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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에 묶여있는 '민주주의'편향적 시각에서 씌여진 정치이론_1
"냉전시대에 묶여있는 '민주주의'편향적 시각에서 씌여진 정치이론_1" 내용보기
『정치사상사2』(조지 세이빈ㆍ토마스솔슨 저,성유보ㆍ차남희 역/한길사 펴냄)의 리뷰1편에 이어 리뷰2편은 다른 페이지에 있습니다==>'요기'를 클릭 우리는 현재 '민주주의'체제 하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사실 이데올로기의 종언에 따라 지구위에 '민주주의'외에 대안적 이념체계는 존재가치를 잃고 있거나 소멸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민주주의를 불러일으킨
"냉전시대에 묶여있는 '민주주의'편향적 시각에서 씌여진 정치이론_1" 내용보기

『정치사상사2』(조지 세이빈ㆍ토마스솔슨 저,성유보ㆍ차남희 역/한길사 펴냄)의 리뷰1편에 이어 리뷰2편은 다른 페이지에 있습니다==>'요기'를 클릭

 우리는 현재 '민주주의'체제 하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사실 이데올로기의 종언에 따라 지구위에 '민주주의'외에 대안적 이념체계는 존재가치를 잃고 있거나 소멸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민주주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자유ㆍ평등ㆍ박애"를 모토로 하는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에 의해서이다. 민주주의의 '모태'였던 계몽주의(啓蒙主義,The Enlightment)는 자유를 갈구해왔고 신神에 의한 계시보다도 인간의 理性이성에 의하여 종교나 미신등에 얽매인 구제도나 관습을 타파하고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합리적인 제도를 건설하겠다는 사상적 운동이자 실천적 노력이어왔다. 그러한 계몽주의의 총체적인 결과물이 프랑스대혁명이었다. 정치적으로는 개인의 기본권인 생명ㆍ자유ㆍ재산을 불가침의 권리로 선포하면서 구체제舊體制인 '앙샹레짐'Acient Regime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체제를 수립하였다. 다시말해 불합리한 신분제도를 파괴하고 신분이나 지위에 구속받지않는 평등한 권리를 가진 개인들로 구성되는 집합체인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는(경제적으로는) 부르조아지가 주도하여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완성케 하는 것이었다. 즉 재산권을 보장받은 부르조아지가 봉건농업경제에서 (산업)자본주의로의 변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위에 언급한 권리 즉 천부적天賦的이며 불가침不可侵의 권리는 정치면에서 전제적인 왕정에서 합리적인 개인들의 통치인 민주 '혁명'에서도 확인된 것이었지만, 사회면에서도 (다른 개인들말고도)산업화를 주도했던 부르조아지들이 더욱더 '신성神聖'시한 것이었다.

 

  

이제 정치적으로는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정치적 권리를 획득한 것이었고,사회적으로는 봉건농업경제에서의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속박에서 벗어나 자본가든 노동자든 인력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산업자본주의사회로 변모되는 일로에 있었다. 그러나 귀족이나 성직자같은 특권계급의 봉권적 권력을 대신하여 '권좌'에 오른 부르조아지들은 실제 평등한 개인들의 사회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주도한 산업사회는 다시 자본가(중산계급,부르조아지)-노동자(프롤레타리아)라는, 형식적으로는 '신분'이 아니지만 실제적으로 '신분'으로 계급화되는 사회를 형성하게 되는데,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산업자본주의의 '모순'矛盾이 더욱 커지게 된다. 부르조아지가 시작한 민주주의ㆍ 자본주의의 역사적 도상에 서있는 21세기의 현재의 개인, 다시말해 정치적 권리를 가지게 된 '시민'들은 프랑스혁명의 모토대로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있다.

 

 

실상 우리는 평등하기도 하고 권리를 가지고 있기도 한 '시민'이지만, 민주주의와 같이 맞물려있는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로 살아간다. 안전하고 지속적인 직장에 다니는 경우도 있지만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해 실업자가 되기도 하고, 취업하고 싶어도 안되는 노인과 장애인,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된 '철거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지금도 곳곳에 존재한다. 이들은 '노동자'이기도 하며==노동하고 싶어도 할수없거나 비정규직같은 저임금에 만족할수밖에 없는 노동자==또한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평등하다고 여겨지는 '시민'이기도 하다. 전자는 삶을 윤택하게 꾸려나가고 시간적 여유와 의식주를 누리는데 비해, 후자는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끊임없는 구직의 압박감과 불안한 생활속에 허덕이고 있다. 여기서 냉정히 따져보면 (가진 자가 아닌 없는 자에게) 민주주의하에서의 권리와 평등은 '명목'상이기도 하며 아무런 호소력이 없는 선거에서의 한 '표'(標)의 권리이게 된다. 이러한 이름뿐인 명목상의 정치권리가 있다. 또한 저 프랑스혁명이 부여한 (신성한 가치를 지닌) 이념상의 정치권리도 있다. 자본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한 개개인=즉 '시민'이자 '노동자'인 한 인간== 명목상의 권리와 이념상의 권리의 차이를 어찌됬든 느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 느끼고 싶지않다면  무심코 그냥 (생각없이) 지나친다면 느끼거나 알 수 없는 의문이다. 그러나 의문을 가지고 생각==왜 차이나지 의심하고 곱씹어본다면==한다면 다시 말해 '哲學철학'하게 된다면 그 차이가 생겨난 '배경'을 조금이나마 더듬을 수 있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말이 맞다면 철학할 수 있게 하는 지식知識의 인식체계認識體系를 형성하는 게 선결요건이다. 물론 지식은 지금껏 배워온 역사책이나 교양서만 가지고도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뛰어난 재담꾼 또는 석학이 지어낸 한 권의 책에서 모티브motive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글쓴이는 믿는다 유대인이 오랜시간에 걸쳐 기록한 '바이블Bible'이란 한 권의 책이 종교의 지식체계를 형성해왔듯이. 그  한 권의 책은 조지 세이빈George Holland Sabine의  『정치사상사 』A History of Political Theory 이라고 할 수 있다==토마스 솔슨Thomas Thorson이라는 그의 제자가 들어가는 글과 일부 내용을 교정했다는 면에서 공저이긴 해도  세이빈의 지배적인 사고가 책의 대부분에 흐르고 솔슨조차도 스승의 가르침에 암묵적인 동의를 표했기에 1인의 저서로 보아도 무방할 듯.  그 책은 번득이는 재담꾼이자 석학碩學이었던  세이빈이  고대로부터 20세기초반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을 풍미하던 정치이론(사상)의 흥망성쇠를 연대기적 순서로  써내려갔던,  범위상으로도 빼곡하게 또한 내용상으로도 깊이있게  다루었던, 그 엄청나고도 거대한 노력과 땀의 ‘결정판’이라고 할 듯하다. 실제  이 명성은  (다소간 과장된 표현인듯하긴 하지만) 한국내에서도 정치외교학과의 제1교재로 채택되어왔다는 데서도 부인못할 것 같다!

