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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2월은 각종 인사 발령과 신규임용, 퇴직 등이 겹치는 시기라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고 참 어수선한 시기다. 한 해 동안 감정노동을 같이 하며 특별히 마음을 함께 했던 이들이 많은 이 직군에서의 이별은 좀 특이하다. 함께 몸담았던 단위 학교는 달라지지만 크게 보면 같은 시, 군에 있거나 그래봐야 강원도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완전히 헤어지는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함께 하는 것도 아닌 좀 어정쩡한 사이가 된다. 어떻게 보면 이곳 저곳에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3월이 되고 각자의 일상에 치이다 보면 어느샌가 친했던 관계는 옅어지고 경조사 때나 연락을 주고받는 가벼운 인연으로 바뀌기 일쑤다. 그래서 이맘 때는 그 사람이 내게 어떤 의미였던지, 나는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사람이었던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두꺼운 책의 한 귀퉁이에서 서정주의 시를 만났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언젠가 다시 만날 테니 섭섭하지만 그 마음에 붙들리지 않게. 그래서 헤어지기는 하지만 아주 영 헤어지지는 말고 언젠가 다시 만날 희망 한 줄기는 남아있게. 눈에 보이거나 강렬하지는 않지만 계속 은은히 남아 있는 연꽃 향기처럼 인연이 이어지게. 어째 이래 절묘하게 인연과 연꽃을 갖다 붙이는지. 시인의 세계는 쉽게 범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래 퍼온 신영복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처럼, 다시 만나면 되지. 이별에 슬퍼 울지 말고.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이제 또 찾아올 새로운 인연을 기다린다. 신기한 일들이 벌어질 것처럼 들뜬 마음 아니라 언젠가 만났었던 사람 만나듯 차분하고 얌전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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