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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그리스도 “저 인간은 날 바보로 아는 것 같아요. 내가 회사를 그만두길 바라는 거라고요.” “나는 그런 느낌은 못 받았는데. 여긴 스트레스가 많은 곳이잖니. 저 사람도 그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뿐이야. 바로 너처럼 말이지.” 일하는 내내 낭독하며 읽었던 구절이 떠올라 불편했다. '그래, 여긴 스트레스가 많은 곳이지' 싶었다. 소리 내어 읽다가 울다가 했던 책, '뜻밖의 손님'이신 예수님을 삶의 한 가운데인 자신의 집과 일터에서 만나며 변해가는 주인공을 다룬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일상생활과 회사에서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별로 사교적이질 않아 가능한 사람을 피해 살아온, 사람들을 다양한 인격체로 여기기보다는 성가시다거나 위험하다거나 나보다 못 하다거나 나보다 낫다거나 하는 식의 평가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던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내 얘긴가’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낭독. 길지 않은 이 책이 내게 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와 너무 비슷한 주인공의 처지와 내 모습을 보는 듯 한 일터에서의 모습들,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나는 그리스도인이 맞았나’ 싶었다. 내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의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일터에선 일만 했고, 관심은 커녕 오히려 외면했다. 일터이니 편치 않은 건 당연하다 여겼고, 배려하는 모습보다는 내가 한 일의 경중을, 일의 양을 계속 계산하며 더 많이 하지 않으려 했다. 손해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내 모습은 십자가진 기독교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복음’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시려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처음엔 그런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주인공도 그 마음을 이해하고 삶으로 살아가게 된다. 말로는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면서 삶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향기가 없었던 나는, 주인공처럼 마음을 열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사랑의 노크를 멈추지 않으시는 그분께 문을 열어야 한다. 그 '일에 매우 뛰어나신 그 분’을 신뢰함으로 받아들여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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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한 동안 교회를 자주 빠지던 시기가 있었다. 교회 선생님은 그런 나를 위해 <파인애플 이야기>라는 작은 그림책을 들고 찾아오셨다. 그것은 아름답고 예쁜 그림책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직수입한 듯한 이국적인 흑백 그림으로 채워진, 책 가운데를 스테플러로 꾹 눌러놓은 소박한 책자였다. 대신 선생님은 표지 안쪽에 알록달록 색연필로 예쁘게 꾸미시고 선생님의 마음을 담은 짧은 편지로 나를 격려해주셨다. 아마도 그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 선물로 받았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이야기 책이 다 있구나.” 선교사님과 원주민이 파인애플을 사이에 두고 갈등을 벌이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표지 안쪽을 예쁘게 꾸미고 꼭꼭 눌러쓰신 선생님의 손편지가 무덤덤한 소년에게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쉽게 교회를 빠진 것에 대해 죄송했다. 선생님의 사랑을 담은 작은 그림책을 통하여 심기일전한 나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었고, 지금은 목회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신앙을 격려하고 있으니, 참으로 세상은 살고 볼 일이다. 그림책 <뜻밖의 손님>은 내가 처음으로 받았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쁘고 아름다운 책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관계의 문을 꼭꼭 닫고 살아가는 주인공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조금씩 그녀의 집을, 그녀의 대인관계를, 그리고 회사생활을 바꾸기 시작하신다. 그녀와 함께 살아주시는 예수님 때문에 그녀는 점점 더 그녀다워진다. 외롭고 쓸쓸한 삶이 풍요롭고 충만한 삶으로 바뀐다. 가볍지만 멋진 책이다. 이제 사랑을 담은 손편지를 꾹꾹 눌러 담아 전해지기만 한다면, 제목처럼 정말 누군가에게는 “뜻밖의 손님”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나처럼 당신에게도. l 이 서평은 출판사가 책을 제공하여 독자가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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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방문을 받고 싶은 당신에게 추천한다. -뜻밖의 손님을 읽고- 215.07.12 차현정 '똑똑똑!