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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바라보던 나치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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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래도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국내 경제력을 빠르게 상승시키고 여기서 발생되는 사회적 불만은 유태인과 같은 일부 집단에 전가하는 근대화 공식을 만든 이들이 나치이자 히틀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식은 2차 대전 이후로도 아시아, 중남미, 동남아 등으로 퍼지며 끈질기게 이어갔다. 솔직히 박정희 대통령도 그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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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래도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국내 경제력을 빠르게 상승시키고 여기서 발생되는 사회적 불만은 유태인과 같은 일부 집단에 전가하는 근대화 공식을 만든 이들이 나치이자 히틀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식은 2차 대전 이후로도 아시아, 중남미, 동남아 등으로 퍼지며 끈질기게 이어갔다. 솔직히 박정희 대통령도 그 근거 및 토양은 히틀러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름 성공한 모방품이라 표현해도 될려나?  


그래서 그에 관련한 여러 책을 읽어보곤 하였다. 이 책도 그 중 하나로 제목이 흥미롭게도 "나치의 자식들"이다. 제목에서 얼핏 느껴질지 모르나...  내용은 전쟁이 끝난 후 40여 년이 지나 자식들은 당시 나치 아버지를 어떻게 보고 느꼈는 지를 추적하는 형식으로 챕터가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자식들 기억 속 나치 고위층 아버지는 평범한 아버지.. 그것이었다. 누구는 가족에 큰 관심없이 일에만 몰두하고 살았고 누구는 자상하게 가족과 아들을 보살피며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집안에서의 평범한 모습과 달리 바깥에서는 위대한 나치를 이끄는 악마가 그들의 또 다른 얼굴이다. 유태인을 학살하고 반대파를 죽이는 얼굴 뒤로는 평범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나치에 협력한 많은 인사들이 미국에 의해 발탁되어 그대로 고위층, 회사 기업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주변 국가의 눈치가 보이니 반성하는 척 할 뿐 실제 반성하는 것은 아니다. 전히 나치 문화는 남아 있고..  일부 독일인들도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잔혹한 나치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진실은 악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늘 계속해서 악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도 친일파 자손들은 지금도 그 때 그 시절에는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도 고위층 많은 수가 친일의 시절을 지닌 집단이 이어오고 있다. 과연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집안에서는 자상한 아버지... 아님 평범한 아버지였을까? 밖에서는 같은 민족을 때려 잡으면서도 말이다. 


현재 한국의 모습을 보며 한 자식이 바라본 친일 독재 아버지는 어떠 했을지 생각해 본다. 대부분의 나치 자식들과 큰 차이를 못 느끼겠지만..



추신 :


책 속에서도 몇 명의 자식만이 나치의 아버지를 부정하고 그의 죄 값을 위해 기도하며 살고 있다. 그나마 양심이 있는 인물인지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더 늦기 전에 이런 책 한 권 쯤 나올 때가 된 것 아닌가 싶다. "친일 자제들과의 인터뷰"... 말이다. 






s**********o 2013.12.17.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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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자식들은 왜 아버지를 옹호하는가
"나치의 자식들은 왜 아버지를 옹호하는가" 내용보기
독일은 20세기 초중반 유럽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장본인이었다. 물론 이런 식의 민폐를 끼친 것이 독일 하나만은 아니었지만, 특히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서, 6백 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거의 전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공모했던 인종학살 가해국으로서의 책임은 그 어떤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전쟁이 끝난 후 수괴였던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 수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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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20세기 초중반 유럽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장본인이었다. 물론 이런 식의 민폐를 끼친 것이 독일 하나만은 아니었지만, 특히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서, 6백 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거의 전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공모했던 인종학살 가해국으로서의 책임은 그 어떤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후 수괴였던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 수하에서 히틀러의 망상을 실행하는 데 기여했던 나치의 고위급 전범들은 재판에 넘겨져 심판을 받았다. 이 책은 그 1급 전범들의 자식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40년의 터울을 두고 아버지가 취재했던 내용을 아들이 다시 취재해 교차적으로 함께 엮은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들 전범의 자식들의 처지가 퍽 딱하다. 적어도 그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더구나 전쟁 당시 그들의 나이는 어려서 직접적인 관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그들을 낳아준 아버지에 대한 인간적인 정리 또한 쉽게 지울 수는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정은 딱 여기까지일 뿐이다. 그들은 나치가 유럽을 유린할 당시, 그들의 아비들이 수많은 국가로부터 강탈해 온 부를 누리며 즐거운 날들을 보냈다. 최소한 이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감은 느끼는 것이 인간다운 행동이 아닐까. 하지만 막상 취재를 해 보니 그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치 초기의 친위대장이었던 루돌프 헤스의 아들은, 전범재판으로 종신형을 받고 수감생활 중인 아버지가 석방되지 않는 것에 대해 연합군측의 음모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나아가 자신의 아버지가 ‘평화의 수호자’였다고 주장하면서 열렬한 히틀러 숭배자로 살았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은 걸 보면 애초에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식의 피해자를 공격하는 언사까지.


