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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를 읽고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엄청난 팬이 된 뒤, 그녀가 출간하는 작품 <내 아내에 대하여> <빅 브러더> 모두를 읽고 또 한 번 팬이 되었다. <내 아내에 대하여>보다 쉽고 보다 가벼운 분위기로 읽히는 <빅 브러더>는 재치있는 문구들과 의미심장한 문구들이 펼쳐져 있다. 거구가 되어 돌아온 오빠로 인해 벌어지는 일상의 소소하거나 중대한 사건들 그녀는 어떤 선택을 했고, 그러한 선택을 한 원인과 그로인해 그녀가 겪는 삶의 변화들을 재미있게 풀어낸 그녀의 글이 정말 좋았다. 그녀의 선택은 성공적일지, 실패로 끝나게 될지 지켜보는 재미는 엄청났다. 그리고 그녀가 준비한 엄청난 반전엔 모두가 놀라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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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에 대하여>라는 소설로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또다른 소설, <빅 브러더>를 읽었다. 조지 오웰의 Big Brother가 아니지만, '먹기위해 사는가?' '살기위해 먹는가?'라는 오래된 명제 이후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했고 오히려 한층 교묘하게 우리의 삶과 선택과 사고를 속박하는 '음식'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인 만큼 <1984> 못지않게 섬뜩한 소설이었다. "만일에 대비하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은, 즉 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장 안전하고 내밀한 은닉처에 도토리를 묻어 두는 행위는 나름대로 분별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진화론적으로 영악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조국을 죽이고 있다." 집 지하실에서 수제 가구를 만드는 자영업자, 남편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꼭두새벽에 기상하는 것은 과시용'이다. 엄격한 식이요법을 실천하고 규칙적으로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그는 '어깨가 넓고 허리가 가는 역삼각형 몸매로 바뀌면서 좀 더 엄격하고 비판적인 인상이 강해졌고, 그 때문에 나는 그가 옆에 있기만 해도 핀잔을 듣는 기분'이 든다. 나는 '누구에게든 조금도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되는게 평생의 목표'지만 TV 스타의 딸로 자랐고, 지금은 잡지나 신문에 종종 실리는 꽤나 성공한 사업체를 꾸리고 있다. 여전히 주목을 받으면 움찍하는 나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지 못해 안달인 오빠가 어느날 내 집에 왔다. 아주 거대한 몸집이 되어서. '불가해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오빠는 이후 두 달간 집에 머문다. 오빠와 처음 마주친 '남편은 예의 없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가스레인지에서 고개를 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입을 다무는 것도 잊었다.'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무례하게 느껴진 힘든 첫날 저녁을 보내고 남편은 물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나는 그의 질문을 허공에 달아 두었다. 남편이 비판하는 대신 연민을 보여 주는 것이 고마웠다. 이 후로 집은, 특히 부엌은 혼돈의 공간이 되어간다. 남편은 더 집요하게 식이제한을 하고, 오빠는 뭐든 무지막지하게 먹어댄다. '확대 해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모든게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시나본을 무지막지하게 먹는 것과 엄마의 죽음을 자살로 해석하는 것. 그는 극적인 삶을 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고, 그런 커다란 사고방식이 몸집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의 불어난 몸이 그가 겪고 있는 어떤 문제의 증상이라면 그것 역시 허영을 상징했다.' "오빠가 내 앞에서 기름진 음식이나 단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나는 초조해졌다. 마치 그가 내 눈앞에서 면도칼로 손목을 긋는 것 같았다." 당연히도 나는 남편과 오빠의 팽팽한 대립 사이에 끼어버렸다. '그 무렵 나는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대놓고 말하면 나는 계숙해서 모두에게 부정직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르고, 소설의 중반부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반전을 가져오지만 마지막 반전을 위한 장치로서의 반전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무엇보다 '비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겹겹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서 다양한 주제에 초점을 맞춰 읽어볼 수 있는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점차 비혼자가 많아지는 요즈음 새롭게 대두되는 '형제 리스크', 쉽게 중독되는 성향의 기저에 대한 생각들, 이미 뭔가를 가진 자가 그것을 욕망하는 상대 앞에서 겸손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책임을 다하는 삶과 최선을 다하는 삶과 그럼에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 등등. 그냥 가상의 이야기이면서 한편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작가의 또다른 소설 <내 아내에 대하여 So Much for That>도 조만간 읽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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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를 연상케 하는데,
'나(판도라)'는 출장뷔페 사업을 하다 말하는 인형 사업을 하고 있는 여자다.
자신도 놀랐지만 함께 사는 가족들의 양해가 필요한 것도 문제였다.
처음에 판도라는 오빠의 몸집을 모른 척 했다.
가족 관계 특유의 모호성은, 판도라를 더욱 구석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건 가족의 속성을 끔찍하게 오해한 것임을
판도라 역시 일자리와 살 집을 빨리 구하지 못해 2년간 할머니 댁에 얹혀 살았을 때가 있었다.
오빠에 대한 마음이 더욱 무거워질 즈음, 그녀는 오빠의 다이어트를 돕기로 한다.
이 이야기는 3부에서 뒤집힌다.
나는,
더불어, 비만과 관련된 이 사회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야아 하는가에 대한 물음도 던진다.
문장의 간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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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오빠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고 하네요. 어느날 거구가 되어 돌아온 오빠. 그 오빠와 2달간의 동거를 하면서 가족들간의 사소한 충돌이 발생하고~ 그로 인하여 자신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오빠의 살빼기를 돕는 동생의 1년간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랍니다.
별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두장 이상 설명할 때는 좀 건너뛰고... 빅 브러더에서 가장 듣기 싫었던 공동친권에 관한 이야기~~~
다들 캐릭터들이 한가닥 하듯 강해서는 모 개그맨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도 잘 참고 중반을 넘어가니 살과의 전쟁에 관한 부분에서는 의외로 공감을 많이 했답니다. 저 역시도 2년전 힘들게 노력하여 6개월만에 17kg을 뺀적이 있다보니... 물론 지금은 다시 돌아와서 내가 참 한심하다 싶지만 말이에요. 그러기에 더욱더 공감이 갔나봅니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지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간혹 만나게 된답니다. 그럴 때마다 그분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그게 그리 쉬운게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저도 빅브러더 작가처럼 분명 그런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어온 삶을 포기하고 오빠를 위해 희생하기란 쉽지 않을테니까요.
하지만 그러기에 어쩜 죄책감에서 이런 책이 탄생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자신의 삶을 자신이 내려 놓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하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겠지요라는 말을 듣게 된답니다.
그때 좀 잘해줄 걸... 내가 뭔가 해줬다면 달라졌을까? 아냐... 결과는 같았을거야하고 말이죠.
누구는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찌고... 누구는 조금만 먹어도 찌고... 살이 찐사람은 튼튼할 것 같으며, 많이 먹어서 살이 쪘을 것 같다는 선입견!!
돈이 지갑에 두둑하게 있어도 사이즈가 없는 가게들은 매장 직원들이 아예 처다도 안본다는 사실~~~
그런 운명적인 몸을 가지고 태어났었는데... 아~ 정말이지 간혹 지금의 나를 만든 친정아빠를 한없이 원망하고 싶어지는 사건~ 그 사건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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