‘ 문을 두드린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가? 좋다. 반갑다. 귀찮다. 짜증난다. 당신의 현재 상태에 따라, 과거 당신의 경험에 따라 그 판단을 달라질 것이다. 여기, 누군가의 방문을 받은 내 또래로 추정되는 여성이 있다. 이제 직장 생활에 한창인.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느라고 직장생활을 하지만, 자아실현 따위와는 거리가 멀고 친밀한 인간관계와는 다소 단절된 주인공 여성에게 어느 날 손님이 찾아온다.(참고로 필자는 32살이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요한계시록 3장 20절)” 이미 눈치를 채셨듯이 그 손님은 예수님이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함께 생활해 본적은 없는 그분이 바로 주인공의 삶에 문을 두드린 분이다. 풍문으로 들었지만 다소 낯선 이의 방문을 받아 본적이 있는가? 주인공은 이 방문이 다소 껄끄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이중적인 감정이다. 외로움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면 내 삶에 찾아든 어떤 손님에 대해서 무의식적인 반가움과 동시에 경계심이 인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 것이다. 주인공을 방문한 예수님은 다정하고 따뜻하게 주인공과 동행한다. 그리고 다소 주인공을 귀찮게 하기도 한다. 친밀한 관계란 것은 다소의 불편함이 따르는 법이고, 그 불편함과 귀찮음이 싫어서 현대인들은 깊고 깊은 자기만의 은밀한 세계 안에 숨어서 고독하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 분은 주인공의 삶에 관여하신다. 동행한다. 그리고 마침내 함께 산다. 주인공은 두렵다. 그분이 자신이 사실은 별로 착하지 않은 아이임을 드러낼까봐. 수녀처럼 자신의 삶을 그분께 통째로 내어주길 요구하거나 저 멀리 아프리카 선교지로 가라고 요구할까봐. 그러나 그분은 주인공과 나의 예상과는 다소 다른 분이셨다. 그분은 내 삶과 기억 그리고 내 직장 생활과 이웃에 관심이 있었다. 주인공의 삶을 방문한 예수님은 주인공의 삶의현장에 처음에는 손님으로 찾아왔고 나중에는 주인공의 삶의 중심이 되어서 그 삶을 바꾸어내신다. 먼지 묻은 기억과 상처난 마음의 조각들, 다소 부족한 직장 동료와 가족과 옛 애인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관심을 받지 않은 영역은 단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사실은 조금은 잔소리쟁이 영감님처럼 디테일한 분이셨다. 그분은 결코 주인공에게 선교지로 가기를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 삶이 선교적 삶이 되게 하신다. 먹고사니즘을 비전으로 바꾸기까지 내 실체를 이해하면서도 꿈을 꾸게 하는 분이셨다. I.V.P가 예쁜 일러스트레이트와 함께 펴낸 동화책에서 데이비드 짐머만은 내 삶에 문을 두드린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와 동행하며 마침내 주인이 되어 주시며 우리와 먹고 마시며 함께 사는지에 대해서 현대적인 시각으로 잘 설명해 낸다. 먹고사니즘에 갖혀서 복음이 어느덧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 내 또래의 당신! 이런 예수님의 방문을 받아 보고 싶은 당신에게 추천한다. 데이비드 짐머만이 지은 <뜻밖의 손님>을. 당신의 묵은 마음에도 성경에 약속한 예수님이 찾아올 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의 삶을 통째로 바꿀 것이다. 이제 당신을 이 책을 읽고,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예수님의 방문을 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펼쳐라! 이런 깊고 친밀한 방문.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문 밖에서 두드린다고. 우리가 문을 열면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먹고 마시며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의 말씀으로 적혀있다. 그런 그분과 동행해 본 경험, 당신은 있는가? 성경에 적힌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노크를 들어보고 싶은 당신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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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면 ‘뜻밖의 손님<데이비드 짐머만/ 이지혜옮김, 최정인그림>’을 읽고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면’을 주제로 한 그림책 ‘뜻밖의 손님’이 우리 집에 왔다. 도착할 때가 되어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다. 제목과 표지 그림도 신선하고 색감도 좋다. 언젠가 선물로 받은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로버트 멍어/신은재 그림>’이 생각나 함께 펼쳐본다. 오래전 인생길에서 방황하는 외로운 소녀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 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소녀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가에 서 있는 그분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는 점차 짜증에서 간섭을 거쳐 위안으로 바뀌어 들렸다. 손님을 맞고 보니 갑자기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더 불안하고 외롭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을 피해 문을 단단히 잠그고 사는 소녀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고 예수님을 모시고부터 소녀의 삶은 변화되기 시작한다. 