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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약육강식의 냉혹한 현실에서 강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론으로 이해된다. 그는 '인간적이지 못한', '냉혹한', '권모술수에 능한'이라는 비판적인 평가와 동시에 도덕과 종교라는 껍질을 벗어 던지고 우리에게 가상적인 이론이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극과 극의 평가속에 살아있다. 알튀세르는 그의 이 "현재성"에 주목한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가? 그는 왜 우리에게 과거의 언어로 말하지 않고 현재의 언어로 말하는가?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가 '민중', '인민'의 위치에서 이야기하지만 '군주는 민중적 군주가 되어야 하지만 그 자신이 인민은 아니며, 인민도 군주가 될 것을 요구받지 않는다'라는 말로써 '정치적 관점의 주체'와 '정치적 실천의 주체'가 다름을 지적한다. 인민들 스스로 정치적 세력이 되도록 강제하거나 부추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일종의 혁명적 선언이지만, 인민을 위해 상황을 성취할 임무를 인민이 아닌 다른이에게 위임함을 비판한다. 이렇게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의 가면 뒷면에 서서 마키아벨리의 입을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누구에게 이바지하는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군주에게, 모든 군주가 아닌 단수의 군주에게 헌정함을 볼 때 그 군주에게 이바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공개적인' 저술이었다. 정말 단수의 군주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는 군주를 직접 만나거나, 혹은 은밀한 서신을 통해서 그의 생각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왜 '공개적인', 씌어진 텍스트라는 방식을 택했을까?
이것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속임수가 아닐까? 군주를 무장시키는 척 하지만, 그것을 공개함으로써, 오히려 군주를 무장해제 시킨다. 그러나 과연 그가 이러한 '인민'의 관점에서만 사유했을까? 그가 군주의 관점에서 사유했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일까? 과연 그 텍스트는 누구를 위해 씌어졌으며, 어떤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는가? 그를 이해할 수 있기는 한 걸까? [인상깊은구절] 이제, 우리가 매우 주목해야 할 것은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텍스트를 위해 고정시킨 장소, 그의 관점의 장소가 군주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는 결정적인 정치적 실천의 '주체'로 결정되고 있지만, 인민이라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로렌초 데 메디치라는 통치자에게 헌정하는 책의 서두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서도 서슴없이 언명하고 있는 것이다. "통치자들의 성격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민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따라서 통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통치자들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민의 관점을 제외하고서는 통치자들에 대한 어떤 지식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와 관련하여 통치자들의 관점을 제외하고서는 인민에 대한 어떤 지식도 있을 수 없다는 단언은 위의 언명을 적합하게 하는 슬기로운 방식처럼 여겨질 수 있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는 인민에 관해 논의하겠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인민론』이란 제목의 선언을 집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좀더 나아가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인민이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특정 군주의 본성을 알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