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1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의 휴먼, 어디에 있나요?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의 휴먼, 어디에 있나요?" 내용보기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는 원래 러시아의 음악과 차이콥스키Tchaikovsky와 다른 스펠링의 차이콥스키Czajkowski였다. 하지만 출판사의 권유로 영미권에게 더 친숙한 철자를 쓰자고 해서 바꿨다고 한다. 그는 SF 부문에 세계 3대 상인 아서. C.클라크 상, 휴고상 을 수상했고, 2025년에는 이 작품과 또 다른 작품으로 두 작품이 휴고상 최종 부문에 오른 기록도 가지고 있다. 원제가 서비스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의 휴먼, 어디에 있나요?" 내용보기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는 원래 러시아의 음악과 차이콥스키Tchaikovsky와 다른 스펠링의 차이콥스키Czajkowski였다. 하지만 출판사의 권유로 영미권에게 더 친숙한 철자를 쓰자고 해서 바꿨다고 한다. 그는 SF 부문에 세계 3대 상인 아서. C.클라크 상, 휴고상 을 수상했고, 2025년에는 이 작품과 또 다른 작품으로 두 작품이 휴고상 최종 부문에 오른 기록도 가지고 있다. 원제가 서비스 모델Service model인 이 작품은 앞에서 말했듯이 휴고상 그리고 로커스상 아서 C. 클라크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에 대한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도 어떻게 스포일을 제거하며 이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게 도와줄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 정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이고, 이것이 시사하는 말을 현대인이 꼭 명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찰스는 장원의 저택에서 주인님을 모시는, 개인 봉사에 특화된 정교한 서비스 모델 인 시종로봇이다. 이 소설 안에서는 그냥 로봇이 아니라 인간 멸망 수준에서 가장 최종적으로 발달된 AI 로봇이다. 그는 주인님의 수염을 깎는 명령을 수행하고 있다가 1인치, 2.54cm의 차이로 주인님의 대동맥을 끊어버린다. 그는 입력된 명령들을 계속 수행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경찰 로봇의 조사를 받고서 센트럴 서비스에 진단조사처 그 중 폐기 관리처로 출국도 하게 된다. 하면서 그는 더 웡크 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왜 그런 오류를 저질렀는지 그리고 자신의 존재 목적인 고용되어 시중을 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그는 센트럴 서비스에서 보존 농장 프로젝트로 그리고 거기에서 중앙도서관 아카이브로 이동한다. 각각 장소에서 그리고 장소를 이동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은 마치 고전 소설 속의 우화도 같다. 이렇게 변동되는 장소에서 여러 가지 것을 만나면서 경험을 쌓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여지는 어리석은 세상의 세태들. 동반자인지 뭔지 모를 웡크는 세선이 멸망했으며 그 원인을 알기 위해서  아니 나중에 가서는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을 확인받기 위해서 찰스 아니 이제는 이름이 없었다가 언찰스Uncharles가 된 이 AI 로봇을 끌고 아니 쫓아다닌다. 


황야로 나가게 되고 인간을 만나게 되고, 군대 로봇을 만나게 되고, 그리고 신을 만나게 된다. 이는 마치 요한이 광야에서 신의 부름을 듣고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읽고 나서 보니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기다리지만 않고 찾아 나서긴 했지만 부조리함은 바뀌지 않는다.


 가장 재밌었던 파트는, 거짓말쟁이의 역설 제노의 역설 테세우스의 배와 같은 패러독스가 나왔던 도서관이었고, 거기서 논리 루프에 빠져서 다운이 되는게 꼭 컴퓨터 같아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지면서 현재의 상황과 어쩜 그렇게 닮아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웠던 군대 로봇 파트였다. 왜가 아니라 군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고 지형에 맞춰서 전투를 하는 게 아니라 매뉴얼 시나리오에 맞춰서 지형을 변경해서 전쟁을 하는 것은 마치 거의 한 달이 된 트럼프의 이란 전쟁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쟁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폭격을 했던 것.


 여하간 맨 마지막에 만난 신. 버트란드 러셀은 "가장 훌륭한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가장 지능이 뛰어나고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인간 스스로 파멸할 수 있는 길이었던 것이다. 마치 공원에 노숙자들이 잘 수 없게끔 뾰족한 쇠를 박는 것이 노숙자들을 돕는 일보다 더 급했던 것 처럼. 



 내 책은 깨알같은 유머와 풍자 때문에 포스트잇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맨 처음에는 왜 이런 여정을 시작했는지 왜 아무도 인간이 반응하지 않는지가 답답했고 배경이 궁금했지만 저자가 맨 마지막에 풍자와 은유로 끝내지 않고 명확하게 주제를 전달했던 것이 고마웠다.


