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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험이 끝난 큰 아이가 장난처럼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 번 보면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력을 지니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시험 보는데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요? 이놈의 기억력은 참... 하면서 웃었었다. 그때는 장난처럼 웃고 말았는데 어느 순간 나는 생각했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력을 가지고 사는 것은 과연 행복할까? 삶이란 참 묘해서 잊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은 어느 순간 모래처럼 손안에서 빠져나가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단단한 찰흙처럼 손안에서 빠져 나가지 않는다. 잊고 싶은 기억을 매 순간 떠올리고 사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새삼 잘 잊고 또 새로운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내가.. 굉장히 인간답다고나 할까 미래의 어느 날, 지율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는 어떤 결심을 한다. 그는 과잉기억증후군으로 고통 받았지만 현재는 기억을 통제하는 약과 훈련으로 평범한 기억력을 가지게 되었다. 집에 앉아 책장을 바라보던 그는 유일하게 기억하는 책 보르헤스의 소설집 픽션들 중 단편 ‘기억의 천제 푸네스’를 떠 올리고 그 내용을 컴퓨터 화면에 받아 적기 시작한다. 푸네스는 지율보다 더 뛰어나 기억력을 갖고 있고, 20년 전 어느 날 은유가 읽어준 이 소설은 소리로 그의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다. 기억 속 목소리에 의존해 이 책의 문장을 적어 내려가면서 그는 그녀의 전화번호가 떠오르게 되는데... 과거의 그녀는 지율의 능력을 부러워했다. 그녀는 점점 기억력이 약해졌으니까. 그러고는 지율에게 말한다. “너는 왜 자기 능력을 좀 더 유용하게 사용하지 않는 거야? 나라면 어떻게든 있는 힘을 다해서 그걸 쓸 텐데.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잖아.” (99) 하지만 과연 그럴까? 기억력이 좋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순기능으로만 활용되고 쓰이게 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아니 과잉기억을 가진 사람은 그 기억으로 인해 고통 받고 힘들어 하니까. 내가 그 입장이 아니라고 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집을 나가면서 엄마가 했던 말. “나는 이 집에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 한 번도.” (70) 이 말은 어린 지율에게 상처가 되고 낙인처럼 기억이 되어 버린다. 이런 말들을 잊고 살았다면 조금 세상이 편안했을까?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에 자유로웠을까? 혹자는 그렇게 좋은 기억력을 왜 그런 식으로 밖에 사용하지 못하냐고, 그런 일에 징징거리지 말고, 보다 호전적인 일을 기억하고, 그걸 직업으로 가질 수 있도록 하지 그랬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상처 받았던 기억을 컸던 사람은 슬프고 아픈 기억에서 쉽게 헤쳐 나올 수 없다. 그나마 지율은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조금은 편안한 자신이 되어 가고 있다. 좋은 기억은 살리고 나쁜 기억은 잊어가면서..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일까? 하는. 한때는 아팠던 기억을 되 뇌이며, 그래서 내가 안 되는 걸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기왕이면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나쁜 기억은 잊을 수 있는 내가 되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강박처럼 좋은 기억을 심어주려고 했던 적이 있지만 뭐든 자연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요즈음은 생각한다. 나쁜 기억 속에서도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있고 극복 후 내가 행복해졌다면.. 그런 기억 한 두 개쯤은 내 머릿속에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이만큼 나이를 먹어보니 좋은 기억은 나를 활기차게 살게 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실의 아픔과 과거의 아픔에 매몰되지 말고 기억도 편집해보는 건 어떨까? 기왕이면 좋을 것으로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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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의 『개인적 기억』은 ‘기억’을 주제로 한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흔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녀가 좋은 관계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는 남자와 가장 마지막 일만 기억하는 여자가 만났을 때도 좋은 관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개인적 기억』에서 만난 두 남녀는 결국 헤어지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 기억』의 중심에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 http://blog.yes24.com/document/6680738』에 들어 있는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가 있습니다. 