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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약탈의 경제에서 선물의 경제로: 『경계를 허무는 기업들』 ‘주는 것’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생존 방식이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고대 문명의 첫 신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부러졌다가 치유된 흔적이 있는 고대인의 대퇴골(넓적다리 뼈)"이라고 답했습니다. 야생의 세계에서 다리가 부러졌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 뼈가 다시 붙을 때까지 누군가 그를 사냥감으로부터 지키고, 물과 음식을 나르며 헌신적으로 보살폈다는 '연대와 돌봄'의 방증인 셈입니다. 이처럼 인류는 적자생존의 약육강식법이 아니라, 다친 이를 보살피는 '주는 문화'를 통해 문명을 일구고 생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대 자본주의 경제 구조는 어떻습니까? 부의 맹목적인 추종과 치열한 적자생존의 경쟁만이 지배하며, 그 결과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가장 취약한 계층을 소외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 차가운 시장 속에서 기업이 다시 ‘선물(don)’과 ‘나눔’을 경영의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패배주의적 자선 활동이거나 지속 불가능한 무모함처럼 보입니다. 프랑스 에섹(ESSEC) 경영대학원의 아눅 그레뱅 교수가 펴낸 신간 『경계를 허무는 기업들』은 이러한 편견을 정면으로 깨부숩니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가톨릭 영성가 끼아라 루빅이 주도한 ‘모두를 위한 경제(EoC, Economy of Communion)’ 네트워크 속 기업들을 30여 년간 추적하고 현장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DNA에 각인된 인류의 오랜 보편적 특성인 '주는 문화'가 어떻게 기업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지 실증적으로 증명해 냅니다. 세계 4개국 기업들이 증명한 ‘주는 문화’의 기적 저자는 동일한 영감에서 출발했으나 저마다 다른 문화적 환경 속에서 '주는 경제'를 실천하는 4개 중소기업의 현장을 깊숙이 조명합니다. ① 필리핀 '방코 카바얀 (Banko Kabayan)' :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은행 타 금융기관들이 고객을 그저 '수익의 원천'으로 볼 때, 이 은행은 이웃을 섬기고 돕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영어가 서툰 빈민들을 위해 영어 대신 타갈로그어를 사용하며 사회적 친밀도를 높였고 , 전화 상담 대신 직원이 직접 일주일에 하루이틀씩 현장을 방문해 고객과 마주 보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그 결과 소액 대출 분야에서 100%에 가까운 상환율과 2% 미만의 연체율이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하며 신뢰 기반 신용 대출의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직원들은 업무를 통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다"는 나눔의 역동성을 배우며 성장합니다. ② 한국 '성심당 (SungSimDang)' : 대전의 자랑이 된 밀가루 두 포대의 기적 1956년 대전역 앞 노점에서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한 성심당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을 늘 추구하십시오”라는 사훈 아래 성장했습니다. 당일 남은 빵은 무조건 이웃에게 기부하는 원칙을 고수해 왔으며(현재 월 7천만 원 상당) , 2005년 대화재로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었을 때 회사를 일주일 만에 부활시킨 것은 사측을 '가족'으로 신뢰한 직원들의 자발적인 헌신이었습니다. 전국 단위의 무한 확장 대신 대전에만 남겠다는 로컬 기업으로서의 고집은 도시의 자부심이 되었고 , 투명한 경영과 수익의 15%를 직원에게 배분하는 성과 공유는 끈끈한 '사랑의 문화'를 구축했습니다. ③ 파라과이 '토도 브리요 (Todo Brillo)' : 소외 계층의 도약대가 된 청소 회사 싱글맘 마리아 엘레나가 창업한 이 전문 청소 회사는 자격 미달이라는 이유로 이력서조차 쓰레기통에 버려지던 싱글맘, 가난한 학생 등 소외 계층을 고용했습니다. 업계 관행인 비정규직 시간제 편법 고용을 거부하고, 실제 근무 시간과 상관없이 법정 최저임금과 주 48시간 기준의 사회보장기금 및 민간 건강보험을 전액 지원하는 재정적 부담을 기꺼이 짊어집니다. 직원을 기계가 아닌 존엄한 인격체로 대하고 정서적 지지를 보낸 결과, 동종 업계 최초로 ISO 9001 인증을 획득했으며 업계 평균보다 극도로 낮은 이직률(5~8%)을 유지하며 노동의 존엄성을 증명했습니다. ④ 아르헨티나 '디마코 (Dimaco)' : 피라미드를 허문 바퀴형 조직 10년 만에 7,000%의 성장을 이룬 건축자재 유통업체 디마코는 사람들 사이에 서열이나 권력 관계가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직도를 피라미드가 아닌 동심원 형태의 '바퀴 모양'으로 설계했습니다. 출소자를 채용해 회사의 자산으로 삼았고, 부서 담당자들은 지시가 아닌 소통과 요청으로 업무를 조율합니다. "시멘트 1만 톤을 파는 것보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웃을 수 있는 공동체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직원의 말처럼 , 이들은 철저한 상호 신뢰 속에서 빈민가 가옥을 짓는 연대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상호성’과 ‘연대’의 힘 아눅 그레뱅 교수가 현장에서 발견한 ‘주는 문화’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부러진 대퇴골을 치유하는 ‘공동체 학교’로서의 기업『경계를 허무는 기업들』이 허문 진정한 경계는 '이윤 창출'과 '사회적 연대' 사이에 놓여있던 이분법적 장벽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착하게 경영해서 성공했다는 식의 낭만주의적 미담집이 아닙니다. 철저한 경영학적 분석과 현장 조사를 통해, 인간을 완성하는 방편으로서의 '존엄한 노동'과 '친교'가 어떻게 무너진 비즈니스 생태계를 회복시키는지 보여주는 묵직한 보고서입니다. 도입부에서 언급했듯, 인류 최초의 문명은 부러진 대퇴골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밤을 지새우며 뼈를 이어 붙였던 '보살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기업들 역시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의 부러진 뼈를 기꺼이 품어 안는 ‘공동체 학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의 맹목적 추종으로 위기를 맞은 오늘날의 경제 구조 속에서, "경제가 지닌 본래의 깊은 뜻은 공동선을 위한 봉사"라는 아눅 그레뱅 교수의 일침은 매섭고도 따뜻합니다. 진정한 기업의 목적을 고민하는 경영자들, 그리고 일터에서 '한 가족'과 같은 진정한 신뢰를 회복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시대를 앞서가는 따뜻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책장을 덮으며 몇 번이나 울컥 가슴이 저미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이윤만을 좇는 차갑고 삭막한 기업의 이야기가 이토록 선하고 뜨거운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웠습니다. 상처받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은 그 자체로 따뜻한 위로이자 눈부신 '선물'입니다. #서평_책으로지은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