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3%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33%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새로운 연대와 극복의 가능성
"새로운 연대와 극복의 가능성" 내용보기
˝공동선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주제로 시민사회의 역할과 참여 방식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모았다˝새로운 연대와 극복의 가능성을 찾는 가라타니의 사유 성과를 집약해 보여주고 있다. 이념이 죽어버린 시대에 더 높은 이념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새로운 연대와 극복의 가능성" 내용보기
˝공동선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주제로 시민사회의 역할과 참여 방식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모았다˝
새로운 연대와 극복의 가능성을 찾는 가라타니의 사유 성과를 집약해 보여주고 있다. 이념이 죽어버린 시대에 더 높은 이념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s*****l 2015.07.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2015 결산]가라타니 고진의 정치사상 입문
"[2015 결산]가라타니 고진의 정치사상 입문" 내용보기
가라타니 고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과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를 좋아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참여적 지성인이다. 고진은 27세에 「나쓰메 소세키론」으로 비평계에 처음 발을 들인 후 예순 살이 되기까지 줄곧 재기 넘치는 예리한 문학비평가로 활동했다. 그러다 2001년 『트랜스크리틱』을 출간하면서부터 정치철학에다 심혈을 쏟았다. 그의 저작을 꾸준히 접했지만 나는 문학비평가
"[2015 결산]가라타니 고진의 정치사상 입문" 내용보기

가라타니 고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과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를 좋아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참여적 지성인이다. 고진은 27세에 「나쓰메 소세키론」으로 비평계에 처음 발을 들인 후 예순 살이 되기까지 줄곧 재기 넘치는 예리한 문학비평가로 활동했다. 그러다 2001년 『트랜스크리틱』을 출간하면서부터 정치철학에다 심혈을 쏟았다. 그의 저작을 꾸준히 접했지만 나는 문학비평가 고진을 정치사상가 고진보다 더 좋아하고 높이 평가한다. 이 책『가능성의 중심』(궁리, 2015)은 가라타니 고진의 정치철학에 대한 친절한 입문서다. 인터뷰 형식의 대담글 외에도 고진의 기고문 「세계동시혁명」과 존 트리트와 해리 하루투니안, 프레드릭 제임슨의 기고문이 딸려 있다. 고진의 문학비평에 대한 생각도 함께 담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사상가로서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착안하여 '세계공화국'이라는 초국가적 차원의 공동선을 제시한다. 칸트의 영구평화는 바꿔말하면 국가의 지양이고, 국가를 지양하려면 세계동시혁명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1990년대에 들어 우파 학자들이(가령 일본계 미국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이구동성 역사와 이념의 종말을 부르짖었을 때, 가라타니 고진은 오히려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독법은 임마누엘 칸트에 대한 비평에서 기인한다. 마르크스로부터 칸트를 읽고, 칸트로부터 마르크스를 읽는 '트랜스크리틱'이 결국 헤겔을 새로운 방식으로 비평하는 시도라는 얘기, 헤겔이 『법철학』에서 파악한 세계가 바로 자본=네이션=국가이고 영국 사회의 모델을 본따서 쓴 것이라는 점, 그리고 칸트의 영구평화와 세계공화국이라는 개념이 라이프니츠(1646-1716)로부터 온 것이라는 얘기는 언제 들어도 참신하고 흥미롭다.


"그동안 평화 운동과 혁명 운동은 별개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칸트가 말하는 '영구평화'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의 적대성이 없어진 상태, 즉 국가가 지양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세계동시혁명입니다."(130쪽)


그런데 고진이 교환양식에 근거한 거시적인 세계사 틀을 제기했을 때 나는 정치사상가로서의 고진의 '종언'을 우려했다. 우려는 금세 현실이 되었다. 이후 고진의 작품은 이 틀에 대한 반복 설명과 각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고진은 인류의 역사를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살피고 네 가지 교환양식을 구분해낸다. 다음 네 가지 교환양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환양식D이다.


교환양식A: 증여와 답례라는 호수 교환

교환양식B: 약탈과 재분배, 혹은 지배와 보호

교환양식C: 상품 교환

교환양식D: X(A의 고차원적 회복)


네 가지 교환양식에 간단히 꼬리표를 달면, 공동체와 호수, 국가와 재분배, 시장과 상품교환, 평화와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라 할 수 있다. 


