는 동화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말하는 조용한 초대장이다. 별을 보며 꿈을 꾸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보고, 소중한 이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일. 그것이 나이를 먹어도 잃지 말아야 할, 어른이 되어서도 간직해야 할 삶의 태도가 아닐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여우의 이 말을 어릴 때는 그냥 읽었다. 이제는 그 말 앞에서 한참을 머문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나는 오늘 무엇을 보고 살았는지. 어린 왕자는 그런 질문을 남긴다. 대답을 요구하지 않고, 다만 묻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어른다움의 진짜 시작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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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오후 네시에 네가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 이 문장뿐 아니라 어린 왕자 속 명대사들은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 혹은 동심을 잃은 어른들에게 순수함을 일깨워 주며 회자되었다. 여섯 살 남짓의 금발머리를 한 작은 남자아이, 조종사를 깨워 양을 한 마리 그려달라거나 모자처럼 보이는 그림을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이라 일컫는 모습은 나에게도 흐릿하지만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순수함을 상징하는 존재,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어린 왕자 이야기. 조금은 엉뚱한 듯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내뱉고 때로 떼쓰는 어린 아이 같은 그는 내 눈에는 마냥 착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명확한 기승전결이나 권선징악의 구조를 가진 다른 이야기들과 달리, 분명 동화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렵기만 했다. 생텍쥐페리의 대표작 《어린 왕자》를 해설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오랜만에 책을 다시 펼치며 '어른이 된다는 것'의 본질을 성찰한 김진하의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나이나 사회적 역할에 매여 숫자와 계산으로 세상을 보고, 관계를 기능과 역할로 환원하며 상상력을 잃은 어른들에게 이 책은 진정한 성숙의 의미를 되묻는다. 작가 역시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며 어린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어른이 되어 비로소 이해되었다고 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추억의 동화를 다시 읽다보면 책의 제목인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는 언제 다시 어린이가 될 수 있는가?'로 변모한다. 책은 어린 왕자와 그가 여행한 소행성들, 여우와 장미꽃, 바오밥 나무와 조종사 등 책 속의 에피소드를 풀이하고 있지만 원문 소개, 원작자의 관계나 결핍,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상황을 함께 맞물려 해설하면서 단순히 이것이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아닌 어른들을 위한 소설임을 일깨운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는 장미꽃과의 사랑, 여우와의 길들임, 조종사와의 교감만을 기억했지만, 다시 읽으며 사랑의 불안정성, 권력과 허영, 탐욕의 가치, 길들임이 말하는 책임, 그리고 어린 왕자의 죽음을 통해서 성숙의 과정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런 내용을 읽었었던가' 싶을 만큼 익숙했던 이야기가 낯설게 다가오며, 지금 나는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책은 진정한 성숙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과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어린 시절의 감각과 호기심을 찾는 것이야말로 어른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 관계는 효율이나 이익이 아니라 책임과 유대를 통해 깊어지고, 그때 비로소 '나만의 한송이 장미꽃'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어린이에 대한 동화 같던 이야기가 책의 후반부를 갈수록 어린 왕자의 죽음, 조종사의 상실감을 다루며 동화가 아닌 어른들을 위한 묵직한 소설로 변모한다. 지구를 떠나 작은 별로 돌아간다 말하며 자신이 남긴 껍데기에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어린 왕자의 말은 더 이상 그를 어린이로 두지 않는다. 여러 소행성을 돌고, 지구를 거쳐 자신만의 작은 별로 돌아가는 어린 왕자를 통해 성숙은 목표가 아닌 여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마음으로 발견하는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어렸을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다시 마주하며, 같은 문장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한 경험은 지금의 나를 성찰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불안정한 나날들이 이어지지만, 다시 어린이가 되는 용기를 가지고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 동화에 이렇게나 인생과 사랑, 삶에 대한 의미가 담겨있었나 싶다. 