나치의 도살자 힘러의 딸은 아버지의 이름을 딴 책을 써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결국 이 책은 쓰이지 않았지만, 대신 그녀는 “조용한 손길”이라는 나치를 돕는 단체에 소속되어 이제는 늙고 병든 전직 나치들의 삶을 보살피는데 참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네오나치주의자들의 정치집회에도 종종 참여하면서 자신의 몸에 흐르는 아버지의 피를 드러낸다.


나치의 2인자였던 괴링의 딸은 여전히 아버지를 경애하는 이들의 호의를 넘치게 받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나치의 만행에 대해 어떤 의견도 내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친절했던 아버지와 대부 히틀러에 관한 기억만을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심지어 나치의 찬양자였던 음악가 바그너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나치의 자식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준다고 하니 이 동네도 아주 개판이다.


물론 좀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히틀러의 문고리 권력자였던 마르틴 보어만의 큰아들은 가톨릭에 귀의해 신부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묵묵히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예는 소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서술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자신도 그 시절 나치의 열렬한 숭배자였다고 고백한다. 비록 나치가 패망할 때까지도 여전히 나이가 어려서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몇 살만 더 먹었어도 기꺼이 기여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는 이들 나치의 자식들에 대해 조금은 연민이 담긴 태도로 묘사한다. 


아들 역시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상, 이 문제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쓰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일종의 국가적 망각을 선택했다고 분석한다. 나치에 관한 기억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도, 말하지도 말자는. 대신 그들은 경제발전을 선택했고, 오늘날 유럽의 손꼽히는 경제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일까? 이런 선택은 독일인들을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 아들의 지적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독일 사람들은 그래도 나치의 만행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배상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는 평과는 사뭇 달라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대표적으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게토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비석 앞에 무릎을 꿇은 일에 관해서도 저자는 당시 서독은 국제거인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과는 아니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증거로 당시 서독 안에서조차 여전히 옛 나치의 동료들이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집단적인 수치심과 죄책감의 상실, 이건 오늘날 다시 떠오르는 네오나치들의 극우적 행태를 설명하는 중요한 포인트인 듯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일제의 후예들과 당시 국내에서 호의호식하던 친일파의 후손들, 그 찬양자들이 여전히 이 나라 곳곳에서 떵떵거리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모습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암살당한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는 잘 알려진 제2차세계대전의 일제 측 A급 전범이었다. 전범의 후손이 집권여당의 수장이 될 수 있는 게 일본이라는 나라의 본질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김구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떠드는 친일 어용학자들이 설치고, 그 중 일부는 정부 내각에도 들어가는 망조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의 만행을 끝없이 부정하는 일제의 자식들은 나치의 자식들이 보이는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과거를 미화하고,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보이지 않게 만들려고 애쓴다. 여기에 돈 몇 푼 쥐어주면 과거 피해자의 자식으로 가해자를 옹호하는 비렁뱅이들은 넘치고 넘친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가해자들에 대한 냉혹하게 느껴질 정도의 단죄부터다. 이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이후 어떤 조치들도 이런 나치의 자식들, 일제의 찬양자들이 탄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역시 나치의 전범이었던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까지 가서 납치해 와 결국 자국의 재판정에 세웠던(그리고 사형에 처했던) 이스라엘의 조치는 가혹해 보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해답이었다.


