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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억압하는 것들, 그리고 열린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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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취적인 사물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그것을 키취로 보느냐 아니냐는 보는 자의 시각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키취라는 말은 너무나 흔해졌고, 키취가 아니던 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의 흐름에 따라 키취의 영역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나는 기능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디자인에 대해 어느 정도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저 그런 까페에 가면 어디에나 놓여있는 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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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취적인 사물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그것을 키취로 보느냐 아니냐는 보는 자의 시각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키취라는 말은 너무나 흔해졌고, 키취가 아니던 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의 흐름에 따라 키취의 영역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나는 기능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디자인에 대해 어느 정도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저 그런 까페에 가면 어디에나 놓여있는 탁자를 대신하는 말구유, 여물통을 보며 주인의 감각에 혀를 찼고, 벽에 붙어있는 만원짜리 영화포스터 판넬을 보며 맙소사를 외친 때도 있었다. 나의 생각에는 물건은 만들어질때의 기능이 있고, 제 기능을 하지 않는 물건으로 인테리어를 하는 것은 감각없는 일로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무엇인가. 또 본래의 기능이란 무엇인가. 디자이너가 컵으로 고안해서 만들어놓은 유리재질의 물체를 사용자는 화병으로 이용할 수도 있고, 필기구를 꽂아두는 연필꽂이로 쓸 수도 있다. 여러 사람이 라면을 먹을때 모자라면 그릇으로도 쓸 수 있다. 가능성을 닫아두는 보통의 삶에서 좀 더 열린 가능성, 상상력과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이 메타디자인이다. 이발소 그림에는 이발소 그림의 역할이 있다. 모든 벽에 모나리자가 걸릴 필요는 없다.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이라는 판단의 잣대를 거두고, 완벽한 수적, 대칭적 비례미만을 우주의 완성형으로 생각하지 않고, 잘 된 디자인과 잘못된 디자인을 가르지 않음이 필요하다. 그 다음엔 자유로운 발상. 마치 禪에서처럼, 도가의 가르침처럼, 이렇게 생긴것은 이런 쓰임이 있고, 저렇게 생긴것은 저 나름대로의 쓰임을 찾아주고, 그것을 넘어서 물건을 물건 자체로 보고 그 속에서 창조적인 쓰임을 찾아내는것, 그것이 메타 디자인이고 열린 세계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는 앞뒤를 파악할 수 없는 바우하우스 건물을 디자인함으로써 반계급적 발언을 시도하였다. 심지어 그는 새들이 바라보는 시선까지를 의식했는지 위에서 바라본 바우하우스 건물의 평면 형상을 풍차의 이미지를 따라 디자인하였다. 이 또한 계급적 냄새를 없애고자 하였던 그의 결벽증적인 의지가 만들어 낸 것이다. 이를 통해 계급의 흔적을 없애고 보편성의 이데올로기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의자적 감수성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모더니스트들의 응답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응답의 순수성은 퇴색되고 디자인에서 모더니즘은 오늘날 하나의 스타일로 남아 생명을 연장하고 있을 뿐이다. 스타일은 자신의 형상을 취하지 않는 모습을 저급하다거나 키치라는 이름으로 억압함으로써 지극히 의자적인 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다. 바우하우스를 디자인하는 그로피우스의 몸짓에서 발견되었던 아방가르드적 순수성은 사라졌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자본의 이익에 철저히 봉사하면서 추억할 가치조차 없는 옛 기억이 되었다. 그들이 극복하고자 한 의자적 감수성이 사라진 자리에 또 다른 의자적 감수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리뷰 총점 종이책
일상 삶에서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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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린 서점에서 나의 시선을 잡은 레몬색표지의 작은 책, 오창섭의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미셀 푸코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떠올리며, 책을 집어들었지만 '메타 디자인을 찾아서'라는 부제에 더 반가움을 느꼈다.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비판』에서 메타 디자인이란 용어를 접한 후 라서 그런지, 그리고 오창섭의 『디자인과 키치』에 대한 좋은 인상 때문
"일상 삶에서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찾아서~" 내용보기
