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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하는 판단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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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이었다. 불길하고 위협적인 십년 치의 새로운 행로가 내 앞에 펼쳐졌다. 서른—외로운 십년의 약속, 싱글 남자가 알아야 할 것들의 목록은 옹색해지리라는 약속, 얇아질 열정의 가방, 탈모의 약속이다. (I was thirty. Before me stretched the portentous, menacing road of a new decade . . . Thirty – the promise of a decade of loneliness, a thinning list of single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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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이었다. 불길하고 위협적인 십년 치의 새로운 행로가 내 앞에 펼쳐졌다. 서른—외로운 십년의 약속, 싱글 남자가 알아야 할 것들의 목록은 옹색해지리라는 약속, 얇아질 열정의 가방, 탈모의 약속이다. (I was thirty. Before me stretched the portentous, menacing road of a new decade . . . Thirty – the promise of a decade of loneliness, a thinning list of single men to know, a thinning brief-case of enthusiasm, thinning hair.) — F. Scott Fitzgerald, The Great Gatsby, London: Penguin Books, 2000. {위대한 개츠비}는 물질만능에 스러져 가는 군상, 그 기막힌 포착이다. 지나친 일반론인가. 하기야 이 소설에 대한 나의 감탄은 소설이 다루는 주제에 기인하지 않는다. 주제를 다루는 Fitzgerald 의 ‘방식’에 감탄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소설 전체를 통해, Fitzgerald는 결코 단정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관찰과 판단 유보의 커튼 뒤에 숨어서, 인물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 심각하지만, 아무도 그 무엇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소설의 화자인 Nick은 어처구니 없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Gatsby의 주검을 앞에 두고 비로소 “이제부터는 내가 당신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역시 끝내 도피한다. (I’m nobody . . . My career is largely a matter of futures.) 뉴욕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뿐이다. 심각한 것 같지만, 모두들 저마다 사고치고 도망 가거나 혹은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 한다. 해서 오히려 이 소설은 우스꽝스럽다. Fitzgerald는 이들 심각한 인물들을 통해 끊임없이 웃긴다. 냉소. 걸작은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품고있다. Fitzgerald는 이 걸작을 통해 20세기 초 미국의 상류사회를 냉소한다. 이 냉소는 하나의 예언이다. ‘물질만능에 스러져가는 무책임한 군상’은 내내 번창에 번창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 소설은 ‘한 시대의 포착’을 넘어서 ‘한 세기의 포착’으로 늘 새롭게 태어난다. 참으로 ‘위대’하다. 옛 연인 Daisy를 잊지 못하는 백만장자 Gatsby는, 멀리 Tom과 Daisy 부부의 집이 보이는 바닷가 대저택을 사들여, Daisy와의 재회를 꿈꾸며 밤마다 성대한 파티를 연다. Gatsby의 이웃에 살던 가난한 삼십세 청년 Nick 역시 이 파티에 초대 받아 Gatsby와 알게 된다. Daisy와 먼 친척 간이었던 Nick의 주선으로 Gatsby는 결국 Daisy와 재회한다. Gatsby는 Daisy를 초대하여 자신의 저택 곳곳을 안내한다. 옷장 안에 말끔하게 다려져 정돈되어 있던 최고급 셔츠들을 Gatsby가 아무렇지도 않게 탁자 위로 던져 놓자 Daisy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셔츠로군요.” 그녀는 셔츠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슬퍼요. 난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는 한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Daisy의 눈물로 인해 나 또한 슬퍼졌다. 공허한 사랑을 목숨처럼 품었던 Gatsby가 가련해서 슬프다. 물질만능에 스러져 가는 뭇 군상의 단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러나 너무도 극명하게 드러내는 Fitzgerald의 높은 경지가 오히려 나를 슬프게 한다. 앞서 말했듯, 그는 개입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아예 소설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판단하지 않기로 못을 박았다. ‘판단 유보는 무한한 희망의 문제다. (Reserving judgments is a matter of infinite hope.)’ 하지만 그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판단 유보는 무한한 조소의 문제다. (Reserving judgments is a matter of infinite ridicule.)’
s********o 2002.12.05. 신고 공감 1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