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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sonnet)는 14행의 짧은 시로 이루어진 서양 시가이다. 각 행을 10음절로 구성하며, 복잡한 운과 세련된 기교를 사용한다. 13세기에 이탈리아에서 발생하여 단테와 페트라르카에 의하여 완성되었으며, 셰익스피어·밀턴·스펜서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릴케 시집《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는 신화 속 오르페우스를 호명 하며 시가 삶과 죽음을 넘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노래한 연작시집이다. 릴케가 세상을 뜬 1926년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마지막 시집을, 여성적이며 섬세하고 아름다운《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읽는 계기가 된 건, 어쩌면 기쁨이다. 옮긴 이는 《기도시집》의 신,《두이노의 비가》의 천사,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의 오르페우스, 세 존재의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이들은 그리움이자, 영감이자, 시인의 모범이라고, 시인이 이 지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끝없이 상기하는 존재들이라고, 한마디로 창조성의 원천이자 영감의 근원이라고, 정답게 알려준다.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는 뮈조성 한 곳에서 1922년 2월 불과 20여 일 만에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2월 2일부터 23일에……. 폭풍과 같이 불어닥친 영감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릴케는 오르페우스에 대해 일찍이 관심을 가졌다. 오르페우스나 그리스도를 그는 같은 선에 놓고 본다. 그에게는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보편적 종교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끝에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첫 번째 소네트는 오르페우스의 신화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저기 한 그루 나무가 솟아올랐다. 오 순수한 승화여! 오 오르페우스가 노래한다! 오 귓속의 우람한 나무여! 그리고 만물은 침묵했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과 눈짓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고요 속의 짐승들이 동굴과 둥지에서, 맑게 풀려난 숲 밖으로 몰려나왔다. 그들이 그토록 잠잠했던 것은 꾀를 부리거나 불안해서가 아니라,
다만 듣기 위해서였다. 포효, 외침, 울부짖음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무의미해 보였다. 거기 이것을 받아들일 오두막 하나 없던 곳,
가장 어두운 욕망으로부터의 피난처, 입구의 기둥들이 흔들리는 그곳에 그대는 그들을 위한 경청의 신전을 세웠다.
첫 소네트의 첫 문장, ‘저기 한 그루 나무가 솟아올랐다’, 은 이 시집의 정수일 것이다. 모든 것을 불과 며칠 만에 해낸, 이 시집의 원천이기도 하고. 물론 그가 기른 시의 나무는 그를 넘어서 잎이 돋고 열매를 맺을 것임도 시들을 읽으며 짐작할 수 있다. 오르페우스는 나무를 사랑한 신이므로. 현실과 상상 사이 경계를 지우고,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아 삶과 죽음의 본질을 노래하고 성찰하는 것이, 이 시집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바탕이기도 하다.
멀고 먼 곳의 고요한 친구여, 느껴보라. 너의 숨결이 여전히 공간을 넓히는 것을. 어두운 종루 그 들보 안쪽에서 너 자신을 울려라. 너를 갉아먹는 것이
그 영양분으로 강한 것으로 자라나리라. 언제나 변용 속으로 들어가고 나와라. 너의 가장 쓰린 경험이 무엇이던가? 맛이 쓰다면, 너 자신이 포도주가 되어라. - 마지막 소네트의 일부
이 마지막 소네트는 작품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시인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이 시의 내용이다. 1부 26편과 2부 29편, 총 55편의 소네트에서 릴케의 주된 관심사는 삶과 죽음의 공동 관계다. 릴케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만나 느끼고 그들의 신비로움을 시적으로 변용 하리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것은 감각의 신비한 만남이기도 할 터. 시인의 시는 땅속의 물이 되어 영원히 흐르고 그 졸졸대는 소리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독자들에게도 들려주는 감미로운 소리일 터. 릴케는 평생 고독한 방랑자로 살며 실존의 근원적 이유를 추구하였다 한다. 이런 그의 시는 고독과 불안이 일상이 된 현대인에게 작은 위안과 구원의 가능성을 선사하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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