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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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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 개론윤득형/샘소는기쁨   아내가 유방암에 걸리고 나서 몇 가지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나는 조심스러워 말을 아예 꺼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집요하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다. 슬픔을 당한 이들을 돕는 것은 어렵다. 위로라고 하지만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무관심하면 서운해 할 것 같은 걱정이 든다. 나 또한 목회를 하면서 죽음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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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 개론

윤득형/샘소는기쁨

 

아내가 유방암에 걸리고 나서 몇 가지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나는 조심스러워 말을 아예 꺼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집요하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다. 슬픔을 당한 이들을 돕는 것은 어렵다. 위로라고 하지만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무관심하면 서운해 할 것 같은 걱정이 든다. 나 또한 목회를 하면서 죽음을 당한 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무관심한 적도 있고, 교과서식 답안만을 늘어놓기도 한다. 많은 이들은 이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고통은 타자가 공유할 수 없는 고립과 정신적 소외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고립과 소외는 타자로부터 일어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고통당하는 그 사람에게 내재한다. 고통을 당하는 순간 입에서 나오는 말이 '왜?'라는 물음인데, 이 물음에는 '왜 나만 당해야 하는가?'와 '하필이면 내가 당해야 하는가?'라는 원망이 스며있기 마련이다. 스스로 타인들로부터 배제 당하고, 고립되었다는 생각한다. 슬픔은 높고 두꺼운 분리의 담을 쌓는다. 그 담을 허물고 치유의 공간으로 불러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 스스로 지금 나의 상황에서 누군가가 어떻게 말해주는 것이 좋은가를 생각해보았다. 당사자인 나도 무엇을 말해야할지 난감하다.

 

"삶은 죽음을 통해 성장하고 슬픔은 표현됨으로 치유된다!" 문장이 가슴을 울린다. 죽음은 삶을 진실하게 만들어 준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누군가의 농담처럼 태어날 때는 주민등록 순이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일 때가 많다. 느닷없이 찾아온 죽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당황한다. 죽은 당사자는 말이 없지만, 남겨진 유가족들의 아픔은 치유될 수 없는 아픔으로 남겨진다. 죽음도 연습과 준비가 필요하다. 저자는 삶 속에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어떻게 죽음을 인식시켜야할지도 알려준다.

 

저자는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원기도를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 아버지는 돌아가신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그가 던졌던 질문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였다.(26쪽) 하나님은 바위처럼 요동하지 않는다. 때론 무정하고 비정하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절망과 실의(失意)는 삶의 의미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집착하게 만든다. ‘고통에는 뜻이 있다’고 하거나, 하나님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위로는 오히려 상처를 주고,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서 아픔과 슬픔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사람에게 섣불리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위로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혹은 적당한 말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그저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요‘라고 말하는 것 또한 삼가는 것이 좋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고 함께 있어 주는 것만도 못하다.”(26쪽)

 

차라리 입을 다물고 손을 잡아주는 것이 훨씬 낫다. 수년 전에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기겁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茫然自失)하여 울고 있는 성도를 향하여 집례 목사는 “집사님 그만 우세요. 천국에서 만날 텐데 왜 그리 슬퍼하십니까?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축복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의 경험 속에도 비슷한 사례가 읽힌다.(87쪽) 교리적으로 죽음을 풀어 나갈 때 슬픔을 당한 자들을 큰 고통을 당한다. 인생은 수학문제가 아니다. 뻔한 공식으로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없다. 그럼에도 소위 믿음이 좋다하는 이들은 대체로 죽음은 곧 천국이니 슬퍼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도리가 아니라는 공식을 대입한다.

 

어떻게 하면 진정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완벽한 위로는 불가능하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치유 되는 것이 아니다.”(37쪽) 또한 ‘극복의 대상’도 아니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다.(38쪽) 있는 그대로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애도(哀悼)의 과정인 것이다.

