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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거리나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들을 저자는 사진 앵글속에 직접 담아 보여 준다. 그의 글은 이러한 앵글속에 잡힌 대상물들의 속성에 대해서 자세하고 세세한 분석을 내려준다. '붕어빵', '이동 전화기와 배낭 장식', '머리', '아파트', '묘지', '스티커 사진' 등등... 우리 삶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사실 우리는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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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것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문화적 코드를 읽는 담론도 아니고, 그냥 우리가 주변에서 스쳐지나 가게 되는 것들을 책으로 잡아둔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토막토막 적어 놓았다. 그의 소재들은 정말 다양한데, 전신주 광고, 스티커 사진, 이동 전화기와 배낭 장식, 붕어빵, 신발, 옥상, 인도의 의자들, 이발소 그림, 가로수, 묘지, 만국기, 운동장.....무수히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보면서 놀랐던 것은 바로 이 소재들이었다. 물론 저자의 단상들도 읽을만 했지만, 이런 소재들이 우리들의 주변에, 아니 어쩌면 중심에 널려 있으면서도 우리들은 왜 여기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인지 신기했다. 일상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관념 속의 아름다움과 진지함보다 더 아름답고 진지한 것인지 모른다. 이 미시적 영역에 우리의 권력과 욕망, 또 거대담론과 자본을 내려앉히지만, 그런 것들을 다 받아내면서도 더 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일생의 공간이다. 흥미롭다. 일상에서 살지만 기억되는 것은 아주 비일상적인 것들이고, 우리들의 미래와 꿈도 그런 비일상에 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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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것처럼 시작하지만 실상 이 책은 [불유쾌함]을 이야기한다. 시시한 것들도 아름다운 점이 있을 것이다, 혹은 아름다웠는데 몰랐구나. 라는 말을 읽어보려고 접한 사람이라면 불유쾌함으로 가득한 현실을 친절하게 조명해주는 책 때문에 거부감마저 느낀다해도 과장을 아닐 게다. 하지만 사실, 책에 따로 분노할 이유는 없다. 현실이란 지저분하고 조악하기 마련이다.
삐딱하게 쓰기 시작했지만, 책은 나쁘지 않다.
[ 키치(kitch)란 일반적으로 고급 예술품에 대비되는 대중 문화 상품을 의미한다. 대중가요, 대중적 장식품, 춤, 영화, 소설, 시 등 창조성 없이 예술작품을 손쉽게 모방하는 모든 상품들이 여기에 해당되며, 종교 정치, 음악, 미술, 문학을 비롯한 문화의 전 영역에 걸쳐있다 -p.57 ]
이 책은 위와 같이 설명되는 키치에 대한 책이다. 원래는 세상을 기호로 바라보려는 시도를 했던 것 같으나, 우리 사회의 수많은 단면이 [키치]로 가득 차 있어 책은 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키치에는 <윤리적으로 부정하고,="" 진품이="" 아니며="" 진보의="" 우수리에="" 불과하다는="" 경멸적인="" 의미="">가 섞여있다고 한다. 책이 일관되게 짚어내는 사회에서의 키치는 모조이면서, 조악하고, 차라리 우스꽝스러운 것들이다. 키치는 부르주아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신분과시용으로 시작됐던 아니면 예술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됐던]지 간에 키치란 본디 그다지 아름답지도 고급스럽지도 못한 채 상품가치를 위해 만들어진 과시용 대중 문화 상품인 것이다. 키치에 대한 저자의 정의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것은 아래의 대목이다.
[ 노점상에서 파는 곰인형이나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에 있는 로마의 <트레비 분수=""> 복제품 따위는 명백한 키치이다. 하지만 도저히 키치가 될 수 없는 물건으로 보이는 농가에서 소여물을 담던 나무로 깎은 구유나 쌀과 보리를 널던 멍석도 어떤 곳에 놓이느냐에 따라 키치가 된다. 멍석은 본래의 용도로 쓰이는 한 절대로 키치가 될 수 없는 물건이지만 젠체하는 화가의 작업실이나 농촌풍 카페나 찻집의 바닥에 깔리는 순간 키치가 되는 것이다. -p.61 ]
관광지에서 파는 조그만 장승인형들, 연립주택 옥상위의 노란 물탱크들, 거리에서 팔리는 이발소 그림들과, 아이들이 줄서 기다리는 스티커 사진들, 그리고 루이 14세 시절에 파리에 설치된 가로등과 같은 디자인을 한 서울 시내의 가로등들,. 가로등, 이건 꽤 재미있는 묘사가 되어 있었다. 읽으며 웃었는데, 학교에 갔을 때 보니 우리 학교의 가로등도 똑같아서 책의 구절이 다시금 떠올랐다.
