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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어렸을 때, 아니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사회과부도는 재미있는 놀이기구였다. 교과서는 아니었지만 누구나가 다 구입해야 하는 책이었다는 기억이 있고, 그렇게 가지게 된 책을 넘기면서 우리는 각종 놀이를 하였다. 예를 들면 나라이름을 찾는 놀이라든지, 그리고 좀 더 발전하면 수도나 도시명을 찾는 놀이 등을 했던 것 같다. 당시만해도 외국이란 그렇게 지도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나라들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은 인터넷 등 통신매체의 발달로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접하기는 하지만, 지리적 공간 능력은 그때보다 떨어지는 것 같다. 아마 지도 책을 덜 보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통시대 나라의 안팎이 표시된 지도는 국가의 기밀이었다. 함부로 작성해서도 안되지만 작성된 지도의 소지는 물론 접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었다. 그런 지도는 대부분이 우리의 경계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세계지도라 해도 기껏해야 중국이나 일본 등을 표시하는데 그쳤다. 그런 조선에서 17세기경 세계지도가 제작되었다. 천하도라 불리는 조선 고유의 세계지도가 바로 그것이다.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천지관天地觀이 지배하던 동아시아 사회에서 세계를 원형으로 표시한 지도는 오직 조선의 천하도 뿐이었다고 한다. 목판본이고 필사본이고를 막론하고 구조는 동일했다. 둥그런 원안을 내대륙과 내해, 외대륙, 외해로 나누고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동쪽과 서쪽에는 신목을 그려 넣었다. 이런 천하도는 조선후기에 만들어져 지식인 사회에 널리 유포된 조선의 가장 대표적인 세계지도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천하도를 가지고서 그 안에 담긴 사상과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 있다. 천하도가 언제, 어떤 경유로 처음 제작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추정해보면 대략 17세기 이후의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중국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서구의 지리 지식은 조선 사대부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확장에 영향을 끼쳤으며, 그 과정에서 천하도가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천하도에 수록된 지명은 대략 140개 전후인데, 이들 지명은 대부분 중국고서인 [산해경]을 비롯한 각종 역사서와 도교관련 서적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내대륙은 중국이나 조선과 같이 당시 실재하던 나라의 지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내해는 일본, 유구 등을 제외하면 가상의 지명들이며, 외대륙 역시 상상 속의 지명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들 국가들의 표시방법을 보면 중국은 원으로 크게 표시하고, 다른 나라들은 네모 안에 표시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아무런 표시 없이 그냥 글자만 써놓았는데, 이는 중국은 중화, 조선은 소중화, 그리고 기타 나라는 이국이라는 전형적인 화이관이 반영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천하도라는 세계지도가 조선의 지식인들에 의해 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천하도에 나타난 원은 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표상한 것이라고 한다. 바깥 원에 하늘의 별자리를 배치한 것이 그 증거이며, 당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땅은 네모진 평지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상세계뿐만이 아니라 하늘의 세계도 표현되어 있는 천하도는 우주지의 성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천하도는 천계天界, 지계地界, 인계人界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신선도의 기본원리인 삼재일체三才一體를 뜻한다고 한다. 원형 천하도에 나타난 동심원적 구조는 [산해경]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실세계인 내대륙의 경우는 중국에서 제작된 직방세계 중심의 지도를 기초로 하였다고 한다. 천하도에 반영된 [산해경]은 중국고대인의 꿈과 무의식에 뿌리를 둔 원형적 심상을 집대성한 도교의 상징체계를 구축한 서적으로, 현실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유학자들에겐 이단서로 취급되었다. 그럼에도 지명과 구조 등 많은 부분을 [산해경]에서 차용한 것은 천하도에 나타내려 하는 조선 지식인의 확장된 세계인식의 표현에 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이단서였지만 천하도에 표현된 관념은 전통적인 성리학의 관념에 기초를 두었기 때문에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흔히 지도에는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본 세계관이 반영된다고 한다. 우리는 천하도를 통해 전통시대 지식인들이 바라본 세상을 엿볼 수가 있다. 동아시아에서 조선에서만 특별히 제작된 원형지도라 하여 지금의 지리적 관념이 올바르게 담겨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세계관은 물론 인생관 및 우주관까지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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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도'는 고등학교 세계지리 및 한국지리 교과에 등장하는 지도이다. 조선 후기의 지도이고, 세계지도로 소개된다. 