 

모두 7장으로 나누어 슬픔의 문제를 다룬다. 대체로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문제를 다룬다. 거대한 슬픔에 노출된 유가족들의 아픔과 상처를 공감해주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슬픔의 치유책이 될 것이다. 저자는 슬픔의 치유 전문가답게 슬픔의 이론적인 부분에서 죽음을 어떻게 직면시킬 것인가, 자녀들에게 죽음을 교육하고,(3장) 병원과 사회 속에서 삶과 죽음을 나누는 방법(4.5장) 등을 세세하게 알려 준다.

 

151-2쪽에 소개된 알렌 울펜 박사의 ‘슬퍼하는 사람과 동반하기’ 11가지 원칙은 슬픔을 공유하기 낯설어하고 방법을 몰라 당황하는 이들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슬퍼하는 사람과 동반하기는,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다.(1) 슬픔을 해결해 주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야하고,(2)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4) 해석자가 아닌 증인 되어주라.(5) 이끌지 말고 곁에 있어 주라.(6) 말로 채워가지 말고 침묵의 거룩함을 발견하라.(7) 혼란과 혼동을 정리하려하지 말고 상황을 그대로 존중하고,(9) 가르치려 하지 말라.(10) 즉 신영복 교수의 조언대로,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를 확인 시켜 주는 것이다.

 

성장의 논리에 함몰되어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무관심하고 소외시켜온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책이다. 이젠 앞만 향해 달려가는 급행열차가 되지 말고 천천히 주변을 되돌아보는 완행열차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 좋은 책을 만났다.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은 이들에게 주는 최고의 책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영적돌봄을 추구하는 목회자와 교사, 구역장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h****i 2015.07.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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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 개론을 다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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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2주째 입원하고 있는 아내는 병원이 편하다고 한다. 입원할 당시만 해도 가기 싫어하고 집에서 외래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집에 있으면 신경도 써야하고 일도 해야하니 반강제적으로 입원을 시켰다. 며칠은 힘들어 했지만 이내 적응을 했는지 잠도 잘 잤다. 아내가 암에 걸리고 나서 죽음의 존재를 실감한다. 암에 걸리고 나서 현저한 변화는 몸에 힘이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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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2주째 입원하고 있는 아내는 병원이 편하다고 한다. 입원할 당시만 해도 가기 싫어하고 집에서 외래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집에 있으면 신경도 써야하고 일도 해야하니 반강제적으로 입원을 시켰다. 며칠은 힘들어 했지만 이내 적응을 했는지 잠도 잘 잤다.


 아내가 암에 걸리고 나서 죽음의 존재를 실감한다. 암에 걸리고 나서 현저한 변화는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다. 내가 암에 걸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갑자기 아내가 죽으면 어떻게하나 싶은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많다.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대장으로 암이 전이되었다고 한다. 그래. 언젠가는 보내야할 사람이다. 암이든 아니든. 나도 가야할 테고. 그런데 그것이 두렵다. 예전에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다큐와 영화가 유행한 적이 있다. 난 아직 보지 않았다. 나중에 보고 싶었는데 아내는 보지 말라고 한다. 너무 슬퍼서 보지 못할 것 같단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아내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않기 위해 보지 않았다. 





자꾸 윤득형 목사의 <슬픔학 개론>을 뒤적 거린다. 오늘 새벽에도 꺼내 읽었다. 어찌 이리 아픈 자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지 고맙다.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는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울음을 받아줄 신뢰할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35쪽)

병에 걸리면 외롭다. 피하고 싶으면서도 누군가에게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고 싶다. 형식적인 만남이 아닌 진중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아니다. 그녕 하소연 하고 싶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와서 병을 낫게하는 비법을 소개한다. 그건 나도 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겠는가. 아내가 병에 걸리고나서 암에 관련된 책만해도 백만원 가까이 되는 책을 사서 읽었다. 읽는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진짜 암이 나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이토록 죽음의 문제는 치열하고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예수를 영접시키는 일. 그것이 목회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자들은 불신 부모가 죽어 지옥에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목회자들에게 죽음의 문턱에서라도 예수를 강제적으로라도 영접시켜 달라고 애결한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한다. 그러나 '네'라는 말도, '아멘'이란 말도 듣지 못하고 보냈다. 그렇게 보내고 나서 죽음 앞에서 꼭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쳐야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본다. 차리리 죽어가는 사람과 남겨질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202쪽)