[ 가로등이라는 기본적인 기능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장식과 무늬들이 가로등 전체에 미친 듯이 들어박혀 있다. 그 무늬 또한 터무니 없다. 무궁화에서 고대 이집트에서 쓰이던 아칸시스 잎무늬, 포도 덩굴을 거쳐 연꽃 무늬까지 전 지구상의 꽃무늬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모두 모여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철제 가로등 위에 구리가루까지 발라놓았다. 환상적이다. -p.151]
그래, 구리가루까지 발라져 있었다-_-
그 외에도 책은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사소한 일상을 다양하게, 재밌게 말해준다. 나이트 클럽 웨이터들의 이름에서 [남성]이며 지금 우리나라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공통점을 말하면서 그 분야는 스포츠나 연예여야 한다고, [노태우], [전두환] 이라면 누가 불러주겠는가, 라고 비웃기도 하고, 길가는 사람들의 머리를 보며 병영국가적 억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발단속을 떠올리기도 한다. 곧 이야기는 머리 모양을 문화적 기호 -흑인의 정체성 찾기, 백인의 네오나치즘 등-로 읽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런 식으로 서민뷔페 식당의 장식에서 과잉과 여유의 기호를, 어느 회사 창립 기념일에 사용된 얼음조각에서
낭비의 기호를 읽는다. 지저분한 비명인 광고를, 보이지 않는 쓰레기창고인 옥상을, 지붕을 얹고 주거 주택을 가장하는 질낮은 스펙타클인 아파트를, 보호되고 동시에 학대받는 가로수를, 권력과 처절한 세속적 욕망의 표지인 묘지를, 도시의 각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리의 의자를, 규율에 복종하는 훈련을 위한 운동장을.. 저자는 자신의 해석을 곁들여가며 현재 대중의 삶을 보여준다.
책은 보다시피 부정적인 해석으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가끔은 [붕어빵]처럼 즐거운 이야기도 한다. 저자의 눈에 붕어빵은 겨울 도시에 존재하는 기호다. 붕어빵이 다시 소비되는 것은 1950, 60년대의 복고적 정서이며, 정서의 재소비는 이것이 상품임을 의미한다. 그러니 붕어빵은 일종의 문화상품이다. 단순한 빵을 가지고 마음대로 생각을 뻗치고 단정지어 말한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이 책의 재미는 거기에 있다.
[ 문화상품으로서의 분어빵의 가치는 그 생김새, 맛, 과정, 장소등에 있다. 붕어빵의 생김새는 정확히 붕어를 닮은 것이 아니다. 이름 때문에 붕어로 여겨질 뿐이다. 참붕어도, 각시붕어도, 금붕어도 아니지만 지시대상인 붕어와 닮았기 때문에 기호학적 용어로 말해서 아이콘인 붕어빵은 일종의 상형문자이다. -p.71 ]
글 솜씨도 그럴 듯하고 분석도 나쁘지 않다. 모두 동의할 수는 없어도, 혹 과장이 섞인 면이 있다해도 즐거운 글이다. 하지만 저자는 반성해야한다. 어쨌든 간에 당신이 지어낸 제목은 [사기]였다구요. [인상깊은구절] 경쟁과 포상, 즐거움으로 포장된 소비성 쇼인 오늘날의 스포츠들이 벌어지는 경기장들은 일종의 콜로세움이다. 검투사와 동물들의 죽음대신에 둥근공을 둘러싼 쟁패가 벌어질 뿐이다. 경기강의 작사각형 구조, 둥그런 센터 서클, 골대와 네트와 둥근공들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완벽한 형태들이다. 그 명료하고 대칭적인 형태들을 둘러싸고 스포츠의 규율들이 적용된다. 아무리 선수들이 경기장내에서 열심히 뛰고 또 뛰어도 그것을 지배하는 규율, 규칙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사각형, 원, 구 등은 사실 그러한 규율과 규칙의 명시적인 재현이다.트레비>윤리적으로> |
| 시시한 것들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결론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시시한 것들은 정말 시시한 채 무성의하게 버려져 있다. 아무 특징없는 보도블럭,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모양의 가로등, 짙은 황토색의 벤치, 별 특색없는 자판기, 칙칙한 색깔의 버스표지판, 이름만 드림타운인 천편일률적인 모양의 아파트 등등 우리의 일상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의 보도, 가로등, 벤치, 자판기, 버스표지판, 아파트 형태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야 정정 시시한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몇년전 영국에 간적이 있다. 우연히 도로변의 벤치에 앉았다가 거기에 써있는 문구를 보고 작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거기에는 "Memories of OOO (1945-1995)"라고 쓰여 있었다.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해 일정액의 돈을 기부하여 거리에 벤치를 만든 것이었다. 어떤 발상을 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돈을 들이고도 어느 한쪽에서는 감동을 다른 한쪽에서는 칙칙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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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인류의 지식, 신념, 행위같은 가치적 소산의 총체라고 할 때 그것은 인류가 사회를 구성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화라고 하면 고상한 고급 예술을 가리키거나 대중적인 소비문화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정의했던 대로라면 문화는 우리가 사회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든 부분에 감각적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이러한 일상 속의 문화적 형상물들을 '시시한 것' 이라고 말하며 그만큼 소소한 소재들을 얘기한다. 우리 지갑 속을 열어보면 신분증, 명함, 돈, 각종 신용카드나 ID카드, 수첩이나 스티커 사진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에 나타난 문화적 표상을 얼마나 많이, 빨리 알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외형에서 알 수 있는 각종 코드 자체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분석하거나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는 준거가 필요하다. 그 준거는 학문적 이론이며 정치적 이념이고 심리적 이해이다.