이 책의 메시지를 발판삼아 매일을 다시 어린이가 되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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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 빙자, 정치 넋두리 방앗간 # 어른들은 결코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날마다 어른들에게 설명해줘야 하는 건 아이들에게는 피곤한 일이다. (어린 왕자 재인용 29쪽) # (책이) 얼핏 보기에 어린이와 어른을 대립시켜 어린이에게만 진실의 주권을 부여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연속성과 이해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0-31쪽) # 하지만 명석한 이성raison lucide에 의한 합리적 사고가,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을 보지 못하는 편협한 이성에 불과하다면 또 하나의 중요한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31쪽) # 그 결과, 인간은 질적으로 체험하는 마음의 세계가 아니라, 양적으로 체험하고 숫자로 계산하는 물질의 세계에 익숙해진다... 어른이 되면서 이성적 사고에 길들여진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능력을 상실한 존재로 받아들인다. (35쪽) *마음 이해‘심’ # “꽤 이성을 갖추었다”라고 평가하는 사람의 실상은 상상력이 부족하고, 눈앞의 현실적 이득이나 실용만을 추구하며, 물질적 만족적 쾌락을 즐기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들 중에 ‘명석 판명한 이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어른에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보여준다 해도 그는 한사코 모자 그림이라고 대답할 뿐이다. 결국 어른들이 말하는 이성이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36쪽) #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슨 마음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이다. 불시착이라는 상황은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실제 상황이기도 하지만 죽음과 대면하는 극한 상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38쪽) [논; 157 평] 이완배 작가가 물올라 잠정적 폭발기라서 어제 논;은 슥 들었다. 오늘 정준희 교수 단독 코너는 마음 다잡고 귀 기울여 듣고 싶었으나. 아직 소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한번 끊었다가 다시 들었다. 내란 청산, 물들어 올 때마다 시선 ‘분산’ 시킨 진보 인두겁이들. 과격한 항목만 들먹이며 현실 정치를 하지 못한다. 어느 정부인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뒤처진 모습이다. 나름 많이 배우고 제법 가진 사람들이 저러니 더 개탄하게 된다. 출범 1년 성과를 기리고 2년 도약 발판을 디딜 때 뭔놈의 힘을 이리 빼는가. 누굴 상대로 싸웠냐만 돌아봐도, 조중동에 걍 놀아난 선거판 맞다. 한마디면 끝난다. 저쪽은 뭐 어떻든 다 나와 선거 운동하는데. 왜 저분은 일언반구 없거나 선택적으로 S대만치 움직이는가. 유시민 작가가 저격했던 상층부 기득권에 소위 민주 진보 진영도 포함됨이 자기 고백적으로 흘러내리는 상황이다. 플레이어로 나와 뛰던지 드럽게 입 정치들 하고 있다. 김영민 교수가 ‘한국’에 대해 말하면서 거대 괴물이 사라지면 저들끼리 질러댄다고 환멸을 표했었지. 정 교수는 오늘 방송에서 내란에 대해 ‘지속적인 로드 맵’ 없이 달렸다고 평했다. 자치적 분권화가 민주주의 실현으로 (먹히게) 잘 포장되지 못했다. 기획 설계 총괄 실패 작. 더더욱 걱정은 김건희의 국정 농단을 파야 할 시기에, 종합특검에 모아져야 할 에너지가 흩어지고 있다. 이제 겨우 관저 의혹 관련해 수사가 시작되었다. 저들은 ‘부정선거’까지 꼼꼼히 준비한 마당에 우리는 대체 뭔가. 저들이 이리 나올 거라는 예측 못하고 무방비였던 것 같다. 배부른 돼지들, 기름 낀 동물농장 목청들. 윤건희는 가족과 가신 총 동원한 비즈니스 모델을 국가상대로 펼쳤다. 길게 영위하려 했는데 그 사익 편취엔 흐린 눈뜨고, 어딜 자꾸 쏘아보며 분열을 탐하는가. 부정선거와 반국가세력이라는 근거 없는 망상과 싸워도 모자르고 밀리는ㅠ 판(세)을 만들었나. 그래도 장동혁과 정청래 페어링은 아니지 했던 마음이 선거 후 싹 가시고 돌아서게 된다. 정통 민주당? 기준도 묘하다. 전당대회까지 내려오지 말고 빳빳이 문책 받자. 오세훈이 당선 됐을 때 ‘그래 네가 싼 똥은 직접 치워야지!’ 했던 마음과 같달까. 정 교수가 여인형을 언급하자 지귀연은 잘 살겠지 싶다. 박근혜 탄핵 전 하려던 짓을 한 것 같은데. 관련 문건이 삭제되고 없단다. 숨기려는 자가 범인이라더니 방첩사 해체를 부르고 말았다. 방첩사는 뿔뿔이 분리되는데 책임자 수괴는 어떤 (가중)처벌을 받을까. 시작부터 사저를 비롯해 맘대로 휘젓던 김건희를 그냥 두면 내란의 실체를 치고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내란은 종식되지 않고 이 수렁과 루프에 다시 갇힐 수 있다. 저들이 원하는 도로묵 부정선거 후진국 되는 거다. 대통령이 저렇게 많은 권한을 가졌나 싶게 일깨워준 윤석열은 두고. 뭐만 해도 달려 들어 입 터는 이들. 분란에 분해서 멸칭 쓰겠다. 뉴수박! 수확기. 어째 대통령 해외 순방으로 열일할 때마다 노이즈 마케팅 똥볼만 찬다. 정 교수가 잼프의 유럽 순방의 의미를 정리해주어 고맙다. 지금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갖는 의미와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입지를 되새겼다. 다른 선진국들이 협력하려 눈독 들이는데도 정작 내국민은 파열음과 굉음을 내며 지들끼리 치고 박고 난리도 아니다. ㅈ국이 왜 3등인지 자성은 못할망정 부끄러움도 모르고 남 탓과 분풀이, 떼쓰기만 한다. 바쁘고 치열한 세계 변화 구도에 관심이 없다. 이년 사이 묵은 통찰로 버려지는 마당에. 인버스 곱버스 하며 나라 망해도 상관없는 재력 권력가들과 다를 게 뭔가. 지저분한 내부 싸움에 정신이 팔려있다. 