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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다 보면 사람들은 점점 더 쉽게 분노하고,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적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장 지난 뉴스에서 성과급 관련 이슈들이나 5.18 스타벅스 이벤트에 대한 국민들의 다양한 댓글 거기에 한 드라마의 역서 왜곡에 따른 여러 시선들을 통해서 최근에도 다양한 분노하는 사람들의 댓글과 목소리를 만났다. 그런 마음이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진 두려움과 생존의 감각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어떨까. 커트 그레이의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는 정치적 갈등, 세대 갈등, SNS 혐오와 극단적 대립까지 오늘날 우리가 서로를 공격하게 되는 이유를 심리학과 사회학의 시선으로 차분히 풀어낸 책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인간은 위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누가 나를 해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판단해왔다는 이야기였다. (심리적으로 자기방어가 자연스럽게 발달한 이유일 수도 있다.) 책에서는 인간이 집단을 이루며 살아온 이유조차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두려움으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이런 마음을 책에서는 “이기적인 무리 이론"이라고 설명한다. 무리 속에서 혼자 떨어져 있으면 포식자의 표적이 되기 쉽지만, 서로 바싹 붙어 있으면 위험이 분산된다는 이론이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는 이런 이유일까요?) 결국 포식자가 덮쳤을 때 ‘나보다 가까이에 있는 다른 개체가 대신 희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이 여기에서도 나온다.) 인간은 결국 자기보호를 위해서 타인의 희생은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해서 사실 조금은 서글퍼지는 이론이다. 인간이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유는 원래 서로를 지키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여야 할 텐데, 현실에서는 때때로 공동체가 연대보다 생존 경쟁의 형태로 작동하는 순간들을 더 자주 만나고 우리는 그들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쌓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넘쳐나는 부와 정보 속에서도 우리의 도덕성이 점점 흔들리는 이유 역시, 어쩌면 이런 본능적인 생존 심리와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타인을 경계하는 마음은 어쩌면 아주 오래된 생존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무서웠던 건 갈등의 시작이 거대한 악의가 아니라 “나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감각이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을수록 상대를 더 쉽게 위험한 존재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순간, 대화는 멈추고 분노만 남는다 . SNS 속 혐오와 댓글 전쟁, 끊임없이 편을 가르는 사회 분위기를 떠올리면 이 책이 말하는 내용들이 너무 현실적이라 여러 번 밑줄을 긋고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논리보다도 “저 사람 역시 두려워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날카로워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분노가 넘치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관계와 사회의 균열 속에서 “왜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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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 커트 그레이 / 김영사
지은이 : 커트 그레이 심리학 및 신경과학과 교수. 도덕심리학 분야 세계적 석학. 의학사를 공부한 뒤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내 지옥에 빠져 있을 때는 나만 보인다.
혐오를 연대하다 오늘날 인류는 ‘분노 타겟팅’으로 혐오를 연대한다. 바다 건너 미국의 낙태 찬반 시위 현장부터 한국의 정치에 이르기까지,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를 대하는 대중의 ‘심판’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공방을 두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각각 지지하는 이들이 서로를 향해 "뇌가 없는 좀비", "지능이 오염된 집단"이라 모멸하는 세태는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상대를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두개골 내부가 텅 빈, 혹은 악인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도덕심리학자 커트 그레이는 이 책에서 끝나지 않는 전쟁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진화론적 역사에서 인간은 지구를 지배한 사냥꾼이 아니라, 언제 맹수가 튀어나올지 몰라 떨던 연약한 ‘먹잇감(피식자)’이라고. 인간이 도덕성을 진화시키고 집단을 이룬 진짜 목적은 타자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험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피식자들의 사회에 이토록 분노가 들끓는가? 저자는 인간의 도덕적 판단과 격분이 상대의 악의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극심한 '두려움'과 '위험성의 주관적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가치관과 선택이 자신이 평생 일구어 온 체제와 삶의 안전망을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본능적으로 적대시하고 편을 가르며 분노하는 것이다.