원형이고, 현실세계는 물론 상상의 세계도 지도에 표현했으며, 중화사상이 재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기해서 적용하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 이 정도에서 더 깊게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다루지는 않는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반드시 깊은 내용을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시험에는 여러 지도의 특징을 비교하는 식으로 다루다 보니 피상적인 특징만 암기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지도란 단순히 땅의 모습을 축소해서 그린 것이라기보다, 당대 사람들의 공간관,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매체이다. 그러므로 천하도에 대한 더욱 심층적이고 세부적인 해석은 천하도 제작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려는 시도이다. 단순히 특징을 암기하는 것보다, 이 지도의 제작 배경 및 지도의 세부적 특징을 안다면 조금 더 학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천하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세계지도와 세계인식의 관계를 연구한 지리학자이다. 이렇게 고지도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저자가 '천하도'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가지고 한 권의 책을 썼다. 천하도 지도 한 장으로 어떻게 책 한 권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물론 책의 두께는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천하도 속에 담긴 이야기가 의외로 풍부하다는 뜻이 된다. 저자는 천하도가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코스모그래피(Cosmography, 우주지宇宙誌)"라고 한 마디로 요약한다. 땅의 모습뿐만 아니라 하늘의 모습까지 함께 그려내어, 당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의 모습을 하나의 지도에 집약했다는 것이다. ![]() https://ko.wikipedia.org/wiki/%EC%B2%9C%ED%95%98%EB%8F%84 그렇다면 천하도에서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둥근 외곽선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다 알고 있는 것이고, 이러한 상식으로 인해 천하도의 둥근 모습은 지구구체설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천하도의 원형이라는 형태는 서구의 세계관이 도입된 이후 지구구체설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위 사진 출처인 위키피디아에서도 그렇게 나옴). 하지만 저자는 둥근 부분이 지구가 아니라 하늘이라고 보았다. 그 근거로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사상이 재현된 여러 천문도의 형태가 둥근 모양인 것, 천하도 계통 중에서 둥근 부분에 별자리를 그린 지도 등을 댄다. 천하도의 제작에 서구식 세계관이 영향을 준 것은 "세계는 중국 중심의 직방세계보다 더 넓을 수 있다"는 사실 단 하나라는 점에 놀랐다. 나 역시 천하도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천하도와 관련한 여러 문화권의 세계지도와 세계관을 분석하여, 천하도는 고유하고 독특한 세계관을 창조하여 만든 지도라는 점을 역설한다.
원형 천하도는 서구식 세계지도의 영향으로 인해 세계 인식이 확대된 사회적 배경에서 태동했지만, 서구식 세계지도를 원형 천하도 제작에 직접적으로 활용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서구식 세계지도를 포함한 기존의 지도에서 직접 연유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세계상을 새롭게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더 크다. (p.53) 즉 천하도는 둥근 하늘 모양의 안쪽에 네모난 땅의 모습을 그린 지도인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모습을 우리가 경험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당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늘, 땅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한 장의 종이에다가 표현한 지도로 볼 수 있다. 하늘과 땅을 하나로 표현하는 발상이 재미있다. 세계관은 확대되었지만 그 빈칸에 채운 나라가 '산해경' 속 여러 상상의 나라라는 점은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상상의 나라들이 무엇이 있는지 상세히 살펴본다. 이렇게 상상의 나라를 지도에 그렸다는 점은, 경험 세계를 종이에 표현한 것을 일컫는 지도의 정의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상상의 지도를 그릴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이러한 상상의 지도가 반발이 없이 당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과정 등의 사상적 배경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한다. 천하도 고유의 융합적인 세계관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 이처럼 저자는 둥근 형태와 네모난 대륙, 그리고 실제와 상상의 세계를 동시에 그린 특이하면서도 융합적인 세계관의 반영으로 제작된 천하도에 대해 많은 관심을 촉구한다. 저자는 천하도의 '우주지'적 세계관을 지도에서 읽으면서, 당대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과 공간을 인식하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한다. 또한 우리는 중국 혹은 서양 문화의 일방적 수용자가 아니라, 창조적 수용 및 재창조도 가능할 것인데, 굳이 일부러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천하도의 재발견은 물론 우리나라의 여러 고지도에 대한 지식과 관심, 사랑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