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는 광주학살이란 전대미문의 사건을 시대적 관찰이란 거시적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고, 이름 없는 한 여자애의 미친 듯한 사실 그녀는 미친 것이 아니었다. ‘10’ 에서 “살기를 그친 산 사람을 만나는 일이 보는 이에게 얼마나 극심한 고문일까. 이것을 사람들은 단순히 미쳐버렸다고 자주 말한다. 얼마나 간단한 말인가”란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아파괴, 혼돈, 허무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다. 이렇듯 시대적 큰 흐름과 아픔을 개인의 삶에 투영한 방식을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었다. 조정래의 소설이 민중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 시대상을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단편소설이란 한정된 분량 속에서 여자애의 심리 묘사에 탁월한 면을 보였다. 이 소설은 광주학살과 무관하게 생각할 수 없다. ‘9’에서 여자애의 자아혼란의 직접적인 원인인 광주학살이 숨 막힐 듯 슬프게, 생생하게 묘사되면서 이를 더욱 확실히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엄마의 “이년아 집에 좀 들어가지 못하겠니, 당장 죽고 싶어서 그래, 들어가 어여.어여하고 악을 써댔어.” 란 문장에서 지역적으로 호남임을 암시하고 있다. 광주학살 - 관객의 부재 남자는 여자애가 무작정 따라오면서 그와 같이 살게 된다. 남자는 여자애를 지속적으로 폭행한다. 여자애는 끊임없는 혼돈 속에 그것을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이 남자는 광주학살 당시의 신군부 또는 직접적인 폭력을 가했던 군인들을 뜻하는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광주학살은 이른바 ‘관객의 부재’에서 빚어진 야만이었다. 광주학살 당시 광주는 그야말로 고립된 섬이었다. 언론, 통신이 모두 두절됐으며, 광주 안으로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었다. 그 안에서 시민들은 빨갱이란 누명을 뒤집어쓰고 같은 민족에게 끔찍하게 학살당했다. 근접지역인 전라도 이외의 지역의 시민들은 그들에게 무관심했고, 심지어 비난하는 자들도 있었다. 언론은 이를 더욱 부추겼다. 여자애는 제정신이 아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제정신인 적은 없다. 그녀가 올바르지 못한 이유가 그녀자신의 문제 때문인가? 아니다. 오빠와 엄마의 끔찍한 죽음 때문이다. 누가 오빠와 엄마를 죽였는가. 그리고 여자애의 주위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며 손가락질 하고 폭행하고 강간한다. 이것이 과연 미쳐버린 그녀의 잘못인가? 그녀가 미쳐버린 것을 잘못했다고 스스로 빌어야 하는가? 소설 속엔 또한 대화가 없다. 서로 말하지 않는다. 소통의 부재다. 무엇인가. 관객이 없었던 광주학살. 그들만의 외로웠던 투쟁. 작가는 대화를 없애버림으로써 그 단절을 건조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 끊임없이 여자애를 폭행하는 남자, 미쳐버린 여자애를 폭행하고 강간하는 자들 그리고 대화가 사라진 소설장치는 모두 1988년 당시도 그랬지만, 오늘날까지도 ‘호남차별’이란 형태로 광주학살을 평가절하하고 과거의 일로 치부해 버리는 우리들 바로 비전라도민의 표상인 것이다. |
|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광주의 비극 속에서 붕괴된 가족의 몰락, 그 불운을 운치 있는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각 장마다 시점을 달리하는 주인공들의 독백을 통해, 스러져간 한 소녀의 삶을 심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녀를 좇는 오빠 친구들의 행방이 다소 축소되어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소녀가 처한 상황이나 기억 등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므로, 영화의 특성상 소설처럼 비중을 두기에는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비장미나, 꽃잎의 차용, 전체적인 스토리는 동일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영화 <꽃잎>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사내가 벌거벗은 소녀를 마구 구타하는 장면이었는데, 소설에서는 그저 전개되는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읽혔다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소설에서는 소녀가 가지고 있는 죄의식을 감각적인 심리묘사를 통해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타에 대한 비중이 적다. 이는 비단 이 소설과 이 영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 대중을 고려해야 하는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할 경우, 관객의 흥미를 유도할 수 있을 만한 부분을 부각시키기 마련인 것이다. 