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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은 약 150년 전에 발표된 고전이다. 이 책의 저자, 막스 뮐러는 사실 이 책의 저자가 아니고, 저자를 알 수 없는 원고를 받아 정리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튼, 이 책은 이름 모를 그 저자의 자전적 사랑이야기이다. 줄거리는 화자가 소년시절 우연히 백작의 저택을 방문하여 알게 된 소녀 '마리아'를 사랑한다는 소재를 가지고, 그녀의 죽음으로 순수한 사랑을 회상하는 여덟 개 과거의 화상으로 이루어져있다. 주인공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오직 그녀 곁에서 사랑하고픈 생각으로 사랑에 관해 깊이 사색한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 뿐 아니라 수록된 나오는 시들을 통해 철학적인,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사랑을 책을 통해 논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인연에 대한 사랑을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승화시킨다. 또한, 주인공의 과거들, 그러니까 여러 화상들을 통해서 '아름다운 이상적 사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논한다. 또한, 이룰 수 없었던 사랑에 대한 회환, 그리움, 애절함도 담아내는데, 이 부분들은 내용도 좋지만 문체의 아름다움이 독자를 압도해버린다. 아름다움을 엮어낸 예술집이라고 해야 적당할까. 독일인의 사랑이라 하면 굉장히 딱딱하고 (프랑스와 같은 표현에 개방적인 나라에 비해서는) 무미건조하리라 생각했지만, 이 책에선 그러한 오해를 뛰어넘고 철학적 사고가 잘 발달된 독일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내용적인 측면도 정말 재미있었다. 빈부의 격차 때문에 운명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그들의 현실도 그렇고, 슬픔을 슬픔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들의 사랑이 이 소설을 읽는 와중에 슬프게 했다. 사실 흔한 소재임에도 한 장 한 장에 문학성이 느껴지는 그의 글 솜씨에 ‘과연 고전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 책이 단순한 설렘이 아니라,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타적인 인간애로 향하는 작가와 주인공의 생각 덕분일 것이다. 작가와 주인공은 우리에게 더 큰 의미의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다. 연인을 넘어, 타인을 향한, 사랑. 이렇게 이상적이고 아름다움만을 묶어놓은 작품만큼, 세상의 사랑이 가득 모인 책이 또 있을까. 달콤하고 애절하며 너무 아름답다. 이런 순수함을 담은 작품들에게서 받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사랑이, 바로 사랑받길 바라는 이들이 꿈꾸는 이상적 사랑이 아닐까. 저자와 주인공이 말하는 이 이상적 사랑은, 헌신을 기반으로 한 사랑이다. 아가페적 측면의 사랑이라기보다는, 어떨 때에는 나보다는 사랑하는 이를 배려하고 헌신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의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어떤가? 사랑하는 사람의 조건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랑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 자체만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랑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저자는 모든 화상에서 순수한 사랑을 외쳤지만, 순수한 사랑을 할 시기들은 한정되어있고, 군대에 다녀오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회에 적응되어 갈수록, 사람들은 순수의 빛들을 잊어갈 것이 분명해보이기 때문이다.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나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진실과도 같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 크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조차도 나는 나의 이기심과 개인적인 기억으로 인한 상처 등으로 인해 사랑다운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다. 나는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몰라서 고통스러워하며, 지금도 그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하염없이 감동받고, 이 순수함을 닮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들지만, 이 순수한 ‘사랑’을 비순수한 사회 속에서, 사랑다운 사랑을 주지 못하는 내가, 이룩할 수 있을까? 그래도, 독일인의 사랑을 정독함으로써 이상적 사랑과, 그 순수함을 간직하고, 언젠가는 나도 진정한 사랑을 주리라고 마음속에 담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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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같은 순수한 사랑을 떠올리며(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한없이 어리기만 했던 나도 어느덧 스물 둘. 혹자는 아직 어리다고 하겠지만 난 내 자신을 더 이상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는 어린 아이처럼 사랑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눈에 쓰인 건 성숙일까 불순일까. 순수한 소녀의 고백에 부끄러워하던 여덟 살의 나는 현재 없다. 