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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시 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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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향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 한 풀꽃 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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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향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 한 풀꽃 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 서정주, 추천사(鞦韆辭)

 

 

그네를 타며 춘향이 향단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몽룡과 만나게 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춘향은 이몽룡과 만나기보다 머언 바다로가는 꿈을 꾼다. 바다를 향해 그넷줄을 밀어라라고 외치는 춘향의 호소 짙은 목소리는 그녀가 얼마나 지금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를 에둘러 보여준다. 기생의 딸로 태어나 기생으로 살아가야 할 팔자였으니 춘향이 자기 사는 세상을 좋게 볼 리는 없다. 신분 사회는 결국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지옥이 아닌가. 이몽룡과 사랑을 해도 신분의 굴레를 벗기는 힘들다. 신분의 굴레는 오로지 이 세상 밖에서만 풀 수 있다. 그네를 타고 바깥 세계를 꿈꾸는 상황에 이미 현실의 한계 지점이 드리워져 있지만, 춘향은 바다로 가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밀어 올려다오라는 시구가 여러 번 반복되고 있듯이, 이 시에서 춘향은 그넷줄로 상징되는 이 세계에 여전히 묶여 있다. 그네를 타고 바다로 갈 수는 없다. 바다로 가려면 그넷줄을 끊어야 한다. 그넷줄을 끊으면 어떻게 될까?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춘향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바다로 가는 꿈을 꾸고 있다. 바다로 가려면 죽음까지도 생각해야 한다. 꿈을 꾸는 일만으로는 바다에 이를 수 없다. 그넷줄을 끊든, 아니면 그네에서 내려 바다까지 걸어가든 무언가를 해야 춘향에게는 멀리서라도 바다를 엿볼 기회가 생긴다.

 

춘향은 향단에게 그넷줄을 밀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마음으로는 저 먼 바다를 절실하게 향하고 있지만, 춘향은 끝내 그네에서 내리지 않는다. 그네에서 내리지 않고 저 먼 바다로 가기를 열망하는 춘향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향단이가 그넷줄을 아무리 힘껏 밀어도 춘향은 다만 공중으로 뜨기만 할 뿐이다. 그녀가 있는 곳은 바다가 아니라 그넷줄이 묶여 있는 큰 나무 아래이다. 큰 나무 아래서 춘향은 바다를 꿈꾼다. 꿈을 꾸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신분의 제약을 받는 춘향이니 이 세상 밖을 향한 꿈은 그만큼 절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음이 아무리 절실해도 실천이 없으면 그 마음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라고 춘향이 선언하는 순간 춘향이 꾸는 꿈은 현실 속에서 좌절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서쪽으로 가는 달처럼 갈 수 없는 사람을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도 그는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 그넷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춘향은 스스로 그넷줄에 묶여 그 너머를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넘어선 곳에 꿈꾸는 사람이 찾는 세계가 있다. 수양버들나무와 풀꽃더미로부터 벗어나려는 춘향의 소망은 밀어 올려다오라는 헛말이 되어 우리가 사는 세상 너머로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춘향이 왜 이리 밀어 올려다오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일까? 이상을 향한 꿈=마음만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이상일 따름이다. 현실 속에서 한 걸음을 내디뎌야 이상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춘향은 바로 그 길을 스스로 막아버린 것이다.

 

춘향이 꿈꾸는 이상은 서정주 시인이 꿈꾸는 이상과 다르지 않다. 바다를 향한 춘향의 꿈은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꿈꿀 만한 세계라는 점에서 그렇다. 시인 또한 춘향처럼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가고 싶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가는 것과 가고 싶은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상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 사람은 다른 이에게 밀어 올려다오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이상으로 가는 길은 스스로 걸어야 하는 길이다. 더불어 갈 수는 있어도 그 누가 그 길로 가는 사람을 밀어줄 수는 없다. 설사 향단이가 밀어주는 힘으로 춘향이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바다까지 이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절심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라고 말하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다. 춘향의 마음에는 이미 바다로 갈 수 없다는 좌절감이 깊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서정주 시를 읽으면 우리말을 자유롭게 다루는 힘이 느껴진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밀어 올려다오라는 시구를 반복함으로써 이상향을 갈망하는 춘향의 마음속으로 독자들을 자연스레 이끌어 들인다. 이상향을 동경하면서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 춘향을 통해 시인은 우리네 삶에 새겨진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운 󰡔춘향전󰡕 속 춘향에 비한다면, 이 시에서 묘사된 춘향은 운명을 넘어서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쉽기만 하다. 시대에 저항하기보다는 시대적 흐름에 순응하는 삶을 산 서정주의 이력을 생각한다면, 춘향의 이런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상은 꿈꾼다고 이상향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네에서 내려와 이상향으로 가는 길로 첫걸음을 떼야 그곳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그런 점에서 춘향이 멈춘 그 자리는 바로 우리가 새롭게 출발해야 할 자리이다. 실천이 없는 꿈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걸 그넷줄에 매인 춘향의 모습이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신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로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서정주, 신부

 

 

