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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자메이카 킨케이드(저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 뉴욕 주에 입주 보모로 들어갔다. 이후 자메이카 킨케이드라는 필명을 사용해 단편소설을 비롯한 에세이, 어린이 동화책, 장편소설까지 다양한 책들을 출간했다. 카리브해 백인 관광객과 타락한 앤티카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인해 입국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내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던 순간 죽었고, 그래서 평생 동안 나와 영원 사이에 서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내 인생의 이야기인 만큼 내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 이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종종 거론되는 그녀의 작품들은 킨케이트의 내밀한 상념과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때의 이야기들을 전한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실제로 삶의 내밀함들이 어쩌면 많은 작가들의 창작 에너지가 되곤 하며, 그 과정에서 치유의 과정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삶의 과정이 각자에게는 모두 다르게 다가오긴 하지만 결국 지금, 그리고 그때를 거쳐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항상 손에 닿지 않지만 현실과 이상과 절망의 경계는 생각보다 선명하지 않다. 같은 장면 다른 느낌, 그리고 생의 전환의 순간들과 또 다른 국면들. 스위트는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고, 그녀는 지금 그때나 또 지금이나 그것을 받아들였다.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사랑받고 사랑하며 사랑을 전하는 여정에서 그 대상과 어긋나고 비껴가는 순간들이 비일비재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결국 사랑하기 위해 태어나는 삶으로 여러 역할의 시기를 지난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난 과거의, 혹은 다가올지 모르는 절망과 불안의 순간도 기꺼이 마주할 수 있을까? 한편의 소설은 어느 순간 픽션에서 논 픽션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지금 그녀를 생각한다. 지금이 언젠가 그때가 될 것을 알면서도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결국 그때이자 지금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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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지금, 그리고 그때』는 작가인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자전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이기도 하다는데 평소 자전적 이야기를 많이 써왔다는 저자가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다른 부분은 기존의 작품들과는 달리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세월의 시간을 흘려 보낸 중년 여성, 특히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소녀를 주인공으로 했던 기존의 작품들과는 분명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며 아울러 저자가 카리브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만큼 이 작품 속 주인공인 미시즈 스위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 역시 카리브해에 있는 앤티가섬이라는 부분도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현재 미시즈 스위트는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고 남편으로부터 은근한 무시를 당하고 살지만 과거 우리네 어머니가 그러하듯 그녀 역시 여자로서 그것들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집안일과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과연 그녀에겐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마치 버니지아 울프의 작품이 흐러하듯 의식의 흐름을 따라 진행되는 미시즈 스위트의 삶의 지금과 그때가 오가는 이야기는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실제 미국에서 출간되었을 때에도 꽤나 화제를 넘어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그녀에겐 남편은 아내를 증오의 눈길로 바라보며 아이들은 엄마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허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때의 그녀에겐 엄마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지금과 그때는 과거이면서도 현재이기도 하고 현재이지만 또 어떤 면에서의 과거의 한 모습이기도 한 이 모든 것들이 그녀의 삶의 한 부분임을 알게 한다. 자기만의 방과 약간의 경제적 자유가 필요했던 과거 여성 작가들의 삶이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그려지는 것 같다. 주방 옆에 딸린 방에서 미시즈 스위트는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지만 가족 그 누구도 이 공간을, 이 공간에 있는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부터의 삶이 쉽지 않았을 때고 결혼 이후 육아와 가사, 그리고 자신만의 공간에서도 다르지 않아 보이는 그녀의 삶의 유일한 자유와 희망, 그리고 가장 큰 위로가 글쓰기가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에 이 작품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지금그리고그때 #저메이카킨케이드 #문학동네 #리뷰어스클럽 #장편소설 #자전소설 #뼈아픈고백 #노벨문학상유력후보 #카리브해문학대표작가 #여성으로서의삶 #책추천 #책 #독서 #도서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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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어보고 작성한 포스팅이에요 #장편소설 #저메이카킨케이드 #자전소설 #뼈아픈고백 #지금그리고그때
'지금 그리고 그때를 보라'는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책 제목 <See Now Then>과도 같다. 책 첫 장면엔 주인공 미시즈 스위트가 사는 동네의 이웃, 호메로스의 장례식이 나온다. 그가 잡은 사슴 중 가장 큰 사슴을 활로 쏴 잡았지만, 차에 사슴을 싣다가 그는 넘어져 죽고 말았다. 호메로스의 죽음은 맨 뒤에 '버림받음'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글에서 기억에 떠올랐던 장면이었다. 가장 큰 사슴을 잡았으면 뭐 하나? 죽으면 끝인걸? 그리고 이미 죽은 이들이 마당에 심은 작약, 미시즈 스위트도 작약을 심는다. 그곳에 모든 일은 있었고, 그것들은 지금이자 그때다. 그때와 지금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때는 그 당시엔 지금이면서, 지금은 그때가 되기도 한다. 그때의 일은 지금의 일에 영향을 주고, 그때의 일은 지금과 같기도 하다. 그때와 지금을 오가며 저자는 자신의 과거 그리고 현재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이 소설에 쏟아냈다.