푸네스는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얼룩말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되면서부터 과거의 기억이 모두 되살아났을 뿐 아니라 한번 보고 들은 것은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개인적 기억』의 주인공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http://blog.yes24.com/document/7314893』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http://blog.yes24.com/document/7334212』처럼 기억의 초능력을 타고 난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소재로 사용하여 기억의 의미를 새기는 중편을 만들어낸 작가의 기획이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네가 47살이 되던 해 초능력을 가진 아이를 두었다는 것만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나는 장례식을 치루고 나서 문득 헤어진 그녀가 읽어주었던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리고 필사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민음사에서 나온 1판 31쇄라고 합니다. 제가 읽었던 것은 2판 1쇄였습니다. 내가 과잉기억증후군으로 진단받는 것은 열한 살이 되던 2022년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고, 당시 공식으로 인정된 과잉기억증후군 환자는 전세계적으로 51명이라고 합니다. 스물다섯 살 때는 게스트하우스 스몰월드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은유와의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은유를 만나게 되면서 생긴 고민은 그녀의 장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호감을 느끼게 된 이성들의 단점은 그녀의 고유한 모양으로 새겨진 상처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장점의 경우는 예전에 알던 사람들의 비슷한 면모가 동의어사전을 펼쳐놓은 듯 주르르 떠오르는 바람에 눈깜박할 사이에 그녀의 장점을 특징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기억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징 없음을 사랑하면 안되나보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듣게 된 은유는 자신은 어떤 관계이든 오직 마지막만 기억하는 것이 문제라고 고백합니다. 즉, 기억이 보관되지 않고 휘발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관계의 끝은 헤어짐으로 인한 상처만 기억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는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유가 가진 기억의 문제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http://blog.yes24.com/document/7223823』의 주인공은 전쟁 중에 뇌를 다친 뒤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즉 기억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해마가 손상을 입은 것입니다.
어떻든 스몰월드를 재활치료의 장소로 사용하던 내가 은유를 만나고서 다시 치료를 시작하는데, 새로 먹기 시작한 약물은 기억을 사라지게 만드는 효과를 나타냅니다. “은유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를 사랑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불필요한 과거를 망각이라는 순리에 맞기고, 본래 그것들이 가야 했던 곳으로 돌려놓고 싶었다(119쪽)”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치료를 시작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렇듯 마음을 썼음에도 두 사람은 왜 헤어졌을까요? 내 이름은 지율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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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터넷이었나 신문였나 아주 오래 전 부터 기억을 ,그러니까 망각하는 법을 모르는 소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보통 기억이란 선택적인 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필요한 것과 무의식적인 것들을 나누어 담아서 각각의 저장소에 필요에 의해 저장한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 편이다 . 그런데 태어난 이래 기억을 단 하나도 잊지 않고 산다니... 그걸 과잉 기억 증후군 ㅡ이라 하는가 보다. 망각 상실 증 ㅡ도 되려나 ..망각하는 법을 상실한 것. 아님 애초에 그 기능이 움직이지 않는 거다. 어떤 부작용으로 인해. 이 책에선 보르헤스의 책을 받아 적는 사람이야기가 나오는데 ..글 속의 남자는 말에서 떨어진 후 부터 과잉 기억 중후군을 ㅡ그리고 이 소설에선 화자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는 참 인듯 하다.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장례후 ,쉬는 중에 홀로 앉아 대충 한끼를 때우다 말고 빈 책장을 보며 문득 아 ㅡ책을 읽어야겠어 ㅡ라니 ... 뭔가 ...했더니 ㅡ어떤 이유로 그는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던 모양 ㅡ 그래서 지금은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 타이핑을 하는 중이다 ㅡ그 목소리는 이미 죽은자 ㅡ그러니까 어머니의 목소리 인데 ,난독 증이 생긴 자식에게 ㅡ책을 읽어 주며 위로를 해 주었던 모양 ㅡ그 기억을 떠올리며 타이핑을 하는 남자를 나는 그린 듯이 읽고 보고 하고있는 참 ㅡ 계속 읽어 가겠다 ㅡ |
기억하는 능력과 잊는 능력.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린 아침 출근길이 매우 특별해진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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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그 일을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슬픈 일로, 어떤 사람은 기분 나쁜 일로, 어떤 사람은 조금 불편한 일로, 어떤 사람은 행복했던 일로. 그렇기에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개인마다 옛 일을 다르게 기억하듯이 사람에 따라 옛 일을 기억하는 정도도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옛 추억을 상당히 자세하게 기억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시간의 한 부분을 뭉텅 떼어낸 듯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다.