 

 

세이빈은 독자적인 '인식의 틀'을 가지고 전술한바와 같이 고대로부터 중세,근대,20세기초반에 이르기까지 등장한 수많은 정치이론(사상)을 일관되고 풍부하게 다루었다. 그가 다룬 방식은 사상가의 원전을 조목조목 서술하는 것이 아닌 현재적 관점에서 사상가에게 영향을 준 인접사상가, 그 의미, 평가, 관련 사건, 시대적 배경의 묘사 등 마치 '에세이essay'를 방불케 한다. 어쨌든 전문적 지식으로서 정치이론(사상)을 한 사람의 '석학'이 어떻게든 가공해서 제시한다는 점은 독자에게 커다란 편의성을 줌과 동시에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을 가능케 할 것으로 글쓴이는 믿는다==세이빈이 그러한 편의성과 자유성을 후대의 정치사상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준것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글쓴이는 자의恣意적이긴 해도, 그의 총체적이고도 종합적인 '인식의 틀' 가운데 '자연법 自然法체계'라는 관념에 주목하여 그 논의를 인용하면서 정치이론을 풀어쓰고자하며 아울러 자본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사회에서 한 '시민'이자 '노동자'인 인간이 느끼는 명목과 이념상의 권리의 괴리감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이 괴리감은  '산업자본주의'의 '모순'矛盾이라는 현상을 주목한 (헤겔주의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집단주의사상의 측면에서 제기되는 것으로서 사회가 경제적 차이로 구별되는 집단들로 분화되어 정치적인 권리와 사회적인 권리의 행사가 무의미해지는 '딜레마'와 연관되어지는 것 같다. 아울러 세이빈이 『정치사상사 』A History of Political Theory에서 일관되게 중요시해온  정치이론 즉 개인적 권리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허울'을 같이 묘사하게 될 것이다!

 

 

방대한 분량의 책의 결론부에서 세이빈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에 비하면) 민주주의에 후한 평가를 내린다." 솔직히 그가 남긴 수많은 생각과 고민의 풍요한 더미에서 결론이 이렇게 나오는게 허무할 정도이다. 사실 세이빈은 (서구) 민주주의==세계제1차대전이나 세계제2차대전의 유래는 유럽이었고 당시 이념은 유럽에서 유래했기에 그가 언급한 민주주의도 서구일수밖에==에 후한 점수를 매긴다고 서문에 다음과 같이 암시하는 듯하다. "독자가 관심이 있다면, 그는 역사학자 자신의 철학적인 선호성을 공인할 권리가 있다. 저자의 취향은 (제30장)"관행과 전통:흄과 버크"의 첫 부분에 설명된 자연법에 대한 흄의 비판 결과와 일반적으로 일치한다." 데이빗 흄은  자연법은 권리와 의무, 인간의 이성에 의한  일종의 '도덕'으로서 중세시대 이후 계승되어온 '관념'이었지만 자연법의 구조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흄은 자연법의 요소인 논리,사실(인과관계),가치가 서로 불분명하고 이성에 따른 '자연법'이 과연 '실재實在'할까 하는 의심을 펼쳤다. 그리하여 이성적인 '자연법' 대신 감성에서 유래한 상상이나 기호嗜好, 성향 같은 경험적인 '관행 寬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지식은 이성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고 심리적 상태나 감성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이성보다 감성을 강조하기에 합리론을 배척하면서 모든 지식을 경험에  국한시키는 경험론자였다. 결국 경험론과 회의주의자懷疑主義者로서 흄은 합리론을 궤멸시킬정도의 과격한 철학자여서 당시 논란을 많이 자아냈다. 그러나  진정  도덕이 유래하는 '이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의심을 살 뻔 했지만 그래도 '이성'을 재검토하면서 경험론을 발전시켰다는 데서 도덕을 파괴한 무도덕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그는 '도덕'적 냉소주의자가 아니었고 '자연법'의 정신을 존중하면서도 '자연법'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않은 회의주의자였다.  흄의 아이디어는 19세기 이성에 따른 도덕보다는  경험주의적 도덕원칙을 중시하는 훗날의 벤담이나 존스튜어트밀의 정치사상의 '단초'端初가 되었다. 이들은 자연법적인 '계율'같은 도덕론보다  감성에 있어서 사람들이 느끼는 만족이나 욕구충족을 중시하는 가치론을 발전시켰는데 이것은 흄의 회의주의적 사상에서 초래된 바 크다. 벤담이나 밀의 사상은 '공리주의功利主義'라고 지칭되는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모토로 개인의 쾌락과 사회의 이익을 동일시하는 내용이었다. 공리주의사상은 계통상  합리성을 따르는 계몽주의 또는 민주주의가 '변형'된 형태로서 "최대다수의최대행복"이라는 원칙을 지향한  19세기에 발전한 영국적 이념이었다.요컨대 공리주의는 '개인적 권리의 보장'이라는 자연법의 '정신'을 간직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쾌락 중시라는) 경험주의를 지향한 '개량주의'改良主義이라고할 수 있다. 공리주의자들이 당장 민주주의의 토대로서는 자리잡지못했기에 그 의의는 중요하지 않지만, 당시 산업화의 폐해를 수정하는데 기여한 바 크기에 민주주의의 한 흐름으로 인정받는 정도이다. 그러므로 서문에서 세이빈이 흄을 선호한다고 말한다면 돌려말하자면 자연법,계몽주의,민주주의,공리주의의 전통이 뒤섞여 등장한 (영국적) 서구민주주의를  폭넓게 선호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흄은 여러 정치사상중에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산업화의 발전과 그 '모순'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시키는데 성공한 서구적 민주주의 편에 서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구민주주의에 편향적인 세이빈이 『정치사상사』에서 다룬 사상가들의 이론을 하나하나 인용해보며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해본다. 홉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홉스에게 있어서 자연법들은 실로 이상적으로 합리적인 한 인간이, 자신이 행동하는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일시적 충동이나 편견에 동요되지 않은 경우에는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될 일련의 법칙을 의미했다. 홉스는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추정했기때문에, 자연법들은 인간의 기본적 특성이 안정적 정부의 수립을 받아들이게 되는 가정적 조건들을 나타낸다고 했다. 자연법들은 제 가치를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ㆍ도덕적 체계에 가치를 부여할수있는 어떤 요소를 인과적으로 합리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이다/야만과 고립으로부터 문명적이고 사회적인 상태로 전환하게 되는 것은 이성의 이와 같은 규제적 권력에 의해서이다. 이 전환은 '사회나 인간의 평화의 조건들인' 자연법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법칙들은 완전히 이성적인 인간이, 자신의 안전과 연관된 모든 측면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공평하게 검토했을 때 취하게 될 행동을 나타낸다. '자연법이란 이성에 의해서 발견된 계율이나 보편적 법칙으로서, 인간은 이 자연법에 의해 자신의 생명에 대해 파괴적인 행위 또는 생명의 보존수단을 빼앗아가는 행위를 금지당하며, 또 인간은 이 자연법에 비추어 생명을 가장 잘 보존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행위를 게을리하지 못하게 된다.' " 홉스는 자연법을 자기보존을 위한 이성의 계율로 이념화시켰다. 고래로부터의 '자연법' 즉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의 자연적 이성에 따르는 보편적이며 공통적인 도덕,규범을 근대의 '자연법'인 개개인의 (자기보존을 위한) 합리적인 이성의 명령으로 탈바꿈시킨 것이었다. 