'도덕적 정형화' 이 책의 후반부를 관통하는 내용은 '도덕적 정형화‘이다. 인간의 뇌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싫어하는 게으른 인지 체계를 지녔다. 갈등이 발생하면 두 가지 범주, 즉 '사고 능력을 갖춘 사악한 가해자'와 '감각 기능만 가진 무력한 피해자'로 구분한다.
이 도덕적 정형화는 "피해자는 비난받을 리 없고, 가해자는 고통을 느낄 리 없다(340p)"는 인지 왜곡을 일으킨다. 우리가 특정 집단을 '사악한 가해자'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 뇌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고통, 심지어 그들의 인지 능력마저 지워버린다.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낙태 논쟁‘이 극단으로 치닫는 이유가 정확히 여기에 있다. 낙태 반대 진영은 상대방을 '태아라는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잔인한 가해자(=살인자)'로 정형화하고, 낙태 찬성 진영은 상대를 '여성의 신체 주권과 인권을 짓밟는 가부장적 가해자'라고 주장한다. 이 ’도덕적 정형화‘는 낙태를 고민하는 여성의 절박한 고통도, 생명의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의 두려움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상대방을 악인이라 치부하며 분노한다.
인종 차별, 그리고 이주민 노동자 물리적 폭력과 질병이 극적으로 줄어든 현대사회에서, 석기시대의 뇌를 지닌 인간은 오히려 위험을 감지하는 센서의 민감도를 극도로 끌어올린다. 저자는 세상이 안전해질수록 사소한 위협도 거대하게 받아들이는 이 현상을 통해 현대의 이주민 노동자 혐오와 인종 차별을 설명한다.
일부 원주민들이 이주민 노동자를 향해 쏟아내는 인종 차별적 분노는 어디서 오는가? 이주민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지역사회의 치안을 무너뜨리며, 고유의 문화를 오염시킬 것이라는 주관적 공포를 상상하며 시작된다.
객관적인 통계나 데이터로 ’이주민 노동자가 경제에 기여한다‘ 라는 팩트를 제시해도 두려움에 사로잡힌 뇌는 ’나를 교란하기 위한 거짓 정보‘ 로 인식한다. 두려움이라는 직관은 사실을 이긴다. 인종 차별주의자들은 자신이 차별받는 취약한 피해자라고 믿게 된다. 모든 갈등의 당사자들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포장하는 이유다.
일인칭으로 연대하라! 취약성과 경험담으로 책의 마지막 3부 전체는 분열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사실을 내려놓고, ’일인칭 취약성’과 ‘일인칭 경험담’을 공유하라고 강조한다.
좁혀지지 않던 극단적 대립을 녹일 수 있는 것은 통계학이나 법리적 논쟁이 아니다. 내가 왜 두려움을 느끼는지, 삶 속에서 어떤 상실과 고통의 경험이 나를 이토록 방어적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일인칭 서사'를 공유할 때 비로소 상대방의 가로막힌 뇌가 깨어날 것이다.
낙태를 반대하는 이가 과거 낙태 후 겪었던 깊은 상실감과 영적 고통의 경험담을 털어놓을 때, 낙태를 찬성하는 이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삶이 송두리째 무너질 뻔했던 절박한 취약성을 고백할 때, 비로소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주민 노동자가 고국에 남겨진 가족을 위해 먼 이국땅에서 매일 밤 눈물 흘리는 삶의 서사를 공유할 때, 그들을 향한 인종 차별의 시선은 옅어진다.
자신의 가장 약한 면(취약성)을 기꺼이 드러내는 일은 나를 해치려던 포식자의 손에서 무기를 떨어뜨리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연대의 기술이다.
