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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중세 문학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음으로 인하여 막연히 짐작할 수 있었던 중세에 대한 좀더 자세한 복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야기들에 담기어 있는 내용들을 통해 나는 중세 기독교의 타락에 대해 느껴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각기 다른 주인공에 의해 전개되는 각기 다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순례를 위해 움직이면서 그들이 직접 이야기를 해나가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 이 구성은 데카메론을 연상시켰다. 솔직히 처음 부분은 등장 인물에 대한 묘사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많이 지루했다. 하지만 그들의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각 이야기들을 개별적으로 읽어나가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행위임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의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이야기들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도 순례자라는 그들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굉장히 타락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이야기들이 당시 영국 사회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았을 때, 이미 중세의 기독교 신앙은 부패해 버린 지 오래가 아닐까 싶었다. 면죄부를 판매하고 신자들의 현금을 뜯어먹으면서(?), 신앙 그 자체가 아닌 자본의 축적에 더 중점을 두었던 탁발승의 모습은 그 당시의 신앙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즉, 교회 자체가 기독교 신앙을 배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랄까. 자본주의의 전유물과도 같이 여겨졌던 물질만능주의적 속성이 이미 중세 기독교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역사 책에서 이 당시의 기독교 타락에 대해 종종 듣긴 했지만, 피상적인 몇 문장으로 접해오던 것을 이렇게 직접 이야기로 접하니 느낌이 남달랐다.
기본적으로 반여성적인 정서가 흐르고 있으나, 이는 중세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한 것임을 감안해야 할 듯 싶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바스의 여인이야기였다. 다섯명의 남성과의 결혼생활을 이야기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오늘날의 여성의 그것보다도 더 당당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정조를 지킨다는 개념에 대해 자신만의 기독교적 해석을 덧붙인다. 인간의 모든 것은 다 쓸모있게 만들어졌다는 식의, 그렇기 때문에 그냥 두고 놀리는 것 보다는 사용하는 것이 더 올바른 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그녀는 노골적으로 성에 대한 묘사를 한다. 그녀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남성을 자신의 것으로 쉽게 만들어버린 이야기 등, 도무지 중세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야기가 이 책에 끼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움이었다. 절대 중세의 여성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그녀의 이러한 이미지 역시도 기독교의 타락으로 인해 빚어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1400년대의 이야기이지만 그 풍자의 내용을 보아할 때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마저 들었다. 타락했을지라도 여전히 기독교에 의지하려 드는 인간의 모습은 우물안의 개구리와도 같아 보였다. 작가가 자신이 이러한 이야기를 싣는 것이 자신의 기독교적 신앙과는 구별되어져야만 한다고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 역시도 비록 타락했지만 기독교 자체로부터 결별할 수 없는 시대안에 갇힌 사람들로서 겪어야 했을 고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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