교환양식A는 증여와 답례라는 호수적 교환이다. 고대 씨족사회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난 교환의 양식으로, 이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일본식 한자인 호수(互酬)란 바로 호혜성을 의미하는데, 공동체 내부의 증여와 답례에 기초한 교환양식으로 민족의 형성기제다. 교환양식B인 재분배는 약탈과 더불어 공동체와 공동체간의 오래된 교환양식으로 국가의 형성기제가 된다. 교환양식C인 상품교환은 비교적 뒤늦게 시작된 공동체와 공동체간의 교환양식으로 자본의 형성기제다. 교환양식B에 군대가 있고 교환양식C에 자본이 있다면, 교환양식A와 D에는 '증여의 힘'이 있다. 


마지막으로 '연합'이라 번역할 수 있는 어소시에이션은 세계공화국을 건설하는 핵심기제인데, 자본과 민족과 국가의 삼위일체를 극복하는 대안기제이다. 어소시에이션은 상품교환의 원리가 존재하는 도시적 공간에서 국가나 공동체의 구속을 거부하는 동시에 공동체에 있던 호수성을 회복하려는 운동이다. 이는 기존의 '코뮤니즘'에 대한 좌파의 이상적 논의들과 겹치지만, 무용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저자가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 것이다. 어소시에이셔니즘=사회주의는 보편종교의 형태로 나타난다. 실제로 공산주의적 운동은 근대 이전에 항상 종교 운동의 형식을 취했다. 중국의 황건의 난, 한국의 동학혁명이 대표적이다. 보편종교는 유동민적인 자유=평등을 지향한다. 고진은 보편종교와 세계종교를 구분하고, 보편종교는 국가, 공동체, 화폐에 대항하는 것으로 존재하지만 세계종교는 보편종교가 국가와 자본에 종속된 형태라고 본다. 


고진은 제국과 제국주의를 구별한다. 제국이 중국 왕조처럼 근대 이전 광역국가의 형태라면, 제국주의는 근대의 네이션=스테이트가 확장되어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대영제국이나 일본제국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제국이 아닌 제국주의다.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과 제국주의의 구별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제국주의적 지배의 본질은 상대를 직접적으로 지배해서 수탈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자유로운 교환을 통해서 수탈하는 데 있다. 그래서 고진은 신자유주의를 오늘날의 제국주의로 바라본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현상은 헤게모니를 둘러싼 제국주의적 경쟁이다. 내가 보기에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이 비록 순환적인 구도를 지니고 있지만, 결코 고진이 말한대로 자유주의 단계와 제국주의 단계가 60년을 주기로 번갈아 계속되는 형태는 아니다. 근대세계사가 120년마다 비슷하게 진행된다는 고진의 '도사 스타일'이 여기에서 나왔다. 

z***a 2015.12.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능성의 중심을 읽고
"가능성의 중심을 읽고" 내용보기
1부 새로운 이념을 향하여하나의, 소수의 이념과 가치관이 지속된다면 새로운 생각이 그 평탄함을 비집고 나온다. 자본주의가 갖는 역동의 이미지는 이제 구태의연함을 지우려는 알레고리의 노력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일본의 멋진 비평가 고진 씨는, 20대에 세상이라는 물에 돌을 던져 큰 파문을 일으킨 것처럼 혁명의 논리를 외쳐왔다. 그런데 그 논리의 씨앗 두개 중 하나가 칸트라
"가능성의 중심을 읽고" 내용보기

1부 새로운 이념을 향하여


하나의소수의 이념과 가치관이 지속된다면 새로운 생각이 그 평탄함을 비집고 나온다자본주의가 갖는 역동의 이미지는 이제 구태의연함을 지우려는 알레고리의 노력으로 보인다이 와중에일본의 멋진 비평가 고진 씨는, 20대에 세상이라는 물에 돌을 던져 큰 파문을 일으킨 것처럼 혁명의 논리를 외쳐왔다그런데 그 논리의 씨앗 두개 중 하나가 칸트라는 건 태극 속 음양처럼 이율배반으로 느껴진다아래 글의 이율 배반과는 또 다른 의미로서지만 말이다.