아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독하고, 나 또한 혼자 남겨질 것에 대한 깊은 체념이 삶을 지배하고 있다. 지옥은 타자라는 까뮈의 독설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고독한 존재다.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상실을 껴안고 살아간다. 언젠가는 죽을 수 있다는 말이며, 이미 죽었다는 뜻이기도하다. 고독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외롭다. 나도 형제들도 성도들도... 아내를 위로할 수 없다. 나 또한 그렇다. 

참 좋은 책이다. 마음 한 켠에 엉킨 실타래를 잘 풀어준다. 책이 위로가 되었다. 



h****i 2015.08.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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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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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심로-윤득형 목사의 『슬픔학 개론』(샘솟는기쁨, 2014)은 탁월한 필치로 우리네 심상 아래 잠복한 슬픔을 승화시키는 비방을 자신이 경험한 사례들을 통해서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뿐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이라도 이해하며 공감할 만한 내용들로 잘 채워주었습니다. ‘Well Dying'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은 일반사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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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심로-


윤득형 목사의 『슬픔학 개론』(샘솟는기쁨, 2014)은 탁월한 필치로 우리네 심상 아래 잠복한 슬픔을 승화시키는 비방을 자신이 경험한 사례들을 통해서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뿐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이라도 이해하며 공감할 만한 내용들로 잘 채워주었습니다. ‘Well Dying'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은 일반사이며, 음악의 고저장단 같고, 소설의 플롯 같은 것. 누구나 겪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일 텐데요. 특히 ‘슬픔’을 쏙 끄집어내어, ‘슬픔학’이라 명명한 것이 기발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읽는 내내 전도서 7장 1-4절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평소 ‘잘 죽기 위한 기도’를 매일 해야 한다고 말해왔던 터라서 더욱 공감했습니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7:1-4)

그는 슬픔을 겪는 당사자와 그 주변인들이 어찌해야할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특히 목회자가 얼마나 지혜롭게 움직여야하는지 잘 안내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그는 자신의 어린 자녀와의 대화 속에서도, 하나님의 처방을 찾아낼 만큼 집중력을 보여줍니다(177-183).

한 칼럼이 지나갈 때마다 인용해도 좋을 만한 정보들을 제공한 것도 매우 유익했습니다. 겸손한 자세도 좋았고, 불의한 사회현상에 대한 상식 있는 비판과 문제제기도 신선했습니다.

만약 윤목사에게 ‘표현’ 하나하나를 들어서 신학적 논쟁이나 하려는, 신학자나 목사들에게는 다소 힘든 책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허나 견딜 수 없는 큰 슬픔을 겪어본 이들이라면, 흔쾌히 추천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청년시절 흥얼거리던 “슬픔의 심로”(김학래, 1983)라는 노래가 떠오릅니다.

“낙엽이 외로이 떨어지는 건 두 사람이 헤어지는 건~
슬프기 때문에 눈물을 흘려요.
두 사람이 흘려요.
우리 헤어질 수 없기 때문에......”

천국 소망을 두고 광야길 걸어가는 하늘 백성에겐, 슬픔은 그저 ‘기쁨’의 다른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7. 12. 13(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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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7 2017.12.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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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득형, 「슬픔학 개론」 (샘솟는 기쁨,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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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때로 교회에서 장례식이 발생하면, 유족들을 어떤 말로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이런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그러기에 이 책 <슬픔학 개론>은 제목부터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슬픔’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슬픔학’이라니 저자가 궁금해졌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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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때로 교회에서 장례식이 발생하면, 유족들을 어떤 말로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이런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그러기에 이 책 <슬픔학 개론>은 제목부터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슬픔’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슬픔학’이라니 저자가 궁금해졌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자신은 평생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한 저자 윤득형은 미국 신학교에서 목회상담학으로 학위를 받고, 병원과 호스피스에서 임상훈련을 받았으며 캘리포니아 감리교 병원에서 채플린으로 사역한 목사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은 무엇인지, 슬픔 중에 있는 자들을 어떻게 도울지 차근차근 이야기 한다. 포켓 가이드(pocket guide)에서는 중요한 용어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정리해 놓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열배는 더 유용하고 가치 있는 책이다.