"사회구성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상호신뢰와 계약의 준수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없다면 사회구성을 보장할 아무런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당신과 동일한 근거 위에서 당신을 대할 것이라는 합리적 가정이다./사회가 상호신뢰에 의존한다면, 다음 단계는 이것이 어떻게 합리적으로 가능한가를 명확히 제시하는 문제로 되며, 이 문제는 홉스로 하여금 그의 주권론을 낳게 한다/홉스는 계약을 모든 사람들이 자립을 포기하고 하나의 주권에게 자신을 종속시키는 개인간의 계약으로 묘사했다. '당신도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동일한 방법으로 그의(주권자의) 모든 행동들에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나는 나 자신을 지배할 나의 권리를 포기하고 그 사람 또는 그 회의체(즉, 주권자)에 권위를 부여 한다'/실체적으로 볼 때 사회는 오직 주권자를 의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주권자가 존재하지 않는 한 어떤 사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왜냐하면 사회는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목소리, 자신이 강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의사, 즉 사회를 사회답게 만드는 주권자의 목소리와 의사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적절하게도 홉스는 자신의 주권자를 '현세의 신'이라고 불렀으며 그 주권자의 양손에 칼과 십자가를 함께 쥐어주었다." 홉스는 합리적인 개개인들이 '자연법'의 명령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계약'의 논의를 발전시켰다. 그에게 있어 '사회계약론'은 주권자라 불리우는 '사회'에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복종하는 논의였으며, 그럼으로써 주권자의 보호속에 개인이 자기보존을 성취하게 된다는 논리였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이렇게 절대주권론으로 변모되는데, 후일 민주주의 지향적인 사회계약론자인 로크와 루소의 비판을 받게 될 운명이었다.

"홉스는 철저한 공리주의자임과 동시에 철저한 개인주의자였다. 국가권력과 법의 권위는 개개 인간의 안전보장에 기여할 때만 정당화되며,이러한 것들이 상대방보다 자기에게 더 많은 개인적 이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예상이 없이는 권위에 대한 복종과 존경의 합리적 기반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여 사회적 행복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것은 개별적인 이기심의 총합으로 대체된다./경제적 내지 종교적 생활과 관계된 그렇게도 많은 전통적 조직과 제도들의 붕괴를 보여주었던 당시의 시대상황, 또 무엇보다도 법률의 제정을 그 대표적 활동으로 삼게 된 강력한 국가들의 출현을 보여주었던 당시의 시대상황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당연한 이론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추세들==법적 권력이 증대되고 이기주의를 일상생활의 지배적인 동기로 인식하는==은 근대에 들어 가장 보편화한 현상들이 되어왔다." 홉스의 논의는 양면성을 보인다. 즉 그 외양에 있어서 개개인의 권리보장보다는 법률에 의한 강력한 제재를 이념화한 '절대왕정'이나 '전제정치'의 방식을 채택했다는 데서 영국왕정의 전통성을 고수하지만, 내면적으로는중세 신분이나 종교의 속박에 묶여있는  봉건정신을 버리고 개인과 개인단위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발전시키는 근대정신의 싹을 보여줬다는 데서 전통을 파괴한다. 이것은 100년후에 폭발하게될  프랑스혁명이후의 시대정신과도 상통하는데, 혁명이후 시대상은 무엇보다도 생명/자유/재산이라는 인간의 불가침의 권리를 신성시한다.  프랑스혁명이후 정치적으로는 봉건적 속박에 놓여있는 신분제 계급에 의한 왕정이나 귀족정보다는  권리가 평등한 개인들의 활발한 참여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혁명이후 또한 경제적으로는 교역이 제한되어있는 농업경제에서  교역이 자유화되는 대량생산ㆍ대량소비의 물질적 자본주의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자유방임'(laissez-faire)정신 즉 신분과 종교에 얽매인 폐쇄성을 버리고, 권리를 중요시하고 합리성을 좇은 개인들의 활발함의 원천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인데, 홉스는 전통을 버리고 개인의 합리성의 표현인 '이기심'를 표면화하면서 그 정신을 보여준다는 데서 당시에는 혁신적이기조차 했다. 물론 프랑스혁명과 그 이후 부르조아지들의 '지배'를 합리화하는데서만 그렇겠고, 19세기와 20세기 들어 산업화의 폐해와 자본주의의 모순속에서 등장한 헤겔주의자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개인주의의 합리성은 절멸되어야할 원리였었다.  

  

 

로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로크가 재산말고는 전혀 자연권이 없다고 말한 적은 한번도 없고, 또 그가 그와 같은 신념을 가지지도 않았다는 점만은 거의 분명하다. 그가 자연권을 열거할 때 가장 빈번하게 사용한 어휘는 생명,자유,재산이었다/어쨌든 로크는 모든 자연권을 재산권과 동일한 선상에서 인식했다. 말하자면 그는 모든 자연권을 개개인과 함께 태어난 개인 인격의 부속물로, 따라서 사회와 정부에 대해 요구하는 불가침의 권리 주장으로 인식했다.”로크는 홉스나 다른 계몽주의철학자들의 논리를 종합하여 '자연권'을 천부의(즉 태어날때부터의)불가침한 권리를 이념화시켰다.특히 '자연권'은 생명ㆍ자유ㆍ재산이라는 용어로 인간의 소유적인 '재산권'관념과 연관지우게 된다.