서로의 경험담이 겹치는 지점에서, 상대방은 마침내 "뇌가 없는 좀비"에서 "나처럼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지키려다 상처 입은 삼차원적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도덕도 겸손해야지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의 마지막 지점은 '도덕적 겸손함‘이다. 겸손은 인간 궁극의 미덕이라지만 도덕까지 겸손 하라고?
저자가 말하는 도덕적 겸손함이란 내 신념을 포기하거나 비굴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전체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나와 격렬히 부딪치는 저편의 완고한 판단 역시 ‘소중한 가치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살고 싶다’라는 인류 공통의 피식자적 본능에서 나온 것임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정치적 탄핵 정국에서, 낙태 논쟁에서, 이주민 문제에서 인류는 저마다 다른 위험의 신호를 보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쪽은 권력의 독주와 생명의 경시라는 것을 보고 있고, 다른 한쪽은 헌정 중단과 여성의 억압이라는 것을 보며 두려워한다. 이것은 선과 악의 전쟁이 아니라, 단지 '서로 다른 위험'을 바라보는 충돌일 뿐이다.
서로를 향한 적대와 혐오를 거두고, 저들이 응시하는 ‘일인칭 두려움’의 실체를 묻는 순간 분노는 점점 옅어지지 않을까?
적대와 혐오가 굳어진 이 분열의 시대에, 도덕까지 겸손하라는 저자의 말은 타인을 들여다보고 수용하게 만들어 준다. 내 지옥에 빠져 있을 때는 나만 보인다.
*책을 제공받아서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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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자신이 분노하는 이유를 상대가 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분노를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에 가까운 것으로 바라본다. 사람들은 악해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서로 다른 위험을 현실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분노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해를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왔다. 저자는 인간을 본래 공격적인 존재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끊임없이 위험을 감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취약한 존재에 가깝다. 그리고 그 감각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작동한다. 실제 물리적 위협은 줄어들었지만 인간의 정신은 계속해서 새로운 위험을 탐색한다. 정치적 반대편, SNS 속 타인, 뉴스의 사건들, 누군가의 말과 시선까지도 위협의 대상으로 번역된다.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안전해졌지만, 그렇기에 위험의 개념은 더욱 확장된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분노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계를 보호하려는 감각 속에서 분노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유의 침해를 가장 큰 위험으로 느끼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혐오와 차별을 더 위협적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서로 다른 도덕적 판단은 서로 다른 위험 인식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객관적 사실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경험과 문화, 직관과 두려움을 통해 세계를 해석한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누구는 억압을 느끼고 누구는 무질서를 느낀다. 그래서 사실과 데이터를 끝없이 들이밀어도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상대가 보고 있는 위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늘날 사람들이 왜 이렇게 쉽게 서로를 악한 존재로 단순화하는지 보여준다. 인간의 정신은 복잡한 세계를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려 한다. 그리고 자신이 피해자의 편에 서 있다고 느끼는 순간 더욱 강한 도덕적 확신을 얻는다. 사람들은 정보보다 이야기 속에서 분노하고 연대한다. 통계보다 개인의 경험담에 더 강하게 흔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오늘날의 갈등은 단순한 의견 충돌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두려움과 서사가 충돌하는 문제에 가깝다. 이 책은 분노를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로를 향한 극단적 비난과 혐오 속에서도 인간의 밑바탕에는 여전히 무언가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각자가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와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다만 그 마음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할 때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분노가 넘쳐나는 시대다.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더 쉽게 적이 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타인의 분노뿐 아니라 자신의 분노 역시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대부분의 분노는 누군가를 파괴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안한 세계를 견디고 살아남으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간성에 대한 이해는 서로를 쉽게 악으로 단정짓기보다, 왜 서로 다른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지를 바라보게 만든다. 이 책은 서로를 조금 더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선과, 분노 너머의 인간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통찰을 건넨다. #나와당신은왜분노하는가 #분노 #김영사 #심리학 #도서추천 *도서증정 @gimmyoung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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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깨달은 사실은 우리가 내뱉는 분노가 사실은 '2차 감정'이라는 점입니다. 