은행나무 노벨라 9번째 작품 <개인적 기억>에서는 절대적(?) 기억력을 갖춘 지율과 평범한 기억력을 갖고 있는 은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뜻 생각하기에 모든 일을 기억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지만 막상 하나의 행동이 그것과 연계된 모든 일들을 끝없이 떠오르게 한다면 아마 제정신으로는 한 순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좋은 일이 있듯이, 나쁜 일도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에 지율의 기억력은 변형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정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를 조금 돌려 말하자면 어떤 기억들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대를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지율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지율은 고등학교 친구들이 놀려대던 ‘머신’이 아니다.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만을 쌓아놓은 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컴퓨터가 아니다. 지율은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율과는 반대로 너무 많이 잊어서 괴로운 이도 있다. 바로 은유이다. 그녀는 오로지 마지막 순간만 기억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기억해야 할 행복한 순간,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전혀 떠올리지 못한다. 지율의 증상만큼 은유의 증상 또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둘의 사랑이 멋지다.
은유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p.129)
과잉기억증후군의 지율에게 은유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기억하지 못 하더라도 은유의 모든 것은 지율에게 특별하고 대체 불가능한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되는 추억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멋지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과연 지율과 다르다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푸네스는 어떤 인물일지. 그는 또 어떤 기억의 모습을 들려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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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기억/윤이형/은행나무]기억의 천재가 갖는 슬픔에 대해
기억을 잘 한다는 건 대체로 몹시 근사한 일이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라면 천재적 기억력을 갖고 있기를 은연중에 소원할 것이고, 취업 준비생의 경우도 천재적 기억을 갖지 않음을 답답해 할 것이다.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기에 직장 생활에서든 가정생활에서든 망각보단 기억에 더욱 끌리는 것 같다.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9번째로 만난 윤이형의 <개인적 기억>은 기억과 망각이 인간에게 얼마나 필요한 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인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알게 해 준 작품이기도 하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후 전신마비에 이른 시골 청년 푸네스가 갑자기 천재 기억력의 소유자가 되고, 자신의 기억력을 통해 인간의 지각능력의 가능성과 한계를 통찰한 내용을 담은 단편소설이다.
윤이형의 <개인적 기억>은 미래세계인 2058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병명도 생소한 ‘과잉기억증후군’을 앓는 남자의 주인공의 개인적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아련한 안타까움을 남기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지율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텅 빈 책장을 보며 문득 ‘책을 읽어야겠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어릴 적부터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게 되면서 기억통제 훈련과 약물요법의 효과로 이제야 남들처럼 평범한 기억력을 갖게 되었는데, 다시 독서라니……. 지율은 20년 전 여자 친구 은유가 읽어 준 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기억에 의존해 필사를 하게 된다. 소리로 기억된 소설이었기에 기억 속 은유의 목소리에 의존한 소설 필사를 하게 된다. 그것도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 닮은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필사를 하는 동안 목소리의 주인공 은유와의 사랑도 기억해내고, 어머니와의 기억, 아버지와의 기억도 되새기고……. 그러다가 택배대출 서비스를 통해 도서관에서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대출 받게는다. 택배대출서비스라니, 좋은 아이디어다. 점점 택배 세상이 되고 있기에 미래형 도서관 서비스일 게 분명하다.