미시즈 스위트는 가족과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 셜리 잭슨 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미시즈 스위트는 엄마의 딸이면서 미스터 스위트의 아내다. 딸, 아름다운 페르세포네와 아들, 어린 헤라클레스의 엄마이기도 히다. 초반부터 미스터 스위트는 미시즈 스위트를 증오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본다. 오랜 결혼 생활 끝에 아내에게 질려버린 시선이 정말이지 물리적으로 죽이는 것 못지않게 무자비하게 느껴진다. 이 둘은 어떻게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된 걸까? 남편은 아내가 왜 저렇게까지 혐오스러운 건데? 자신을 향한 남편의 속내를 아내도 과연 알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절로 들 정도다. 한때 자신의 생명을 다해 엄마의 젖을 빨았던 아이들은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기꺼이 사랑을 내어놓았었다. 지금은,,, 엄마가 조금이라도 안 보이면 난리다. 엄마의 개인적인 일(글쓰기, 정원일 등)을 조금도 참지 못하고 날뛴다. 지금, 그리고 그때... 자신을 대했던 엄마가 있다. 딸에게 기꺼이 사랑을 요구한 엄마, 나이를 속여 학교를 보낸 엄마, 나를 배에 태워 내보낸 엄마, 그 엄마는 죽었지만, 그때의 엄마가 지금도 내게 있다. 끝으로 치달을수록 남편의 폭력적 언행은 더해간다. 인격모독, 폭언 그리고 비웃음, 당당한 외도 폭로까지,,, 그녀는 아파하며 또 큰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도 아이들도 혐오하며 야유를 부리는 공간, 하지만 그녀에겐 그녀가 그녀다울 수 있는 공간이 두 곳이 있다. 정원 그리고 주방에 딸린 방이다. 그녀는 심고, 키운다. 그리고 글을 쓴다. 그때 그리고 지금이 그녀의 앞에 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위한 의복을 지었다.(p.218)
'버림받는 것'에 대한 저 글이 인상적이었다. 초반 잠깐 나왔던 이웃 '호메로스 죽음'이 연상되었고 말이다. 죽음도 그런 의미에서 버림받는 것이다. 끝내 누군가의 기억에 남더라도 언젠가는 내팽개쳐질 게 인생이다. 얼마 전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황동만의 형, 황진만이 말한 내용이 떠올랐다. 모든 스토리는 나는 존재한다는 아우성 이렇게 아프게 존재해. 이렇게 슬프게 존재해. 이렇게 우울하게 존재해 이렇게 웃기게 존재해. 기껏해야 100년 100년이면 다 사라지는데 사리지는 것이 진정 존재했던 건가. 그런 의문을 잠재우기 위해 정신없이 스토리를 써대지
자전적인 소설임을 몰랐더라면 단순하게 소설이구나 했을 거다. 알고 보니, 이 책이 출간될 당시 2013년 미국에선 작품 속 '미스터 스위트'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을 거란다. 소설 속 미스터 스위트처럼 저자의 전 남편 또한 작곡가였다는 사실! (외에도 여러 단서가 있었다네요.) 그녀를 <뉴요커> 전속작가로 두었던 <뉴요커>의 편집장, 윌리엄 숀은 한때 저자의 시아버지였고 말이다. 식민지 출신이자 여성이고, 흑인이면서 이주민이었던 저자는 소설에서처럼 오랫동안 곳곳에서 치덕치덕 끈질기게 그녀를 끌어내렸던 목소리들과 행위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을 거다. 그녀가 살기 위해 끝내 붙들었던 것은 아마도 '글쓰기'가 아니었을까? 이 소설 속 주방 딸린 방에서 자연스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는 것은 나뿐이 아닐 거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집 바깥에서 영원한 해가 빛나는 봄을 바라보고 있다. 처절한 부르짖음 속에서 찾아낸 그녀의 봄을 지금은 찾아냈을까? 10년도 지난 작품이라고 하니 지금의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은 모습일지 궁금하다. (혹, 이 책 날개에 있는 사진? 지금일까?) 그녀의 봄을 떠올리자니 또 생각나서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드라마 <모.자.무.싸>에서 황진만의 시를 소환해 본다. 봄은 늘 기다립니다. 첫눈도 기다리고 가을 하늘도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는 계절이 없습니다. 지금인데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지금인데 바람이 나뭇잎에 하얗게 뒤집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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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장편소설 #저메이카킨케이드 #자전소설 #뼈아픈고백 #지금그리고그때
그리고 그녀는 지금 그녀를 생각한다. 지금이었더라도 그때가 될 것이 아주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재는 그때이자 지금이고 과거도 그때이자 지금이며 미래도 그때이자 지금이 될 것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영원한 현재시제를 가지지 않으므로 지금 당장의 측면에서 확실성이라고는 없음을 알면서도. -p22 어린 시절, 모든 일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 보이던, 하나같이 지금일 뿐이라 확실히 끝은 없던 내 삶의 기간을 말이야. 그 이야기를 하는 바로 지금만 그때가 될 수 있어. 과거란 그것을 지금으로 내보여야만 과거가 된다는 듯이. -p148 당신의 존재가 그들에게 쓸모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다 쓸모가 없어지면 당신은 다시 버려지고, 다른 뭔가에 밀려나고, 그러면 그 순간은 다시 지금이 될 것이다. 지금이란 진행중이고 절대 그치지 않으니까. 지금은 무자비하고, 알려진 모든 것과 심지어 미지의 것에도 꿈쩍하지 않고, 움켜쥐어 단단히 눌러놓을 수 있는 모든 것, 움켜쥐어 단단히 눌러놓을 수 있는 모든 것에도 꿈쩍하지 않으니까. -p217 글을 읽다 보면 작가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글을 '지금, 그리고 그 때' 책으로 처음 접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미시즈 스위트가 저메이카 킨케이드이지 않았을까, 적어도 일부분은 작가 본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인 미스터 스위트와 딸 페르세포네, 아들 헤라클레스와의 삶을 뜨개질 하듯이 짜내며, 자신의 인생의 조각을 열심히 꿰매려 노력했던 미시즈 스위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결국 지나간 시간으로 치부될 테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그녀. 