좀더 쉽게 말한다면 영화 포스터를 생각해보자. 포스터는 근대 미술의 한 표현기법이며 자본주의 시대의 광고물이다. 영화라는 대중소비문화장르와 만나며 포스터는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생산되었는데 전체 광고마케팅 중 영화포스터의 비중이 줄어든 요즘에도 특정 영화에 대한 이미지-책에서의 표현을 빌리면 지표(Index)-를 제공하는 비율은 높은 편이다. 하지만 특정 영화포스터에서 특정 영화의 이미지만을 추출해 낸다면 그것은 영화이미지에 대한 표현기법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때때로 그런 작업을 심심찮게 한다.) 다만 이책의 관점은 일반적인 영화포스터들에 나타나는 技術的 특징과 記述的 표현들이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결합하는지, 그 결합이 어떤 배경과 맥락에서 반복되는지를 알자는 것이다. 그렇다. 이책은 이데올로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란 곧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란 하나의 記號이지만 사실 嗜好이기도 하다. 제 아무리 민주화 사회가 되었다 해도 독재자를 향수하는 이들은 있는 법이고 모두가 굶주림과 타협할 때도 꼬챙이처럼 말라죽는 이들은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호를 일단 인정치 않고 배타적인 자세로 물리적으로나 비가시적으로나 배척하는 태도이다. (물론 이것도 나 개인적인 이데올로기이다.)
하나의 문화가 지배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문화가 배타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면 그것이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존재해야 하는 것일 필연적인 합법칙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일상'과 '상식'이 편안한 이들에게 이 책은 불편할 것이다. 니체는 인간이 암소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反芻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상에 침저되어 있다면, 수동적인 삶에 빠져 그것이 수동적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있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도 또 없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고 무감각하게 대하던 일상을 평가하는 것은 바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여성이 이처럼 남성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하부의 매력적인 대상이 되는데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동의를 하든 말든 결국 스스로 남성의 권력에 지배되는 대상이 된다. 하이힐을 신음으로써 여성들은 절뚝거리며 불안하게 걷고, 스스로 신체적인 활동과 힘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하이힐을 신는다는 것은 여성이 스스로의 피지배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되며, 약하고 수동적인 여성다움을 규정짓는 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의미를 재창출하여 보급하는데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
| 요즘 들어서 이런 일상을 읽어 내는 책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일상 속에서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중요함을... 그래서 그냥 지나치기가 일쑤다. 하지만 저자의 눈은 역시 예리하다. 일상을 정확히 포착하고 읽어낸다. 길거리에 뻗은 가로수들, 지하철의 의자들, 스티커 사진들, 신고다니는 구두에서부터 현란한 간판들까지... 거기에 숨어있는 철학적 의미와 미학적 의미까지 사진과 함께 잘 녹아있다. 흔히 일상은 너무 시시해서 벗어나려고만 한다. 일상탈출에 대한 묘책이 여행이라는 방법으로 나타난다. 모든 사람들의 꿈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얻는 것도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이 책은 일상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일상을 벗어날 궁리만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일상을 벗어날 궁리만을 하지는 않을거다. 조금 더 충실해 질 것이다. 남들이 생각하기에 내 일상이 시시하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대! 아직도 일상이 시시해 보이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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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책을 살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이라 하여서 단지 시시한 것들에 대한 사소한 에세이 같은 것들을 엮은 것들이라 생각하고 샀을 뿐이다. 물론 그건 내 부주의였다. 책 소개를 보려 하면 미리부터 그 압도한 양의 글들로 인해 읽지 않게 되기 때문에(모니터로 그 작은 글씨들을 일일이 읽는 다는 것은 꽤나 머리아픈 일이다.) 대부분 독자리뷰라던지 표지, 제목을 보고 사는 편인데, 이 책은 독자리뷰도 없었기 때문에 제목과 표지가 맘에 든다는 이유 만으로 사 버리게 되었다.