어쨌든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선 초기억을 유지하는 과잉기억증후군 남자 지율, 그와 반대로 기억력이 약해지는 여자 은유의 대비가 아이러니하다. 기억의 천재가 갖는 슬픔도 있고, 망각의 보통 여자가 갖는 아픔도 있기에 세상엔 기억과 망각의 적절한 조화가 최고이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남들은 부러워할지도 모를 과잉기억증후군으로 치료를 받았던 남자의 아픔에 감정이입하다보니, 불필요한 기억이나 아픈 기억은 잊어야 살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된다. 때로는 아무 기억도 없이 텅 빈 머리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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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무엇일까..우리는 살면서 기억하고 싶은 적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아플때가 있었다...종종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점차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때 그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그리고 한달 전 치워 두었던 소중한 물건을 못찾아서 한시간 동안 땀삐질삐질 흘리는 경험도 가지고 있다...우리 스스로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면서 살면 좋으련만 우리들은 잊지 말아야 하는 것까지도 지워지게 된다...그래서 속상하다... 나에게 있어서 다른사람과 다른 기억이라면 숫자에 대한 기억이라고 할 수가 있다...방송에서 스타킹에 나오는 암산을 잘 하느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숫자에 대한 감을 익히려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고 2의 40승이나 300이하의 소수 암기,천 이하의 숫자가 소수인지 아닌지 계산 하는 것, 파이 값 등등은 반복하게 되니까 기억을 할 수가 있었다...그래서 중편 소설 <개인의 기억>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책 속의 주인공 지율은 과잉기억 증후군을 앓고 있다..그래서 기억하지 않아야 할 것을 기억하게 되고 떠올리게 되는데...그의 능력은 상현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남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게스트 하우스에 들어오는 고객들의 정보와신상 그리고 주소는 메모하지 않아도 지율의 기억속에 저장이 되었고 상현은 필요할 때면 그 기억을 십분 활용하게 된다...그러나 그의 이러한 과잉 기억 증후군은 살면서 생기는 트라우마나 아픈 기억까지 저장이 되어서 종종 그런 기억이 떠올리면 두통과 호홉곤란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던 지율 앞에 은유가 나타난다..그녀는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고 있는 아가씨이다....은유와 지율은 점점 가까워지면서 지율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진 과잉기억 증후군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게 되고 공식적인 연인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어느날 은유가 갑자기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두고 뛰쳐 나가게 된다....지율은 다급한 마음에 게스트 하우스에 저장되어 있는 지율의 집주소를 가지고 찾아가지만 그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그리고 은유와 연락이 되어서 폐허가 된 은유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그리고 은유의 아픈 상처를 알게 되었다...서로 사랑하였기에 그녀의 상처도 보듬어 안으려는 지율...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이어지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생각해본다...우리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기억이라는 것은 선이 아닌 점과 점이 모여 있는 것이라는 걸....그래서 끊어져 있으며 때로는 하나의 기억은 아주 큰 점으로 또 다른 기억은 자그하한 점으로 기억이 되어 있다는 걸...그래서 그 작은 점을 다시 기억하려면 오랜 노력이 필요하거나 노력을 해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친구나 친척과 가족에 의해서 듣기도 한다....기억에 관한 짧은 단편 소설...그동안 알지 못하였던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 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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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가려는 길...