겉으로는 날 선 말과 공격적인 태도로 드러나지만, 그 기저에는 두려움, 슬픔, 소외감, 혹은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서운함이 깔려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사실은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을 보호하려는 방어 기제임을 강조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개인의 분노뿐만 아니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분노의 역동을 다룹니다. 우리는 흔히 "너 때문에 화가 났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행동을 바라보는 나의 해석 방식이 분노를 유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로의 기대치가 어긋날 때 발생하는 이 감정을 단순히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원했던 '핵심 욕구'가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과정이 관계 회복의 시작임을 배웠습니다. 분노는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분노를 무조건 참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에너지를 나를 파괴하거나 상대를 공격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라고 조언합니다. "나는 지금 이런 부분에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껴서 화가 나"라고 차분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진정한 성숙임을 깨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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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눈을 떠 스마트폰을 켜면 세상은 온통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정치는 양극단으로 쪼개져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소셜미디어의 댓글 창은 날 선 혐오로 일렁인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고결한 관찰자라도 된 양 혀를 차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내 울타리 안에서 수없이 분노를 채집하며 살아왔다. 내 가치관과 어긋나는 타인의 사소한 행동에 불쑥 짜증이 치밀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은연중에 '상종 못 할 이기적인 존재'로 단정 짓곤 했던 것이다. 내 분노는 언제나 정의의 산물이었고, 상대의 반론은 무지나 악의의 증거였다. 김영사에서 출판된 커트 그레이의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는 이 견고한 확신의 벽에 커다란 균열을 내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서로를 적으로 믿고 싸우는 이유가 도덕성의 결여가 아니라, 각자가 감지하는 '위험'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뇌는 생존을 위해 위협에 민감하게 진화했고, 무엇을 무서워하고 지키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분노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렌즈를 통해 나의 일상을 돌아보았다. 타인을 향했던 내 분노의 실체는 사실 '내가 구축해 온 안전한 세계가 침해받을지도 모른다'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두려움의 변형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과 나의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나는 정교하고 촘촘한 계획을 세우며 내 삶의 통제권을 쥐려 애썼고, 그 안락한 경계를 위협하는 변수들에 쉽게 화를 냈다. 하지만 이제는 분노가 밀려올 때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내 안의 위험 감지기를 점검해 보려 한다. 나아가 내 울타리 너머의 사람들이 내뿜는 날카로운 반응을 마주할 때, "왜 저렇게 무례할까?"라고 비난하기 전에 "그가 지키고 싶어 하는 가치와 두려워하는 위험은 무엇일까?"를 먼저 묻는 '도덕적 겸손함'을 연습하고자 한다. 세상을 단순히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본능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타인의 두려움과 결핍을 있는 그대로 수집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때, 비로소 나의 내면도, 내가 마주하는 관계도 위선에서 벗어나 진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분노의 루프를 끊어내는 힘은 팩트의 들이밈이 아니라,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하는 사소한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은 가르쳐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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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분명 '포식자'의 특성을 가진 종이다. 다만 사자처럼 순수 육식포식자는 아니다. 현대 인류는 먹이사슬 최상위권에 올라 있어 만생명을 고루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신체 능력만 보면 생물종으로 우리가 처음부터 '포식자'에 위치 했었는지 의심해 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날카롭지 않은 '이빨'을 가지고 있다. 위협적인 발톱도 없고 느린 속도와 약한 근력도 가지고 있다. 고로 우리가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설계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포식자와 피식자는 진화과정에서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포식자의 대부분은 진화 과정에서 눈이 앞으로 향하게 진화했다. 거리 감각과 입체 시야가 사냥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피식자의 상당수는 눈이 양옆에 달려 있다. 넓은 시야로 주변의 위협을 빠르게 감지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눈은 분명 '포식자'의 그것을 닮았다. 