일제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초기 역사로 인해, 여전히 친일파들이 정재계에 발에 챌 정도로 깔려 있고, 반면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들은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연히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도 쥐꼬리만 한 포상으로 가난한 삶을 전전하거나, 변절해 친일을 옹호하는 정치세력에 들어가 일신의 영달을 꾀하며 비루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


가혹할 정도의 패가망신이라는 단죄가 없다면, 우리는 이런 모습을 계속해서 반복해 보아야 할 뿐이다. 그들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의 자식들도, 무슨 형사적 처벌이나 경제적 제한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공무나 정치 같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까지는 맡지 못하도록 하는 게 옳다. 연좌제라는 비판은 당시 고문과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들 앞에 가서나 하라고 하자. 독립유공자의 후손에게 (쥐꼬리만 한) 혜택을 주는 게 문제가 없다면, 전범과 민족의 배반자들의 후손들에게 (고작) 작은 불이익을 주는 게 또 무슨 문제인가.




이달의 사락 p*********n 2024.09.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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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으로서의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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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 대전의 참상과 유태인의 고통에 대한 자료는 많이 보고 읽고 들었지만 그들을 괴롭혔던 히틀러와 나치들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아는 것이 적다. 아마도 본성이 잔혹하고 인격적으로 무언가 결함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무책임한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둬야 할 것은 나치들의 천년 제국에 동참한 사람에는 비단 히틀러의 수하들 뿐만이 아닌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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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 대전의 참상과 유태인의 고통에 대한 자료는 많이 보고 읽고 들었지만 그들을 괴롭혔던 히틀러와 나치들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아는 것이 적다. 아마도 본성이 잔혹하고 인격적으로 무언가 결함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무책임한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둬야 할 것은 나치들의 천년 제국에 동참한 사람에는 비단 히틀러의 수하들 뿐만이 아닌 독일의 수많은 지성인 및 일반일들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독일인들 모두가 종족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말일까?

 

그것은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하며 그들이 열등하다고 했던 것과 다름없이 비윤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주장이다. 나치들 역시 일반인들과 다름 없는 사람이었다. 가족을 사랑하고, 문화를 즐기는 인간. 「나치의 자식들」에서는 나치들의 바로 그런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가정한 무책임한 한스 프랑스와 같은 자도 있었지만 루돌프 헤쓰와 같이 아들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고 죽을 때까지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조언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자도 있었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어째서 동족을 살해하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가?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지성과 윤리를 배우고도 악행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독특한 구성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인데, 이 책은 나치의 자식 한 명 한 명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의 시각이 각각 한 챕터를 이루고 있다. 아버지는 나치 제국 시절 학생으로서 히틀러에 열광했던 적이 있는 세대로 나치를 은근히 두둔하며 그들의 자식들에게도 동정과 호의를 내비친다. 하지만 아들의 시각은 아버지와는 다르다. 그는 나치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나치의 자식들이 흔히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경멸하고 우월한 자의 관점에서 동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는 나치에 대한 구세대와 신세대의 의견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했고, 근본적으로는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흔히 갖는 세대 차이 또한 느끼게 했다.

 

(※이 책의 주제는 나치의 자식들의 근황과 그들의 고통, 삶에 대한 것이었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그보다는 나치들의 삶과 나치들에 대한 신, 구독일인들의 의견으로 내가 주목한 부분에 대해 치우쳐 감상을 작성하였음을 참고해주기 바란다.)