짝사랑 때문에 밤잠 설쳐가며, 썼던 손편지를 지우고 다시 쓰는, 열 살의 나는 없다. 꿈꾸던 사랑을 쟁취한 후, 통화의 쑥스러움을 못 이겨, 메신저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열 세 살의 나는 없다. 사랑과는 상관없는 제 3자와의 관계를 걱정하며, 마음을 줄까, 말까? 마음으로 장난치는 스물 두 살의 내가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순수한 사랑을 한다. 불안과 빈곤을 가지고, 불타는 듯하며, 들끓어 스스로 말라붙는 어른의 사랑과는 다르다. 아이들은 순수하고 완전하며, 즐겁게 사랑한다. 무엇보다도 상대방과의 애정 외의 불필요한 사항, 이른바 조건 같은 것에 초연하다. 「독일인의 사랑」 속의 ‘나’가 그런 존재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일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후작 부인의 손등에 키스하며 애정을 표현하지만, 이는 후에 아버지, 어머니께 꾸중을 듣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신분이라는 외적 상황에 연연하는 세상, 조건이라는 올가미에 걸린 ‘어른들’ 속에서 ‘나’의 순수한 사랑은 모난 돌처럼 다듬어져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또한, 타인과 나를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공동체 속에 포함된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나’는 이 특성을 잘 드러내는 아이이다. 길거리에서 만난 한 여인, 그녀는 남편이 감옥 안에 있고, ‘나’의 금팔찌로 남편을 구할 수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나’는 기꺼이 팔찌를 건넨다. 자신에게 이 뱀팔찌는 어머니를 놀래켜 줄, 이른바 유희의 요소에 불과하지만, 그녀에게는 감옥 안의 남편을 구해줄 열쇠가 될 테니까. 그녀와 나는 별개의 인간이 아니니까. 이처럼 아이들은 순수하며, 타인과 나를 구분하지 않는 사랑을 표출한다. 그렇다면 이와 대비되는 어른들은 왜 어른이 되었나? 누구나 순수한 사랑을 표현하는 시절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들도 신분에 대한 제약보다 사랑의 표현을 더 우선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변화의 주체인 세상은, 아이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가르친다. 사랑만을 생각하던 아이에게 외모, 나이, 학벌, 신체, 집안 등 무겁고도 별개인 요소들을 기준으로 만들어, 기계라도 된 듯 기준치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불량품으로 치부해 버리도록 만든다. 중요한 것은 나와 상대방의 사랑이었을 텐데, 세상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 순수한 사랑의 주체를, ‘현실’이라는 족쇄에 채워 필요에 따라 사랑을 하는, 사랑의 기계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면, 다시 순수한 사랑을 할 수는 없을까? 아니다. 순수한 사랑의 방법은 이 책에서 친절히 제시해준다. 누군가를 사랑하되, 조건을 넘을 만큼 사랑을 보일 수 있다면 다시 순수한 사랑을 펼치게 된다. ‘마리아’를 사랑했지만, 신분이라는 장벽과 질병이라는 장애물에 굴복했던 ‘나’는, 혼자만의 여행을 하며 그녀의 필요성을 체감한다. 그리고 순수를 펼쳐 신분의 장벽을 깨부수고, 질병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어 사랑을 해낸다. 끝내 ‘나’는 순수를 회복한 셈이다. 마리아는 ‘나’의 순수를 회복시키는 존재이다. 그녀의 이름마저 이를 증명한다. 처녀로 아이를 잉태하여 예수라는 순수를 낳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동명임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건을 넘어 극한의 사랑을 펼칠 때 비로소 순수가 되살아나게 된다. 이제 ‘나’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가 된 후, 남은 마지막 과제는 무엇일까?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 또한, 순수한 사랑을 펼치게끔 하는 일이 마지막 과제이다. 세상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티끌 하나 없는, 천사 같은 아이가 가진 사랑으로, 세상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어른을 다시 아이로 성장시키는 일. 이를 통하여 세상은 조금이나마 함박눈처럼 포근해지고 따뜻한 사랑을 펼치게 되지 않을까? ‘나’가 다시 순수한 사랑을 통하여 더욱 성장한 아이가 되었듯이, 어른이 된 나를 어린 아이로 만들어 줄 ‘마리아’를 만나고 싶다. 순수한 사랑을 나눌 ‘마리아’를. 그리고 아이 같은 순수함을 가진 사람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같이 사랑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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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은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종교학자였던 막스 뮐러가 남긴 유일한 문학 작품이자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읽힌 독일문학작품으로 알려져있다. 성장 과정에서 세상을 배워나가는 순수한 소년과 병약하지만 지성과 맑은 품성을 갖춘 소녀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넘쳐나는 통속극 같은 사랑 이야기도 아니며 도심 환락가를 열기로 달뜨게 하는 욕정의 사랑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애정을 담은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며 철학과 종교와 예술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두 남녀의 이야기일 뿐.