거실, 침실, 작업실, 서재, 손님방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소녀에게 말씀하시고 물으신다. ‘물이면 됐다.’ ‘네가 이 십자가를 왜 좋아하는지 알겠구나.’ ‘이 사람들이 네 친구들이니? 보고 싶은 거니?’ ‘그런데 이 책들은 다 읽어 본 것이냐?’ ‘이게 다 뭐지?’ 소녀의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거나, 오랫동안 머무는 일은 없었는데 예수님과 잠시 지내기로 한다. 예수님과 함께 손님방부터 정리를 시작하니 주변도 조금씩 정돈된다. 예수님은 다른 손님들도 초대하고 소녀와 함께 식사도 준비한다. 사람들이 찾아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그들을 친절하게 맞는다. 드디어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어느 날 밤, 저녁 식탁에서 예수님은 일 얘기를 시작하셨고, 일하는 모습을 보시고자 직장에도 동행하신다. 직장동료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주시고, 좋은 이웃이 되도록 도우신다. 그 날 이후로 직장 생활이 달라진다. 예수님이 과거의 기억들이 담긴 사진첩을 보시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신다. 그들을 기억에서 지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깊은 뜻이 있어 질문하신다는 것을 안다. 사진을 치워 버린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시며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하신다. 예수님도 함께 우신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가며, 예수님의 제안에 따라 가족과 오랜 친구들, 심리치료사를 만난다. 여전히 아프지만 예수님은 그 공간을 사랑, 친밀감, 지혜들로 채워 주신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예수님이 ‘경고장’이라고 쓰여 있는 편지 봉투를 건넨다. 손님으로 대한 소녀에게 결코 손님이 아니신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 주시는 장면이다. 임대 계약을 맺었으나 예수님이 모든 걸 인수하겠다는 마지막 경고의 글이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우리 모두를 위한 집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 책 ‘뜻밖의 손님’에는 문이 있다. 문을 열면 만날 수 있다. 기대와 소망이 가득 담긴 보물과 같은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가 책을 제공하여 독자가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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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올건가요?
길을 걸을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집에서 TV를 볼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쉴 틈이 없다. 늘 만난다. 늘 언제나 끊임없이 본다. 특정한 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냥 늘 그렇듯이 습관처럼 본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급하게 먹고, 때로는 먹지 않고, 바쁘게 집을 나선다.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파워워킹 또는 달리기를 한다. 버스에 올라타면 자리가 있으면 앉아서 본다. 보다가 잠이오면 눈을 감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잠이 오지 않으면 도착지에 도착할 때 까지 본다. 버스에 내려서 직장에 도착할 때까지 본다. 특별히 뭘 보는건 아니다. 그냥 본다. 직장에서 직장일을 하기 전 텀블러에 물을 담고, 일할 준비를 한다. 일할 준비를 하다가 잠시 앉아서 본다. 아까와 비슷한 것을 보는데도 새롭다.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가만히 멍하게 있는 것이 이상하다. 멍하게 있으면 안될 것 같다. 일하는 동안에는 보지 않는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간다. 그 짧은 틈에도 만난다. 늘 그렇게 스마트폰과 만나는 이유는 외로워서이다. 누군가와 늘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열려있지도 않다. 소극적인 소통을 한다. 늘 그렇게 보기만 한다. 지인들의 카카오톡 사진, 지인들의 페이스북 소식, 인스타그램 소식, 블로거들의 소식, 뉴스 등등 어느 것 하나 적극적인 소통은 하지 않는다. 소통은 하고 싶으나, 소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에 뺏겨 사는 삶은 피폐해졌다. 내 삶은 더욱 더 피폐해졌으며, 높아진 기준으로 나 자신을 그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삶을 살고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언제 나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올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다. 뜻밖의 손님은 이런 미디어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올 수 있을까? 과연 다가올 틈이라도 내주고 있는지, 내주지도 않은 사이에 비집고 뜻밖의 손님은 찾아올 수 있을지. 내내 맴돌았다. 나는 늘 뜻밖의 손님을 기다린다. 내 삶이 어느 정도 단조로워 질 때 뜻밖의 손님이 찾아올까. 어떤 식으로 뜻밖의 손님이 찾아올지 늘 기다린다. 뜻밖의 손님은 한번 오고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나와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이런 관계속에서의 외로움도, 어려움도, 없을테니. 어떻게 다가와주실건가요? 뜻밖의 손님.