소설에 의하면, 생물 시간에 소녀는 선생님으로부터 음지식물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는 소녀의 죄의식이 어쩌면 원죄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낳는다. 아무런 비극적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와중에서도 소녀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죄의식에 비틀거리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소설적 암시라 할 수 있으며, 그 시대의 불안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어머니를 짓밟고 홀로 살아난 소녀가 어떠한 심적 고뇌를 겪었는가, 혹은 무엇을 위해 거리를 걷다가 사내를 만났는가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풀어주고 있다. 반면에 영화는 이와 같은 설명 없이 광주의 비극이 낳은 소녀의 처참한 삶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말로써 설명되지 않았다 해도, 영화의 장면을 통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대강의 상황을 짐작하기 마련이다. 소설에서는 장이 바뀌면서 오빠의 친구들이 같은 비중으로 등장해, 그것이 작품 안에서 튀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에서 소녀의 행방을 쫓는 일행의 등장은 다소 어색한 면이 있다. 소녀와 사내의 자학적인 행동에 의식을 맡기고 있던 관객들은 작품 속에 녹아들지 않는 일행의 행동을 보게 됨으로써 그 흐름이 끊기는 불편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다중매체가 난무하는 시기에 어느 한 장르만을 고집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소설이 영화화되고, 영화가 소설화되는 이 시점에서 재해석이 부여하는 의미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가령, 소설이 영화화 될 경우 작품 본연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통해 작가의 역량이 무시되곤 한다. 하지만 장선우의 <꽃잎>은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사내가 소녀의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는 부분은 소녀를 추적하는 일행과의 연결을 긴밀히 하려는 영화의 장치라 할 수 있다. 또한 소녀의 묘연한 행방에 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사내의 행동은 시대의 아픔을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 라는 화두를 던진다. 두 작품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설은 꽃잎 즉, 소녀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상황에 초점을 맞춘 반면, 영화는 소녀 자체에 비중을 두고 있다. 어떤 하나의 현상만을 직관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소설과는 다른,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주색 옷을 입은 소녀가 떠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소설, 영화에서 모두 아픔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잊지는 말자는 여운을 주고 있다.꽃잎>꽃잎>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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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후 리뷰를 보니, 많은 사람들이 96년인가 영화 이정현의 '꽃잎'을 두고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나는 잘 몰랐다.
뭐 예전에 들어본 것 같기도 했지만... 솔직히 이 책의 선택 이유는 꽃잎 때문이 아니라 '최윤'이라는 작가 때문이였다.
이상문학상 작품집 중에서 제일 먼저 보게 된 것이 바로 '하나코는 없다'인데, 깔끔(?)하고 서늘하게 잘 쓰여져 있었고...감동보다는 어떤 충격 같은것을 받아서, 솔직히, 그 당시에는 나는 내가 서강대학교 학생이였으면 좋겠으며, 이왕이면 그분께 외국어를 배웠으면..하는 생각을 했었다.(최윤 선생님이 불문과 인지 영문과 인지...--;;)
여하튼... 소설집 치고는...전 편 모두...하나 하나 잘 쓰여진 작품들이라서 일단 좋았다. 그리고...슬슬 잊혀져 가고 있었던 최윤 선생님의 작품이라서 또 좋았고...)그리고 읽다보니...저기소리없이~(이하 꽃잎), 그 작품이 이정현의 '꽃잎'의 근간이 되는 책이라는 것을..읽다보니, 알게 되었고..찾아보니 역시 그랬다.
이 작품집의 이슈가 되고 있는...'꽃잎'. 부끄럽지만...80년의 광주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학교 다닐때..5월이되면, 학교가 한번씩 뒤집어 질만큼 어떤 이슈였지만..솔직히 나는 별로 관심 갖을 여유도 없었고...뭔가 잘못된 것이였구나,라는 어렴풋한 생각만 있었지...별로 관심가는 이슈는 아니였다.