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 궁정에 가게 된 소년은 후작 부인의 인자한 미소에 끌려 그녀에게 입맞춤을 한다. 이로 인해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이난 소년은 어렴풋이 계급사회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꼈더라도 결코 마음대로 표현해서는 안되는 타인이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소년은 궁정을 드나들며 후작의 병약한 딸과 형제들과 어울리며 유년기를 함께 보냈으나 고등교육 시설에 진학하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는 단절되고 만다. 여름 방학을 맞아 고향을 찾은 소년은 어린 시절 자신이 동경했던 소녀의 존재를 떠올리게 되고, 소년이 고향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소녀의 초대 편지로 두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그 후 이상적인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해, 철학과 종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상대를 깊이 이해하게 되고 서로에게 깊이 빠져든 두 사람의 사랑은 소년의 고백과 소녀의 키스로 완성된듯 했으나, 바로 다음 날 병약했던 소녀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비교적 단순한 플롯을 가진 160페이지 정도 분량의 이 소설이 내게 어떤 큰 의미로 다가왔던 건 두사람의 사랑이 갖는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한 소년이 태어나 자기 자신과 타인의 존재를 자각하고, 삶에 대해 자기만의 통찰을 얻어가는 과정이 마치 청소년 시절 온갖가지 삶에 대한 상념들에 사로잡혀 있던 내 모습 같다는 모종의 공감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소년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소설인 만큼 매 순간 소년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어떨 때는 '그래 맞아. 나도 이런 생각 했었던 순간이 있었지.' 한다던지 혹은 '나도 이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어떻게 그런 추상적으로 떠다닌 생각들을 이렇게 글로 콕 집어 쓸 수 있었을까.' 싶었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 소년에게 파도처럼 밀려든 수많은 추억들과 익숙함이 주는 향수에 대해 서술한 부분을 읽었을 때는 마치 내 어릴적 고향의 사립문에 발을 디딘듯한 묘한 향수가 내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또, 익숙함이 얼마나 큰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을 읽을 때는 매 휴가철마다 휴식을 위해 타지로 여행을 떠났지만 그 곳이 주는 낯섦이극복해야할 난관처럼 느껴져서 한숨을 토하던 우리 부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소설 속 두 주인공은 사랑에 대해서도 심오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이상적인 사랑에 대해서, 또 세상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 모두는 부모님의 완전 무결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고 그랬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의 형태가 다 그렇게 희생적이고 헌신적이며 무조건적일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몇 번의 이성과의 만남을 반복하면서 세속의 사랑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음을,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도 망설여질만큼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형태로 일그러진 사랑만이 이 세상에 팽배함을 깨달을 때 절망을 맛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소년과 소녀의 사랑은 다르다. 서로 만나 알게 된 두 영혼이 삶의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서로가 괴로울 때 서로의 버팀목이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위안이나 달콤한 근심이 되길 바랄 뿐 그 무엇도 상대에게 요구하거나 바라는 법이 없다. 그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삶의 기쁨이 되고 지탱할 힘이 되어주는 사랑. 온유하고 고요한 사랑. 청춘 남녀의 불타는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의 본질에 관해 보다 넓고 고차원적인 의미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한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http://blog.naver.com/quity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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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독일인의 정서가 담긴 혹은 독일인들의 사랑 문화가 반영된 정도의 사랑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와 어느 점이 같고, 다른지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책장을 넘겨갔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른 내용이 등장하였고, 주인공의 회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회상은 새로운 것을 접할 때의 즐거움과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 주인공은 지난 자신이 밟아온 행적을 되돌아보며 진정한 사랑과 헌신에 대한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문득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나는 나와 남의 구별을 언제부터 했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였다. 