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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만, 전공을 살린 사업을 시작해보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시장규모가 엄청나게 커졌지만, 그때만 해도 막 시작할 때였고, 지방에서는 전무한 상황이어서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었는데, 결국은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무렵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고, 사업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 되고 말았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옳다고 지금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비교적 벨기에 출신 작가 빌렘 엘스호트의 대표작 <9990개의 치즈>입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우연히 만난 형의 친구의 소개로 사업을, 그것도 무역업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국제 상거래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얼마 전에 읽은 이기찬님의 소설 <무역의 신; http://blog.yes24.com/document/8082588>에서도 맛을 보았습니다만, 지금 다니는 직장도 사업과는 전혀 무관해서 사업에 관한 경험이라고는 전혀없는 평범한 직장인이 과연 사업을, 그것도 무역사업에 뛰어들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하는 것이 관점인 것 같습니다.
조선소에 다니는 우리의 주인공 라르만스는 우연히 형 친구 스혼베커 변호사의 초대로 그의 집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든든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오가는 이야기의 변두리를 빙빙도는 그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스혼베커씨는 네덜란드의 치즈회사 사장 호른스트라씨에게 부탁해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총판권을 따게 해준 것입니다. 라르만스는 덜컥 네덜란드로 가서 호른스트라씨를 만나게 되는데, 첫 만남에서 치즈 20톤을 보내겠다는 제안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치즈는 라르만스씨의 뒤를 따라 바로 도착하게 되는데....
정작 우리의 주인공은 치즈를 어떻게 팔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회사이름 정하기, 편지지 도안만들기 사무실 꾸미기에만 바쁩니다. 당연히 화물 탁송회사에 도착한 치즈를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아 결국은 탁송회사의 창고에 집어넣고 일부만을 집으로 가져와서, 그때부터 판로를 개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무려 20톤에 달하는 9990개의 치즈를 팔아치워야 하기 때문이죠. 누구나 치즈를 먹기 때문에 파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편하게 생각했던 것이 치명적이었습니다. 당연히 시장조사도 하고, 미리 소매상도 모집을 해야 했던 것이죠. 뒤늦게 대리점을 모집했는데, 적지 않는 대리점 희망자가 나섰지만 그들 역시 치즈판매를 해본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라르만스씨가 사업을 시작했던 것도 의문이었지만, 호른스트라가 라르만스씨에게 치즈 20톤을 덜컥 보낸 것도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한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는데, 스혼베커씨의 저녁모임에 나가면서 허영심이 부풀어오른 라르만스씨의 엉뚱한 해프닝으로 읽혔습니다. 돈키호테적인 도전이 자칫 온 가족을 불행의 늪에 빠트릴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찍 허황된 꿈을 접는 바람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위안을 삼아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작가 빌렘 엘스호트는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벨기에 작가로 이 작품 역시 1933년에 발표한 <9990개의 치즈>가 대표작으로 소시민적 삶을 그려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라르만스씨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적 차이가 있어 시대적 배경을 다르지만 등장인물들의 면면이나 이야기의 전개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주목거리라 하겠습니다. 짧은 분량의 이야기지만 큰 울림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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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직장인들의 로망, 안정적이고 그럴 듯한 자기의 사업을 시작하는 것. 종합해운조선소 사무원으로 일하는 남자(라르만스)가 있다. 우연히 형의 소개로 매주 돈 좀 만지는 사람들의 사교 모임을 주최하는 스혼베커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모임에도 참석하게 되는데, 자신의 직업이 그 모임의 격에 맞지 않는다. 모임을 주선하는 스혼베커도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그와 상관없이 모임에서 자신의 이야기는 겉돌거나 자연스러운 대화에 찬물을 끼얹거나 아무튼 모임이 끝나면 주인장에게 사과할 일만 남는다는 느낌이다. 그러다 (아마도 스혼베커도 불편했으리라) 라르만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품질 좋은 네덜란드산 치즈의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독점 공급책이 되면 어떻겠냐는 제안. 