당원 포함해 국민과 시민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자. 적과 편 만들기 보도와 논평, 징글징글하다. 그 시간에 일하라. 1인1표 본분을 지키고 편집증적 해당행위 즉시 멈추라. 입법부는 입법을! 지방 자치는 관할 행정을 담당하라. 도넘는 망측한 입방아 매니쥐 질적 부족과 결함, 결핍을 교정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정 교수의 다짐을 믿어 보겠다. 증명하는 지식인으로 남아 달라. 논이 이백회 채우려면 멀었.. 예순도 아니고 쉰 어휴;; 고통과 환란의 와중에도 다시 낮은 곳에서 걸어 오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켜 보겠다. 내일 목요일 백낙청 대담, 기대된다. 무척은 썼다가 지우..개 *** 시간의 약을 먹을 시간인가. 겹겹이 시층시하 시간들에 걸쳐 산달까. ABC론 갈라치더니 간첩에, 이제 문파 손가혁이란다. 지지자들을 모욕하고 상처입혀 얻는 게 뭘까. 프라이드? 우월한 열등감? 똥물 옴팡 뒤집어 씌워 나가 떨어지게 하고 싶은가본데 잘 안 될 것 같다. 유치하고 더러워 *****(*) 비롯해 오늘 탄생한 친ㅌ계,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 하다하다.. 그만 하자! 이잼이 다진 당내 포지티브 페어플레이 기류는 다 어디 가고. 조중동이 가지고 놀던 패. 친석, 친청 네거티브 전개인가. 계파 없어 믿고 맡겼더니 엉뚱한데 쏠랑 붙은 당대표. 지선 치르기 전부터 불거진 연임 욕심에 저GR. 당원 눈엔 최강욱 님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거든요. 당의 미래는 당원과 의원이 결정한다. 서복경 교수(노무현재단 토요토론)와 김만권 박사(시사인)의 지선 보궐 선거에 대한 해석에 찬성한다. 내 뜻이나 의중에 부합되어 잘 들렸을 소지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선긋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씁쓸한 일종의 검증 기간을 치르게 됐다. 잼프가 누구의 의견을 가장 중점에 두었을 것 같은가. 누구누구 황태자 부각에도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 동시에 기회 주며 크게 한다. 나머지는 자기 역량과 실력이다. 그의 목표는 모두의 성장, 즉 나아진 살림살이와 K-민주주의 고쳐 세우기에 있다. 정권 재창출과 치우친 운동장을 넓게 쓰겠다는데 과거 잣대를 자꾸 들이대지 말자. 생존 본능과 번성 공존 감각이 나쁜가? 정통 집토끼 깎아 내릴 생각 없다. 섭섭한 부분은 이해하나 자신의 무가치함과 피터지게 싸우진 말자. 앞서 잘 걸으며 알아서 따른다. 추미애 의원에 대한 악마화를 씻어내고 지금의 시장으로 거듭나는 데 꼬박 몇 년이 걸렸나. 전전 정권부터 지속되어온 그림자. 그를 건져 올린 것도 눈 맑은 지지자들이었다. 이잼도 잼프로 그렇게 한땀한땀 수놓고 꾸욱꾹 밟아온 길이다. 완장 차기 즐기는 스피커 혹은 하바리들은 그때 뭐라 떠들었더라. 비방 탈곡할수록 누가 두더지 굴 만들까. 이런 흐름은 이미 내 주변에, 오래 민주진영을 위해 나섰던 분들도 기꺼이 수용하는 부분이다. 오히려 그분들이 내게 들려준 중심 잡기였다가 맞을 거다. 페어플레이 명심! 전당대회 때 성적표 함 받아보자. 세계 정세 시간싸움 추격-선도 판가름 시점에, 우리에게 그럴 여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 지금 이 시점에 대통령을 흔드는 게 제정신인가? 이재명이 망해도 민주당은 이어지겠지. 다음대권을 내줘도 니들은 직을 이어가겠지. 부정선거론자들이 활개를 치는데.. 정권은 짧다? 미쳤냐 |
유성호 교수의 채널에서 듣고(아직 보지 않음) 담았던 책이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서른에 다시 읽는 <어린 왕자>, 어른과 서른. 전이라면 라임으로 가벼이 넘겼겠지만 묵직한 단어‘걸이’ 같다. 김진하 교수는 계속 나오는 관련서에 대해 ‘백한 번째 어린 왕자’로 통칭하기로 했단다. 백만송이 장미 될 때까지. ㅎ 마음으로 천천히~ 읽으며 큰 뜻을 이해하자고 자칭 ‘소박한 책’을 내민다. 법정 스님도 ‘화엄경’과 함께 “정녕코 이 책은 감상적으로 쉽게 읽고 말 책이 아니다”라고 했다. 글쓴이는 어린 왕자 앞에 자발적으로 서서 인생의 본질적인 가치를 보는 눈의 해상도를 높인다. 시간의 마법, 생명의 무상함, 생로병사의 과정, 고독과 사랑, 만남과 이별의 이치 그리고 깨달음..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물으며 올바른 삶의 방식을 탐구한다. 소홀히 다뤄선 안 되는 빅 퀘스천 아닌가. 저자는 이십대 말이나 삼십대 초에 비로소 어른이 된다면서 곁에 둘 책이라고 건넨다. 새겨진 ‘언어와 구조’는 독자의 마음에 남아 생생히 재연될 테다. 다시 곱씹는 의미에서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보잘것없는’ 가치를 가려볼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여러 자원과 지식을 참고하며(채우면 비우고~) 위로 받고 동심을 되찾아, 뿌연 일상 속 참된 가치와 목소리를 알아볼 거라면서. 저자는 삶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가치를 “길들이기” 개념으로 푼다. 아는 것과 깊이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우리가 ‘길들이는 것’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를 명상 소설, 성장 소설, 철학 소설, 환상 소설이라 나열할 땐 끄덕이다가 야생 생태계에 둠에서 퐝 터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비전 아니겠나 싶어서. 오랜 친구에게 받쳤다는 헌사가 (수호)천사로 보인다. 인지적 주권에 이어 주권 감수성이 떠도는 가운데, 공기를 가르는 책이겠으나 아룬다티 로이 ‘자서전’ 보기 전 마중물로 맛보기만 하련다. -오래도록 우리 곁을 지킨 어린 왕자, 그가 건네는 맑고 다정한 말들을 천천히 곱씹어 보자. 