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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새를 묻어주고 나서 술래가 되었다. 친구들이 와하하 웃음소리를 흘리며 한양아파트 단지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나는 텅 빈 놀이터에 남은 공처럼 발자국을 지웠습니다. 귀퉁이의 모래 속에는 주인 모를 타임캡슐이 잠들어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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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일간 신문 인터뷰에서 고선경 시인은, “이번 시집은 연애 시집으로 생각하고 구상했다. 사랑은 비논리적이고,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에게 져주기도 하는 일인데, 효율을 따지는 지금 시대 와는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연애하고 사랑을 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특정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게 하는지 궁금했다”라고 했다. 그런 궁금함 때문인지 시인은 비릿하고 씁쓸한 기억을 머금고 더 진하게 농축된 듯한 향기를 앞세운다. 시인의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146쪽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열매의 껍질’과 17쪽의 ‘씁쓸한 오렌지 향기’, 그리고 13쪽의 ‘무른 딸기 냄새’를 내밀면서 우선 이렇게라도 향기를 맡아야 자신의 시를 이해할 수 있다면서 그리한다. 그러니 이 시집에서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먼저 마주치게 되는 건 사랑이다.
너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
분홍색 카디건과 청바지를 골라 입었지 상점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노래를 기억해두었고 캐러멜 하나를 너에게 쥐여 주면서 이거 내 전부야, 말했어
전부를 건네받고도 질투를 느낀다는 게 이상하지 않고 네가 꿈에서 깨물었다는 과일의 이름이 궁금할 뿐이지
나는 너에게 자두에 가까운지 딸기에 가까운지 어떤 붉음일지 미끈한 턱을 타고 흘렀을 과즙의 끝 맛을 상상했지 (중략) ‘고백’ 중에서 고선경의 시에서 사랑은 감정이기 전에 감각이다. 사랑은 구체적이고 명료해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먹을 수도, 맡을 수도 있는 물질이다. 감각이 아닌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듯 천연덕스럽다. 그래도 시인은 ‘시인의 말’에선 ‘진짜 사랑으로 바글거리는 것 같았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맞추랴!
칵테일 같은 연애를 하고 싶었어 아찔한 빛깔로 열린 열매의 내부에서 폭죽이 터지듯이 들숨과 날숨이 환하게 뒤섞이듯이 (중략) 부끄럽지 않은 욕망이란 뭘까 복숭아 통조림 속 찰랑거리는 설탕물 같은 것 (중략) 이런 시는 부드럽게 느껴지니? 부드러운 욕망이란 무엇이겠니?
말괄량이란 천진보다 순진에 가까운 것, 장화도 신지 않고 물웅덩이를 밟는
얄미움 (중략) - ‘러브 온 더 락’ 중에서
얼음 위에 위스키나 칵테일을 부어 맛을 부드럽게 하는 제조법이 ‘온 더 락‘ 인데, 시인은 시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망하기 직전의 위태로운 상태, 즉 서로 다른 존재가 사랑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망하기 직전 위태로운, 결코 달콤함만 동반하는 건 아니라는 걸 씁쓸하게, 넌지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겪는 아찔하고 절망스럽고 간질대는, 다양한 경험과 닮아서겠다. 그러면서도 다시 천연덕스럽게 시인은 자신이 현실 감각은 떨어지면서도
새하얀 이불 속에서 천사랑 뒹굴었다 산발이 된 금빛 머리카락에서는 러쉬 수퍼 밀크 향기가 났다 이집……보증금이 삼천이야 삼천은 어떤 액수인 것 같니? 관리비 포함 월세 오십, 그럼 삼천은 몇달 치 월세인지 계산기 두드려봐 (중략) - 엔젤 오브 시티 중에서
우리는 이 케이크를 먹고 헤어지고요 남은 마음은 포장하고요 (중략) 발목을 접질리고 순해진 노인처럼 반항적인 측면을 네게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 Guilty Favorite 중에서, 처럼
우리 삶의 비루한 조건들까지 시의 한복판으로 성큼 끌고 들어와서는, 더욱 세속적인 사람이라는 듯, ‘세속’은 이번 시집을 읽는 하나의 키워드도 된다. 시인은 ‘늦여름 동거’에서 가끔 티셔츠 안쪽에서 이름 모를 곤충이 튀어 올랐을 때, “사랑해! 외치고서 책으로 때려 죽였다” 그리 말은 하지만, 누가 뭐래도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게 사랑이 아닐까? 라고 시인의 속내를 짐작 하려는 마음은 나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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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온 더 락』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남은 건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감정의 온도였습니다. 어떤 시는 농담처럼 시작하는데 마지막에는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고, 어떤 시는 담담한 문장 하나가 하루 종일 마음속을 맴돌았습니다. 시를 읽었다기보다 제 안에 있던 감정을 하나씩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고선경 시인의 시에는 사랑을 정답처럼 말하려는 태도가 없습니다. 대신 흔들리고, 망설이고, 괜히 웃어넘기다가도 결국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 마음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를 덮고 나면 특별한 결론은 남지 않지만, 이상하게 세상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 시간을 만들어 주는 시인을 만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읽히는 시를 쓰는 고선경 시인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젊은 작가 투표에도 기쁘게 참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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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러브 온 더 락』은 사랑을 노래하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이 시집 속 사랑은 장밋빛 환상보다 현실에 더 가까이 있다. 월세와 출근, 영수증과 청첩장 같은 일상의 풍경 속에서 사랑은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씁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적인 감정을 특유의 재치 있고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내며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마음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시집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사랑과 생존이 충돌하는 순간들을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순수한 감정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제적인 문제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분리할 수 없다. 『러브 온 더 락』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하는 마음과 먹고사는 문제가 뒤섞인 오늘날의 모습을 유머와 블랙코미디로 표현한다. 그래서 시를 읽는 동안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남았다. 또한 이 시집은 감각적인 이미지가 돋보인다. 특히 향기와 냄새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지나간 사랑의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흔적과 감정을 냄새라는 감각을 통해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시를 읽는 동안 단순히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직접 그 장면을 경험하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시집은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 앞에서 계산적이기도 하고, 현실에 지쳐 있기도 하며, 때로는 이별마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진솔하게 다가왔다. 시인은 화려한 수식보다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을 포착하며 독자들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러브 온 더 락』은 사랑에 대한 시집이면서도 결국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혔다. 『러브 온 더 락』은 달콤한 칵테일이 아니라 제목처럼 얼음 위에 따라 마시는 독한 술에 가깝다. 처음에는 가볍고 유쾌하게 읽히지만, 읽고 난 뒤에는 긴 여운과 씁쓸한 감정을 남긴다. 현실에 지친 청춘들에게 이 시집은 무조건적인 위로를 건네기보다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공감의 손길을 내민다. 그래서 더욱 진솔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시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