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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내용보기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때는 지금과 판형도 달랐고, 중간중간에 관련화보가 많이 실려 있어서 훨씬 재미있게 책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학 지식을 팔아먹고 살아야 하는 지금에도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하여 가장 흥미있게 기술했던 책하면, 이 책이 생각난다. 이 책이 흥미로왔던 것은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경제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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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때는 지금과 판형도 달랐고, 중간중간에 관련화보가 많이 실려 있어서 훨씬 재미있게 책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학 지식을 팔아먹고 살아야 하는 지금에도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하여 가장 흥미있게 기술했던 책하면, 이 책이 생각난다. 이 책이 흥미로왔던 것은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경제사를 기술한 것이 아니라 사회학적, 자연과학적, 법학적 관점에서 유기적으로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찰스 다윈, 허버트 스펜서 등의 사상이 어떻게 미국자본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득력있는 논증은 이 책을 읽은지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기억이 생생하다. 책을 읽는데 큰 부담은 없다. 타임이나 뉴스위크 같은 타블로이드를 읽는 기분으로 책을 들어 보자.
b******n 2002.04.02.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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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불확실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내용보기
요즘 나온 책들을 보면, '구관이 명관이다'는 생각이 더 피부로 느껴진다. 예전에는 다양한 인문, 철학서적이 나왔다. 갖고 싶은 책이 많아서, 책 사기가 바빴던 기억이 있다. 용돈을 아끼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벌였다. 지금은 재테크나 처세술 등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신변잡기적인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사고 싶은 책들도 쉽게 눈에 띠지 않는다. 철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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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온 책들을 보면, '구관이 명관이다'는 생각이 더 피부로 느껴진다. 예전에는 다양한 인문, 철학서적이 나왔다. 갖고 싶은 책이 많아서, 책 사기가 바빴던 기억이 있다. 용돈을 아끼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벌였다. 지금은 재테크나 처세술 등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신변잡기적인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사고 싶은 책들도 쉽게 눈에 띠지 않는다. 철은 지났지만(?) 십 여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 보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중학교 1학년 때에 가입했던 범우사에 연락하여 어린이 회원번호를 알아봤다. 그 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회원 잡지가 와서 퀴즈에 응모하고 독후감도 엽서에 써서 보내기도 했다. 그 때 매우 호감이 갔던 것은 책값이 1500원 내외로 매우 저렴했던 것이었다. 

 

현대사회를 흔히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한다. 이런 표현은 하나의 철지난 유행어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말이다. 더이상 고상한 표현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상식적인 수준에서 알지 못한다는 의미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이 학계에서는 사상의 기저가 되어 상당히 주류적이고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책은 과거 200여년 동안의 사회경제사를 다루면서,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보고 있다. 평소에 경제학에 약간의 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제1장에서는 고전적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했던 19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한다. 영국의 경제상황,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멜서스의 성장과 이론을 줄거리 삼아 전개하면서, 그들 이론의 현대 자본주의에 공헌을 이야기한다.

 

제2장에서는 19세기 중반의 고도자본주의의 생활태도와 도덕에 대해서 서술한다. 특히 그 당시의 찰스 다윈, 허버트 스펜서의 적자생존에 근거하는 '부자학'에 대해서 설명한다. 생존경쟁은 가난한 자의 등을 치는 채찍이며 그들의 타고난 나태벽을 고쳐 부지런히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가난한 자에게 사적, 공적 원조를 하는 것은 인류의 개선을 방해한다고 한다. 제 3장은 칼맑스의 성장 과정과 그가 자본주의에 대한 반론인 '공산당 선언', '자본론'을 쓰게된 배경을 서술한다. 4장에서는 스페인, 영국, 미국 등의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이념에서 이탈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자신을 생각을 말한다. 5장은 레닌과 소련의 공산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제6장에서는 화폐의 발달사를 서술하고 경제적 불확실성 시대의 원인은 (명목)화폐로 지목한다. 7장은 케인즈 사상과 세계대공황을 적나라하게 얘기한다. 8장은 냉전시대에 적대적인 경제, 정치, 사회체제간의 충돌과 군비확장 경쟁을 다루고 있다. 9장은 다국적기업의 권력관계를 분석한다. 10장은 빈곤문제, 11장은 자본주의 국가의 대도시의 성공과 실패, 12장은 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한 요인으로, 특히 리더십을 이야기한다.

 

지난 세기에 자본가는 자본주의 번영에, 사회주의자는 사회주의 성공에 확신을 갖고 있었으며, 지배계급은 그들이 지배자가 되게끔 운명지어졌다고 인식하였다. 지금은 이런 확실성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자본주의의 적은 없어졌다. 이제 자본주의의 적은 자본주의의 내부에 존재한다. 즉 자본주의의 모순만이 자본주의의 적이다. 내부의 모순은 갈수록 커지면서, 본래의 목적에 이탈한다. 여기에 자연과학의 결합은 그 모순의 회전 속도를 크게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이론화하는 지식인은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전혀 머리 아픈 일이 아니다.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는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원인을 찾기만 하면 된다. 칼 맑스가 공산당 선언을 한 것도 영적이 계시를 받아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모순이라는 원인을 보고 과거의 자투리 지식을 종합하여 변증법적으로 조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불확실한 것'이라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확실한 것'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무지함' 뿐이다.

  

서양에서 불확실성 시대는 세계대공황과 1차 세계 대전 즈음에 시작된 것으로 설명되어 지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는 '모르겠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러면 '알기' 위해서는 어떤 패러다임이 필요한가? 하나의 방법론이 다른 학문의 영역을 차용하는 것이다. 지금 학계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 한 쪽의 이론이 다른 쪽에도 여지없이 적용, 응용되고 있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지식의 통섭'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면, 각 학문의 독창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원래 하나의 흐름이었던 것이 지난 세기 동안에 다기하게 분류되었던 것이 다시 제자리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하나의 가치관은 맥놀이 현상을 통해 다른 학문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가령, 물리학에 chaos이론이 있다. 이 이론과 동일한 내용이 행정학의 조직론에도는 복잡성이론으로 응용되고 있고, 경제학에서는 행동경제학, 사회학과 정치학에서는 불확실성의 이론으로 통용되고 있다. 나는 어디에서부터 그 이론들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실제로 그게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분파적 학문들이 하나의 관점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서 서로서로 연결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봐야되는 가이다.

 

 이런 행태가 현대 우리사회의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하는 데에는, 지식의 빈곤함의 전초적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7-18세기에 존 로크, 시이예스,루소, 등의 사회계약론자들은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일종의 당대의 think tank 역할을 하였다. 20세기 초의 한스켈젠 등의 법실증주의자들도 어느 정도 이와 같이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발상에 일조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에 지식인들은 선배 지식인들이 하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다. 지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들은 현대사회의 문제를 알지만 설명, 해결하지 못하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의 시대'라고만 지칭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져본다. 만약 이렇다면, 학자로써 무책임한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아니면,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들에게 또 하나의 과제를 던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k*******4 2010.08.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