구석방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자기의 시간을 적는 것만이 미시즈 스위트를 위한 것임을, 남편과 아이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미시즈 스위트는 남편 미스터 스위트의 음악을 위해, 아이들의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갔지만 가족들은 그 모습을 온전히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미시즈 스위트는 외로워보였고 자기만의 구석방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실 이 책이 그리 쉽지 않았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려갈 때마다 부드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꽤 있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야했다. 우리는 모두 안다. 그 때가 지금이고, 지금이 그 때가 된다는 것을. 잊고 싶은 옛 시간도 현재에 다시 반복될 수 있고, 잊고 싶어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계속 그 때가 지금이 될 때가 있다. 미시즈 스위트는 글에 자신의 생각을 옮기는 것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생겨서 떠나겠다는 남편으로부터, 헌신적으로 돌봤던 아이들의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무시로부터 떠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 글쓰기였을 수 있다. 미시즈 스위트만의 방식과 표현으로 열심히 가정에 헌신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상처 그리고 다시 덧나는 상처뿐인 것 같아서 마음이 쓰라렸다. 태어나면 사랑받는 존재로 자라고 싶은 마음은 아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이지 않을까?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행위가 그래도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고,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해 주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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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저메이카킨케이드 #자전소설 #뼈아픈고백 #지금그리고그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지금, 그리고 그때>는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한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꾸 숨이 막히고, 누군가의 아주 내밀한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보는 기분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쉽게 책을 덮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솔직해서, 너무 적나라해서 오히려 계속 읽게 되는 힘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카리브해 출신 작가 저메이카 킨케이드는 늘 여성, 가족, 식민지 경험, 정체성 같은 문제를 집요하게 써온 작가인데, 이번 작품은 특히 중년 여성의 삶과 결혼, 육아, 가족 안에서 무너지는 감정을 아주 날것에 가깝게 보여줍니다. 번역은 정소영 번역가님이 맡았는데, 감정의 거친 결을 잘 살리면서도 문장이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읽히도록 균형을 잡아준 느낌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제목 그대로 ‘지금’과 ‘그때’를 계속 오간다는 점입니다. 미시즈 스위트는 주방 옆 작은 방에 앉아 현재의 삶을 견디면서도, 과거의 기억들을 끝없이 불러냅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사실 그렇게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지금의 감정이 과거를 다시 해석하고, 과거의 상처가 현재를 계속 흔들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지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지금의 감정처럼 다시 밀려오는 경험을 종종 했습니다. 특히 인간관계나 가족과 관련된 기억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넘겼던 말이나 장면이 몇 년 뒤 갑자기 다르게 보일 때가 있잖아요.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역시 가족에 대한 감정이었습니다. 이 책은 가족을 무조건 따뜻한 공간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과 미움이 거의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처럼 묘사합니다. “미움은 사랑의 반대이면서도 가장 비슷한 형태”라는 문장이 특히 오래 남았습니다. 솔직히 가족은 때때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미시즈 스위트가 육아와 가사노동 속에서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장면들은 꽤 현실적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죄책감과 분노가 얼마나 복잡한 감정인지 담담하지만 아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이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깨뜨리는 점이 좋았습니다. 미시즈 스위트는 결코 완벽한 어머니도, 성숙한 인간도 아닙니다. 때로는 잔인하고, 피곤하고, 자기혐오에 빠지고,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모습이 너무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사랑하면 늘 헌신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인간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이 책은 그 불편한 진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자기 안의 복잡한 감정을 자꾸 돌아보게 만듭니다.