YES마니아 : 로얄 j*****1 2008.12.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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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지 않은 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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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된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왜 그런 의식을 갖게 되는 걸까? 얼마 전 교과서 왜곡 파동을 일으킨 일본의 우익단체들과 거기에 두 손을 들어준 일본 정부의 행태를 보면 흘러간 역사는 현실 못지 않은 잠재력을 가졌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된다. 누구에게나 객관적이라고 쓰여진 역사 또한 어떤 이들에게는 다른 식으로 비춰질 수도 있나 보다. '나치의 자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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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된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왜 그런 의식을 갖게 되는 걸까? 얼마 전 교과서 왜곡 파동을 일으킨 일본의 우익단체들과 거기에 두 손을 들어준 일본 정부의 행태를 보면 흘러간 역사는 현실 못지 않은 잠재력을 가졌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된다. 누구에게나 객관적이라고 쓰여진 역사 또한 어떤 이들에게는 다른 식으로 비춰질 수도 있나 보다. '나치의 자식들'은 나치전범들의 자식들이 독일패망이후 현재까지 어떻게 살아오고 있는 가에 대해서 취재한 책이다. 원래 40년 전 노르베르트 레버르트라는 기자가 기획했던 이 책은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있다가 최근 그의 아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나치 전범들의 자녀들은 '적극적 행위자와 수동적 희생자 사이의 중간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의사나 뜻과는 무관하게 정치적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불운한 이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아버지의 죄가 드러난 후 육십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이들이 사실을 인정하길 꺼려한다면 그 가장 큰 책임은 본인들에게 있지 않을까? 나치의 자식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해 절대적 신뢰를 가지고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것 같다. 나치즘을 맹신한 아버지들이 그러했듯 자식들 역시 현실을 무시하고 반대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은 채 자신들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살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그러한 태도에 혈연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동정심을 표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자신의 아버지를 맹렬히 비판했던 한스 프랑크의 아들 니클라스 프랑크는 오히려 당시 사람들로부터 혈연을 부정하는 냉혈한 혹은 정신병자로 취급당한 바 있었다. 그나마 니클라스 프랑크는 아주 드문 예에 속한다. 힘믈러의 딸을 비롯한 대부분 나치의 자식들은 자신의 세계에 철저히 갇혀 세상을 무시하거나 자신들의 아버지의 명예를 복권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역사청산이라는 말은 우리에게도 낯선 이름이 아니다. 가까운 일본의 예에서 무수히 보아오기도 했고 군부독재 청산이라는 말도 한때 인구에 회자되던 유행어였다. 과연 우리의 군부독재는 말끔히 청산되었는가? 박정희 기념관을 지으려하고 친일/독재에 아부했던 언론이 이제와서 오히려 시대의 산 양심이라고 큰 소리를 치는 시대에... 소리내어 비판해야 할 때 침묵과 위선으로 일관하던 언론이 이제와서는 자신들의 비리를 드러내자 언론탄압이라고 반발한다. 이는 다 잘못된 과거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기에 생긴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친일파 청산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 지 모른다. 가장 성공적으로 과거를 청산했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에서조차 아직도 나치즘의 망령이 떠돌고 있는데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수많은 나치 전범자들의 자녀들이 비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존하기 위해서 그들이 필요로 한 것은 자신들이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부모로부터 그것을 배우지 못했다. 소년 시절 나는 당신의 죽음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10월 15일의 밤은 내게 성스러운 밤이다. 당신의 죽음을 원한다. 커다란 화장실, 냄새나는 바닥에 발가벗고 누운 채 다리를 벌린다. 흐느적거리는 성기를 왼손으로 잡고 가볍게 위 아래로 흔들기 시작하면 당신이 눈앞에 보인다. 감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알을 누른 당신. 군인다운 죽음을 쓸데없이 뇌까리면서 수백번이나 신음소리를 낸다. 다시 자리에 앉아서 누가 오는지 귀를 기울인다. 바스락 소리 하나조차 모두 알고 있다. 벌써 오랫동안 감방에 있었으니까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맥박이 빨라진다. 억지로 눈을 마지막 편지에 돌린다. 집에 있을 사랑하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그 편지가 얼마나 공허하고 거짓되고 위선적인지를 당신도 잘 알 것이다.
j******n 2001.07.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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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어두운 하켄크로이츠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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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 2차대전이 끝난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그러나 유럽 전체를 휩쓸었던 나치즘의 핏빛 태풍과, 그 태풍의 눈 속에서 히틀러에게 절대 복종하며 손발 노릇을 했던 나치 전범들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생생한 악몽으로 남아 있다. 이들 나치 전범의, 듣기만 해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범죄 행각들은 현재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온 세상의 잔혹성과 광신성, 그리고 권력 추구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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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피 냄새를 얼마나 견딜 수 있습니까?> 세계 제 2차대전이 끝난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그러나 유럽 전체를 휩쓸었던 나치즘의 핏빛 태풍과, 그 태풍의 눈 속에서 히틀러에게 절대 복종하며 손발 노릇을 했던 나치 전범들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생생한 악몽으로 남아 있다. 