기억 저편에 존재했던 순수의 샘이 솟아오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당초에 말은 오해의 원천이라고 여우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진리를 이해할 때 필요한 것은 문자적 지식이 아니라 마음의 발견이다. -길들이기(개념)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길들이지도 못한 채 (대강)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동화-소설에서 작가는 무엇이든지 천천히 시간을 들여 길들이는 삶을 권하고 있음만은 마음에 새겨 두자. === 본투표날 늦은 오후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나가리라, 눌러뒀는데 내가 누군가. ‘신체화’와 ‘지식화’에 걸친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뭉친 이 아닌가. 비열하게 가족사 탈곡하던 그때로, 감정 몰이해서 우릴 데려가려 했다. 사면 이후부터 들썩 들먹.. 정치적 올바름 PC문제로 남녀, 노소 갈라치기하던 패악을 그.대.로 리핏에 성이 났다. 정치 인플루언서랍시고 순회 콘서트(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다)가 영 사람 망치는 것 같다. 자기가 누리는 것이 무엇으로 다져진 나무그늘인지 잊지 말면 좋을 텐데. 역시나 어디로 런 조중동이 가두던 프레임을, 뉴 미디어라고 칭송하며 받던 이들이 세상에나 편 가르기에 광기 어리다니. 극과 극이 맞닿아 있음을, 그들만의 타워 파워가 그저 애석하다. 위계 중심의 서열 체 동물의 세계, 그 해괴 머니hegemony. 권위주의형 사고 고착과 지시는 건전하지도 또한 온전하지도 못하다. 신뢰 신용 잃고 바닥 드러내기 마련이다. 물론 윤건희나 국힘스럽게 굳건한 지지세만 보겠다면 그리하시라. 사담으로 사적 내집단에서 맘껏 풀어놓는다면 누가 뭐라 하나. 시대 변화에 맞춰 자세 고침 따위 없이. 우르르 몰려 다니며 저기서 여기 찍고 다니다 보면.. 공적 공간에선 영향력에 비추어 여러 사람의 시간과 감정 자원 등을 볼모로 착취하고 학대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서복경 교수의 선거 해설에 대해 어느 분이 ‘아전인수식’ 해석이 아니라서, 직업평론가와 스피커들과 다르다고 평했다. 맡은 역할과 주어진 기능만 하면 될 일을. 참 질척거리며 잡스럽다. 나도 시민과 국민‘됨’만 하고 선을 넘지 않아야겠다. 이 참에 경고~ㅎ 한 총리 후보자의 어제 인삿말에 감각 좋다며 ‘스위트 스마트’라고 하더라. 잼프는 케이 문화와 느낌(느좋~), 아름다움, 외관을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다. 질문질문 문질문질 너머 간질간질함이 요구되는 전과 다른 스킨십 소통 시대인 것이다. 섬세하게 포용하는 감수성, 부드러운데 단단한 카리스마가 잠정 고객을 설득한달까. 현 정권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대상이 누구이며 누구에게 문제가 있고, 대체 지금 왜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밝히라는 거다. 저들에 놀아난 모양새, 어부지리 남 좋은 일만 만들고.. 누워서 침뱉으며 우리끼리 엇박자 내지 말자는 거다. 세상 쓸모 없는 소모전과 딴눈팔이. 세상에 도는 말이 세상 이상으로 무성하고 우리가 모르는 것도 많다. 보는 눈은 말할 것도 없이. 기대가 없으면 아예 실망하지도 않을 텐데 정치 조금 알아버린 맛이라서 딱 접기 쉽지 않다. 어딜 스위치 온, 오프는 갈피 불가피. ㅎ 어느 의원 말대로 MSG라도 제대로 쳐서 공들여 팔자. 이렇게 쓰니 한국은 참 구ㅣ엽고 재미지ㄴ 곳이다. 강남3구가 대구보다 더 먹통으로 드러나지 않았나. ㅎㅎㅎ 그래서 오늘의 엔딩은, 알았으니 너나 잘하세요. 똑바로, 아니 잘 살자 좀. 나는 정치인들이 오뚝~ 표현쓰면 별로더라. 왤까. 이상한 거리 퍼포먼스 때려 치우고. 그럴 땐가. 자고로 대 전 환 기에. 넘쳐나는 스토커, 좀비, cheap talker.. 절믄 소통 감각 열어두기 안 될까?! 같은 지역 내 다있소만 해도 어떤 매장은 신상 다양하고 선택폭이 넓다. 또 다른 곳은 작년에 왔던 각서리 위주로 깔렸더라. 팔려야 들이고 두겠지 싶다. 같은 값이면 효율과 편리 시대에 따라 가자. 한뚜껑이 원하는 인기가 저건 아니라던 지인의 말이 감겨 웃는다. 봉잡고 댄스까지 하는 ㄴ인데 ㅁ ㅋㅋㅋㅋ 시스루~ 속 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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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 읽은 어린왕자는 나에게 별 감흥이 없었다.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강한 임팩트 혹은 화려함을 기대했었나.. 대사 안에 조용히 잔잔히 오는 울림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어린 자아였을까.. 하여튼 나에게는 어린왕자는 명작은 아니었다. 그래서 부제는 “서른에 다시 읽는 어린 왕자” 이지만 나는 마흔에 다시 읽아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5-10분에 한번씩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몰아쉬어야 하고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이해 안됨과 그리고 상실감에 어린왕자의 순수함으로 내 내면도 좀 평온함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해보았다. 저자 김진하 프랑스 문학가는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교수다. <어린왕자>에 관한 설명을 부탁받고 원서를 펼쳐들고 읽는데 익히 알던 장면에서 새로운 울림이 울렸고,문장을 읽을수록 감정은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느껴졌던 벅차오름을 이 책이 고스란히 옮기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생텍쥐베리의 경험담과 당대 프랑스철학, 그리고 어린왕자의 역사, 문학적 배경까지 담으려 했다하니 나처럼 어린왕자에 별 감흥이 없었던 사람도 다시 펼쳐보길 바란다. 분명히 다시 보이는 무언가는 꼭 있을테까 말이다. 어린왕자를 너무 좋아하는 펜이라면 당연히 읽고 싶어질테니 길게 말하지 않겠다^^ 책 앞 표지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이 책의 특별 부록이 있다해서 기대하며 스캔했지만 비공개 게시물이라는 화면에 다소 실망했다. 어린왕자를 번역한 책이 100-200여종이 되는지 처음 알았다. 하지만 해설해 주는 책은 드물다는 사실에 저자는 해설을 붙일만큼 어렵지 않아서 일까 했지만 깊이가 없는 책이라면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리는 없다 말한다. 