죽음을 앞에 두거나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을 앞에 두었을 때, 인간은 자신의 유한함을 생각하고 신의 존재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것을 ‘의미 만들기(meaning-making) 과정이라 한다. 상실과 슬픔의 시간에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슬픔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위로는 사람들이 마음껏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함께 있어주고 들어주고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알렌 울펠 박사는 상담을 치료하는 과정이 아니라 동반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저자는 울펠 박사의 ’동반하기(companioning) 11가지 원칙‘을 소개해 주는데, 위로자들이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동반하기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동참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의 거친 상태에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동반하기는 영적인 면을 존중하며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것은 곁에서 함께 걸어주며, 침묵의 거룩함을 발견하는 것이며, 혼란과 혼동되는 상황을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다. … 그것은 늘 새로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pp. 151~152).


특히 part6, ‘기독교와 죽음’(pp. 96~202)이라는 항목은 임종을 앞두고 환자에게서 신앙고백을 받아내려는 노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는 자신의 목회 경험을 나누며, 죽어가는 자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문제는 인간의 영역을 떠난 문제이니 그것보다는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가치를 존중하고 가족들과 함께 화해하며 좋은 작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노력으로 임종의 순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거룩한 순간이 되며,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단순 논리를 넘어 사랑의 하나님과 초월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단지 호스피스와 유족들을 위로하는 방법만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말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믿음과 영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도록 인도한다. 교회 식구들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정말 훌륭한 책이다.


 

l******y 2015.08.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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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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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슬픔임에도 우리는 면밀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슬픔은 아픔으로 여긴다. 특히, 인생의 죽음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슬픔이상의 것을 생각케 한다. 그러나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한번 태어난 것처럼 한번 죽는 것이 당연하다. 한번밖에 살아가지 못한 인생이기에 한번밖에 겪지 않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을 맞는 가족이나 본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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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슬픔임에도 우리는 면밀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슬픔은 아픔으로 여긴다. 특히, 인생의 죽음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슬픔이상의 것을 생각케 한다. 그러나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한번 태어난 것처럼 한번 죽는 것이 당연하다. 한번밖에 살아가지 못한 인생이기에 한번밖에 겪지 않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을 맞는 가족이나 본인은 준비되지 않기에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는 인생길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금 되찾아야 한다. 인생은 연습이 없다. 연습없는 것은 인생뿐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도 연습이 없다. 첫째 아이로 인해 연습되어진 것처럼 느끼지만 같은 성정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기에 매번 힘들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양육은 한번뿐이다.

 

 이처럼 인생은 연습이 없는 길을 계속 걷고 있다. 그중에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누구나 한번 겪게 되는 일이지만 두렵고 불안하다. 말기암 진단을 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이들도 죽음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들에게 다가오는 죽음은 충격이상이다.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은 피가 마르는 것과 같은 고통일 것이다.

 

 특히, 자녀를 잃은 부모의 슬픔은 죽는 날까지 이어진다. 이처럼 죽음은 모두의 것이지만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인생들에게 다가오는 슬픔에 대처력을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죽음으로 인해 슬픔과 상처를 받고 있는 이들에게 성경적 접근하고자 한다. 슬픔과 고통속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길을 찾아가도록 한다. 이는 죽음이후에 세계를 보여준다.