* 이 서평은 출판사가 책을 제공하여 독자가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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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기다리던 밥 한 공기 "대문 잘 잠가라!" 외할머니는 수시로 소리쳤다. 마당에서 놀고 있던 나는 대문에 슬쩍 눈 한 번 주고 부엌으로 달려 들어갔다. 따뜻한 내음 속에서 할머니는 밥을 푼다. "할머니, 우리 식구는 여섯인데 왜 일곱 그릇이야?" 할머니는 "손 씻고 와라." 하시며 날 부엌에서 밀어냈다. 우리가 식사 할 동안 골목 밖에서 낯선 소리가 들리면 할머니는 조용히 일어난다. 대문을 여는 할머니의 한 손에는 우리의 일곱 번째 밥그릇이 들려 있었다. 조금 열린 대문 틈으로 형편없는 행색의 거지의 모습이 보였다. 소중히 받아 든 그의 깡통 속으로 할머니는 밥 한 공기를 넣어 주었다. 할머니의 하얀 치맛자락 위로 거지의 미소가 보였다. 할머니는 늘 거지가 들어온다고 문단속을 하면서 거지가 오기를 기다리며 밥을 푸셨다. 이런 부조리가 어디 있나. 철부지의 눈에 이상했던 할머니는 칠순이 지나서야 예수님을 믿으셨다. 성경도 한 줄 읽지 못하셨지만 밥 먹을 때마다 예수님께 기도 잘하라 하셨다. 거지를 손님처럼 기다렸던 할머니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천국에 가셨다. [뜻밖의 손님]을 맞이한 책 속의 ‘나’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문을 꼭꼭 잠그고 산다. 그 문이 열린 후 들어오신 예수님은 계속 ‘나’에게 물어 보신다. 잠그고 담아두고 감추었던 존재들은 예수님의 질문을 시작으로 하나씩 열린다. 아무도 없었던 ‘나’의 삶에 이웃을 만들기 시작하고 이야기와 나눔과 즐김이 이어진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열린 문으로 사람들이 ‘내’ 속으로 들어온다. 예수님이 귀 기울고 내 말 들어주기만 바라고 이웃에게는 귀를 닫았던 마음의 빗장이 열린다. 충만한 인생을 위해 문을 열어라. 내가 널 도울 수 있잖니. 예수님이 두드리는 문은 내가 걸어갈 길의 시작이다. 사랑이라는 물길의 시원이다. 내가 감히 들어가려 하지 않으니 예수님께서 나를 향해 와 손잡아 주시고 이끌어 내신다. 가장이신 예수님께서 자녀들을 안전한 집 안으로 데려가신다. 따뜻한 가족이 식탁에 마주앉는 집이다. [뜻밖의 손님]은 집을 잊고 세상을 살아가던 이들에게 따뜻한 집 밥을 찾게 도와줄 만한 좋은 책이다. 얇지만 따뜻하니 쉽게 집어 들고 읽어보시라. [뜻밖의 손님] 덕분에 나는 잊고 있던 할머니의 기억을 찾아 행복했다. 할머니의 부엌 냄새가 그립다. 복음을 전하자 할머니는 바로 영접하셨다. 언제나 뜻 밖의 손님을 기다리던 할머니에게 예수님은 너무도 당연했다. 늘 조용히 준비되어 기다리던 밥 한 공기처럼 말이다. * 이 서평은 출판사가 책을 제공하여 독자가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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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손님, J에게 J. 얼마 전, 소식을 들었어요. 당신이 제 친구 집에 방문했더군요. 조금 의아했어요. 친구는 거의 손님을 들이지 않거든요. 평소 일 밖에 모르고, 집에 와서는 씻고, 잠만 자는 친구예요. 그런 친구가 손님을 들였다니. 게다가 계속 같이 지냈다면서요. 놀라운 일이예요.
친구 집에 다른 사람들도 초대했었다면서요? 직장도 찾아갔고요? 솔직히 말해 약간 걱정됐어요. 친구가 갑작스러운 걸 싫어하거든요. 조용한 성격의 친구에게 너무 무례한 건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친구가 처음엔 낯설어했지만, 나중에는 상황을 받아들이더라고요. 친구가 그랬어요. “에고 말도 마! J 완전 독종이야. 어쩜 그렇게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하니? 그래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더라.” 아, 이런 말도 했었군요.