<지금, 그리고 그때>는 편안하게 술술 읽히는 소설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강한 작품입니다. 특히 가족, 결혼, 과거의 기억,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감정을 한 번이라도 깊게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꽤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시간이 흐른다고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지금의 내가 과거를 다시 바라보듯, 언젠가 또 미래의 내가 지금을 돌아보게 되겠지요. 그래서 <지금, 그리고 그때>는 유난히 마음에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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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 만나는 작가고,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란 말에 혹했다. 자전적 성격이 강하고, 쉽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풀어내는 내면의 목소리는 깊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지금과 그때 라는 단어들은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기 위한 단어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나 그때나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년 여성 미시즈 스위트와 그녀의 남편 미스터 스위트의 삶은 너무 다르다. 이 부부의 다른 생각과 삶은 불편하고 의문으로 가득하다. 왜 그렇게 분노하면서 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읽는 내내 미스터 스위트는 아내를 죽이고 싶어하고 분노한다. 후반부에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잠시 말하지만 정말 잠깐일 뿐이다. 그가 아내를 혐오하고 분노하게 된 사연을 하나 말한다. 그 순간 그가 느낀 감정에 공감하지만 그것이 계속 지속될 일인가? 어쩌면 그 이전부터 쌓여온 감정들이 그것을 통해 더 불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감정과 생활 일부가 나오지만 더 깊은 곳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읽으면서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난해한 문장과 서술 방식은 나의 취향과도 동떨어져 있다.
미시즈 스위트가 남편과 자식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사랑이다. 이 사랑 중 아들 어린 헤라클레스에 대한 부분은 익숙한 것이다. 객관적인 감정이 아닌 주관적 감정을 아주 사실적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단순히 외모에 대한 묘사만 봐도 개인적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사랑이 낯설지 않은 것은 내 주변에서 많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분량과 묘사 등만 봐도 딸보다 더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딸에 대해서는 미스터 스위트가 더 애지중지하는 것 같다. 그리고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셜리 잭슨이 살았던 집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작가의 소설과 이 가족의 모습이 겹쳐지는 대목이 있는 것일까? 읽으면서 의문이 생기고,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가독성이 좋은 이야기도, 간결한 문장도 아니다 보니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자전적인 부분이라고 하지만 명확한 장면과 구성으로 풀어내지 않아 더 어렵게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과 ‘그때’가 같이 쓰이는 문장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이 단어가 과거와 현재를 묶어주고, 감정과 상황의 동일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나, 좀더 집중해서 상황을 이해한다면 다를 수도 있다. 현재 나의 이해는 그렇다,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다. 의식의 흐름과 혼란스러운 감정의 표현을 따라가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장편소설 #저메이카킨케이드 #자전소설 #뼈아픈고백 #지금그리고그때 #문학동네 #정소영 #리뷰어스클럽 #리뷰어스클럽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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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장 가깝게 지내면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족에게, 우리는 타인보다 못하게 지껄이고 무시하기도 한다. 별 생각없이 내뱉는 말들은 때론 사람의 마음에 박이고, 금세 잊어버린 말하는 이와는 달리, 수동적으로 듣고 있던 사람의 마음에만 오래 기억되곤 한다.
‘지금, 그리고 그때’는 사랑하면서도, 오랜 기간 지지고 볶아서 때로는 미워하게 하는 가족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쉽게 털어내지 못한 가족에 대한 미움을 우리는 때로 자기연민에 빠져서, 분위기 잡고 울고 싶어지는 때가 오기도 하고, 나만 볼수 있는 일기를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족이기에, 쉽게 꺼내놓을수 없는 말들의 파편들 사이에서, 그리고 과거의 사건과 지금 사이에서, 많은 기억들과 현재의 모습을 반추하게 되기도 한다.