그러면서 생각한다. 치즈라면 누구든 먹는 것이니 망할 위험은 없겠다고... 치즈회사의 본사가 있는 암스테르담으로 가서도 스혼베커씨의 도움으로 계약도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매월 고정액과 판매량에 대한 일정 비율의 수수료까지... 일개 사무원에서 갑자기 사업가로 변신하면서 사교모임에서의 위상도 달라짐을 느낀다. 치즈 공식딜러가 되었으니 멋진 사무실도 필요하다. 마치 곧 산달을 앞둔 젊은 임신부가 서랍딸린 기저귀대를 준비하 듯... 멋진 책상도 필요하고, 만년필도 필요하다. 회사의 이름도 필요하고, 회사 이름이 멋지게 박힌 공식 용지(편지지)도 필요하다. 드디어 20톤의 1차 치즈 물량이 입고 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데.... 부족한 것이라면 주인공이 치즈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과 종류 불문하고 뭔가를 팔아본 경험이 전무 하다는 점!! 실질적인 판매는 이뤄지지 않은 채 시간은 흘러 본사의 사장이 1차 대금 정산겸 사무실에 들르겠다는 연락이 온다. 과연 라르만스는 이 난국을 해쳐나갈 수 있을까? 심금을 울리는 글들 사무직 직원은 겸손이 생활화된 사람이네. 저항과 단결을 무기로 고용주에게 어느 정도 존중을 받는 노동자보다 훨씬 자존감이 낮다고 해야 할 거야. 심지어 러시아에서는 노동자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네. 피의 대가로 얻은 결과니까. 하지만 사무직은 어떤가? 전문성도 없고 서로 무척 비슷비슷하기만 하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부려 먹은 쉰 살 먹은 사무직도 하루아침에 뻥 차버리고, 마찬가지로 일 잘하면서도 훨씬 싸게 먹히는 젊은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힐 수 있지. 나는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었기에 낯선 사람과 다툼을 벌이는 것도 되도록 피하면서 살아왔네. 혹시라도 그 사람이 내 직장 상사와 아는 사이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복잡한 전차 안에서도 사람들이 밀면 밀리는 대로 밀려갔고, 누군가 발을 밟아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네.(p.36~37)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네. 어디든 치즈를 파는 곳이었지. 그런데 뭐라고 이야기하지? 아무 치즈 상점이나 무턱대고 들어가 내 치즈를 살 마음이 없는지 물어보아야 할까?(p.133) 하지만 벌써 오십이나 처먹은 인간이 치즈 때문에 갑자기 안 하던 기도를 시작할 수는 없지 않겠나? (p.153~154)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십 년 동안 익숙한 족쇄를 발목에 채웠네.(p.159) 두번째 소개한 글은 현재의 내 모습이 투영되어 있어서 별 내용이 아닌 것 같지만 마음에 새겨졌다. 출퇴근길에 항상 새로 올라가는 건물이 없는지 살펴보며 언제라도 무턱대고 그 건물로 들어가 나와 일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매일 생각하며, 가방에도 몇 개월째 줄어들지 않는 안내문을 넣어 갖고 다니는 모습.. 무작정 해피앤딩도 기대하지 않았고, 또 우연의 연속으로 운으로 사업이 번창되기도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면 뭘 바랬던 것일까? 사업가로의 변신을 원한다면 라르만스의 이야기를 한번정도 들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하지만 중요한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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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씌여진 시기를 감안해도 요즘 직장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놀랐다. 1934년에 <치즈>로 출간되었는데 특이하게도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는 방식의 화법을 쓰고 있다. <9990개의 치즈>는 풍자소설로써 각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매우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편지나 마차, 다이얼 전화기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마치 현대소설처럼 느껴질만큼 세련된 문체가 돋보였다. 페이지도 하루 몇 시간만 투자하면 다 읽을만큼 가벼운데 그 안에 든 내용은 낯설지가 않다. 이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날 밤중에 라르만스의 어머니가 임종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프란스 라르만스는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형의 친구인 반 스혼베커 씨를 만나게 되고 사무실에 초대를 받으면서 모든 일들이 벌어진다. 그 모임은 로얄클럽처럼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갖춘 사람들만 초대되는 곳이었는데 조선소 직원일 뿐인 그를 소개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스혼베커 씨는 그에게 네덜란드 회사의 벨기에 지점을 맡아볼 사업이 없다며 치즈 사업을 권유한다.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을리 만무했지만 이미 직장생활에 한계를 느낀 라르만스는 고민 끝에 치즈 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치즈를 공급해줄 호른스트라를 소개받는다. 무려 20톤의 치즈였는데 치즈 갯수만 10,000개에 달한다. 사업 경험도 없던 그는 단지 사업체를 이끄는 사장이라는 것에 사회적 지위가 상승한 것을 느낀다. 스혼베커 씨 주최로 여는 모임에서도 확실히 그에 대한 대우가 달라져 있었고, 그를 어엿한 사장으로 인정하는 모습에 잔뜩 바람이 분 상태다. 