그런데 불현듯 아이러니를 느꼈다. 집이란 따뜻한 관계를 경험해야 할 곳이며 동시에 우리가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장소가 아닌가. (20쪽)
친구가 많이 외로웠나 봐요. 집에선 항상 혼자였고, 직장에서도 일만 했지, 사람들과 거의 관계를 맺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J가 초대한 사람들과 같이 밥 먹으며, 웃는 게 그렇게 좋았나 봐요. 오죽하면 이런 얘기를 했겠어요? “드디어 우리 집에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31쪽)
며칠 전에 봤는데, 그렇게 얼굴이 좋아 보일 수가 없었어요. “너 정말 내 친구 맞니?”하면서 완전 놀랐다니까요. 직장 얘기를 좀 더 할게요. 평소 친구는 직장에서 엄청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직장 동료와도 갈등이 많았죠. 그런 관계있잖아요? 겉으론 허허 웃고 있는데, 속은 부글부글 끓는. 아마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저도 그렇죠. 직장은 일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냥 어쩔 수 없이 돈 벌기 위해 다니는 곳 아닌가요?
그런데 J, 당신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직장에서도 사람들의 참 필요를 봤다고나 할까요? 아픔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친구와 직장 동료들의 문제를 정확히 꿰뚫으신 것 같아요. 결국 친구의 직장 문제를 해결한 거잖아요?
맞다. 그런 일도 있었지요? 친구의 옛 사진첩을 훑어 봤다고요? 좀 걱정됐어요. 친구가 인간관계에 실패가 많았거든요. 남녀관계에서도요. 한두 번인가 친구가 깨진 관계에 대해 말했었는데, 참 슬퍼보였어요. 왜, 있잖아요? 사람마다 꼭 숨기고 싶은 것. 그게 친구에겐 인간관계였던 것 같아요. 어쩌면, 당신이 아픈 부분을 건드린 거잖아요.
그런데, 와! 너무 놀라운 일이 생겼어요. 친구가 그런 말을 했어요. “여전히 아파. 하지만, 고통을 내려놓고 잠재울 만한 곳을 찾았어. 그러자 J가 사랑, 친밀감, 지혜 같은 것들로 채워주셨어.(53쪽)” 친구와 함께 우셨다면서요. 함께 울어줄 사람이 친구에겐 필요했나 봐요. 참 고마워요.
당신은 친구에게 직접 쓴 편지도 주었지요. ‘경고장’이라고 써진. 약간 우려도 됐어요. 왠지 경고라는 말이 무섭잖아요. 이제 좀 마음 안정된 친구가 당신을 내쫓지나 않을까 걱정도 됐고요. 그런데, 역시나 당신은 따뜻한 제안을 주셨습니다.
나는 너와 함께 살고 싶단다. 영원히. 이곳을 나의 본거지로 정하고 너랑 같이 사는 거지. 네 것이 내 것이 되고 내 것이 네 것이 되는 거야. (58쪽)
다행히 친구는 제안을 받아들였죠. 항상 외롭고 어딘가 불안했던 내 친구.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요. 마치 둥지 안의 새끼 새들처럼 말이에요.
제가 이렇게 불쑥 편지를 드린 이유가 궁금하시죠? 이제야 말할게요. 저희 집에도 오실 수 있나요? 청소도 해야 하고, 손님을 들이는 걸 저도 좋아하진 않지만, 왠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요. 친구의 모습이 어쩌면 제 모습이거든요. 항상 움츠려 있고, 사람을 피하는 나, 직장에서든 어디에서든 사람을 사람의 본 모습으로 보지 못하고 색안경을 끼는 나. 무엇보다 제 안에 해결되지 못한 여러 문제들이 엉킨 실처럼 뒤죽박죽이거든요.
당신이 친구에게 했던 그 말, “난 결코 널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널 사랑하니까.”(59쪽) 이 말이 계속 떠올라요. 그리고 되뇌어 봐요. ‘날 결코 떠나지 않는 분이 있다니...’ 이 사실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J, 당신이 하신 이 말이 제게도 동일하겠죠
짧게 쓰려 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 하고 싶어요. 제 친구에게 찾아와 주시고, 함께 하신 것이요. 뜻밖의 손님 J, 꼭 방문해 주세요. 기다릴게요. 예수님.
