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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까지 다다를 수 있는 사다리
-정채봉,<하늘새 이야기>
고은주
"아까부터 계속 손바람도 보내보고 입바람을 불어봐도 바보같이 밀려갈 줄을 몰라요. 아저씨, 흰 구름에 검정물이 배어들면 어쩌지요?"
<하늘새 이야기>라는 동화 속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 열이는 공장굴뚝보다 높은 사다리를 원한다. 흰 구름이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에 물들어버릴까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구름을 옆으로 치워주려는 것이다. 흰 구름을 보는 열이의 마음이 곧 작가의 마음이다. 작가는 맑게 걸려있는 흰 구름의 순수함이 세상에서 내뿜는 찌든 때에 물들어버릴까 걱정한다. 흰 구름의 순수함이 그대로 지켜지길 원하는 작가의 간절한 마음이 여기, 한 권의 동화책 속에 담겨있다. 흰 구름을 깨끗하게 지켜주고 싶어하는 열이의 마음은 작가가 만든 동화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흰 구름 곁에 다다를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어린이들은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와주는 친구를 느끼며, 어른들은 깨끗하게 지켜져야 할 잃어버린 동심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독자에게 사다리 역할을 하는 동화책, <하늘새 이야기>에 실린 16편의 글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동화가 있다. <눈물 담은 도시락>에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 딸에게는 밥을 싸주고, 자신의 도시락에는 하얀 행주를 넣어서 다니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딸이 우연히 어머니의 행주가 들어있던 도시락을 발견하게 되던 날, 황급히 운동장을 가로질러 딸의 도시락을 들고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어린 딸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한 부모의 모습은 <냄비뚜껑과 숟가락>과 <담요의 비밀>에서도 잘 나타난다. 자식이 소리를 못듣는다는 사실에 놀라, 냄비뚜껑과 숟가락을 가지고 귀를 트이게 하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멀리 가는 아들을 위해 담요를 반으로 잘라주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부모의 큰 사랑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그 사랑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교감 때문이다. 냄비뚜껑과 숟가락을 가지고 아이의 반응을 기대하는 부모의 모습에 아이는 "엄마아"하고 말을 하며, 훗날 한 사람의 어머니로 성장한 딸이 이제는 늙으신 어머니를 찾아가 내미는 낡은 도시락 속 딸기는 사랑의 교감, 즉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배우고 닮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어머니가 낡은 도시락에 담아 드리는 딸기를 보면서, 외할머니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들으면서, 반찬투정을 하던 어린 딸은 값진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속성이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잘라주었던 담요의 크기가 아들이 받을 때는 두 배로 더 작아졌지만, 글을 읽으며 담요의 크기와 반대로 사랑은 두 배씩 늘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들이 받은 담요가 또 그 아들에게, 손자에게 계속 반으로 나눠지면서 사랑은 이렇게 나눠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배우게 하는 동화이다.
두 번째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눈을 그린 동화가 있다. <속살을 본다>라는 동화에서 작가는 아이들의 눈이 맑은 이유가 눈물로 자주 씻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래알만한 슬픔에도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이 동화 곳곳에 배어있어 흐뭇함, 또는 잊고 있었던 깨달음을 준다. <향기나는 아이>에서는 옷에 유자꽃 향기가 스며들도록 늘어놓은 후에, 행여 향기가 날아갈까봐 조심조심 옷을 입는 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바람도 기웃거리기 힘든 대웅전 안에 있는 부처님께 좋은 향기를 가져다드리고 싶어 애쓰는 아이의 마음이 글을 읽는 사람의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퍼지게 한다. 이러한 아이의 순수한 모습은 <하늘새 이야기>에도 드러난다. 몸이 많이 아픈 열이는 날이 추운 것과 맑은 것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졌다. 동화를 읽는 내내, 독자는 열이를 보는 정원사의 마음을 닮게 된다.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동화가 있다. <하얀새의 슬픔>에서는 산수와 죽은 아저씨와의 대화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들며, <달려가는 향기>에서는 옛날에 살던 산동네에 다시 감으로써 가족이 잊고 있었던 행복에 대해 일깨워준다. <또 하나의 눈동자>에서는 진정한 한 몸이 되기 원하는 두 마리 연어의 갈등과 극복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융화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안개 속에서>는 산에 폐기된 유리병, 알루미늄 캔, 비닐 등 썩기 어려운 쓰레기를 귀신으로 형상화해서 우리의 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우리가 잊고 있는 소중한 것과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있는 이 동화들은 어른에게 따끔한 깨달음을 주며, 아이들에게 도덕적인 교훈을 심어준다. <느낌표를 찾아서>에서는 오랫동안 느낌표를 쓰지 않고 '그렇지 뭐'하고 마른 풀잎처럼 살아오던 사람이 마침내 느낌표를 아주 잃어버려 정신병원에까지 찾아가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느낌표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밤 사이에 내린 하얀 첫 눈을 보고서야 비로소 잃어버렸던 느낌표를 찾게 된다. 