“평화와 상호부조의 조건으로서 자연상태를 설명하고, 나아가 재산권에서 유추하여 자연권을 사회에 선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다음, 로크는 시민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동의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부가 행사하는 입법권과 집행권은 개개인이 자연권을 ‘공동체의 수중에 혹은 공공에 양도’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러한 양도는 자연권을 보장하는 데 있어 개개인의 자조自助보다 그 같은 방법이 더욱 나은 방법이기 때문에 비로소 정당화된다. 이것이 ‘사람들을 하나의 사회로 통합시키는 최초의 계약’이다/ 저술가들은 두 개의 계약, 즉 공동체를 생성시킨 개인간의 계약과 공동체와 정부간의 또 하나의 계약을 가정했다. 로크도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같은 두 개의 계약론을 암묵리에 가정하고 있었다/정부의 형태는 그 다수 혹은 공동체가 그 권력을 어떻게 배열하는가에 좌우된다. 그 권력은 그대로 공동체에 보유될 수도 있고 이런저런 형태의 입법기구에 위임될 수도 있다. 로크는 영국혁명의 경험에 비추어 행정부가 입법에 참여할 가능성을 인정하긴 했으나, 입법적 권력이 정부내에서 주권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또 입법권은 동의없이는 재산을 빼앗을 수 없으며, 입법권은 또한 그 권한을 맡긴 공동체의 수중에서 벗어나면 안되기 때문에 그 입법권을 다른 곳에 위임할 수도 없다/입법권은 일반적으로 볼 때 위탁적이다/사회와 구별되는 정부는 입법권의 소재의 변경에 의해서나 인민들이 부여한 수탁의 파기에 의해서 해체된다.” 로크도 자연상태에서 '시민사회'로 이행하는 사회계약론의 이론을 전개하지만, 홉스와는 달리 자연상태를 분쟁이 없는 상태로 묘사하며 사람들간의 공통의 재판자를 찾으려는 노력과 함께 사회를 구성한다고 하였으며, 정부를 구성할 때 입법부와 집행부(즉 행정부)를 구별하였다. 그는 홉스와는 달리 절대주의를 배제하고 구성원들의 동의에 따라 형성되는 민주주의 정부를 구상하였으며, '저항권'까지 언급하며 이후 역사에서 구체화되는 시민혁명==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대혁명 등==을 정당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로크의 정치철학에 관한 두 개의 관점의 혼재에 관하여) 기능적 관점은 개개인과 제도들은 모두 모든 사람의 선을 위해서 정부에 의해 규제받으며, 또 그것들은 집단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법의 골격내에서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활동을 행한다고 간주한다. 다른 하나의 관점은, 개개인의 자기만족이란 측면에서 설명한다. 이 관점은, 동등하게 이기적인 동료들에 맞서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법률과 정부를 추구하고 평화의 유지와 합치되는 개인적 선의 최대치를 추구하는 이기적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로 사회가 구성되어 있다고 간주한다. 그가 저술할 당시의 상황은 그로 하여금 두가지 관점을 다같이 채택하도록 만들었는데/ 정부와 사회는 다같이 개개인의 권리를 보존시키기 위해 존재하며, 또 그러한 권리의 불가침성은 정부와 사회의 권위에 대한 하나의 제약이다. 그러므로 로크의 이론의 한 부분에서는 개인과 그 개인의 권리가 궁극적인 원리들로 나타나며 다른 부분에서는 사회 자체가 이러한 구실을 담당한다. 이 두가지가 어떻게 모두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가를 적절하게 설명한 곳은 아무 데도 없다.“위와 같이 세이빈은 로크의 이중적인 논리를 언급하면서 사회계약론에 있어서 16세기 종교철학자 리처드 후커의 『교회정치법』에서 유래하는 전통ㆍ관습에 의존하는 공동체적 관념과 동시대인인 홉스의 이익관점에 입각한 '사회계약'관념이 결합되어 있음을 지적한다.전자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래하는 자족적 공동체로서 영국사회를 묘사하며 '공동선'에 입각한 정치체의 구성을 이야기하고 후자는 당시 중세로부터 탈피한 '자유방임'정신에 따라 개개인의 권리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근대사회의 구성을 이야기한다는데서 서로 상반되지만, 세이빈에 따르면 로크가 모순적 논리의 결합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모순적이며 양면적인 로크는 자연법에서도 도덕과 이성의 명령과 자기보존을 위한 권리의 개념을 기묘하게(?) 결합시켰고,  "사유재산권"에 대한 논의를 고려한다면 (그토록 비판해마지않던) "홉스의 이론만큼이나 이기적"이다. 결국 로크는 프랑스혁명을 성공시키고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제도화하면서 성장한 '부르조아지'들이 신성시한 천부적이고 불가침한 (재산에 대한)'권리'를  정당화한 선구적 사상가로서 자리잡는 것이었고, 개인의 권리의 보존이 정부나 사회에 우선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완성자처럼 되는 것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접어들어 개인의 권리는 점차 확산되었고 산업화의 발전에 따라 산업자본주의가 고도로 뿌리내리게 되었는데,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속에  명목상의 정치권리말고  사회 즉 자본주의사회의 경제적인 불평등에 주목하면서 부르조아지의 권리에 반발하고 노동자들의 사회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사상가들이 등장하였었다. 자유방임주의에 반대한 그들이 극복하여야 할 논리의 '대부'代父격이 되고만 사상가가 로크였다는 점은 긍정적인 측면=='민주주의'의 권리를 보장==과 부정적인 측면=='자본주의'의 모순을 야기==의 '야누스'같지 않을까 한다.  


