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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_도로테 죌레 도로테 죌레의 <고난>을 읽으며 항상 묻고싶었던 질문은 왜 악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살고 선한 사람은 고난을 받는가였다. 이 질문은 단순한 감정의 불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것과 사회의 구조를 향한 근본적인 질문처럼 느껴졌다. 근래의 악덕한 사기 사건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주변에도 꽤 있다. 그 피해자들 중에는 평범하게 살아가려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성실하게 돈을 모았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계약했지만, 결국 삶의 터전을 잃고 빚과 절망 속에 남겨졌다. 나라에서 도와준다고 했지만 사기를 치는 사람에 대한 죄의 댓가는 생각보다 미미하다. 그래서 가해자들은 수십 채의 건물을 소유하며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편법을 쓰고 사는 사람이 더 기고만장하다. 뉴스 속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허탈함을 안긴다. 왜 정직한 사람은 무너지고, 거짓과 탐욕을 가진 사람은 쉽게 부를 얻는 것처럼 보일까. 못되고 이기적이고 자신만 아는 나르시시스트가 더 많아진 듯. 죌레는 바로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고난을 단순히 개인의 불행이나 운명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 사회 안에 존재하는 구조적 폭력과 무감각함까지 함께 바라본다. 누군가의 고통 위에 자신의 이익을 세우는 사회에서는 타인의 아픔이 쉽게 숫자와 뉴스 기사 정도로 소비된다. 그러나 실제 피해자들의 삶은 단순한 금전적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삶의 안정감이 무너지고 인간에 대한 신뢰까지 흔들린다. 어떤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 앞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죌레가 말한 고난은 바로 이런 인간 존재 전체를 흔드는 아픔에 가깝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불행은 고난받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점점 의미가 선명해졌다. 타인의 고통에 아무런 감각도 없는 상태야말로 더 위험하다는 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못된 일을 아무런 죄책감과 꺼리낌없이 하는 게 아닐까. 전세사기 가해자들의 모습 역시 그러하다. 그들은 수많은 피해자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 결국 고난 자체보다 더 두려운 것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인간의 상태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삶 속에서 고난을 피하고 싶어 했다. 고난을 참고 견디어 아픔은 나를 이전보다 더 깊게 만들었다. 쉽게 판단하던 태도를 내려놓게 되었고(하지만 다시 판단하는 나를 본다.), 타인의 불안을 함부로 가볍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죌레는 인간이 고난 속에서 서로를 붙들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은 인간을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다움을 회복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은 단순히 아픔의 이유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고통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 인간성을 잃지 않을 것인가를 묻는다. 죌레 역시 인간이 고난 속에서 서로를 붙들고 연대할 때 비로소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난은 인간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깊은 공감과 성찰로 이끌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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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 많은 세계관에 둘러쌓여 살아간다. 그 치열한 세계관을 알게되면서 더 성경적인 세계관을 확립하고 싶었다. '고난'이라는 이 단어 앞에서 세계관이 또 한번 무너지는 시간을 가졌다. 안타깝게도 나는 성경을 읽으면 무섭게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런 상황이 아님에도 하나님의 말씀속엔 항상 강압된 명령과 호통, 그의 강함 속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냥 한켠에 찝찝함이 가득했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선 변함이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고난은 나를 성장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었다. 🔖p.57 그렇기 때문에 희생자들을 도외시하고 고난 뒤에는 정의로운 뜻이 숨어 있을 거라는 모든 고난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을 고통을 주는 분으로 이해하려는 신학적 사디즘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누가 그와 같은 하나님을 원하는가' 라는 문구가 심장을 쳤다. 결국 나 역시도 고난을 감내하고 감수함으로 더 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리라는 사고에 다른 이들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고 아파하지 못하고, 이겨내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은 고난이 나를 무감각하게 만들었고, 그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분이 되었다. 고난을 자각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일. 그것이 필요한 일이고 나 역시 그 부분을 애써 노력해야한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 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이들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자 🔖p.264 인간은 결국 고독하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짐을 나누어지는 것은 가능하다. 아무도 그를 생각하지 않고, 아무도 그의 곁에 머물 수 없을 정도로 홀로 버려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회는 가능하다. 깨어 기도하는 것은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