[주체는 근본으로서 자유와 관련이 있습니다제가 칸트를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즈음입니다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는 제3이율배반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간단히 말해 정명제는 자유가 있다이고 반대명제는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라는 것인 것칸트는 이렇게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명제가 양쪽 모두 성립한다고 설명했습니다그런데 이 것만 읽으면 칸트가 생각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렵습니다실존주의자나 구조주의자는 칸트를 냉소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논의까지도 이 제3이율배반에 포함되어 버립니다실존주의자는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라고 생각하죠.(정명제구조주의자는 자유는 없다라고 생각합니다인간은 자유로운 것처럼 보일 순 있지만 구조에서 벗어나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반대명제). 둘 중 어느 쪽이 옳은지를 분명하게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왜냐하면 두 명제 모두 성립하니까요그러니까 둘 다 칸트를 뛰어넘은 것이 아닙니다실존주의와 구조조의의 논쟁은 조금도 새롭지 않습니다어떤 국면에서 주체를 부정하더라도 다른 국면에서 재차 주체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주체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도 있고그것을 긍정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는 것이지요.]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 생각 중 하나는서양의 사유를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일까제대로 받아들일수 있을까의 문제다칸트가 말한 자유를고진 씨는 왜 사람들이 이해를 못했는지그리고 그걸 이해한 건 나뿐이라는 말로 밀고 나간다(물론 웃음을 포함해서…) 그런데 칸트와 서구의 부르주아지 혁신의 과정에 나온 그 자유가과연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얼마나 원전(또는 사전 속의미로서 유효할까이렇게 생각하면과연 사회주의를 말할 만큼 사회가 봉건주의를 뛰어넘어사회 구성원의 자발성을 발판으로 그 다음 단계로 진행했는가책에서 뽑은 구절과 엇나가는 말을 계속 하는 내가왜 이럴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칸트는 자유가 도덕의 영역에만 있다고 말합니다의무를 다함으로써 사람은 자유로워진다고 말하죠일반에서 사람은 의무를 다하는 일이 어째서 자유인가?’라고 생각합니다이를 이애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칸트를 비난합니다이를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은 사람은 저뿐입니다제 생각에 자유로워라라는 명령에 따를 때에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자유는 그와 같은 명령에서 오는 것이며 그 외에 자유는 없습니다.]


고진 씨도 나름 아틀라스의 어깨 급이라고 평가되어 보이는데가볍고 얕은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행복이 목적이 되면 우리는 자유로워지지 못할지니하지만 그 가벼움 속에서 책임을 말하고그동안의 일을 철저하게 살펴봄은 곱씹어볼만한 주장이다.

[도덕이 공동체 규범이라면윤리는 자유로워지려는 의무(명령)이지요자유는 어떤 것에 속박되지 않는 것인데행복하고자 애쓰는 인간의 본능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행복이 목적이 되면 우리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가 없습니다이미 일어나버린 일이 자신의 자유에 의한 것이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즉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책임지는 또 하나의 바람직한 방법은 그동안의 과정을 남김없이 고찰하는 일이다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고진이 말하는 헤겔(의 법철학)은 마치 얼마전까지의 한국을 짓누르고 있던, ‘국가의 국민 우위’ 태도의 뿌리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조선시대를 지배한 성리학과는 어느 정도 겹치는 시각이기도 하지만오늘날 한국의 그것은 일본 식민지에서 흘러내려온 것이 아닐까그 당시 일본을 휩쌓아온 그 전체주의와 국가 우위가 갖고 있던 그 폭력성