 루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공동체내에서 최초로 시민적 자유를 획득하는데, 그 자유는 일종의 도덕적 권리이지 고립된 동물에게 말로만 귀속시킬 수 있는'자연적 자유'는 아니다/루소는 사회적 행복 그 자체가 개개인의 선택과 행동의 자유를 일부 제약하게 한다는 점을 당연한 것으로 믿었기에/'이것은 그가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사회 또는 사회계약에) 강제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불과하다' 루소나 루소를 본받은 헤겔에게서 볼 수 있는 이와 같은 논리는 모호한 말로 요술을 부리는 위험한 실험이었다.어떤 자유들은 선한 것이 아니며, 어떤 상황에서는 자유보다 더 높이 평가되는 다른 정치적 가치들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전적으로 정당한 것이 되어버렸다.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실제로는 자유를 증가시키는 것이며 강제는 실제에 있어서 강제가 아니라는것을 보여주려는 왜곡된 언어.어떤 인간을 자유롭도록 강제한다는 말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대중이나 혹은 가장 강력한 당파에게 맹목적으로복종케 한다는 의미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세이빈에 따르면 루소는 표면적으로 자연권을 인정한다지만 자연권을 인정할 때도 있고 인정하지 않을때도있다면서 그의 모호함을 비판하고 있다. 루소의 논리는 공동체 즉 사회의 선善에 의해 자유는 제한될 수 있는 것이며, 자유를 개인의 욕망이나 권리로 보기보다는 공동체 속에 드러나는(공동체를 이룸으로써 획득될 수 있는) 도덕적 원천으로 평가한다. 그런 면에서 홉스나 로크와 같은 합리주의적 관점의 자연법 논의와는 사뭇다른 뉘앙스를 느끼게 한다. 결론적으로 루소의 체계는 불가침한 권리를 언급하고 형식적으로 인정하지만,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주의나 합리성의 의의를 '폄하'하고 공동체에 비중을 부여하면서, 그러한 권리 표현인(즉 홉스나 로크가 규정한 '자기보존'의 원리인)  자연법체계를 파괴하는 쪽이라는 것이다.


"루소의 전반적인 논리는, 시민으로 구성된 공동체가 유일무이하며 그 구성원과 동시대적존재라는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 즉 시민들은 그 공동체를 만들지도,그에반대할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공동체는 집합체'aggrega-
tion가 아니라 일종의 '조합체'association이며, 하나의 도덕적 집단적 인격체이다.
루소가 택했던 계약이라는 단어는 어떤 것이든 왜곡된 것이었다./ '사회질서는 모든 권리의 기초가 되는 신성한 권리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전체적인 공동의 힘으로 가지고 개개 참여자의 인격과 재산을 옹호하고 보호하며 또 개개 참여자가 자신을 모두와 결합시키면서도 여전히 자율적이 될 수 있고 또 종전과 같이 자유로울 수 있는 어떤 조합체의 형태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들 각자는 일반의사의 주권적 지도 아래 각자의 인격과 각자의 모든 권력을 공동으로 두며, 우리들의 법인체적 능력 속에서 우리는 각 구성원을 전체의 불가분한 일부로맞아들인다.'/'만약 국가가 그 구성원들의 결합에 그 생명이 달려있는 하나의 도덕적 인격체이고 또 국가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국가 자체의 보존에 대한 관심이라면, 국가는, 전체에 가장 크게 이익이 되도록 각 부분을 가동시키고 배치시키기 위해서 하나의 보편적이고 강제적인 힘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의미에서 공동체는 그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그 자신의 숙명을 완수하며 그 자신의 운명을 감수한다. 루소가 정치경제에 관한 논문에서 상당히 발전시켰던 유기체적 생물체에의 유추와 일치하여, 공동체는 그자체의사 즉 일반의사volonte generale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개개인은 사회계약에 의해서, 공동체가 통솔하는데 긴요한 부분만큼만 개인의 권력과 재화 및 자유를 양도한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또한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유일한 판단자는 주권자라는 점도 인정되지 않으면 안된다.'/루소는 일반의사의 이론에 있어서 정부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크게 약화시켰다. 주권은 법인체로서의 인민에게만 귀속되며, 정부는 인민의 의사가 명하는 바에 따라 철회될 수도 수정될 수도 있는 위임된 권한만을 가진 일종의 대리자에 불과하다. 루소는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어떤 형태의 대의정부도부정하려고 마음먹었다.그러므로 유일하게 자유로운 정부는 시민들이 참석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뿐이다./루소는 집단에 대한 낭만적 예찬을 창시했는데, 이것이 그의 사회철학과, 그가 반발한 개인주의간의 근본적 차이가 되었다. 합리주의자들은 개인적 교양, 지적인 계몽, 판단과 사업의 독립성 등에 가치체계를 집중시켰다. 그에 반해 루소의 철학은 집단의 세력강화, 참여에 따른 만족감, 그리고 비합리성의 배양 등을 강조했다./데카르트 시대 이래 관습과 이성을 상호 대조시키는데 공통적 합의가 이루어졌었다. 이성의 적절한 활동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의 광명에 따르도록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서권위와 전통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으로 여겨져 왔었다. 루소의 감상주의는 은연중에 이러한 관념을 배제시켰다.(루소와 마찬가지로)헤겔의 관념론은 이성과 전통을 하나의 단일한 단위, 즉 민족정신이나 민족의식이라는 팽창적 문화로 엮으려애썼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성은 안정성, 민족적 통일성 및 발전의 지속성 등과 같은 제 가치에 대한 상당한 강조와 함께 관습,전통 및 권위의 봉사자로 전락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
루소의 사회계약은 개인의 불가침한 권리를 필요한 만큼 '양도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구성원이 전체사회의 일부로서 맞아들이는 방식이다. 공동체는 단순한 집합체aggregation가 아니며 다시말해 개인과 개인이 결성한 자연권의 보장을 위한 집합체가 아니며, (루소가 묘사한 바와 같이) 개인과 개인이 협동으로 형성하는(그들은 전체속에서 '도덕'을 획득'하는) 하나의 ' 도덕적 인격체'관념으로 '변화된다'==개인과 개인은 '집합체'와는 달리, 전체의 부분으로서 기능하며 하나의 운명을 가진 살아있는 생명과 같은 '법인체'에 구속된다는 것!  공동체에서 주권은 법인체로서의 인민에게 귀속되며 정부는 위임된 대리자라고 한다. (주권을 행사하는) 주권자가 작동하는 권력으로서 '일반의사'는 구성원인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때에 따라) 제한할 수도 있다는 점도 추가한다. 홉스나 로크의 사회계약론에서는 공동체를 개인의 권리가 양도 또는 수탁되어진 하나의 집합체로 보았기에 그들이 형상화하는 정부의 형태도 절대주의 또는 대의민주주의인데 반해,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나타나는 법인체 또는 인격체같은 '전체'가 형상화하는 정부는 직접민주주의라는  점이 다르다. 루소의 논의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자유주의 또는 (대의)민주주의를 부정否定하게 될 수 있는데 개인의 권리보다는 공동체에의 참여를 강조했고 구성원들이 위임하는 정부를 무력화시키고 인민들이 직접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유기체'속에 구성원으로서 개인이 담당하는 정치에서 개인의 생명ㆍ자유ㆍ 재산과 같은 자연권은 어찌보면 전체라는 이익이라는 상위의 가치에 희생될 수 있다는 점은 개인주의와 합리성을 원칙으로 하는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상의 '원천'으로서 보일 수도 있다. 계몽주의사조는 "이성의 활동이 권위와 전통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지만,루소의 철학은 감성을 중요시하면서 권위와 전통이 살게 하는 집단(공동체)주의전통으로 회귀시킨다는  세이빈의 언급은 루소철학이 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적 흐름에 놓여진 것 같다는 우려이다. 이러한 집단에 대한 강조는  (세이빈이 언급했듯이) 결국 계몽주의와 반대되는 헤겔의 '민족정신'이나 '민족의식'으로 표상되는 반자유주의의 '단초'로 작용하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따라서 동시대의철학자 즉 계몽주의자와도 "크나큰 간극間隙이 자리잡고" 있다는 루소의 위상에 대한 평가로 세이빈의 언술은 마무리되는데, 자유주의ㆍ합리주의 측면에서 사상을 서술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 있을 것이다. 