 

 기독교인의 죽음은 슬픔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천국 소망이다. 천국에 소망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갖는 평안이다. 많은 고통 끝에 참된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위로가 된다. 이책을 통해 진정한 애도의 전략과 추모에 대한 바른 자세를 성경적으로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죽음을 바라는 지혜와 삶에서 갖는 다양한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말씀에 힘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마음 가짐과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p***1 2015.07.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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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 개론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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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 개론』을 읽고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실제 모습의 삶과 그 임무를 다 한 후에 맞이하는 죽음을 항시 염두에 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자신도 벌써 환갑생일이 지난 나이이다. 솔직히 살아온 시간보다는 훨씬 덜 남은 후반부의 시간들을 어떻게 하며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가끔씩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건강한 마음과 모습으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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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 개론』을 읽고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실제 모습의 삶과 그 임무를 다 한 후에 맞이하는 죽음을 항시 염두에 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자신도 벌써 환갑생일이 지난 나이이다.

솔직히 살아온 시간보다는 훨씬 덜 남은 후반부의 시간들을 어떻게 하며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가끔씩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건강한 마음과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시간과 함께 즐겁게 생활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런 내 자신에게 이 책은 또 하나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인간의 일생 중에서 가장 성스럽게 맞이해야 할 죽음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고, 내 자신의 죽음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를 성실하게 임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부단히 격려하면서 열심히 뭔가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도 가져본다.

죽음이 중요한 것은 물론 당사자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순간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끝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그 죽음과 직접 관련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 등 평생을 함께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자신도 그 동안 부모님을 다 보냈고, 막동이 동생을 일찍 여웠고, 나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유일한 아들을 어렸을 때 직접 죽음을 겪은 사람이다.

특히 아들이 가졌던 심장병은 평생을 안고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사의 진단으로 쉽지는 않지만 빨리 수술에 도전하게 되었다.

수술이 여의치 않은 시기이었기 때문에 6개월을 입원실에서 치료 받으며 기다렸고, 드디어 아침 일찍 들어간 수술이 저녁때가 되어야 나왔고, 회복실로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숨이 넘어갔다는 말에 얼마나 한숨을 쉬었는지..

그리고 내 손으로 직접 땅에 묻었지만..

그리고 매년 다가오는 제사 때가 되면 가족들이 모여서 추모를 드리지만 그 당시를 떠올리기도 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마주쳐야 할 한 번의 죽음이지만 죽음 후에 닥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진실을 알리는 소중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모습과 함께 특히 슬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우리의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하며, 슬픔은 직접 표현됨으로서 치유되며, 죽음의 슬픔을 더 깊이 체득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을 필요가 있다.

정말이다.

슬플 때는 울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마음을 쏘옥 들어온다.

가슴으로만 새기기 보다는 밖으로 표현하는 것도 좋겠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슬픔은 표현됨으로 치유된다고 한다.

특히 저자가 제시한 ‘메모리얼 룸’을 두자는 안은 너무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그런 공용적인 곳이 있다면 항상 생활하면서 가깝게 접근하면서 새롭게 각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m***3 2015.07.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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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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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는 슬픔이란 어떠할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 감정은 슬픔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라며, 세상의 수많은 감정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일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교우들의 죽음을 목격했고, 유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했다. 나 역시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을 맛보았다. 처음에는 나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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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는 슬픔이란 어떠할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 감정은 슬픔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라며, 세상의 수많은 감정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일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교우들의 죽음을 목격했고, 유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했다. 나 역시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을 맛보았다. 처음에는 나에게만 닥쳐온 비극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겪는다.

 

이 책은 슬픔치유 상담가, 죽음교육 전문가인 윤득형 목사가 9년 동안 미국 유학 중에 채플린으로서 경험한 내용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죽음 후에 상실, 슬픔을 가슴에 안은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담았다. 특히 죽음의 의미, 철학, 죽음준비교육, 호스피스 연구 및 실습, 상담 등을 알기 쉽게 안내하고 있다.

 

이 책에서 루게릭병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아버지 죽음을 목격하면서 일찍이 ‘죽음의 자리’에서 우는 자들과 함께하게 된 저자의 내밀한 고백을 읽을 수 있다.