어릴 적 나도 안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보다는 글 표면에서 느끼는 의미로만 이해했기에 어린왕자의 매력을 몰랐던 듯 하다. 저자가 말하는 “길들이기” 시간을 두고 천천히 관계를 맺어가지 못했던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린이가 인생을 이해한다는 말로 서두를 시작하는데…어린이일때는 인생을 이해했는데 어른이 되면서 후퇴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가끔 첫째가 허를 찌르는 말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해한다” 라는 뜻이 뭘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린왕자에서 나누고자 하는 주제들이 생명의 무상함, 생로병사의 과정, 고독과 사랑, 만남과 이별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포함한다고 하니 어릴 때 분명 나는 제목만 어린왕자를 읽었나보다 하는 생각에 이제는 읽어봤다고 표현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다음과 같은 질문에 궁금하거나 알아보고 싶다면 서둘러 이 책을 조용한 곳에 자리잡고 펼쳐보길 바란다. 분명 이 책을 서평 신청했을 때만해도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그 사이 나는 인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고 이 시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참 다행이라 여겨졌다. 이 책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들을 따라 가다 보면 인생은 생로병사의 여정에서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고독과 사랑이 만드는 이중의 변주를 엮어 나가는 과정임을 알 수있다. 그리고 때로는 인생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물음이 한 시기에 밀물처럼 밀려온다는 말을 하는데 너무 공감했다. 저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반드시 어린왕자를 읽고 시작하길 추천한다. 소설을 읽는 방식에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지만 언제나 본문 자체에 머물러야 하고, 그 언어와 구조가 독자의 마음속에서 생생히 재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른의 문턱에서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고 싶다면, 넘실대는 고독에 위로가 필요하다면, 뿌연 일상에서 분명하고 참된 가치를 찾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서 그 목소리에 귀기울이길 바란다고 말한다. 책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어른을 위한 어린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야기 어린왕자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 부분을 읽다보니 내가 알았던 어린왕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린왕자> 읽기는 내용과 형식을, 작품의 안과 밖을 함께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본문 앞에 놓인 헌사와 맨 끝에 있는 후기도 그냥 관례적인 글이 아니라고 하니 다시한번 곰곰히 정독하게 되었다. 이 글들로 인해서 현실의 작가를 작품 속의 화자와 연결하면서 현실의 어른을 작품 속의 어른으로 전환한다고 말한다. 1부는 어른이 된다는 것 2부는 마음을 준다는 것 3부는 나만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 4부는 고독을 마주한다는 것 5부는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 6부는 만남과 이별이 가르쳐주는 것 각 장에서는 각자에게 타이밍은 다르지만 반드시 한번 쯤은 거치는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 말한다. 나는 요즘 만남과 이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기라 그런지 6장에 대한 내용이 한구절 한구절이 아렸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김진하 작가가 한 줄 한 줄 읊어주는 어린왕자의 구절을 읽다보면 동화인 척, 가벼운 내용인 줄 알았던 책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2026년 지금의 내가 읽었을 때는 인생의 희노애락 중 "애"가 강조되었지만 3년 후 5년 후 또 다른 내가 읽었을 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어린왕자를 한번 쯤 읽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라는 구절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소제목으로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름다운 이유라고 지었다. "별들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이야.." 라는 구절때문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다 부질없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에 오히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이 참 위로가 되고 내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었다. 나는 벌써 내 인생에 너무나 그리운 사람들이 2명이 되었고. 