 

헤겔과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서문에서 이미 격렬한 논박을 다음과 같이 예고하고 있다. "저자가 보는 한 어떠한 논리적 조작에 의해서도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진리를 조작할 수 없으며, (자연법체계내의) 논리나 사실이 가치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는 헤겔의 관념론이든 그것의 마르크스적인 변형이든 이 세 가지 작용을 융합하려는 시도는 단지 자연법 체계에 내재하는 지적인 혼란을 영속화시키는데 불과하다고 확신한다. 합리적으로 자명한 신념에 대한 진화 또는 역사적인 진보의 확고한 순서가 존재한다는 신념의 대치는 증명할 수 없는 이념을 더욱 증명할 수 없는 것으로 바꾸어놓을 뿐이다. 역사적인 '필연성'과 같은 것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가능성의 추정에 속하는 것이며, 실제에 적용함에 있어 이러한 추정은 항상 불가능하며 또 언제나 매우 불확실한 것이다." 세이빈은 자연법과 계몽주의가 발전시킨 서구민주주의문명 즉 정확히는 자본주의에 기반한 민주정치가 흘러가는데 있어서, 역사적인 필연성을 내세우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전체주의공산주의가 등장하는 것을 매우 경계하면서 논의를 상세하게 전개시킨다. 19세기와 20세기 상황에서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와 궤를 같이 한 서구민주주의의 흐름에서 그 속성인 합리성개인주의에 반발하여 등장한 헤겔과 마르크스는 세이빈이 넘어야할 '산'인 듯이.

 

   

세이빈이 그렇게 비판대상으로 삼았던 헤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겔은 봉건주의의 소멸과 민족국가의 등장은 왕정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과정 자체가 '자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생각하였다./이미 그는 국가를, 민족의 의지와 운명의 정신적인 구현체라고 인식하였으며, '이성이라는 이념이 그 자신을 실체화시켜야 하는 자유의 현실적인영역'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이 국가란, 시민사회의 경제적인 제도나 그리고 시민의 행위를 통제하는 개인적인 도덕성에 의한 지배와는 다른 것이며 또 그러한 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국가정신의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것은 문명이 진보하게 되는 원인에 대해서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고, 세계정신이 점진적으로 현실화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또 그것은 시민들의 개인적인 관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존엄성과 가치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미 그는 개인의 '자유’를, 개인이 개인적인 자기실현이기도 한 국가의 자기실현 작업에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것과 동일시하였다. 또한 그는 이미 민족적인 군주정치를, 자유와 권위가 이상적으로 완벽하게 합을 이루는 근대정치의 독특한 성취업적이며, 입헌정치의 지고한 형태라고 묘사하였다. 이러한 정치체제 속에서, 봉건적인 특수주의라는 낡은 형태는 근대적인 국가생활의 기능 속으로 승화되어야만 한다고 헤겔은 굳게 믿었다. 그때까지는 헤겔도프랑스혁명의 결과에 동의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러나 혁명이론에서 보여지는 개인주의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반대하였다. 헤겔 이후의많은 독일 사람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도 그러한 개인주의는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이기주의 및 변덕에 대한 그럴 듯한 칭송이며 사회적차원에서는 금권정치에 대한 그럴듯한 찬미라고 간주하였다."
"개인과 그의 의식적인 목적은 실제로 전체적인 결과에서는 거의 포함되지 않는다. 개인이란 대부분의 경우 그를 만들어낸 문화의우연적인 변형에 불과한 것이고 개인들이 서로 다른 한, 인간의 개인성이란 귀중한 것이기보다는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게다가 개인이 크게 취급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개인이란 수단의 범주 안에 드는것'이기 때문이다./그는 문명의 역사란 그 시대의 세계정신이 발전적으로 현실화되고 구체화되어 표현된 것이라고 하였다./위대한 사람은 역사의 이면에 놓여 있는 비인격적인 사회적 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역사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분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합리성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란 개인의 기본재산이라기보다는 공동체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법적·윤리적 제도를 통해서 개인에게 부과되는 하나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 결과 자유란 억지나 개인적인 취향의 추종과는 동일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자유란 개인적인 취향의 조정과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개인의 능력에 있는 것이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사회에서의 그의 위치에 의해서 부과된 의무와 일치하는 것이다.”  
글쓴이가 바라봤을 때 루소를 계승한 헤겔은 19세기의 독일 정치상황을 반영한 정치이론을 창조해냈다.  당시 독일은 프랑스혁명의 명암明暗을 반성하고 자유를 단순히 개인의 권리 실현으로 보지 않았고 정신적인 '관념'으로 이상화하였는데,당시 혁명의 과격함에서 자유가 부르조아의 이익을 표현하고 시민의 획일적 평등을 보장한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국가관 자체도 영국이나 프랑스와 다르게 개인들의 집합체로 간주하지 않았는데, 종교와 정치상황으로 인해 소국가들로 분열과  분열을 거듭하고 있어 '국가'를 이룰 수 없는 현실 탓이었다. 결국 19세기 독일철학자들의 관점은 국가를 인간이 자유롭게 구성하는 것이 아니며  국가자체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는 역사의 과정속에서 존재를 드러낸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는데, 이것은 19세기에 점증하는 독일민족국가에의 열망을 담은 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독일관념론을 집대성하여 자유주의와는  다른 정치사상을구상하였다. 이에 따라 전술한 바와 같이 헤겔에 있어서 '자유'는 개인의 권리가 아니며 공동체속에서 조정하며 수행하는 의무와도 같은 내용으로서, 국가와 같은 '사회'에 개인의 헌신을 통해 한단계 높은 가치로 '승화'하는 '관념'이 되었다. 이와 같은 '자유' 개념은 개인의 권리나 이익에 소홀히함으로써 인간을 전체(사회)의 목적에 도구나 수단으로 사용하는 '권위주의'와 같은 뉘앙스로 느낄 수도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나 민주주의자는 이것을 간과할 수 없게 되고 이것를  반드시 비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종국적으로 헤겔에 있어 자연법이나 자연권개념은 절대 수용될 수 없었는 듯 보인다.