책을 받아들고 읽어본 느낌은...당했다..라고나 할까? 책의 제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시시한 것들의 추악함을 고발하는 책이었다. 물론 책 읽는데에는 잡식성이라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지만 읽어 내려갈수록 왠지 반감이 생겼다. 물론 이 책안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 속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시시한 것들 속에 그렇게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것도 재미있고 한번쯤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책에 쓰인 글들을 보면 그렇게까지 어렵고 거창하게 써야 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들면 143쪽에 "다시 레비스트로스를 빌자면 변칙범주로서의 당산나무와 같은 신목들은 인간과 식물적인 생명력을 매개하는 존재이다" 등...이런 문장은 왠지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의 독자를 약간이라도 배려해서 좀 더 쉽게 풀어서 해설할 수는 없었을까? 물론 내가 아직 어린 학생이기 때문에 저런 문장들이 이해가 안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공부를 하는 책이 아닌이상 독자를 배려하지 않았었나 싶다.
글이 지나치게 주관적이 되지 않았나 싶지만 어쨌든 이 책은 소재자체는 좋았지만 지나치게 어렵고 깊은 곳까지 파헤쳐 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실 분은 부디 가까운 서점에서 약간이라도 읽어 보시고 사시기 바란다. 아니면 미디어 리뷰를 꼭 다 읽던가. 이 책은 저녁에 침대위에 누워서 편하게 보는 책이 아니라 책상위에 꼿꼿이 앉아서 봐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구절] 키치kitch란 일반적으로 고급 예술품에 대비되는 대중문화 상품을 의미한다. 대중가요, 대중적 장식품, 춤, 영화, 소설, 시 등 창조성 없이 예술 작품을 손쉽게 모방하는 모든 상품들이 여기에 해당되며 종교, 정치, 음악, 미술, 문학을 비롯한 문화의 전 영역에 걸쳐있다. |
| 책 제목에 절대로 현혹이 되면 안된다. 시시한 것들을 열심히 나열해놓고 그에 대한 불평의 내용은 천편일률적이다. 옥상, 아파트, 간판들, 꽃 등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 것들의 탄생 배경으로 '정치니 권력이니'가 계속 똑같은 어조로 나열되고 있다. 작가 자신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보여주었다기 보다는 그냥 혼잣말 내지는 푸념, 불평을 늘어놓은 것일 뿐이다. 작가도 우리 주위에 흔하디 흔한 키치같은 그냥 그렇고 그런 책을 돈벌이를 위해 만든것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우리 문화에 나타난 키치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오창섭의 디자인과 키치라는 책(이 저자와 아무 관련없음)을 추천하고 싶다. '시시한 것의 아름다움' 정말 이런책을 보면 매우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화를 나게 하는 책도 그나마 없으니 나에게는 감동을 준 책(?)인 것인가? |
| 저자도 서문에서 말했지만 이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일상속의 문화읽기라고 부제를 적었는데 일상속의 문화라는 것을 이렇게 협소하게 잡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기호학이라는 일반인이 생소한 이야기를 하며서, '키치'라는 전문용어까지 사용하면서 잘난 척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버스정거장에서 '버스정거장'이라는 문화를 읽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잘난척이다. 저자의 말이라면 버스정거장에서 그 정거장이 말하는 문화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학력자본과 문화자본'이 부족한 사람일 테니.... 나는 학력자본과 문화자본이 부족해서 그런지 저자의 글들이 아니꼽게 들린다. 이것은 결국 시시한 것들을 통한 자기 잘난 척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