[헤겔은 법철학에서 정치 국가를 시민사회 위에 두었습니다시장경제체제인 시민사회는 욕망의 체계이고정치 국가는 그것을 초월한 이성의 차원에 있다고 여겨집니다이는 사람들이 시민사회에서는 私人이지만국가 차원에서 공민으로서 본연의 모습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마르크스는 이것을 역전시킨 겁니다경제 사회에서 각자가 보편으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이죠즉 현실 시민사회에서 사람들이 유적 존재로서 존재한다면시민 사회 상위에 상상되는 으로서의 국가는 이미 필요없다는 것이죠다시 말해 경제에 뿌리를 둔 사회관계에서 계급 대립이 해소되면 정치 국가는 지양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르크스의 유적 존재란 개별의 개인화된 존재 방식이 아니라자연사회 존재로서 인간의 총체 존재 방식을 뜻한다즉 인간이 노동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고 사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방식을 말한다그런데 자본에 의해 노동이 탈취되어버리면 인간은 자신의 유적 존재를 탈취당하게 되며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하고 있는 바는 곧 사인이라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그것을 보편의 것으로 삼으라는 명령입니다그것은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서술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이와 같은 것이 계몽이라고 한다면 이는 사회의 근본 변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계몽된 시대가 아니라 계몽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빅데이터라는데이터 분석이 강조되는 오늘날에그 기반을 제공하는 분야 중 하나인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가 떠오른다이 사회를 물리학으로구조의 급격한 움직임은 마치 상전이 현상을 말하는 듯 싶다.

[인간은 아무리 설득해도 움직이지 않지만구조의 원인이 명백해지면 급격하게 움직이는 법입니다자유란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 상정되는 환상이라는 스피노자의 생각을 언급했습니다.]


앞서 트랜스크리틱을 읽다가 멈춘 적이 있는데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자본=네이션=국가를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는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고진 매트릭스

국가(약탈과 재분배-지배와 보호)

세계 = 제국

네이션(호수 – 증여와 답례)

미니 세계 시스템

자본(상품교환 – 화폐와 상품)

세계 = 경제 (근대세계시스템)

D X (세계 공화국)

평등 →                                                              자유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된 근대자본제 사회에서는 교환양식 C가 지배형태입니다그렇지만 앞서와 마차가지로 교환양식 A B도 각기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이것이 세계=경제즉 근대 세계시스템입니다저는 특별히 오늘날의 이 시스템을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접합체로 봅니다그리고 저의 과제는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것입니다이를 위해서 각기 다른 교환양식의 기원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그리고 이런 체제를 넘어선 사회가 있는데 이는 교환양식 D가 지배하는 사회구성체입니다칸트도 이런 사회를 생각했는데이것이 바로 세계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진 선생이그 나름의 순발력이나 머리의 반짝거림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하지만 노동자이자 소비자라는 논리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풀어낸다는 건마르크스의 생각을 매우 비틀어서 생각하지 않나 싶다소비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자와는 다른기업이나 자본에 맞설 수 있다고 보는 논리인데생산자로서 자본에 맞섬이 쉽지 않듯 소비자로서 자본에 맞섬의 우위가 누구나 인정할 만큼 그렇게 커다란 차이를 줄 수 있을까설령 그렇지 않다고 했을 때용기를 걸고 추구해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뭔가 통통 튀는 듯한데막상 손에 잡으면 묵직함보다 가벼움에 살짝살짝 실망을 받는 느낌이다또 한가지기업을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서 노동자가 경영자가 된다는 생각은 김상봉 선생이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에서 말한 논리와 매우 유사성을 띤다.

[봉건 노예는 소비자가 아니지만프롤레타리아는 소비자입니다이것은 결정을 지을만한 차이입니다하지만 이 부분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 운동은 프롤레타리아트운동과 다른 것이라든 가노동자 파업은 이미 힘을 잃었다고 말해버리는 것입니다노동자와 소비자는 별개가 아닙니다노동자가 소비라는 장에 설 때에 소비자가 될 뿐입니다그렇다면 노동자는 그들이 가장 약한 입장이 되는 생산지점에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입장에 서는 유통의 장에서 소비자로써 싸워야만 하는 것이죠생산지점에서 노동자는 기업과 일체화되기 쉽습니다기업에 이익이 되는 일은 노동자에게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죠자본에 대항하는 또 한가지 요소는 노동력 상품을 지양하는 것입니다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합니다그렇게 하면 국유기업의 임노동자가 될 뿐이므로노둥자 상품을 지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자본제 기업을 그대로 협동조합으로 만들어버리면 됩니다거기서는 노동자 자신이 경영자죠.]