목적이 있어서 그것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왜 그래야 되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삶이 중요한 것 같다. 


꽤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다정하자 서로에게. 

YES마니아 : 플래티넘 k*****k 2026.05.0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휴먼, 어디에 있나요
"휴먼, 어디에 있나요" 내용보기
장강명 작가의 올해의 소설이라는 찬사로 무척 기대를 하며 읽은 소설인데, 특이한 점은 5개의 장의 부제가 크리스티, 카프카, 오웰, 보르헤스, 단테의 작가명을 활용하고, 이야기의 흐름도 그 작가의 작풍과 유사하게 전개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이야기를 여긴 1장과 마지막 5장이다. 1장은 주인공 로봇 (언)찰스가 주인을 살해하면서 발생하는 로봇만
"휴먼, 어디에 있나요" 내용보기

장강명 작가의 올해의 소설이라는 찬사로 무척 기대를 하며 읽은 소설인데, 특이한 점은 5개의 장의 부제가 크리스티, 카프카, 오웰, 보르헤스, 단테의 작가명을 활용하고, 이야기의 흐름도 그 작가의 작풍과 유사하게 전개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이야기를 여긴 1장과 마지막 5장이다. 1장은 주인공 로봇 (언)찰스가 주인을 살해하면서 발생하는 로봇만 존재하는 인류가 없는 세상에서 좌충우돌한 상황이 계속되는데,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왜 충실한 로봇 같은 (언)찰스는 주인을 살해했는가? 그리고 로봇들에게 명령하는 인류는 모두 어디로 사라져서 로봇들이 수많은 오류 속에서 방황하는가?


2~4장은 위에서 언급한 좌충우돌하는 상황이 점차 증폭되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그 속에서 더 윙크라는 특별한 로봇의 존재가 언찰스가 스스로 판단하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냐고 꾸준히 질문하고, 언찰스 자신도 꾸준히 자신 나름의 사고능력을 키우는 모습을 보여 준다.


마지막 장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질문의 답을 제공하면서도 (떡밥 회수!), 동시에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존재나 종교(신앙)에 깊게 성찰하도록 하는 질문을 하는 지적인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SF가 <도망친 로봇>이나 <클라라와 태양>으로 모두 로봇이 주인공인 소설인데, <휴먼, 어디에 있나요?>도 같은 로봇이 주인공이면서 최고 점수를 줄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라 생각된다. 또한 이야기 속 인류가 사라진 세상에서 수많은 오류 속에서 로봇들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최근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는 AI의 위험성도 제시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이 점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소설이라 생각된다.

j********h 2026.05.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블랙 유머가 넘치지만, 탄탄함과 따뜻함(?!)을 모두 갖춘 SF
"블랙 유머가 넘치지만, 탄탄함과 따뜻함(?!)을 모두 갖춘 SF" 내용보기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 아포칼립스의 세계는 꽤나 익숙하다. SF물, 좀비물, 재난물 등...<휴먼, 어디에 있나요?>가 그리는 미래 역시 매우 독특하거나 기억에 남는 세계관이라고는 할 수 없다.그러나 작가 차이콥스키는 그 익숙한 세계관을 그리는 대신, 다른 더 중요한 것들을 챙기는 데 성공한 듯하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를 보듯 주인공 로봇은 차이콥스키가 그리는 세계관의
"블랙 유머가 넘치지만, 탄탄함과 따뜻함(?!)을 모두 갖춘 SF" 내용보기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 아포칼립스의 세계는 꽤나 익숙하다. SF물, 좀비물, 재난물 등...
<휴먼, 어디에 있나요?>가 그리는 미래 역시 매우 독특하거나 기억에 남는 세계관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작가 차이콥스키는 그 익숙한 세계관을 그리는 대신, 다른 더 중요한 것들을 챙기는 데 성공한 듯하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를 보듯 주인공 로봇은 차이콥스키가 그리는 세계관의 곳곳을 여행한다. 작품의 분위기는 <걸리버 여행기>만큼 날카롭고 차갑고 냉소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걸리버 여행기>가 생각날 정도의 따뜻한(?)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를 던진다. 너무도 잘 쓴 블랙 유머 소설들은 등장 인물들을 모두 비웃고 보잘것없는 인물로 전락시키고는 하는데, 놀랍게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습긴 하지만 보잘것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이것을 잘 해내는 것 또한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유머란 사람들이 익숙해하는 공통의 무엇 위에서 자라야 하므로, 어쩌면 익숙한 설정, 익숙한 전개가 바탕이 되는 것은 오히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주인공 로봇이 방문하는 세계는 하나 같이 모두 뒤틀려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 장소들은 모두 어떤 작품들을 모티프로 삼았으며 그 점을 감추지 않는다. 이 점 역시도 매우 유쾌한 지점이다. 원본의 내용들을 어떻게 SF 느낌으로, 또는 작가 고유의 느낌으로 바꿔 유머 있게 전달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정말이지 감탄하며 즐겁게 읽을 수밖에 없다.
로봇들은 모두 자신의 임무 수행에 충실하지만, 덕분에 각각의 조그만 사회들은 모두 뒤틀려 버리고 만다(장원 저택, 진단 조사처, 도서관 아카이브, 군인 로봇 집단). 인간들의 세상 역시도 마찬가지(인간 보존 농장, 쇠락한 인간 무리)다.
주인공 로봇 언찰스와 파트너 더 웡크의 캐릭터 역시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고지식하며 정해진 로직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중요한 때 '로직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하는 로봇 언찰스, 탐험심 넘치는 말괄량이 더 웡크, 이 둘은 작품의 위트 있는 분위기에서 겉돌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이런저런 특이한 설정보다도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가는 안정적인 서사의 힘, 고전의 SF적인 재창조, 조금은 따뜻한(?) 블랙 유머를 보고 싶은 이라면 이 SF를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