 

목사인 저자는 죽음교육의 하나로, 이별과 죽음은 유사하여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전해야 한다고 했으며. 환자를 위한 영적인 돌봄이 예식(예배)에 앞서 질병과 고통, 상실과 슬픔을 경험하는 이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며,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평균수명이 점차 늘어나는 시대가 되었지만 결국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곧 죽을 것처럼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앞날은 누구도 알 수 없는 법이다. 만약 죽기 직전에 남은 감정이 후회뿐이라면 얼마나 삶이 허망할까 

 

이 책에서 저자는 ‘죽음준비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죽음교육을 통해서 삶에 있어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도우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겪게 되는 비탄의 과정에 대해서 배우며,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없애며, 죽음과 관련된 윤리적, 법적인 문제를 배우게 된다. 더 잘 살기 위해, 더 멋진 인생을 위해 죽음 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신앙공동체에 속한 우리들은 높이 솟은 교회당 십자가 아래 아파하는 이웃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가 보여준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 이웃의 아픔을 들어주고 함께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p.141)고 말했다.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교회에 ‘메모리얼 룸’을 만들어 죽음이 삶 속에서 함께하기를 제안한다. 연예인들의 자살을 비롯하여 시시각각 벌어지는 크고 작은 참사로 인한 죽음,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회복하는 데 교회적 차원으로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책은 삶의 깊은 상처로 인해 가야 할 길을 일은 분, 상실의 아픔으로 고통당하는 분, 삶이 주는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아 있는 분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경험하게 하며, 치유와 회복을 줄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분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k*****6 2015.07.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삶과죽음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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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개론 #윤득형지음 #샘솟는기쁨 슬픔은 극복의 대상이라기보다 감정의 영역에 있다. 죽음에 대한 진리중에 하나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죽음준비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생각되는 세상이다. 잘살기(well-being)과 더불어 잘죽기(well-dying) 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저자는 감리교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고 각당 복지재단 산하, 삶과 죽음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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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개론 #윤득형지음 #샘솟는기쁨

슬픔은 극복의 대상이라기보다 감정의 영역에 있다. 죽음에 대한 진리중에 하나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죽음준비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생각되는 세상이다. 잘살기(well-being)과 더불어 잘죽기(well-dying) 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저자는 감리교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고 각당 복지재단 산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에서 청소년 죽음준비교육 연구실장으로 2년간 사역을 하였다. 미국유학을 떠나 시카고신학대학원에서 목회심리학을 공부했고,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 목회상담학으로 ph.D학위를 받았다. 현재 목회상담학박사, 목사, 슬픔치유 상담가, 죽음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죽음교육은 나이불문하고 모든사람에게 꼭 필요한 지혜와 통찰력을 준다.
목차로 PART1~7까지 나뉘어 있으며
PART1.죽음, 슬픔, 치유 PART2. 죽음준비교육
PART3. 어린이와 죽음 PART4. 병원에서의삶과죽음
PART5. 죽음과 사회 PART6.기독교와 죽음
PART7.죽음과 의례로 나뉘어 있다.

P.201,202 죽음이 가까워지는 순간,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매우 중요한 이슈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살아온 가치를 존중하고, 삶에 있어 소중히 여겨왔던 가족과의 마지막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상실중에 견디기 힘든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잃는 슬픔일 것이다. 죽은사람은 다시 살리거나 다른것으로 대치할 수 없기때문에 슬픔이 회복되기 전까지 죽은사람과의 지속적인 관계유지가 슬픔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하고 개인의 성장에 큰 힘이 된다고 한다. 떠난 이들이 남겨준 새로운 삶의 의미를 자각하고, 의미있는 일에 자신을 던짐으로써 조금씩 치유되는 것이다.

요즘 슬픈기사들이 마음을 더욱 어둡게하고 상실이 큰데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하게하고 죽음에 대한 이해와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도울 수 있다.