국가는 의무라기 보다 권리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보자는 것일까사실 국가가 자본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면서 고진 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상황은 이제 충분히 무르익었다분명 커다란 변화의 시기가 조만간 올 것이라는 신호가 여러 사람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말해지고 있다그리고 그 변화는 사회주의 혁명이 띄었던 폭력성보다는유엔이라는 기존 조직을 통해 바꿔가자는 온건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건일본의 책쓰는 분들이 잘하는 도식화 성향이 이분에게도 보인다는 것이다네가지 매트릭스가 나오고현재와 조만간의 미래 시국을 그 매트릭스에 투사해서 설명함이이해는 쉽지만 언제 우리가 매트릭스로 나타나는 역사를 살아 본적이 있을까 의 물음의 답으로는 그리 적절해보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임박이 의견은 어느 정도 공감아니 이미 그 생각을 이미 해온 나로서는 겹쳐지는 이런 부분이 반갑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진다그런데 세계 전쟁은 과연 선진국보다 중,후진국이라는 범주에 더 큰 위험이 될 것인가 

[앞으로 선진국은 경제 성장이 없는 시대가 계속되어 그것에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따라서 어소시에이셔니스트가 해야 할 과제는 사람들을 국가에 의해 구제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힘을 기르도록 돕는 것입니다적어도 그러한 사회의 힘을 위한 시도를 막는 억압을 저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칸트가 말하는 국가연합은 본래 평화론이 아니라 시민혁명을 세계에 동시 실현하기 위해서 구상한 것이었습니다이로써 마르크스가 말하는 세계동시혁명과 칸트가 말하는 국가연합이 저의 이론 속에서 서로 이어진 것입니다물론 자본=국가는 완강히 저항할 것입니다이미 자본주의는 한계를 보이고 있음에도자본=국가는 간신히 연명하며 살아남고자 하기 때문입니다거기에 대항하는 것즉 그것을 새로운 세계 체제의 형성으로 전환하는 것이것이 우리에게 앞으로 남겨진 과제입니다현재 시점에서 증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 포기/군비 포기입니다이것은 앞서 말한 대로 일본인에게는 비교적 실현하기 쉬운 것이라 생각합니다제가 세계 동시혁명이라고 말할 때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것은 전세계의 거리에서 시민의 봉기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그림이 아니라유엔의 획기스러운 변화일 뿐입니다이런 변화가 없다면세계 각지의 혁명은 결국 분열하고 고립되며 점차 사라져버리게 될 것입니다...칸트의 용어를 빌려서 말하자면이는 구성 이념이 아니라 규제 이념인 것입니다결국 우리의 이상은 점진화되어 달성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규제 이념이란 현실에서 실현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이상향으로 현실을 비판할 근거가 되는 이념)…제가 역사의 반복과 관련하여 염려하는 부분을 좀 더 정확히 하자면가까운 미래에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가 증대하는 것과 더불어교환양식 B가 강화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그러면 제국주의 전쟁이 발발하게  될지도 모릅니다자본의 축적은 자급자족 경제에 속한 농민을 시장경제의 임금노동자와 소비자로 편입시키면서 유지됩니다. 1970년대까지 선진 사회에서는 이 과정이 한창 진행되었지요그러다가 일반 이윤율이 하락하게 되고그때부터 세계 자본주의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자본은 당시 자본주의 경제 바깥을 편입시키며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통해 그 출구를 찾았습니다이 과정이 세계화 입니다저는 세계 전쟁이 임박했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의 경우만 해도 국내의 빈부 격차가 극도로 커졌고그를 맞는 사회 불만의 목소리도 많습니다그래도 일본은 그나마 괜찮습니다만대한민국 남북 격차는 세계 차원으로 보아도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입니다이대로 괜찮을 수는 없습니다선진국에서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지만중진국에서는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중핵-주변-아주변이라는 중심-주변 이론제국과 제국주의의 차이영구평화와 세계동시혁명 등을 말한다.