이제 살아갈 수록 그런 사람들은 늘어갈 것이고 혹은 내가 그 그리운 사람들 중 한명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린왕자의 이 구절이 나에게는 내가 엄청나게 그리워하는 이들로 인하여 지금의 내 인생이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들이 의미없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함께 이어져 가고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그리워하는 이들로 인한 내 삶이 더 풍성해 질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되면서 또 한번 잔잔하지만 단단한 위로를 얻었다. 모든 생명은 덧없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어느 생명이든 소멸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살아가고 있다. 단지 그 시간들이 다 다를 뿐이다. 그래서 미루지 말고 표현하고 그때 그때마다 아끼며 즐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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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너무 비장하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피터팬처럼 어른이 되기 싫은 게 아닐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책은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김진하교수님께서 [어린왕자] 분석하시면서 인간과 성숙, 여러가지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어린왕자]를 단순히 의미를 해석 하는 도서일꺼라고 생각하였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깨달음이 많은 책이어서 그런지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시간이 소요되었다. 대목마다 나를 빗대어 생각하며 공감하기도 했고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아서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읽기도 하면서 한 권을 어렵게 완독한 것 같다. 표지에서 벌써 말하고 있다. 사랑과 삶의 의미를 배우는 시간이라고. 어른이 되는 것은 사랑과 삶의 의미를 배웠다는 말인가. 허나 백세인생의 절반 가량을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어린이같다. 나의 판단과 생각에 확신을 갖기 보다는 불안해 하면서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어하는 어린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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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어린 왕자》는 정말 여러 번 접하게 되는 책 같습니다. 어릴 때는 필독도서였고, 대학에서도 권장 도서 목록에 들어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필자의 학교에는 책을 읽고 퀴즈를 통과해야 졸업 요건을 채울 수 있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왕자》는 책도 짧고 문제도 어렵지 않아서 졸업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번 읽으면서도 대부분은 그냥 감성적인 동화 정도로 받아들이고 지나갔던 것 같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유명하긴 하지만, 막상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깊게 생각해볼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는 그런 《어린 왕자》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풀어내는 책입니다. 단순히 좋은 문장을 소개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생텍쥐페리의 삶이나 당시 시대 분위기, 프랑스어 원문 표현까지 함께 연결해서 설명합니다. 그래서 익숙했던 장면들도 전혀 다르게 읽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히 어린 왕자가 만나는 인물들을 단순한 동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 사회의 사람들처럼 해석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허영심이 강한 사람, 숫자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권위에 집착하는 사람 같은 모습들이 지금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어릴 때는 그저 아름답고 감성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도, 지금 다시 읽어보면 관계와 외로움, 책임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훨씬 깊게 느껴집니다. 특히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여러 비유를 하나씩 다시 짚어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어린왕자가 떠나온 소행성 B612와 바오밥나무, 그리고 장미와의 관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하며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를 확장해줍니다. 또한 이 책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단순히 나이를 먹는 과정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상실을 경험하며, 책임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변화해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는 익숙한 《어린 왕자》를 다시 꺼내 읽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와 지금 읽었을 때 왜 느낌이 달라졌는지 궁금했던 사람이나, 고전을 조금 더 현실적인 시선으로 다시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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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안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 읽게 되는 책들이 있어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그 중 하나인데요. 