#부쩍쓸쓸하고슬픈요즘 #가을지나고겨울 #슬픔을받아들이는방법 #삶과죽음
l*****7 2020.11.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슬픔학 개론]슬퍼하는 사람과 동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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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 개론> 슬퍼하는 사람과 동반하기아내의 암 진단을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만들었다. '진지한 삶'을 생각해보자. 얼마나 피상적인 단어인가? 그러나 죽음을 문턱에 두고 있게 되면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계발서들은 비전 꿈 도전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죽음이란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김미경씨가 한동안 강연을 나오지 않다 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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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학 개론> 슬퍼하는 사람과 동반하기


아내의 암 진단을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만들었다. '진지한 삶'을 생각해보자. 얼마나 피상적인 단어인가? 그러나 죽음을 문턱에 두고 있게 되면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계발서들은 비전 꿈 도전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죽음이란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김미경씨가 한동안 강연을 나오지 않다 작년 여름 다시 강연장에 얼굴을 내밀면서 한 첫 강연의 주제는 '좌절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라'였다. 앞만 달려가는 것이 삶이 아니다. 삶은 천천히 가는 것이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나는 것은 의미있는 삶이 가치있다는 말이다.


오늘 페북을 열었던니 신영복 교수의 새글이 알림창에 뜬다. 깊이 공감가는 문장이다.


자동차로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1m의 코스모스 길은

한 개의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



삶은 여정이다. 목적지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교회는 여정의 삶을 존중해야하고,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한다. 성정이란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면 교회는 반드시 엇나가게 되어있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 천국을 구현한다. 그런데 성장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으면 아픈사람, 연약한 사람, 힘 없는 사람은 불편한 존재가 되고 걸림돌이 된다. 유능한 사람, 위대한 사람, 부유한 사람을 최고로 여긴다. 성장 위주의 교회론은 치명적인 독이며 교회를 무너뜨리는 원수이다. 교회는 천천히 가야 한다. 교회는 사람을 가장 존귀한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윤득형 목사는 <슬픔학 개론>을 통해 교회가 어떻게 슬픈하는 사람을 보아야하는지를 보여준다.  151쪽에보면 '슬퍼하는 사람과 동반하기'란 주제로 11가지 원칙이 있다. 이것은 알렌 울펜 박사가 제시한 것이다. 몇 가지를 가져오면 이렇다.


1. 동반하기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다.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2. 동반하기는 다른 사람의 영혼의 거친 상태에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라.

4. 동반하기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이로 머리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6.동반하기는 앞에서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이다.

7. 동반한다는 것의 의미는 매 순간을 말로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거룩함을 발견한 것이다.

10. 동반하기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등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주려 가서 도리어 상처를 주는 지 모른다. 욥기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함께 고통에 참여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이 가진 왜곡된 신학적 지식으로 욥을 정죄하고 단죄했다. 욥은 위로는 커녕 친구들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나 또한 종종 위로해준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이 많다. 그 때는 그말이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고난의 자리에 있어보니 위로가 아닌 상처를 주는 말이었다. 


슬픈자와 동반하기는 명징하게 문제를 해석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하는 것이다. 신영복 교수는 <감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슬픈자의 동반은 성장에 함몰된 교회는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슬픈자는 걸림돌이고 한 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여행하셨다. 여행은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라 떠돌아 다니다. 떠돌아 다님은 방랑이 아닌 고통 당하는 자를 찾는 탐색에 가깝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 만난자를 돕는 사람은 여행 중인 사마리아인이었다. 폴 리쾨르는 본문을 통해 여행이 가진 의미를 해석했다. 나는 리쾨르의 주장이 전적으로 동의한다. 교회는 여행자이다. 순례자라는 말은 어디론가 가는 의미도 있지만 본질은 떠돌아 다니는 것이다.


슬픈자와 동반하기의 핵심은 타인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거나 통제하지 않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슬픔이 해결되는 유일한 방법은 같이 슬퍼하는 것이다. 예수는 사람의 모든 고통을 감하거지 없애지 않았다. 같이 동참했다. 그리스도인도 동일해야 한다.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다.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는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울음을 받아줄 신뢰할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35쪽)



h****i 2015.10.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