[선생님은 세계사의 구조에서 세계=제국 단계에서의 중핵-주변-아주변의 구조(중핵과 주변이라는것은 바로 부르주아에 의한 잉여가치 취득 시스템의 한 혁신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극단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란 프롤레타리아가 창출해낸 잉여가치를 부르주아가 취득하는 시스템인 것이다이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가 별도의 나라에 있는 경우잉여가치의 취득 과정에 영향을 미쳐온 메커니즘 하나가 국경을 초월하는 가치의 흐름을 통제하는 교묘한 조작이다거기서부터 중핵/반주변/주변이라는 개념으로 총괄되는 불균등 발전의 패턴이 생겨난다이 개념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다양한 형태의 계급 대립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지식 개념 장치이다)를 설명하시면서 제국의 문명을 자율성에 기반하여 선택해서 받아들였던 아주변 국가인 영국과 일본은 근대 세계 시스템에서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제국과 제국주의는 다른 것입니다제국은 근대 이전 광역국가의 한 형태입니다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라는 하나의 제국이 있었고그 주변의 여러 나라들은 조공을 바치는 관계로 존재했습니다그런데 이 조공은 실제로는 중국 왕조 측의 답례가 더 많은 호수 교환 관계로 이뤄졌습니다제국은 이러한 교환으로 평화체계를 구축하려고 했지요이에 비해 제국주의는 근대의 네이션=스테이트가 확장되어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대영제국이나 일본제국이라고 말합니다만 이들은 제국이 아닌 제국주의인 것입니다월러스타인은 자유주의나 제국주의를 직선의 일회성 역사 단계로 보지 않았습니다즉 그것들을 역사의 단계라기보다 반복인 것으로 보았습니다그에 따르면 자유주의란 헤게모니 국가의 단계에서 세계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이고제국주의란 헤게모니 국가가 몰락하고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가 아직 확립되지 않아서 그것을 목표로 각국이 싸우는 상태를 뜻합니다그래서 이 둘은 번갈아 반복으로 일어나는 것이죠저는 다음에 일어날 세계 전쟁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다음에 일어날 전쟁은 자본과 국가가 생존을 위해 일으키는 것이니까 그것을 막는 것은 곧 자본과 국가의 연명을 저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동안 평화 운동과 혁명 운동은 별개라고 여겼습니다그러나 제가 말하는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칸트가 말하는 영구평화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의 적대성이 없어진 상태즉 국가가 지양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그러한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세계동시혁명입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 방향성은 분명 우리가 생각해보고 우리 나름의 명확한 눈을 가져야할 분야이다현재 IT로 불리는 이 기술이 갖는 지향성이 무엇인지는 (만약 있다해도 아주 소수를 빼놓고는알지 못하며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IT의 깜짝쇼 시청자로 주저앉았다과거 철기도 그랬을까결국 기술도 헤게모니의 문제일까 