변명은 아니지만..이미 우리 세대부터는 5월의 광주보다는 김희선이라는 아이콘을 쫓아서 막걸리나 소주보다는 밀러 맥주를, 4구 당구 보다는 포켓볼을, MT보다는 콘도 빌려서 놀러다니고는 했었으니까...--;;
어쨌든...그리하여, 이 책을 읽고 나서..나는 섣부르게..광주가 어쩌구 저쩌구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 정치적인 것을 그저 하나의 소설적 장치라고 치부한다고 해도... 근 30년간..어느 무덤가에서 미친년처럼 울고 있을 어떤 소녀가 생각나서, 슬프고,분하고, 억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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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바로 영화 꽃잎의 원작이다.. 솔직히 내가 그 영화를 본지는 기억에 가물가물 할 만큼 오래 되었지만.. 그 속에서의 영상만은 내게 또렷이 남겨져 있는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원작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더욱더 큰 놀라움이었다. 이 작품은 단편소설로.. 약 80페이지 정도 분량이다. 소설을 3개의 시점으로 나누었는데.. 영화상에서 이정현의 시점과 문성근의 시점. 그리고 이정현을 찾아 떠나는 이정현 오빠의 친구들의 시점으로 나누어져 있다. 솔직히 이정현의 시점으로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혼란스럽고..이해할수 없었던 부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난 이 책의 주제를 수업을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제는.. 약한자를 상처입은 자들을 감싸안는 것이 아닌..오히려 때리고 더 채찍질 하는.. 가지가지의 방법들로 그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문성근이 우리들을 대표해 이정현을 폭력하고..그리고 서서히 이해해가는 과정들을 담아놓은 것이다.. 이 책을 읽고..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보면서.. 처음 봤을때는 느끼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느낄수 있었다.. 광주항쟁이..얼마나 뼈아픈 우리의 역사인지... 그리고 내가 상처입은 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안겼는지... |
| 소설을 읽기 전에 나는 이 소설의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니만, 이것은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라는 영화였다. 그 영화가 이 소설을 각색 했던 것인지 몰랐던 나는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배경은 광주민중항쟁 때, 그 무참한 학살의 현장에서 어머니가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본 이후에 정신에 이상이 생기고 무작정 길을 떠나는 한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은 일종의 여정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후에 그녀의 이런 정신이상이 단순한 어미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소설 후반부에 밝혀진다. 일단 그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먼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소설의 전개 방식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보통의 소설들은 하나 혹은 두 가지 서술 방식을 구가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비롯해서 주인공 소녀의 시점, 그녀와 동거하는 한 남자의 시점, 그리고 그녀를 찾아 나선 그녀의 오빠 친구들의 시점 등 여러 각도로 소설의 시점이 변모한다. 소설의 처음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작가가 개입을 해서는 독자에게 권유하는 형식의 문체를 쓴다. 두 번째는 남자의 시점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소녀가 자신을 따라오고, 어쩌다 소녀와 동거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후부터는 소녀의 독백과 소녀를 찾는 오빠의 친구들의 시점, 그리고 남자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한다. 그런 방식의 구성이 소설을 산만하게 느껴지도록 하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소녀의 정신적 고통의 근원을 차차 밝혀가는 과정에서는 유용해지기도 한다. 소녀는 자신의 머리(정신)을 뒤덮고 있는 검은 휘장을 걷어내려 애쓴다. 그 검은 휘장이 존재함으로써 소녀는 어떤 중요한 사건을 잃어버린 느낌으로 머리가 아파오고, 정신의 이상이 오는 것이다. 소녀의 여정이 진행되고, 습관인 듯 혹은 본능인 듯 그녀가 하고 있는 행동들은 서서히 그녀 머리 속의 검은 휘장들을 거둬내고, 그 검은 휘장으로 둘러쳐진 그녀 의식의 본질적인 죄의식이 고개를 든다. 죽어가는 어머니, 소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 어머니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또 그 손을 밟고 도망쳤던 소녀는 그것에서부터 죄를 느끼고 스스로 그 기억을 덮고자 검은 휘장을 만들고 아무 것도 기억하려 애쓰지 않은 것이다. 여름 방학 동안에 『봄날』이라는 소설을 일주일 꼬박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최윤의 소설과 『봄날』은 비교되지 않을 수가 없다. 『봄날』에서는 개인의 내면의식보다는 실제 사건들을 재구성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물론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한씨 형제들이나 유하사 등 인물들의 감정들을 잠깐 드러내기도 하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실제에 기반을 두고 그것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해나갔다. 그러나 최윤의 소설은 한 소녀를 등장시키고(그 소녀는 광주항쟁 당시 실제 한 소녀일 수도 있겠다) 그 소녀가 본 참혹한 장면의 일면을 통해 그리고 어머니를 배반했다는 원죄의식 속에 배회하는 영혼, 인간 본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오히려 최윤의 소설이 광주항쟁의 비극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고 볼 수도 있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진다. 꽃잎은 바로 시대의 아픔이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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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소리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 바로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의 원작이 된 소설이다. 이 소설집은 그 외에도 일곱 편의 중단편들을 싣고 있다. 그 유명한 '...꽃잎...'외에도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 내 마음에 특히 들었던 작품은 '회색 눈사람','아버지 감시'였다. 아마도 그녀를 잘 모른 채로 최윤의 글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작품이 상당히 남성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나도 처음엔 그녀가 남자인줄로만 알았으니까.