우연히 들린 서점에서 나의 시선을 잡은 레몬색표지의 작은 책, 오창섭의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미셀 푸코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떠올리며, 책을 집어들었지만 '메타 디자인을 찾아서'라는 부제에 더 반가움을 느꼈다.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비판』에서 메타 디자인이란 용어를 접한 후 라서 그런지, 그리고 오창섭의 『디자인과 키치』에 대한 좋은 인상 때문인지 제목만 보고 책을 구입해버리고 말았다. 노란 벽돌길을 따라 마법사를 만나기위한 여행-고향 캔사스로 돌아가기위해-을 떠나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메타 디자인이란것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책의 첫장을 넘겼다.사용자들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 그럴듯하게 들리는 '사물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발생한다'는말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기능주의적 사고들, 키치적 사물의 디자인들 그리고 기타 많은 담론들... 그동안 실생활에서 공감하고 있었지만 키치적사물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못하는 박쥐같은 위치에 서있던 나를 비롯한 많은 디자이너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한 글들로 시작을 연다. 하지만 1장을 전부 읽기도 전에 『디자인과 키치』에서 이야기한 '키치의 유형, 내용, 존재방식들'에서 키치란 단어를 삭제하고 많은 형용사들과 수식어들을 사용해 좀더 그럴듯 하게 말을 풀어놓은 글이라는 생각이 스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전혀 새로운 담론을 내세우지는 않지만, 디자인이란 것은 고상하거나 아름다운것, 우아한것, 좀더 멋진 어떤것이라기 보다는 우리와 가장 친밀한 일상생활과 연결 지어, 디자인의 의미의 확장을 언급해준다. 어떤이는 메타 디자인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메타 디자인이란 새로운 영역의 담론의 장을 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 기존의 작가의 생각에 새로운 용어(익숙하지 않아서,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용어)를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여간, 메타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도우려했다는 점에서도 그 시작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2장에서 메타 디자인의 이해로 시작을 열기는 했지만, 무엇이든지 한마디로 정의하기/정의해주기를 좋아하는 나의 우매한 습관 때문인지 "메타디자인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명쾌하게 풀어주지는 못했다. 메타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메타' 의 구조에 대해 '메타언어'를 예를 들어, 메타 언어가 언어에 대한 언어/재귀적 기능을 하는 언어로 소통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스스로에게 던져지는 사고의 화살', '넘어섬', '해석의 노력', '반성의 움직임', '창조의 움직임', '상대적 개념', '비평적 사고를 전제로 함' 이라며 메타를 정의했지만, 책의 제목에서처럼 쉽게 이해하기도/되기도 어려운 개념인 듯하다. "삶이란 무엇일까? 왜 태어났지? 왜 사는 것이지?"같은 담론의 담론을 거듭하듯이, 아마도 시공간의 맥락에 따라 디자인-메타디자인-의 의미 역시 계속 변화될 것이다. 결국 책에서는 일상 삶과의 괴리감이 없는 디자인, 그곳에서 디자인의 지향하는 의미와 목적을 찾아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키치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키치라 부르는 유희, 구별짓기, 정체성확인 등의 사물 역시 확장된 영역으로서의 디자인이며, "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 지향해야할 메타 디자인이다"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아니, 소위 우리가 말하는 키치적인 것이 가장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작가가 말하려는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란 기능주의에서 말하는 사물의 기능을 통한, 동선의 길이로 측정 가능한 편리의 획득에 의한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다. 『디자인과 키치』에서처럼 이 책에서도 인간을 위한다는 외침아래 모든 행위들이 면죄부를 갖게 되었다며 기능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얼핏 잘못 이해하게 되면 작가 역시 기능주의디자인의 경계에서 박쥐같은 입장을 취한다고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반대의견에 대한 직접적이며 강력한 표현이 부족해서는 아닐지... 어찌되었든 의자를 통해 디자인의 형태와 기능에 대해 살필 때, 갤런 크렌츠의 『의자』에서 처럼 단순히 '인간을 위한 의자'-인간공학차원에서의-로 마무리짓는 방식에 휩쓸리지는 않는다 (기능주의디자인처럼, 인간을 측정 가능한 존재로 보는 것)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의자의 감수성'이란 개념을 등장시켜 단순히 앉는 존재로써가 아니라 계급의 존재를 암시하는 의자까지 의자의 정의를 확장시킨다. 의자라는 것을 기능주의적 사고로 호명 할 때는 단순히 앉을 때 쓰는 도구가 되지만, 사실 우리 주위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의자의 기능이 그것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앉는 기능에 의해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의자가 인간의 편리성을 도모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책을 쌓아둔 의자, 발판으로 사용되는 의자, 옷걸이로 사용되는 의자, 문이 닫히지 않게 세워둔 의자 등을 생각해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의자의 기능의 확산을...-이 기능들은 디자이너들이 생각했던 기능이라고, 디자인을 하기 전에 염두에 둔 기능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쌓아둔 책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 바위/잔디에 심지어는 계단에 앉아서 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의자라 호명하던 것들 외에 이런 것들에도 의자라 불러야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들, 여기서 벌써 오류가 생긴다는 말이 아닌가? 