이 동화에 나온 사람의 모습은 어쩌면 요즈음을 살아가는 어른들이 모습일지도 모른다. 동화는 곳곳에서 이러한 어른들의 무뎌진 모습을 녹여주고 있다. <금거북이의 외침>이나 <머리없는 부처님> ,<솔씨 하나 심었네>에서 보여지는 희생과 희망의 모습은 굳어졌던 마음의 부호들을 되찾게 하는 과정이 된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어른들이 함께 읽어야 할 시대이다. 어른들에게 이야기가 남기는 파장이 더 크기 때문이다. 굳어진 틀 속에서 살면서 잃어버렸던 느낌표와 천진한 동심의 눈을 이 책을 읽으면서 만날 수 있었고, 따끔하기도 했다. 사랑과 동심을 보여주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있는 이야기들 앞에서, 오랫동안 닦지 않아서 먼지가 묻은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흰 구름이 어디에 걸려있는지, 혹시 내 스스로 내뿜고 있는 검은 연기에 더럽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개 들어 위를 쳐다보게 만든 동화였다. 한 권의 책이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튼튼한 사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아까부터 계속 손바람도 보내보고 입바람을 불어봐도 바보같이 밀려갈 줄을 몰라요. 아저씨, 흰 구름에 검정물이 배어들면 어쩌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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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 선생님의 미발표 유작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그만의 순수함과 진실함을 다시 한번 우리들에게 깊이 전해주고 있다.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잊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마음의 것들을 하나 가득 안겨주는 듯한 이야기들은 우리들에 메마른 감성을 다시금 잔잔하게 감동시키며 어떠한 삶의 방식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를 다잡아 보게 하고 있다.
이제는 병들어 함께 오래하지 못할 할머니와 엄마의 삶에 있어서의 양은 도시락이 전하는 가슴 뭉클한 부모로서의 사랑과 희생의 이야기는 냄비뚜껑과 숟가락, 보물처럼 여기는 할아버지의 담요를 통해서 다시금 되돌릴 수 없는 그 시절의 추억과 사랑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또한 바람을 타고 오는 유자꽃 향기가 옷에 스며들도록 하려는 계수나 백혈병을 앓고 있는 열이가 정원사 아저씨와 함께 하며 보고 느끼는 것들 그리고 듣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떠나 하늘새가 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아마도 열이와 같은 아픔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작가 스스로가 세상을 끝까지 아름다운 눈으로 모든 것을 보기를 바랬던 것처럼 이야기들이 엮어져 나간다.
진정 바라는 사랑의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깊이 알게 하는 이야기를 통해 주변의 이들은 물론 자연속의 동물, 식물들의 고통까지도 헤아리게 하고 있다. 순간의 무심한 나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는 것들을 위한 배려와 세심한 행동의 것들까지도 주의 해야 함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동화의 의미를 통해 각박해져만 가는 우리들의 감성과 정서를 다시금 찾고 계속해서 유지해 가기를 희망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지나칠 사항의 것이 아닌 그러한 정서의 것에 감동과 이해를 더불어 깨닫게 하는 이야기들에 대한 느낌처럼 우리도 사랑과 희생에 대한 감사와 배려를 하여야 하며 그러한 삶의 교훈을 실제 생활에서도 실천하며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란 다짐을 해보게 된다. |
|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정채봉 선생님의 작품을 접했었다.어른을 위한 그림 책같은 동화... 예쁘진 않지만 간략하게 동화의 내용을 잘 나타낸 삽화에,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짧은 글들이 어우러져 한창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었다. 이런 동화도 있다니.. 말 그대로 충격 이었고, 나는 우울 할 때, 슬플 때, 기쁠 때, 고민이 있을 때, 혹은 시간이 많이 남을 때.. 두고두고 그 책을 읽었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선생님의 동화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이 동화책을 샀던 것인까....? 분명, 어려서 읽었던 그런 류의.. 그러니까,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동화를 쓰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면 어떤 식일까..? 하는 기대감. 순전히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기대에 크게 못미친 것 같다. 아이들이 이 작품들을 읽으면 과연 재미있다고 할까.. 싶다. 요즘 아이들은 깊게 생각 하는 것을 싫어한다. 동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동화는 아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깊은 생각을 요구한다. 어머니의 사랑도 그렇고, 전쟁터에 나갔던 할아버지도 그렇고. 나는 이 책을 반쯤 읽다 덮어버렸다. 그냥, 선생님의 이름 하나만으로 책장에 꽂아두는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고인이 된 선생님껜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