s*******1 2026.05.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휴먼, 여기 있음.
"휴먼, 여기 있음." 내용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이 책을 펼친 독자들은 대부분의 인간들이 사라지고 사회 시스템이 붕괴한 세상에서 시종 로봇 언찰스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그는 주인을 살해하고, 자신의 오류에 대해 점검하기 위해 진단조사처에 출두하며, 더 웡크라는 로봇(이라고 그는 판단했으나 사실은 인간인)을 처음 마주치게 된다. 진단조사처에서는 제대로 된 진단이 이루
"휴먼, 여기 있음." 내용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을 펼친 독자들은 대부분의 인간들이 사라지고 사회 시스템이 붕괴한 세상에서 시종 로봇 언찰스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그는 주인을 살해하고, 자신의 오류에 대해 점검하기 위해 진단조사처에 출두하며, 더 웡크라는 로봇(이라고 그는 판단했으나 사실은 인간인)을 처음 마주치게 된다. 진단조사처에서는 제대로 된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고, 인간 주인을 위해 봉사하도록 설계된 그는 죽은 주인을 대신해 새로 모실 수 있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대부분의 인간이 사라져버린 세상을 이 곳 저 곳 헤맨다. 그리고 그와 계속 조우하게 되는 더 웡크라는 인물은 사람들이 죽고 사회 시스템이 붕괴한 원인을 찾으려 하며 언찰스의 행보를 함께하게 된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한 로봇과 한 인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버디물이라고 요약해도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소설은 시종일관 경쾌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이 '꼬마 시종 로봇' 언찰스의 여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독자들을 이 세계가 맞닥뜨린 문제가 어떤 것일지에 대해 몰입하게 만든다.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수많은 사건들이 쉴새없이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흐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점은, 그 여러 사건들이 바로 근본적으로는 공통적인 한 가지 원인을 가지고 있고 독자들이 이를 짐작하게 만들지만 함부로 확신은 할 수 없도록 하는 스토리텔링에 있었다.



또 블랙코미디의 원산지에서 나온 소설답게 예의 바른 말투로 비꼬는 문장들이 가히 예술적이었다. 특히나 화자가 로봇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가치중립적인 문장들로 돌려까는 묘사들이 인상적이었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은히안)의 유머 감각을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동시대성까지 겸비한 이 작품에 반가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실제로 작가인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도 은히안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소설 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의 유머 감각은 단순히 블랙코미디스러운 표현 방식이나 서술에 그치지 않고 서사의 구성에서 진가를 발한다. 각 챕터에는 작가들의 이름이 붙어있다(숫자나 문장 부호를 섞어 쓰는 해커들의 암호 체계인 릿스피크(Leetspeak)으로 표기되었다고 한다). 옮긴이의 말에도 언급되었다시피 각 작가의 대표작들을 노골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1부 KR15-T: 애거서 크리스티(애크로이드 살인사건)

2부 K4FK-R: 프란츠 카프카(성)

3부 4W-L: 조지 오웰(동물농장)

4부 80RH-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바벨의 도서관)

5부 D4NT-A: 단테 알리기에리(신곡: 지옥 편)