아직 다 들여다보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일 거예요. 조종사가 어린 시절에 그렸던 그림을 아무런 설명 없이 봤더라면 분명 '모자'라고 답했을 텐데,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뱃속의 모습을 그린 그림까지 보았으니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네요. 실제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 서른에 다시 읽는 어린 왕자》는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김진하 교수의 책이네요. 저자는 우연히 어느 독서 모임에서 『어린 왕자』에 관한 설명을 부탁 받고 웃음으로 사양했지만 다시 원서를 펼쳐드는 계기가 되었고, 프랑스어 원문의 글귀 하나, 문장 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며 새로운 울림을 느꼈다고 하네요. 이 책은 『어린 왕자』을 이미 읽어봤던 독자들을 위한 진정한 어른의 의미와 삶의 본질적 가치를 성찰하게 하는 깊이 있는 해설서라고 할 수 있어요. 어린 시절 읽었던 『어린 왕자』와 어른이 된 뒤에 읽는 『어린 왕자』는 어떻게 다를까요. 『어린 왕자』를 읽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저자의 설명대로 책 속 모든 문장을 꼼꼼하게, 헌사부터 천천히 읽어 가다 보면 인생의 문제들을 함께 살펴볼 수 있네요. 특히 『어린 왕자』의 헌사는 매우 중요하네요. 작가 생텍쥐페리의 이름을 간단히 생텍스라 쓰고 있는데, 작가의 성은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프랑스인에게도 발음이 어려웠던지, 작가 생전에 이렇게 친근하게 줄여 썼대요. 생텍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망명 시절에 어린이 책의 집필 의뢰를 받고, 나치 독일에 점령된 프랑스에 남겨진 절친한 벗 레옹 베르트를 생각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하네요. 그 친구가 프랑스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고생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어른 레옹 베르트에게, 그리고 어린 레온 베르트에게, 결국 모든 어른과 어린이에게 바치는 책이 된 거예요. "레옹 베르트에게 내가 이 책을 한 어른에게 헌정한 것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나에게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 어른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친구다.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 어른은 어린이를 위한 책들까지 무엇이든 다 이해할 수 있다. 세 번째 이유가 있다. 그 어른은 지금 프랑스에 살고 있는데, 배고픔과 추위로 고생하고 있다. 그에게는 정말로 위로가 필요하다. 이 모든 이유로 충분하지 않다면, 나는 한때는 어린이였던 그 어른에게 이 책을 헌정하고자 한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헌사를 이렇게 고친다. _ 한때 소년이었던 레옹 베르트에게" (18p) 저자는 『어린 왕자』의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고 음미할 수있도록 헌사부터 본문 내용의 문장들을, 여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소개하고 해설해주고 있네요. 어른이 된다는 것, 마음을 준다는 것, 나만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 고독을 마주한다는 것,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 만남과 이별이 가르쳐주는 것까지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네요. 저자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가 슬픔과 위로라는 두 가지 감정이 서로 이어져 있다고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네요.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늙은 어린이들의 불장난 같은 전쟁과 증오 대신 순수한 동심과 성숙한 사랑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네요. 원래 『어린 왕자』 속 삽화를 좋아하지만 저자의 해설을 듣고 나니 보지 못했던 풍경이 보이네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었네요. 익숙하지만 아직 다 보지 못한 그림,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 쓸모도 없는 가시를 만드느라 꽃들이 왜 그토록 애쓰는지 이해해 보려 하는게 진지한 일 아니야? 양들과 꽃들의 전쟁이 중요하지 않아?" ··· 양과 꽃 사이의 관계는 흡사 전쟁과도 같다. 한쪽은 무기를 들고 방어하고 다른 한쪽은 여지없이 먹어 치운다. 어린 왕자는 묻는다. 그럼에도 연약한 꽃이 애써 가시를 만드는 이유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더 중대한 일이 과연 있을까? 작은 존재들의 고통에 눈길을 주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매우 진지하고 중요한 일이다. 『어린 왕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란지 미국에서 쓰였고, 생텍스가 공군에 다시 복귀하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북아프리카 비행대대로 떠났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전쟁이라는 단어에 유독 눈길이 간다. 