잔디도 바위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의자의 형태를 취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굳이 예를 들 사물들도 많았지만, 의자를 예로 든 이유는 무엇일까? 의자라는 것을 단순히 앞서 말한 기능의 확장만을 설명하기위해서 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의자라는 것의 숨은 의미를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배와 통제의 사회에 뿌리를 두고 산업화와 함께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왔다. 물론 의자의 또 다른 의미-계급의 존재를 암시하는 의자-를 살펴본다면 이집트.로마의 의자에서 살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급이니 신화니 하는 말들을 자주 사용해서 이해를 도우려 하는것 같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신화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지만, 자세한 설명이 부족해 읽는 이로 하여금 막연히 저자의 시각을 따라가게-사고의 확장이 아닌 단순히 동조하기- 만들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저자가 말하려는 것의 의도는 알겠지만, 저자 역시 노란 벽돌길을 찾아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결국에는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야말로 메타
v***i 2001.04.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곱씹어 보는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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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겨울 방학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참 오랫동안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읽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사용된 까닭은 줄기를 오랫동안 끈질기게 붙잡고 있어야 만이 흐름을 탈 수 있는 이 책의 특징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것을 끝내고야 말았다. 제목만 보고 서라도 이 책은 디자인에 대한 책 임을 짐작할 수 있다. '메타 디자인을 찾아서'라는 부제로 보나 밝은 노랑의 책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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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겨울 방학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참 오랫동안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읽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사용된 까닭은 줄기를 오랫동안 끈질기게 붙잡고 있어야 만이 흐름을 탈 수 있는 이 책의 특징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것을 끝내고야 말았다. 제목만 보고 서라도 이 책은 디자인에 대한 책 임을 짐작할 수 있다. '메타 디자인을 찾아서'라는 부제로 보나 밝은 노랑의 책 표지로 보나-물론 이런 발상은 이 책을 읽은 사람이 해서는 안될 너무나도 타협적인 생각이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작가는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해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있었던, 혹은 지금도 있는, 앞으로 있을 문제이기 때문에 미리 피하고자 하는 문제들을 사회 과학적 언어를 빌려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구체적인 디자인 현상들을 발현시키는 이데올로기적 명령들을 디자인 언어인 조형으로 비평하고 점검하는 움직임'이라는 메타 디자인의 정의로 저자는 디자인의 현재와 과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과 문제점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꼭꼭 씹으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순히 디자인에 대해서만 디자이너들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타성에 젖고 이데올로기에 절은 우리들의 사고 방식과 상상력을 억압하는 우리네의 행동 양식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그의 해박함과 오랫동안 생각한 논리 정연한 의견에 혀가 내둘러진다. 어찌보면 어울리지 않는, 더 산만하게 만드는 도표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있는데 반해 작가가 풀어가는 주제는 물의 흐름(?)을 타듯 자연스럽다. 작가가 기능과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 이해를 돕기 위해 풀 묶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할 때는 너무 꼭꼭 씹어 먹이려는 듯한 느낌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실례로 든 예 또한 장황해서 글의 분위기를 망치기도 했다. 본 책은 왼쪽 책장에 책장 번호가 인쇄되어 있지 않다. 이것 또한 이데올로기를 인내하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의 상황이 아닐까. 어쩌면 작가는 한쪽에만 인쇄되어있는 책장 번호로 인하여 의문을, 한 번 더 생각 해 볼 수 있는 무언가를 설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인쇄의 실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의 곳곳에는 우리의 눈과 머리를 재미있고 또 시원하게 해주는 볼거리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그것들을 보고 난다면'올~디자이너도 괜찮은 직업인걸~'이라고 말 할 사람이 몇은 나올 것이다. 아...그 신선한 상상력의 충격이란..! 우리 모두 매저키스트를 위한 압정의자를 보자!
f****e 2001.09.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