정작 중요한 판매처를 뚫지도 못했고 대금 결제일이 임박해서야 여기저기 알아보지만 번번히 거절을 당한다. 그 공급처에서 제공받는 치즈의 단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시장조사나 하다못해 중개상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이 사업이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했다. 결론은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조선소로 돌아가는 것이였는데 자신을 반겨주는 직장동료와 훈훈해진 직장 분위기에 그는 편안함을 느낀다. 무모하게 느껴졌다. 명퇴 후 프랜차이즈에 뛰어든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사업이나 장사를 한 경험이 없는 초보자가 무턱대고 사업을 벌이면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처하느라 급급한 모습인 듯 싶다. 직장인이라면 평생 직장이 사라진 요즘 언제까지나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시대다. 시기는 각각 댜르겠지만 자신만의 사업을 하겠다거나 장사에 뛰어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할 것 같다. 그에겐 3개월치 병가를 내고 돌아갈 직장이 있지만 우리는 현실을 맞딱뜨려야 한다. 프란스 라르만스는 이제 쉰살을 앞두고 있었으며 그에게는 아내와 한창 자랄 시기인 얀과 이다가 있었다. 4인 가족이 한달을 버텨내려면 고정 수익이 있어야 하는데 그가 사업을 정리하면서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았는가. 병가는 무급휴가인데다 사업하느라 날린 돈은 회복하기 힘들다. 그가 아내를 껴안으며 흘린 눈물이 이를 대변해준다. 고단한 삶을 벗어날 것 같았던 꿈도 한낱 물거품으로 끝났다. 사업만 하면 대박이 날 것이라는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처럼 소시민들의 삶을 예리하게 쓴 소설이다. 시대를 뛰어넘어서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과 현실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정을 갖게 되면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수입이 끊기면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페이지수도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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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면 고생이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약간의 과장에 농담을 섞어 말하자면,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가는 정도의 시간 정도가 필요할 뿐이다. 한 여름이라면 문을 여는 순간 더위가 밀어 닥칠 것이고, 한 겨울이라면 문을 열자마자 칼 바람과 마주하게 될 것이며, 비가 오는 날이라면 아무리 꼼꼼하게 우산을 써봐도 옷이나 신발의 어느 한 구석은 틀림 없이 젖게 될 것이다. 해운 조선소 직원인 프란스 라르만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반 스혼베커의 제의로 치즈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계획도 경험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한 치즈 사업이 무탈히 돌아가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 길지 않았던 몇 주간의 치즈와의 소동을 통해 프란스 라르만스는 자기 직장의 편안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며 떠나는 것 자체를 경계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돌아올 수 있다면 떠나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왜, 받아줄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을 가진 사람들만이 떠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떠남은 그 자체로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를 증명한다. 그래서 아마 많은 사람들이 떠남과 여행을 권하는 것이겠지. 여행의 전제가 바로 '돌아온다'는 것 아니겠는가. 아아, 그렇다고 오해는 말기를. 반 스혼베커가 프란스 라르만스에게 했던 것처럼 결코 치즈 사업을 권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프란스 라르만스는 어머니의 죽음에 난처함을 느낀다. 마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사람처럼,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과 거의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는 듯이 보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애쓰는 듯한 모습은 서툰 연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색했다. 카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와 닮아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근본적인 바탕은 전혀 다르다고 느꼈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거의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지만 <9990개의 치즈>의 라르만스는 어쨌든 자기 생각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라르만스는 보통의 직장인의 표상이다. 수십 년을 반복해온 익숙함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일정한 수입에서 안정감을 얻는 동시에 반복에 지루함을 느끼고, 불만족스러운 수입에 안달한다. 