꽃과 양 사이의 갈등은 단지 어느 한쪽의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가 아니다. 적어도 여기서는 양들과 꽃들이라는 집단 간의 갈등으로 그려진다. 이는 곧 꽃의 생사가 걸린 전쟁이다. 그러고 보면 양의 의미도 조금 애매해진다. 어린 왕자가 조종사에게 그려 달라고 했던 어린 양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어른 양이라면, 숫양이라면, 큰 양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모든 큰 존재가 지닌 난폭한 성질을 생각해 보면, 작은 바오밥나무가 커져서 골칫덩어리가 되는 걸 생각해 보면, 전쟁은 큰 것들 사이에서,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거대한 전쟁의 시기에 동화를 쓰면서 작가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교훈적 이야기를 담지는 않았다. 다만 인간 집단 사이의 전쟁과, 그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에 대해 짧게 암시했을 뿐이다.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를 살필 것. 사랑하는 존재가 세상에 하나라도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마음은 행복해진다. (99-101p)
#우리는언제어른이되는가#김진하#21세기북스#서른에다시읽는어린왕자#어린왕자#인문교양#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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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특이한 삶을 살았던 소설가로 어린 왕자라는 대표적인 작품을 남겼습니다. 1900년에 태어난 생텍쥐페리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에 정찰 비행을 하다 독일군의 공격에 의해 실종되었습니다. 유난히 비행기를 좋아하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던 생택쥐페리는 거의 모든 인생에 비행기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듯 생텍쥐페리의 삶은 비행과 비행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영위됩니다.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비행 문학쪽으로 선회했습니다. 어렸을 때 비행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고 처음 비행기를 타고 쓴 시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삶을 비행과 문학으로 접목시키게 했습니다. 이렇게 비행 문학의 선구자가 된 생텍쥐페리는 죽어서도 비행, 비행기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런 비행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어린 왕자입니다. 이 책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는 서른에 다시 읽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로 어린 왕자 이야기를 통해 어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어린 왕자는 형식적으로는 환상 소설이지만 주제로는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인칭의 어른이 화자인 회상 형식입니다. 어린 왕자에는 유명한 모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아뱀 그림을 모자로 보고 넘기는 것은 어린 왕자를 어린이용 동화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른을 위한 소설이기도 한 어린 왕자는 보아뱀이 삼킨 코끼리의 봄모습을 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 왕자를 어른의 가치관에 대한 비판으로 읽어봅니다. 생택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통해 대다수의 사람이 어른이 되면서 망각해 버리는 어린이의 세계를 그리려고 합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털어놓는 데서 그런 의도가 드러나는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은 실제 생택쥐페리가 어렸을 때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어른이 되는 것이 어린 시절의 꿈을 버리고, 잊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갈음하고 뚜렷한 매듭지음과 비약을 상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이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 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보통 어른은 어린이보다 더 이성적 능력을 가졌다고 간주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스토아 철학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명석한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고는 프랑스를 이해할 때 이성이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데카르트의 철학 체계는 새로운 사유의 체계와 방법을 제시하고 과학과 철학에 미친 영향 또한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어린 왕자라는 동화를 어른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어린 왕자를 생각지도 못했던 시선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