다만 다른 대부분의 증거가 우리를 '피식자'라고 인도하면서 우리의 위치는 '피식자'와 '포식자' 그 중간 어디쯤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이족보행을 하고 허리를 곧게 세우는 순간부터 우리의 시야는 허리와 목을 이용하여 넓어졌다. 거기에 타인과 협력을 통해 사방을 훑어 볼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면서 우리는 사방을 경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피식자'이면서 '포식자'인 종이지 않았을까. '미국 도덕심리학자', '커트 그레이'는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라는 책에서, '우리가 서로를 적이라 믿게 만드는 불안과 분노은 '피식자'로 진화해 온 '인류종'이 가진 '방어기제'라고 말한다. 인간이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집단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선과 악'이 개념이 아니라 '피식자'의 불안감을 '타인에 대한 위험'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녀' '온라인 커뮤니티' '종교' '국가 간 갈등' 현대 우리 사회가 '분노'로 가득찬 사회라고 증명해내는 다양한 갈등들이 사실은 오랜 시절, '포식자'로부터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불안해 했던 조상들의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인간은 공격성이 짙은 포식자라기보다, 단순히 위협에 민감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위험 신호를 과도하게 담지하도록 진화했다. 내부집단와 외부집단을 나누고 비록 내부집단의 구성원이 반사회적이라 하더라도, 외부집단의 구성원이 조금더 친사회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내부집단의 행동을 모방하고 방어하도록 행동한다. 인간의 대부분은 항상 자신이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유는 '상대'를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고로 그들을 '악'이나 '위협'의 존재로 상정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실제로 진보 혹은 보수적 정치 특성을 가진 이들은 상대쪽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며 '지능이 낮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그 비율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크기 다르지 않은데, 통계적 결과를 살펴보면 그들의 지능과 학력 차이가 무의미한 차이라고 한다. 커트 그레이는 인간의 이런 성향을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뇌과학' 관점에서,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관찰한다. 얼핏 '사피엔스'처럼 '역사와 진화'를 이야기하는 듯 하다 현실로 돌아와 현상을 관찰하고 연구한다. 뉴스를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얼핏 뉴스를 보게 되면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분노'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신의 불안을 표출하는 그 방식이 '피식자'가 갖던 불안을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선과 악',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인간종의 작동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나면 조금 더 우리가 갖는 '분노'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살펴 볼 수 있지는 않을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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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덕적 판단이 위험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지 따지며 여러 학자들의 이론을 살펴본다. 사람이 위험성을 어느정도로 인지하느냐에 따라 도덕적 평가가 달라지는데, 그 중 흥미로운 점은 정치성향에서도 위험성의 판단 기준이 뚜렷하게 나뉜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모두 약한 사람을 보호하려한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신, 인종, 환경, 권력자, 치안 유지 중 어디에 더 취약성을 두는지 그 가치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말해, 도덕적 사고는 위험성의 인식과 관련 있지만 이 인식이 무엇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판단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도덕적 판단 기준에서 또 다른 관점은 사람들은 두 가지 사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책에서 나온 구절을 보면 이렇다. 📖 “우리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피해를 겪은 사람이 남을 해칠 수도 있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두 가지가 공존하는 회색 지대를 인정하기보다는 도덕성을 흑백으로 깔끔하게 단순화하려고 한다. 개개인의 삶이 복잡하다는 걸 간과하고, 다른 사람의 도덕성을 가해자 아니면 피해자 둘 중 하나로 규정하려고 한다.” 📖 때문에 ”온라인에서 토론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을 나치나 히틀러에 비유할 확률은 점점 높아진다“ 사람은 누구나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지만, 자신이 악을 저지를 때는 상황 탓을 하며 관대해지고 남이 악을 저지르면 그 사람에게 온전히 잘못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런 심리는 나도 장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심리 기저를 이해하면서 여러 감정에 대해 뜯어보게 되었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우선순위로 여겨 유리한 쪽으로 돌아가는 사고회로는 본능일지라도,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인지 아닌지는 확실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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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온라인에서 어떤 이슈든 댓글창을 열면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누군가 먼저 분노하고, 그 분노에 또 다른 분노가 쌓이고, 어느 순간 원래 이슈는 사라지고 서로를 향한 적대감만 남는다. 