이들 나치 전범의, 듣기만 해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범죄 행각들은 현재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온 세상의 잔혹성과 광신성, 그리고 권력 추구욕이 똘똘 뭉쳐진-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 똑똑히 보여준-인간으로 보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비위가 약한-특히 피비린내를 절대로 못 견디는-사람들은 이 정도만 알게 되어도 나치 전범들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저주하며 다시는 이런 인간들이 나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끝날 것이다. 그러나 비위가 좀 강한 사람이라면, 이들의 다른 모습, 즉 한 가족의 아버지였을 때의 모습, 남편이었을 때의 모습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나치 전범들은 과연 모든 면에서 악인이었을까?' 만약 당신이 후자에 속한다면, 독일의 부자(父子) 저널리스트 노르베르트 레버르트와 슈테판 레버르트가 40년의 간격을 두고 나치 전범의 자식들을 두 차례에 걸쳐서 인터뷰한 내용을 수록한 이 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들은 다정한 아버지였다... 두려워진다...> 인터뷰에 따르면 나치 전범의 자식들이 살아온 삶에는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 하나는 세상과 통하는 모든 문을 닫고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가치관을 답습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죄상을 인정하고 끝없는 속죄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도중에 분노와 무력감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치의 자식들에게는 거의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버지의 가치관을 물려받았든, 속죄를 하며 살아가든 간에 나치 전범이 아닌 아버지로서의 전범들의 모습은 '다정한 아버지'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잠시 머릿속이 혼란해질 것이다. 전범들은 가정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이며 평범했다. 정신병자도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아침마다 자녀들에게 다정하게 입맞추고 출근한 바로 그 사람들'이, 수백만의 유태인들을 때려죽이고 가스실에 몰아넣은 것이다.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나치 전범들만이 아닌 2차 대전 당시의 독일 국민 모두가 나치에 얽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동조자였으며, 방관자였다. 게다가 노르베르트 레버르트 또한 전쟁기간 중 열광적인 히틀러 소년단 단원이었으며, 독일이 2차대전에서 승리했다면 자신도 나치 지도자가 되어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 확신하며 괴로워했다는 슈테판 레버르트의 회상은 독자들에게 소름끼치는 의문을 던진다. '내가 만약 그 당시의 독일 어린이였다면, 나도 히틀러 소년단에 가입해 히틀러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을까? 당시의 독일 청년이었다면 나도 히틀러의 친위대에 들어갔을까? 당시의 나치 지도자였다면 나도 상부로부터 내려진 유태인의 '체계적인'말살 명령을 수행하는 데 정열을 쏟았을까?' 참으로 소름끼치지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이 점을 똑바로 인식해야만 대부분의 사람들 안에 악이 숨어 있고 그 악이 언제든지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나치와 같이 잔인한 독재는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잔혹한 나치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악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늘 계속해서 악과 싸워야 한다.(본문 중에서)' <책을 덮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나치 전범이었던 아버지의 그림자가 그 자식들에게 평생 드리워져 있고, 전세계에 귀감이 되고 있는 모범적인 과거 청산에도 불구하고 독일엔 아직까지도 하켄크로이츠(나치 깃발의 갈고리 십자가)의 그림자 한 자락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격류가 흐르고 남은 상처는 그 역사가 어두울수록 오랫동안 아물지 않아 결국 흉터를 남기고 만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 구성원들의 철저하고 비판적인 역사 평가와 과거 청산의 중요성을 재인식시켜 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역사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보는 것이야말로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니까.
m****n 2002.12.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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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역사의 잔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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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차 세계 대전은 끝났고, 전범자들은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과연 그걸로 모든 것이 청산된 것일까? 이 책은 그 전범자의 자식들과 인터뷰 한 내용이다. 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여전히 자신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는자가 있는가 하면 지독하게 자신의 부모를 증오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그들 역시 고통을 느끼고 살아 왔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들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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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차 세계 대전은 끝났고, 전범자들은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과연 그걸로 모든 것이 청산된 것일까? 이 책은 그 전범자의 자식들과 인터뷰 한 내용이다. 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여전히 자신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는자가 있는가 하면 지독하게 자신의 부모를 증오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그들 역시 고통을 느끼고 살아 왔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아버지의 죄가 자식에게 까지 대물림 되는 것으로. 그들 부모의 죄를 그들이 다시 가지고 가야 하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아니면 그들은 그 때 어렸고 모든 잘못은 부모에게 있으니 그들은 상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해야 할까?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그에 따르는 역사의 잔재들은 여전히 주변에 산재하고 있다.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청산되지 못하는 역사의 잔재에 대해 이 책을 읽고 한 번 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a******l 2002.12.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