![]() ![]() ![]() "과잉기억증후군" 생소한 단어이면서 나역시 은유처럼 지율을 부러워하고 있다. 그럼 지율처럼 괴로울테지만 그래도 부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좋으면서도 한사람에게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고... 사회에서는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니까 말이다. 특히나 공부할때는 완전 좋은 것이 능력이라 지율도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을 테니 그런것만은 무척 부럽다. 외국어를 배우고 또 습득을 하기에도 용이하겠다는 일차원적으로 부러웠다. 배경이 지금보다는 미래이라서 혹시 앞으로 이런 증후군을 겪을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보았다. 영유아기의 세세한 기억까지 할 정도로 놀라운 기억력... 은유의 입장에서도 두려울 것은 이해되기도 한다. 지율의 입장에서도 과도한 기억이라는 장애로 사랑하면서도 한사람에게 집중할 수가 없을 때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다는 것도 이해된다. 그 트라우마로 방황하고 있어서 더욱 그러 했다.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진짜 기억해내고 싶어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한번씩 정말 잊지말아야 할 일들이 있다.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는다. 스스로에게,서로에게 다짐했던 약속들 마저도 말이다. 작가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리라... 누구나의 아픔을,잊지말자고,잊지 않겠다고 했던 일들이 너무나 쉽게 망각의 강을 건너고 있음은 보았다. 지율은 과잉기억으로 약을 복용한다. 약이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원하는대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기억하기 싫은 것은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나나 일반인들이 겪는 것과 같이 되었다. 만약 그 약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다들 먹겠지만 그 약으로 지율도 기억을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 아님이 되었다. 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자꾸 떠오르고 아무리 떠올리고 싶어도 떠오르지 않은 기억이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한 셈이다. 그가 그토록 원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또다시 시작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다시 시작 하는 것이라 은유와의 관계나 그의 길이 다시 잘 되기를 바래본다. 특별하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쉽게 잊지 못하는 것과 쉽게 잊어버리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내 어렵다.그럼에도... 노벨라 시리즈 09 소설<개인적 기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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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진을 보았을 때 문득 친했던 친구나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들과의 기억들을 전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즐거운 기억, 아픈 기억 등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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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왜 소설을 읽느냐고 물으면 행간의 사유에 반해서 라고 답할 것 같다. 행간이 허용하는 배회와 방황에다가 쓰잘데기 없는 생각의 뻗힘이 이상하게 끌린다. 윤이형의 <개인적 기억>을 읽으며 감정과 기억으로 인해 삶이 고단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것 중에 하나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하여 삶은 기억과의 투쟁인 것이다.
한때는 들끓는 기억과 감정을 죽이느라 애썼는데 어느새 망각과 무심함이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쉽게 자리를 뜨거나 비우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부분들이 점차 소멸되어간다. 기억(의 정도)을 토대로 나라고 여겼던 정의도 고쳐야 할 듯하다. 그래서일까. 모든 걸 기억하는 남자와 디테일한 기억이 없는 여자가 펼치는 이중주가 고혹적으로 들린다. 남자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빈 책장을 응시하다가 돌연 읽어야겠다는 다급함에 사로잡힌다. 기억 속 목소리와 실제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딱 포개지지 않을 때 오히려 안도했다. 피상적인 기술이 아닌 그녀에 대한 인상과 추억이 덧대어진 그만의 변형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토록 숙원했던 자기 의견이자 목소리를 낸 것이다. 오래 전 사람을 호출하여 더듬는 기억이 사랑이야기라서, 여자를 향한 에필로그여서 그 끝이 많이 애틋했다.
마흔일곱의 그는 열한 살, 열일곱, 스물여섯, 서른넷, 그리고 지금을 잇는다. 너무 많이 기억하는 자와 전부 잊어야 살 수 있는 자 사이의 간극이 중심에 놓인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하는지, 두 번째 스무 살을 넘긴 나이에 여전히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있다면 슬쩍 남자의 말을 모방해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오늘밤은 책의 여운과 봄비를 타고 깨어난 기억의 변주로 방안이 왕왕 울릴지도 모르겠다. 돌아온 봄에 마치 처음인양 시작될 들뜬 사랑들이 마지막에 내뱉을 탄식이 저만치 들리는 듯도 하다. “나는 은유를 사랑했고,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이 모든 소망들은 얼마나 오만한가. 얼마나 절박하고, 얼마나 진실이며, 또한 얼마나 허위로 가득 차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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