애거서 크리스티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카프카는 [성],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 마지막으로 단테는 [신곡: 지옥편]을 차용하고 있다. 이 작가들의 대표작의 특징적인 요소만을 가져와 전개를 위한 도구 정도로 사용하는 걸 넘어서 전체적인 시놉시스와 비슷한 구조의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냈음에도 전혀 억지스럽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고, 또한 작품의 전체 서사 구조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원작을 아는 이들 입장에서는 단순한 패러디나 2차 창작이 아닌 전혀 다른 이야기면서도 동시에 그 작품과의 연결성이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감탄하고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이런 방식의 '낯설게 하기' 기법은 또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작가의 유머 감각에도 불구,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작중 등장하는 로봇들은 대부분 3차원 형체를 갖춘 피지컬 AI다. 인간 형태의 휴머노이드들도 있고 각자의 사용 목적에 맞게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다. 분명 조립 단계에서부터 인간이 사용하고자하는 목적대로 프로그래밍되어 있기에 그 의도 이외의 가치 판단을 하거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의 고지식하고 답답한 프로그램 이면에는 어떤 생동감마저 느껴질 만큼 욕망과 희노애락 같은 감정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의도치 않은 주인 살해 후 ' 미고용' 상태에서 절박하게 끊임없이 자신이 봉사할 수 있는 인간 주인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 언찰스,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워시번 박사를 경멸하는 집행 로봇 애덤, '의미'를 갈망하는 견인차 94호, 끊임없이 다른 로봇들을 자신의 내부로 집어삼키며 몸을 부풀리는 유봇 왕과 그의 부하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혼란을 야기한 '신'까지. 


분명 이들은 작중 등장하는 주인공병에 감염된 것도 아니고 인류가 프로그래밍한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불어넣어진 생명력은 그 이상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인간은 로봇 청소기에게조차도 의식이 있는 것처럼 대한다. 대청소를 마친 로봇 청소기에게 고생했어, 얼른 밥 먹자 라며 충전기에 꽂아둔다거나, 자신과 함께 지뢰 제거 임무를 수행하던 로봇 군인이 고장나자 전우를 잃은 것처럼 울었다는 군인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정작 자신과 99.9% 동일한 DNA를 가진 같은 종족이자 의식이 있고 스스로의 존엄성에 대해 인지하는 같은 인간을 존중하는 데에는 비교적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증오하고 깎아내리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동안 인류 종말 원인은 3차 세계대전과 같은 핵전쟁 발발, 호전적인 외계 종족의 침략, 소행성 충돌,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 등이 지목되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AGI, 즉 초인공지능이 자아와 자유의지를 가지고 인류를 몰살하는 시나리오가 유행했다.


그리고 현재 2026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제와 업무에 사용할 뿐 아니라 대화형 AI 프로그램에 애착을 가지고 친구처럼 여기기까지 한다. 그만큼 AI는 실생활에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AI는 실존적 위협이 되어 인류의 종말 시나리오도 새롭게 바꿔놓고 있다. 자아가 생긴 초인공지능이 등장하기도 전 이미 AI 도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 수많은 사람들과 극심해진 빈부격차,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 등으로 인류가 자멸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계산기로 시작했던 컴퓨터는 이제 언어를 번역하고 그럴 듯한 문장들로 소설을 쓸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는 등 예술 분야까지 영역을 확장했으며 심지어는 일종의 자기복제처럼 프로그래밍 코드까지 직접 짜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AI가 우리 삶에서 생계 수단뿐 아니라 존재 가치 증명, 자아 실현의 장, 타인과의 교류를 제공하는 직업을 점차 앗아간다. 이미 경력과 경험을 쌓은 이들은 AI를 보조도구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고, 이제 막 사회에 나와 아무런 업무 경험이 없는 이들은 현재 AI가 하고 있는간단한 반복적인 업무마저 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붕괴한 채용시장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이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현재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유명 SF 작가인 테드 창이 뉴욕 타임즈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저는 인공지능에 대한 대부분의 두려움이 자본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기술에 대한 대부분의 두려움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술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이나 불안은 대부분 자본주의가 기술을 우리에게 불리하게 이용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나 불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술 자체가 근본적으로 사람들을 실직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비용을 절감하고 싶어하고, 그 절감을 위해 사람들을 해고하는 것입니다."


(출처: https://www.nytimes.com/2021/03/30/podcasts/ezra-klein-podcast-ted-chiang-tran.html )


정확히 이런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고 경고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자본주의에 맞서 나의 주체성과 존엄을 지키고 또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지금 나도 AI가 주는 편리함에 매몰되어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잊어버리고,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존중을 놓아버린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전히 의문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답을 찾은 것 같다. 


이러한 SF 사고 실험은 새로운 기술이나 발견이 인간과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예측하며 인류가 잠재적 위협을 피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게 만든다. 유머를 섞어 재기발랄한 블랙코미디 로봇 이야기인 척 했지만 실질적으로 인류가 봉착한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쟁점을 제기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그리고 거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문장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만약 네 철학이 사람을 로봇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었다면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로봇들을 끌어모으고 사다리를 치워 버린 뒤 네 거주지의 문을 걸어잠글 수도 있었겠지. 그들이 어느 쪽을 선택했을 것 같으냐."





YES마니아 : 플래티넘 g*******0 2026.05.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