“사회도 국가도 단순히 개인적인 동의에 기반하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와 국가 모두는, 인격적인 자기 실현을 이룩할 수 있는 욕구와  만족의 전체적인 구조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높은 욕구란 참여에 대한 욕구이고, 개인적인 희망이나 만족보다 훨씬 큰 원인이나 목적의 한 부분이 되고자 하는 욕구이다.” “개인의 정치적·시민적 권리는 절대적이고 불변의 것이라는 독단은 자체의 집단적인 목적에 보다 높은 가치를 계속 설정하는 국가주의와는 일치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또 개인적인 가치와 사회적인 가치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더 잘 알게 되는 윤리학과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회란 수많은 개인들의 탐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동기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생긴 기계적인 법률에 의해서만 지배된다. 그러나 국가는 국가가 구현하는 도덕적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시민사회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것이다. 국가는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시민사회를 이용하며, 아마도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시민사회를 창조한다. 시민사회가 맹목적인 경향과 인과적인 필연성의 영역인데 반해서,국가는 ‘단순히 함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 앞에 명백히 표현된 의식적인 목적과 이미 알려진 규칙과 법률에 좇아 행동하는 것’이다. 국가란 절대적으로 이성적이며, 스스로 인식하고 의도하는 신성이며, 영원하고 필연적인 정신적 존재이며, 세계 속에서의 신神의 행진이라고 보는 것 등이다/그가(헤겔이) 인식하였듯이 국가의 권력이란 절대적이기는 하였지만 임의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것의 절대성은 국가의 도덕적인 위치가 우월함을 반영하는 것이었으며. 그럼에도불구하고 국가는 항상 법률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그의 규제력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었다. 국가는 이성이 구현된 실체이며 법률도 '이성적'이라는 것이다."헤겔은 개인의 동의로 이루어지는 사회계약이론을 반대하며, '개인의 정치적ㆍ시민적 권리'를 사실상 부인하면서 그의 논의로 변증법辯證法과 관념론觀念論을 전개시킨다. 그에게 있어 '국가'는 실제가 아닌 '국가정신' 또는 '세계정신'으로 이상화된 '관념'인데, 주저 『법철학강요』에서 '인륜'人倫의 최고단계로도 높여지고 이 과정은 철저히 '변증법'적인특색을 띤다.헤겔에 따르면 '인륜'의 단계는 자연적인 공동체인 '가족'(正)으로부터 그것의 모순矛盾이자 부정否定으로서 원자화된 개인들로서 집합체인 '시민사회'(反)가형성되며, 이 '시민사회'는 이익체계로서'특수'와 '보편'을 동시에 가진다. '시민사회'는 부정되어지고  고양되며 ' 보편성'를 가진  '국가'합合되어지는데, 이때 궁극적으로 '인륜'의 최고단계에 도달된다는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삼단논법으로서 처음에 '정'正이 형성되면 그 부정이 '반'反이 서게되고 그것의 부정인 즉 '부정의 부정'인 '합'合으로 해소되고 고양되며 보존된다는 운동원리이다. 헤겔에 있어서 이 논리로 '국가'에 도달하게 되면'정신'精神은 완전한 '자기실현'('보편적 자유')을 얻는것이며, 동시에  개인은 국가의 일원으로서 참된 존재 의미를 가지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고,여기에서 실행되는 합리적인 법에 의하여 '이성적'이게 된다. 결론적으로  헤겔의 '국가'는 '절대이성'絶對理性이며, '신성'神聖이게 되고, '신神의 행진'으로도 표현된다. 이 '관념'은  더이상 철학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철학으로 확장되어 그 '정신'이 실제 역사속에 존재를 드러내면서 '실재'實在하게 되는 즉 역사적 '필연'으로 나타나고(사회발전이론) 그것은 구체적으로 '민족적인 군주정치' 즉 '입헌왕정'으로서 당시 '프로이센제국'을 암시하고 있다==이 점은 당시 프리드리히3세라는 프로이센왕정의 '어용철학자'로서 봉사한 바 있는 경력과 연관지어진다!

어쨌든 개인의 욕망이나 권리는 인정되지 않으며 사회의 참여가 높은 욕망으로 간주되고, 개인보다는 사회가우선시되고, 궁극적으로 개인주의보다는국가가목적이 되는 헤겔의 정치사상은 자유주의나 민주주의같은 계몽주의전통을 분명히 거슬렀기에(서구주류철학자들에게는) '정치적 권위주의'의 형태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고 비판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이건 철학적 의의가 아닌 정치적 평가라는 면에서 그리고 글쓴이는(주류든 비주류든 어느 입장이 아니기에) 꼭 비판하는 입장이 아님을 밝혀둔다. 선구자격인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루소가 표현했던 사회(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조합체, 법인체, 인격체였지만, 헤겔은  개인들이 구성하는 사회(공동체)가 보다 구체적으로  '민족정신'이었다는 점은 헤겔의 정치사상이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의 맹아로서 구실하게될 가능성을 높여준다==이점에서 훗날 나치즘이나 파시즘같은 사상체계가 헤겔을 인용한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세이빈에 따르면 헤겔의 논의가  "국가제도의 연속성을 재정립하고" "국가적인 결속감의 원천을 결집시키며""국가에 대한 개인의 종속성을 확고히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가의  재건을 목표로 한다고 언급하는데, 구체적으로는 프로이센중심의 '통일'을 추구하였던 당시 사실史實과 같은 맥락이며, 한편으로는 '국가주의'로서 사상의 의의를 거론하는 듯 하다. 18세기의 프랑스혁명에서 유래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체계가 19세기에 와서는 오히려 보수주의,귀족주의의 입헌군주체제 그리고 민족주의의 체계로 역행하고 만 것!!!  이러한 정당화체계로서 '철학'을 당시 프리드리히3세를 보좌하고 있던 '궁정철학자'인 헤겔이 만들었다는 점은(이론의순수함은차치하더라도)아무래도 독일민족주의와의 연루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자연권적 자유주의자 또는 민주주의자의 눈에는 (이론적인 측면은 차치하더라도) 헤겔은 현실적으로 개인주의를 거부하고 전체에의 의무를 강조하는 논리를 폈기에 反자유주의입장에 서있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말 수 밖에 없었다.'
또한 19세기에 산업사회의 '모순'을 목격하고 등장한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도 헤겔은 그 방법론을 빌려주었지만==헤겔의 역사철학과 변증법은 마르크스에 이르러 채택되어 그는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과 논리를 결합시키는데, 그것이 사적 유물론ㆍ변증법적 유물론이다==(이론적인 측면은 차치하더라도) 역사적 진보속에서 산업화시대의 임금노동계급의 출현에 주목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전근대적인 봉건주의(귀족주의)를 합리화하는 논리를 펼쳤기에 결국 '봉건주의이념' 또는 '부르조아이데올로기'로 비판받게 된다.