소설은 한 여자의 별것 없을 것 같은 삶과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결코 얕볼수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의 무게와 한편,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가족이라는 존재에 덤덤히 관조하게 된다. 결국은 한정된 유전자풀에서, 부모의 인생과 단점이 결국은 나의 인생이라는 연장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렇기에 자기 혐오와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혐오할 수는 없는 나와 나의 가족의 이야기는, 아스라한 현실을 담고 있기에,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소설과 이야기의 끝에서 끝없는 공감을 만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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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 제공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한때 TV에서 욕쟁이 할머니 식당을 소개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내 돈 내고 욕먹으면서까지 식사를 하지? 아마도 그 식당의 음식이 특별히 맛있었거나, 욕을 하는 사람이 나이 많은 할머니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나, 평소 들어보지 못한 욕이 코미디처럼 웃겼거나,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내 취향은 아니니 굳이 그런 식당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 [지금, 그리고 그때]를 읽다가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TV 속 욕쟁이 할머니 식당이 떠오른 건 왜일까? 듣도 보도 못한 서인도제도의 한 작은 섬,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현재 독립했지만 여전히 영국 연방의 회원국으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섬나라 ‘앤티가 바부다’에서 태어난 저자 ‘자메이카 킨케이드(1949년생~현존)’는 가난 때문에 어린 나이에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17세에 뉴욕으로 이주해 남의 집 오페어(입주보모)로 일하며 지역 대학의 야간 수업을 들었고 자전적 소설까지 여러 권 출간했으니 과연 범상치 않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작곡자이자 대학교수인 남편을 만났으니 동화 속 신데렐라가 현실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록 불법 체류자였던 그녀가 뉴욕에 남아 있기 위해 했던 결혼이었을지라도 그녀의 끈질긴 노력과 타고난 재능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으리라. 책의 원제목은 [See Now Then],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보라 지금 그때“다. 마치 유아기 소녀의 언어같이 나열된 짧은 단어 제목이 시사하듯, 지금 두 아이의 엄마로 중년의 나이가 된 그녀 안에 그때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상처받았던 연약한 여자아이가 지금 여전히 존재한다.
현재인 지금과 과거의 그때가 공존하는 작가의 머릿속을 허우적대는 미사여구들이 봇물처럼 솟구치고 넘쳐나, 읽는 내내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마치 배고파서 들어간 식당에 음식만 나온게 아니라 욕쟁이 할머니의 걸쭉한 욕을 양념처럼 함께 먹어야만 하는 상황처럼, 대략 난감 그 자체였다. 초반부는 그나마 읽기 수월했다. 작가의 상상력이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처럼, 혹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처럼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 리드미컬한 비트 음악으로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도돌이표가 되어 끊임없이 돌고 도는 발레복을 입은 소녀 인형의 춤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그녀의 한숨 섞인 문장들은 반복적으로 내 머리를 강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가올 그때에 늘 그럴 것처럼. 하지만 지금, 바로 이 지금." 이런 식으로 모노드라마 대사를 독백하듯 자아의 내적 갈등과 자신의 삶을 쏟아낸다. 처음엔 내게 난독증이 있나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안타깝게도 혼잣말을 하는 사람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보다 더 시끄럽게 느껴진다. 미시즈 스위트와 미스터 스위트를 오가며 마치 제3자의 눈, 그것도 하늘을 나는 매의 눈으로 관찰하듯 두 사람의 심리를 그때와 지금을 뒤섞어 표현하는데, 처음엔 시(詩) 적으로 느껴지던 문장들이 갈수록 늪에 빠진 발목을 빼내려 안간힘을 쓰지만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엄마로부터 상처받았던 그때의 미시즈 스위트가 지금은 남편인 미스터 스위트로 인해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자신의 모습조차 부끄러운 모습으로 그릴만큼 자학적이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자신의 실패한 결혼 생활을 엄마가 아니면 절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애정결핍으로 포장하고, 자신을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남편에게 침묵으로 사랑과 증오를 섞어 저주를 퍼붓는 그녀가 안쓰럽고 서글퍼진다. 다 읽고 보니 이 작품을 '미시즈 스위트'의 모노드라마로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230여 쪽의 내용이 다소 길긴 하지만 왠지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구원과 희망을 이야기하며 책 속에 갇힌 침묵의 텍스트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절규의 모노드라마를 통해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와 관객의 상처가 치유될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