연예인 논란, 드라마의 역사왜곡, 유명 셰프 업장 대응 논란, 프랜차이즈 브랜드 소비 반대 운동까지, 이번 한 달만해도 몇개의 이슈가 번졌다. 나는 그 흐름을 보면서 늘 궁금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그리고 이렇게 자주 분노하는 걸까.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인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심리학자 커트 그레이는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가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뇌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조상은 오랫동안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 속에서 살았고, 그 생존 본능이 현대의 뇌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위험을 감지하려 하고, 그 위험이 인식되는 순간 분노라는 반응이 작동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도덕적 분노의 기원을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경찰도 사법 체계도 없던 시절,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직접 나서서 응징하는 것이었다. 분노는 그 응징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적 장치였다. 자신에게 위험이 돌아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 그게 분노의 역할이었다. 흥미로운 건 그 분노가 지금도 우리 안에서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이 있고 경찰이 있는 세상인데도, 우리는 SNS 댓글 하나에 혈압이 오르고 가해자를 응징해야 한다는 충동을 느낀다. 저자는 갈등이 깊어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한다. 사람들은 같은 현실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위험'을 감지한다. 무엇이 위험한지에 대한 인식이 다르니 도덕적 판단도 달라지고, 상대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저자는 이를 '파괴 서사'라고 부른다.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악의를 품고 세상을 망가뜨리려는 존재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을 본래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면, 상대의 공격이 지배욕이 아니라 절박함에서 나온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분열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책은 팩트와 데이터가 아니라 이야기가 그 실마리가 된다고 말한다. 상대를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자세,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기꺼이 꺼내 보이는 대화가 갈등의 온도를 낮춘다는 것이다. 사실을 제시할수록 상대는 더 깊이 자신의 신념 안으로 숨어들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논리가 아니라 경청에 있었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고 느낄 때, 그 소음 아래에는 저마다의 두려움이 있다는 걸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는 조용히 일깨워준다. 분노하는 사람들은 사실 무언가를 잃을까봐 겁을 내고 있다. 나도, 당신도 마찬가지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너그럽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서평단 #유유북적 #북로그 #책로그 #나와당신은왜분노하는가 #김영사 #인문학책추천 #신간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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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 우리가 서로를 적이라 믿게 만드는 마음의 함정> 커트 그레이, 김영사 😡 바야흐로 정말 분노가 만연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 같다. 뉴스를 봐도, SNS를 봐도, 심지어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주 화가 나 있는 듯 하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사회적 이슈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아주 사소한 말투 하나 때문에도 우리는 쉽게 상대를 판단하고 미워한다. 가끔은 나 역시 그렇다. 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내가 옳기 때문이고, 상대가 틀렸기 때문이라고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참 반가운 책이 나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를 ‘정의감’보다는 ‘위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찾아 낸다. 사람은 자신이나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낄 때 화를 낸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거의 자동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고, 그 구도 안에서 세상을 판단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 매우 통찰력있는 책의 내용에 감탄했다. 😡 이러한 관점이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분노를 또 다른 방식으로 보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흔히 상대가 비도덕적이거나 무지해서 나와 다르게 생각한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상대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지키려 하는 사람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가장 큰 위험으로 느끼고, 누군가는 차별과 혐오를 더 큰 위험으로 받아들인다. 누군가는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권력이 약자를 짓누르는 상황을 더 두려워한다. 