[테크놀로지 문제 자체를 경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사상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테크놀로지론과 문명론에는 언제나 반대합니다이런 논의들은 국가와 자본을 무시합니다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산업자본주의를 낳았고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식입니다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산업자본주의가 테크톨로지를 낳았고국가가 전쟁을 일으켰으며전쟁 속에서 테크놀로지가 발전한 것입니다철기시대를 생각해봅시다당시는 강력한 무기로서 철기가 생산되던 시기였습니다그것은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가 아니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과거를 비추어봤을 때 새로운변화의혁명은 보편 종교의 형태라고 했는데 이때 보편 종교는 종교라는 말에 한정지어지기는 힘든문화나 그 이상의 메타 담론이나 개념어로서 그 모든 것을 포섭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보편종교는 유동민으로서의 자유=평등을 지향하지만역설스럽게 그것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각 국가의 사제계급과 국가 자체에 의해 유지됩니다세계=제국에 종속된 것이지요그렇게 세계종교가 된 것입니다처음에 D는 보편종교 형태로 나타났습니다실제로 공산주의 운동은 근대 이전에는 항상 종교 운동 형식을 취했습니다일본에도 16세기 일향종이 좋은 예이고한국의 동학혁명도 그렇지 않습니까중국에서는 한왕조 말기 황건의 난 이후늘 도교와 관련된 종교 사회 운동이 있었고 그것이 왕조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마오는 종교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혁명에 성공했지요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19세기 중반까지 사회운동은 모두 기독교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그 이후 기독교 배경은 사라지고 과학 사회주의(역사 유물론의 관점에서 현실을 과학으로 분석하여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론이다이에 따르면 자본주의 생산방식이나 노동력의 착취에 기반하고 있고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즉 공산주의가 필욘으로 도래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가 주장되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둘중 어느 하나를 제대로 갖추기 매우 힘들고하나를 갖출 때 다른 하나는 같이 갖추기는 매우 힘든서로 상충되는 요인으로 판단된다그 자유와 평등아직 우리가 제대로 맛보지 못한 이념의 결과가 언제까지 우리가 목숨까지 바치며 추구해야 할 덕목일까게다가 둘은 같은 선상에 놓이기를 서로 썩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이제 우리는 지겨운 두 개념어를 넘어설 준비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아니 그렇게 해야 우리는 우리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개인사회 공동체로서 삶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입니다서로 대립하는 개념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것입니다상반되는 개념인 자유와 평등이 양립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자유를 중시하면 불평등이 생기고평등에 무게를 두면 자유가 억압되는 것입니다자유민주주의는 이렇게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한쪽으로 치우치면 다른 쪽에서 반발이 생깁니다그 결과 정권교체가 일어납니다선진국의 정치 형태는 이 같은 자유민주주의로 이루어지고이것이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언입니다자유민주주의 정치제체라고 하는 건 자본=네이션=국가일 뿐그것으로 역사가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자유와 평등 양 끝 중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치면 균형을 잡기 위한 운동이 일어날 것입니다하지만 이 시스템 자체를 넘어설 순 없을까요제가 고민했던 바는 이것이었습니다우리가 참고하는 아테네의 데모크라시는 바로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으의 모습입니다.]


고진이 본마르크스가 보고 비판했던 헤겔은 법철학이었다고 한다.

[다른 헤겔 좌파들처럼 청년 마르크스도 헤겔을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의 직업을 시작했습니다마르크스가 특히 초점을 맞춘 것은 법철학이었습니다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론을 유물론으로 전복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그런데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첫째마르크스는 헤겔 변증법으로 개념화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의 구조를 보지 못했습니다헤겔은 네이션과 국가를 초월의 위치에 둔 반면에마르크스는 그것을 경제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이데올로기 상부구조로 간주했던 것입니다마르크스가 헤겔의 생각을 뒤집었을 때마르크스는 역사를 이미 끝난 것으로서가 아니라 미래에 실현되어야 할 것으로 봐야 했습니다이것이 사물을 사후에 보는 입장에서 사전에 보는 입장으로의 이동입니다교환양식 A,B,C는 끈덕지게 남아 있습니다다시 말해 공동체국가자본은 끈질기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관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왜냐하면 이런 교환양식이 집요하게 지속하는 동안교환양식 D 역시 마찬가지로 끈질기게 지속하기 때문입니다아무리 이것이 억압받고은폐되었다 하여도 D는 계속해서 돌아올 것입니다칸트가 말한 규제 이념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요칸트에 따르면국가연방과 궁극의 세계공화국이란 인간의 선의지 혹은 지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비사회의 사회성과 이를 통한 전쟁으로 도래하게 됩니다이 같은 관점을 헤겔은 이성의 간지와는 반대로 자연의 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아무튼 이와 같은 칸트의 낙관주의는 가혹한 회의주의를 그 바탕에 깔고 있는 것입니다그럼에도 19세기 내내 헤겔의 관점이 지배해왔습니다제국 사이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었고결국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귀결되었지요결국 전쟁으로 황폐화된 세계에서 사람들은 영구평화라는 칸트의 관념을 다시 고려하게 되었습니다이런 맥락에서 국제 연맹은 자연의 간지에 의하여 현실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부 윤리의 정치화정치의 윤리화

고진씨가 말하는 새로운 지평이 어떤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근대 철학이 제기하는 문제들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면서도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지는 못하는 교착상태 말이다물론 이러한 패러독스를 피할 방법은 있다푸꼬의 논의에서와 마찬가지로주체의 문제를 구조 토대의 차원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s*****s 2017.06.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