분명 나와 다른 사람 간에 구분이 존재한다. 내 것과 타인의 것이라는 사유재산의 의미도 우리 사회에는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갓난아기일 때 우리들은, 이 책의 주인공처럼 사람이나 남의 물건을 구별하여 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조금씩 커가며 사유재산의 개념을 알게 되고, 웃어른이나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배워가며 ‘누구나 겪지만, 아무도 볼 수 없는 거대한 난파’를 겪게 된다. 책에서 주인공이 후작 부인을 처음 뵐 때, 품에 안겨 볼에 뽀뽀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단지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지만, 무례한 행동이라며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고 만다. 그리곤 서러운 마음에 어머니에게 다가가 묻는다. “남이 뭐에요? 나를 예쁘게 봐 주고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라도 무조건 다 좋아하면 안되는거예요?” 이에 대해 어머니는 좋아하는 건 괜찮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는 건 옳지 않다고 한다. 현답이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대할 때 우리들의 솔직한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누가 정해 놓진 않았지만 약속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이런 암묵적인 약속은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되고, 지켜야 인정받는다. 어린 주인공이 아직 이 약속에 미숙해서 저지른 실수(?)는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에 귀엽게 보였다. 이후 주인공이 성장하고, 고향을 다시 내려왔는데, 어릴 적 함께 자주 놀았던 후작의 딸 마리아에게서 편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봄날 아침처럼 맑고 신성한 영혼을 가진 그녀에게 매료되어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를 만나러갔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심장병 환자인데다가, 그보다 신분이 높다는 사회적 제약마저 있다. 결국 마리아 담당 의사는 주인공 때문에 마리아의 병세가 악화된다고 이르며, 주인공에게 진정 마리아를 생각하고 위한다면 그녀를 만나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고, 주인공은 많은 고뇌와 괴로움 끝에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여행 중에 사랑하는 그녀가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보낼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에게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둘은 재회했다. 그리고 마리아는 주인공에게 나우시카 일화를 소개한다. 나우시카는 오디세우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곤 친구들에게 ‘저 남자가 나의 남편이 되어 함께 살면 좋겠어.’라고 속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에게는 부끄러워하며 ‘당신처럼 멋진 이방인을 집으로 데려가면 사람들은 남편감을 데려온다고 생각 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을 때, 그녀는 한마디 불평도 없이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이를 마리아는 즐거운 고백과 고요한 이별이며, 순수한 사랑이라며 그런 사랑을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여기서 주인공과 나우시카의 다른 점이 보인다. 그녀는 투병중 상태고, 사회적 신분도 높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조건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주인공이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아마 고향까지 따라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우시카보다 주인공같이 사랑하고 싶다. 장거리로 연애를 해도, 남자친구가 군대에 있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믿고 배려하고 아껴준다면 그 어떤 장애물이 그들을 갈라놓을 것인가. 얼마 전 2년 가까이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이 책을 좀 더 빨리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주인공은 그녀에게 고백을 하지만, 그녀는 거절을 했고 며칠 뒤 죽음을 맞이한다.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막을 내리지만, 사랑의 의미에 대해, 사랑의 조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앞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이 사랑하고 싶다. 대신 이전과 다르게, 주인공과 같은 순수함과 진실함으로 여러 환경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사랑을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