* 이 서평은 출판사가 책을 제공하여 독자가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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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로 태어났다. 만드신 분이 우리시기 때문이다. 세분의 친밀함을 무엇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나와 너 사이의 친밀함을 그리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상대는 평가 대상이다. 나를 귀찮게 하거나, 위험하게 만들거나, 나보다 못 하거나 낫거나. 이렇게 서로 상처받으면서 같이 있지만 철저한 외로움을 느낀다. 군중 속에 고독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부드럽고 친절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따뜻함의 소유자. 어떤 사람도 쉽게 다가올 수 없었지만 이분은 너무 쉽게 다가와 나를 무장해제 시킨다. 오랫동안 내 공간에 다른 사람을 초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 당황스럽다. 깔끔하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마음과 달리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고 화도 났지만...... 어쨌든 그분과 위험한(?) 동거가 시작됐다. 그분은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셨다. 그분의 관심은 항상 일이 아니라 ‘나’였다. 그런 예수님이 싫지 않고 좋을 무렵에 그분은 말도 없이 또 다른 사람을 내 집에 초대하셨다. 불편했다. 예수님은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은 싫었다. 그런데 어느덧 이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예수님은 다양한 사람을 내 집에 초대했다. 혼자 살던 내 집이, 우리 집이 되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 했다. 여전히 나를 외롭게 만드는 공간이 있다. 바로 직장이다. 예수님은 내 직장에도 따라오셨다. 직장 동료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여차하면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혼내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랐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도 나처럼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남을 볼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내가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하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들에 대한 무관심이 관심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그들은 완벽하지 않다. 가끔씩 너그럽게 봐줄 필요가 있는 좋은 사람들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내게 찾아오셔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꿔놓으셨다. 평가 대상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동등한 사람들로 말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는 소중한 관계에 목마르다. 목마르지만 누구도 선뜻 움직일 수 없다. 그런 나에게 예수님은 용기를 주신다. 이 용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와 함께하며, 내가 힘들 때 함께 울어주시는 사랑이다. 이제 예수님이 당신에게 말을 거신다. 혼자 사는 건 좋지 않다고. 예수님 오셔서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초대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우리가 된다. 서로가 필요한 우리다. 이러한 필요를 채워줄 때 고통의 자리는 사랑으로 채워진다. 자, 우리가 누군가에게 뜻밖에 손님이 되어줄 차례다. 우리는 안다. 누군가는 ‘뜻 밖에’일지 모르지만, ‘뜻 안에’ 놀라운 변화가 기다리고 있음을. 이 서평은 출판사가 책을 제공하여 독자가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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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손님을 읽고.. 뜻밖의 손님은 말하지 않아도, 예수님이심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 예수님이 한 여자아이의 마음의 문을 여신다. 하지만 소녀는 예수님을 손님으로 맞이할 뿐 자신의 가족으로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의 삶에 안주하여 있기에, 또한 소녀는 예수님이 자신의 삶을 귀찮게 할뿐 아니라, 원하지 않는 일들도 지시할 것을 알기에.. 예수님은 소녀의 집을 돌아보시다가 그 집에 머무르시기로 결정하신다. 처음엔 짜증을 내던 소녀도 늘 혼자여서 외로웠는데 이젠 예수님이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게다가 자신의 미완성 프로젝트와 집안일도 도와주시는 것에 만족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은 불청객을 데려오신다. 바로 노숙자 가족이다. 이들은 갈 곳도 없고, 잠 잘 곳도 없다. 이들을 위해 재워주고, 함께 식사할 것을 제안하시자, 소녀는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도리어 이웃들과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소녀가 근무하는 직장으로 가신다. 과중한 업무의 스트레스와 상사 및 직장 동료 간의 갈등이 있는 그곳에 예수님은 일이 아니라 사람에 관심을 두신다. 그 사람의 형편을 먼저 보게 하시고, 생존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충만한 인생을 살기 원하신다. 그날 이후 소녀는 그동안 미워했던 직장동료들과 상사들이 완벽하진 않지만, 좋은 사람들임을 깨닫게 되어 점심식사, 각종 기도모임도 하게 된다. 하지만 옛 남자로 부터의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아픔을 예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신 듯 눈물을 흘리시며 소녀가 회복되길 원하신다. 이 아팠던 공간을 사랑과 친밀감으로 주님은 채워 가신다. 이러한 예수님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녀는 홀로 살고자 한다.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단지 같은 집에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예수님은 편지봉투를 건네시며 다시 한 번 더 제안하신다. 손님이 아니라 가족으로. 가정의 가장으로. 왜? 사랑하니까 그렇게 하시고자 하신다. 그 사랑을 받아들인 소녀는 그 이후로 행복한 삶을 누린다. 이 얇고 가벼운 동화 같은 그림책은 그 내용만큼은 가볍지가 않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 분은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 안에 계셨다. 내가 손님으로 대했을 뿐이지 그 분은 항상 내 삶의 주인이셨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주님과 충만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 서평은 출판사가 책을 제공하여 독자가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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