세이빈은 마르크스에 대해서 자세하게("공산주의"부분까지 하면 엄청난 양을 할애) 서술하고 있으며 자연법부분은 마르크스의 비판적 시각을 여과없이 언급한다.
"('프랑스 혁명'에 관하여)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프랑스혁명의 결과인)봉건주의의 붕괴는
중간계급의 권력이 고양된 것과 중간계급의 권력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정치체계의 창조를 의미하였다. 아직은 부분적으로만 달성된 것에 불과하지만 그 가장 발전된형태로서 이 체계는 민주주의공화국이어야했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은 본질적으로 정치혁명이었다. 프랑스혁명은 사회적 지배를 귀족과 승려에서 산업과 상업의 중간계급으로 바꾸어 놓았다. 따라서 그것은 중간계급의 억압과 착취를 위한 전형적인 기관으로서의 국가를 창조했으며, 그 철학==정치와 경제에 있어서의 자연권의 체계인==은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한 중간계급의 권리를 이상적으로 정당화시키고 합리화시킨 것이었다. 명백히 정치혁명의 다음 단계는 심원한 사회혁명이었다. 이것은 대두하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계급의 사명이어야 하며,노동자계급은 중간계급이 구봉건계급을 대치한 것처럼 중간계급을 권력으로부터 추방해야 하는 것이었다.새로이 등장하는 계급도 그 계급의 철학을 가져야만 하는데, 중간계급의 철학이 실질적으로 소유에 대한 자연권을 주장한 것이었듯이 프롤레타리아의 철학은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인간적인 권리에 대한 사회주의적 주장이어야 했다.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그가 착취할 수 있는 어떠한 계급도 그 밑에존재하지 않는 사회구조의 맨 밑바닥에 있는 까닭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단순히 착취할 수 있는 권력의 전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착취를 말살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회계급의 차별이 없는 사회와 충분한 인간 실현의 기록으로서의 참된 역사의 시작을 향한 첫걸음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의 철학이 설정한 위대한 임무였다." " 그러나 노예상태의 근원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계급으로 하여금 생산수단을 독점할 수 있게 하는 생산체계이며,사적인 소유를 수반하는 노동의 분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혁명을 넘어서면, 생산을 사회함으로써 인간을 시민으로서 모두 통합시키며 단호하게 착취와 사회적불평등의 근원을 제거시키게 될 사회혁명이 존재한다. 중간계급이 정치적인 혁명을 일으킨 적극적인 세력이었듯이, 중간계급 지배의산물이며 그 아래에는 어떠한 피착취계급도 존재하지 않는 마지막 계급인 프롤레타리아는 그 자신을 해방시킴으로써 사회를 해방시키고 또 사회적인불평등을 제거함으로써 계급 없는 사회를 창조할 수 있는 세력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적 변증법의 논리에 따라 인류역사를 재구성하는 '유물사관' 또는 '사적유물론'을 전개한다. 즉 인류의 역사는 물질 즉 특히 경제적 생산력의 발달 정도에 따라 '생산력'과 그것에 기반하는 '생산관계'의 총체인'생산양식'으로서 발전하는데, 원시공산제->고대노예제->중세봉건제->근대자본주의제의 순서로 진보되어왔다고 한다. '사적유물론'에서 나아가, 생산양식으로 규정되는 '토대'(『정치사상사2』에서는 '기반'으로 지칭)가 정해지면 그에 상응하는 정치ㆍ법률ㆍ도덕ㆍ철학ㆍ종교ㆍ이데올로기가 드러나는 '상부구조'가 결정된다는 '경제적 결정론'을 주장한다. 세이빈의 식대로 인용하면 "경제적 생산의 진보가 그 사회의 제도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이러한 경제적 결정론의 실제 사례로서 프랑스혁명을 거론하는 것인데, 즉 중세봉건제에서 근대자본주의로 변동하는 역사적 상황을 말이다. 당시 혁명을 통하여 정치적으로는 산업자본가,상업자본가로위치된 '중간계급'(부르조아지)이 귀족,승려로 표상되는 구지배계급을 축출하였고, 경제적으로는 중세봉건경제를 근절하고 자본주의를 공고히하였으며 따라서 사회ㆍ경제적인 지배를 정당화시키고 합리화하는 '자연권'의 체계==천부적이고 불가침한 생명/자유/재산의 권리 포함==를철학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세이빈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경제적 결정론은 사례를 하나 더 드는데 근대자본주의에서 미래에 필연적으로 '도래하게될'(정확히는 '도래하기를 희망하는') 공산주의제로의 변동상황을 관련지어 말하게 되는 대목이다==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은 여기에서 철학을 넘어서서 '역사철학'으로서 인류가 도달하게될 역사적 '필연'을 도출하고 마는데 이는 헤겔의 '관념론'이 역사적 '필연'으로 입헌주의왕정을 든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혁명 이후 중간계급 즉 부르조아지의 성장에 따라 동시에 대량생산ㆍ대량소비의 산업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역사에 등장하게 된 임금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트==부르조아지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동시에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부르조아지에게 '노동력'을팔아야만 생활을 유지할수밖에 없는 계급인==는 부르조아지의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고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철폐하게될 권리의체계인'사회주의'를철학으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래그림으로 정리할수 있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의 논리에서 보면 자유주의ㆍ민주주의의 바탕사상인 자연권 체계는 단지 중간계급의 정당화ㆍ합리화 논리로 '치부'될 수 밖에 없었고, 프롤레타리아가 폐지시켜야할 사상체계로 '격하'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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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 2011.05.1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