결국 같은 현실을 보고도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고 있는 ‘위험’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 나 역시 어떤 주장이나 태도를 마주하면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생각하지?”라고 쉽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러한 말 속에는 어쩌면 “나는 더 합리적이고, 저 사람은 덜 생각한다”라는 오만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내 속에 전제되어 있던 그런 자만심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그렇다고 이 책이 상대를 무조건 이해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또 아니다. 모든 의견이 똑같이 옳다는 하나마나 한 양시론을 펼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상대가 무엇을 해롭다고 느끼는지, 무엇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 먼저 보자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팩트만으로는 사람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흔히 정확한 자료와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면 상대가 생각을 바꿀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사람은 사실보다 먼저 자신의 경험, 불안, 소속감, 가치관을 통해 세상을 해석한다. 그래서 데이터는 때로 설득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 확신을 강화하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요즘의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도 그렇다. 정보를 몰라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서로 다른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에 싸우는 것일지도... 😡 화가 잔뜩 난 사람에 대해 이제는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겠다. "저 사람은 무엇을 위험하다고 느끼는 걸까?"라고 말이다. 누군가의 분노 뒤에 숨겨진 두려움은 무엇인지, 그러한 불안이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시끄럽고, 우리는 너무 쉽게 서로를 미워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시대에 이 책은 조금 느린 태도를 권한다. 바로 판단하지 말 것. 상대를 악으로 단정하기 전에, 그가 무엇을 해롭다고 느끼는지 생각해볼 것. 그리고 나의 분노 역시 언제나 완벽하게 정의로운 것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할 것. 쉽지는 않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그러한 포용력과 겸손함일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은 김영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gimmyoung #나와당신은왜분노하는가 #커트그레이 #김영사 #서평단 #북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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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가 있고 전문적인 내용이라 읽는데 오랜 시간 걸리긴 했지만 막상 읽다보면 어렵진 않고 매우 재미있다. 특히 요즘은 흑 아니면 백, 내 생각과 다르다면 적으로 쉽게 치부해버리는 현상이 워낙 많지 않나. 우리 모두가 분노하는 이유를 도덕적 관점에서 가설을 세워 입증하는 방식의 책이다. 분노의 원인을 이렇게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일이 있었던가. 정말 흥미로웠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고 작가는 분노의 원인을 '위협'에서 찾는다. (매 챕터마다 띠용!하는 주제가 나온다. 분명 그럴싸한데 읽기 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랄까. 난 얼마나 편견에 휩싸여 있었던지!) 사람은 어떤 포인트에서 위험을 느끼는가? 위험성에 대한 판단이 인간의 본성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드러낸다고 한다. 실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처럼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일부 무식하게도 여긴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자꾸 엉뚱한 의견을 내놓고 헛소리를 한다고 느낀다는 것. (ㅋㅋㅋ) 이 책으로 깊이 있게 분노의 근원을 따라간 사람은 깨닫게 된다. 정치 성향이 다르거나, 가치관이 달라 나와 언쟁을 일으키는 사람 역시 사실은! 나와 비슷한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위험'을 느끼는 포인트가 달라 각자의 의견이 나뉘지만 실은 모두가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거라는 걸. 그리고 이 위험 모두 객관적인 지표가 아닌 각자의 경험과 신념에 따라 다르게 지각되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위험을 다르게 판단하고, 의견이 갈리고, 분노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분열과 혐오가 기본이 된 세상에서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능력은 꽤 까다로운 기술이라 고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와 같은 생각만을 가진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세상이 정말 아름다울까?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다채롭게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거 아닐까. 원인을 알면 해결 방법이 보인다. 내 관점에서 벗어나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이 세상을 얼마나 다정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 세상은 제법 기대가 되는데??!!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하며 흥미롭게 읽었지만 읽은 후 생각을 정리하려고 글로 적어보니 훨씬 더 재미있고 유익했던 독서였다는 기분이 든다. 편 가르기가 취미인 사람들에게 필독을 권하고 싶다.
#커트그레이 #나와당신은왜분노하는가 #김영사 @gimmyou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