그러나 적어도 라르만스는 행복한 편이다. 그에게는 '불안'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의 부재를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업을 시작할 때도 거의 태평스러울만큼 '어떻게든 되겠지'했으며, 사업이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을 때도 '어쩔 수 없으니 정리해야지'하는 식으로 말이다. 라르만스의 '안정감'의 원천은 라르만스의 강하고 단단한 자아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특별히 화목하지는 않지만 신뢰를 공유하는 '식구(부인)'와 아빠의 사업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애썼던 아이들이 있었고, 귀찮을만큼 매일 찾아오는데다 잔소리에 가까운 얘기나 나누다 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힘을 보태주는 형님의 존재가 있었기에 라르만스는 신경증에 걸리는 일 없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거다. 심지어 이미 돌아가시긴 했지만 완전히 잊혀지지는 않은 어머니의 존재도 라르만스에게는 의미가 있어 보였다. <9990개의 치즈>는 마치 직장인이 꿈꾸는 일탈에 관한 소설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 수록 가족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프란스 라르만스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서문 격으로 보이는 '얀 흐레스호프에게'에서 흐레스호프는 혼자라지만) 프란스 라르만스가 '식구'라고 부르는 부인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못해 다중적이다. 업신여기면서도 신뢰하고 존중하며, 우월감을 느끼면서 열등감도 느낀다. 예를들면 이 부분을 보자.
여기서 라르만스가 식구에 대해 취하는 태도란 '침묵'이다. 자기의 일에 대해 일언반구도 내비치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고민하게 만들고, 그 고민이 결국 곤란에 이르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순간을 기다리는 데는 어느정도 비열한 면모가 없지 않은데, 수십 년간 함께 지내온 결과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걸 라르만스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곤란해할 것을 알면서도 괴롭게 만든다는 건 너무나 더럽고 치사한 행위다. 정말 파렴치하지 않은가. 그러나 다음 순간에 식구는 라르만스의 '실수'를 발견해 낸다(이 실수가 궁금하다면 9990개의 치즈를 읽어보길). 이 발견에 대해 라르만스는 역정을 내기보다 수용한다. 그러고는 너스레를 떨며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가장한다. 이런 태도는 흔히 '허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거의 모두에게 익숙한 모습이리라. 여기도 살펴보자.
라르만스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라르만스는 결코 가족의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다.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고, 분노를 쏟아내기도 하지만 가족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인 거다. 그렇기에 떠날 수도 있었고,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 제 자리로 돌아올 수도 있었던 거다.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보자.
라르만스는 자기 성찰을 아는 사람이다. 거기에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성숙한 사람이기도 하다. 일견 흔한 직장인들의 욕망을 그리고 있는 것 같은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타인을 자신의 처지와 태도에 대한 '구실'로 삼는다. 어떤 일이나 결과에 자신의 책임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어쩔 수 없는 외부적인 것에 책임이 있다고 책임을 떠넘기는 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떠넘기려는 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세가 그들의 성장을 방해한다. 가족에게 돌아가려고 해도, 회사로 돌아가려고 해도 그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앙금이 되어 금세 평정을 잃어버린다. 떠날 수도 없고, 떠나도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 놓이는 거다. 라르만스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소한 것들에 집착한다. 그럴듯한 사무실, 책상, 타자기. 심지어 사무실을 비워두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인양 행동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런 것이 거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엇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지는 것도 우리 자신이다. 9990개의 치즈가 있다지만 그것을 우리가 다 먹어치울 수는 없다. 저마다 자신의 몫이 있는 것이고, 능력이 있는 거다.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라. 기다리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라. 비록 지금이 아니라도 꼭 찾아내라. 그리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라. 뭐, 치즈 이야기를 이렇게 읽는다고 해도 좋지 않은가?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