신부가 신랑과 함께 첫날밤을 보내고 있다. 신랑이 긴장했나, 오줌이 급해 냉큼 일어나서는 방에서 달려 나간다. 문돌쩌귀에 옷자락이 걸린다. 뒤를 돌아보면 될 텐데 신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쌩 하니 밖으로 나간다. 신랑은 신부가 음탕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소변 볼 시간도 못 참을 만큼 음탕해 자기 바지를 잡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알곤 뒤로 안 돌아보고 나가버린 신랑의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조선 시대라고 해도 신랑은 참 나쁜 사람이다. 신부가 음탕한 마음에 신랑 바지를 잡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신랑에게 신부는 어떤 의미를 지닌 사람이었을까? 아마도 그날 처음 만나 초야까지 치르는 것일 테니, 신랑은 당연히 신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신랑은 문돌쩌귀에 찢어진 옷자락만 남긴 채 다시 신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 신부를 규정짓고는 끝내 신부를 소박 놓아 버린 것이다.

  

신부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오줌 누러 나간 신랑이 돌아오지 않는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을 보며 신부는 신랑이 혹시나 몸이 아픈 건 아닌지 생각하지 않았을까? 첫날밤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는 이미 들었을 터이다. 이제 한 사람의 아내로 신부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한 사람의 아내를 넘어 한 집안을 이끄는 며느리도 되어야 한다. 가문의 대를 잇는 막중한 책무가 자기에게 있다는 것쯤 신부는 잘 알 것이다. 좋든 싫든 한 남자와 함께 한생을 보내야 한다. 처음 만난 남자와 보내는 첫날밤이니 얼마나 마음이 떨렸을까? 그런데, 밖에 나간 신랑이 돌아오지 않는다.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를 입은 신부는 그 모습 그대로 앉아 신랑을 기다리지만, 아침이 밝아 와도 신랑은 신방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게 첫날밤 소박이라는 걸까? 신부는 자기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신랑의 손길만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소변이 급하다는 신랑의 말에 살짝 웃었는지도 모르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리 소박맞을 이유는 안 된다. 방을 나서던 신랑의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려 신랑이 멈칫 서 있은 적은 있다. 신랑이 아무 얘기를 안 하는데 신부라고 무슨 얘기를 할까? 신랑이 무언가에 화가 나 있는 듯이 보이긴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긴장해서 그러려니 했다. 오지 않는 신랑을 기다리다 신부는 점점 저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든다. 첫날밤에 소박맞은 여인이라는 소문이 나면 가문에 먹칠을 하는 꼴이 된다. 부모 얼굴을 어찌 볼까?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아기 낳고 잘 살길 바라던 부모는 자기가 소박맞을 걸 알면 그 자리에서 숨을 놓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른다. 40년인가, 50년인가 지난 뒤에 신랑이 뜻밖에 볼일이 생겨 신부네 집 곁을 지나게 되었다. 신랑에게 조그마한 양심이라도 있었을까? 신랑은 신부가 궁금해 신부네 집으로 들어간다. 신부가 살던 집은 예전 그대로다. 신부가 있던 방문을 연다.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있다. 신부는 어떤 얼굴을 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신랑은 신부가 안쓰럽다. 참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가? 그때 그곳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신부가 불쌍해 신랑은 가만히 신부 어깨를 어루만진다. 그 손길을 기다린 것처럼 신부는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내려앉는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는다. 신랑은 어떤 마음으로 신방을 나왔을까? 신부가 한을 풀고 저세상으로 간 거라고 신랑은 생각했을까 

 

40년인가, 50년인가를 한자리에 앉아 신랑을 기다린 신부의 한을 상상한다. 신부는 정말로 신랑을 기다린 것일까? 첫날밤에 오해를 하고 달아나버린 신랑을 신부는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렸을까?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신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언젠가는 신랑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기나 했을까? 절망하고 절망하고 또 절망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서정주는 신랑에게 버림받은 신부의 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랑이 찾아와 어깨를 어루만졌으니 신부는 한을 푼 것일까? 신부가 한을 푼 거라고 생각한 거라면 이보다 더 큰 오해는 없을 것이다. 신랑이 내보이는 안쓰러운 손길 하나에 풀린 한이라면 40,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지 않았으리라. 신부는 신랑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 그 순간부터 신랑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 원망이 쌓이고 쌓여 신랑에게 원수를 갚는 상상도 수없이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신부는 가부장제에 매여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린 신랑이 불쌍했는지도 모른다. “초록 재와 다홍 재는 신부가 여전히 한이 맺힌 채 이승을 떠났음을 알려준다. 가부장제가 빚은 비극을 온몸에 품고 신부는 매운 재가 되어 저세상으로 갔다. 저세상에서 신부는 마음속에 깃든 한을 풀었을까? 여전히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를 보면 이 비극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요즘 들어 사회적 문제가 된 미투(Me too) 운동은 이리 보면 꼭이 여성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신랑이 신부를 버리고 가는 마음 한켠에는 가부장제 논리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변하지 않으면 사회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50년 만에 우연히 신부를 찾은 신랑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가부장제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손길 한번 주는 걸로 씻어낼 수 있는 잘못이 아닌데도 가부장제에 익숙한 남자들은 그것을 자꾸만 배려라고 생각한다. 배려는 타자를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신랑은 과연 신부를 타자로서 인정하고 배려했을까?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은 신부가 어딘가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o*****s 2018.05.11.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