오히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나는 그녀의 글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성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우리의 깊은 내면의 아픔들을 그리며 며칠동안 여운이 남도록 하는 그녀의 글들은 무척 매력적이다.
이념과 사상이라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중심에서 벗어나 담담히 관조하는 동시에 그것을 개인적 일상과 절묘하게 배치한 그녀의 글솜씨는 그녀가 뛰어난 작가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 '....꽃잎....'은 영화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를 본 사람들도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올 가을에 내가 읽었던 것들 중에 정말로 기억에 오래남는 책이었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시골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 쪽으로 걸었다. 어쩌면 이 계절의 하늘은 이토록 무연히 맑을까. 그리고 그 시절의 아픔은 어쩌면 이리도 생생할까. 아픔은 늙을 줄을 모른다. 아픔을 치유해줄 무언가에 대한 기구가 그만큼 생생하고 질기기 때문일까. 이번 겨울에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 비어 있는 들판에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볼까. 며칠전에 지구를 뜬 그녀의 별에 전파가 닿게끔 머리에 긴 가지로 안테나도 꽂고...... 그러나 사람이 죽은 다음에 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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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언니가 두고간 대부분의 책들은 소설류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빚바랜 이 책을 몇 번이고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냥 두었는데 결국 이 책이 나에게 왔다. 최윤(존칭을 생략해 죄송합니다)의 푸른기차 단편에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책이 나를 사랑했기에... 이 책은 어제 저녁에 새벽까지 보고잤던 책이다. 소설집의 구성은 가장 최근작을 앞으로 내어놓고 마지막 부분에 영화 '꽃잎'의 원작이었던 저기 소리없이... 가 나와 있었다.
당신의 물제비, 회색눈사람을 읽을 때엔 사실 그토록 오랫동안 봐았던 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글들-내게 생각속에만 머물고 있거나 혹은 내가 겪었을 법한 삶의 일부-이었고 늘 소설을 보면서 내 방식대로 해석해 오던 것에 제동이 가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내 글쓰기처럼 일차원의 한선에서 시작하여 종착점이 있는 그 점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끝이 되어서 종착이 되는가 하면 중간 중간 남겨진 문장은 그 순간에 정지된 느낌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분의 작품에 관하여 내가 단언 일언의 한 말도 하지 못한 채 소설의 구성에 대한 관심이 번쩍 뜨인다. 당신의 물제비에서는 우리가 늘 궁금해하고 해결불가능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작품속의 민박사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개개의 사건과 상관없이 상황을 제시하고 있으며 회색 눈사람에서는 누구에게나 잊혀지지 않은 기억의 한 부분... 인생의 나이테는 나이가 아니라 그런 내 인생에 잊지못할 일로 그려지는 것 같은 것으로 그려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하고 싶은 말도 많아지지만 되려 작가가 마지막 마침표를 마친 그 부분에서 작품에 충실하고자 하는 내면적 울림이 생긴다.
아버지의 감시라는 작품 역시도 한 인물에만 고정되기 보다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오가게 함으로써 읽는이가 가끔 상상케하는 대화와 심적갈등을 작가는 또 다른 방향으로 우리에게 접근할 것을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벙어리창에서도 늘 그대로 늙어갈 것만 같은 이모의 인생을 지탱해 온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시대적 상황이라는 것을 장황하게 늘여놓지 않더라도 소설속에서의 그 상황이 쉽사리 느껴지지만 그것은 다름아닌 이정분이라는 인물과 한순간 지나쳤던 벙어리 여인의 알아들을 수 없는 절규사이의 주인공이 느낀 감정을 통해서이다.
소설 중간중간의 심금을 울리는 문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것을 내가 표현한 것 이상으로 멋지게 표현한 그녀의 글을 보면서 아..이런게 소설이구나... 하는 지금껏 내가 소설에서 느꼈던 그 매력의 높이만큼이나 높게 올려진 것들이다.
마지막 중편소설 저기 소리없이... 를 읽고나서는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다들 주인공이었던 이정현이 거의 미친여자로 나왔다는 것을 안봐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소설의 첫 부분의 시작을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소설에 대하여 그간 쓰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얄팍하고도 단순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고교시절 소설의 구성이 뛰어나고 어떤 걸 다 떠나서...- 구성이란 게 무엇인지까지 더불어 생각하게 하고 그 내용에서도 작가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과 내면적 갈등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치 꿈결속에서 본 한 장면을 미완성의 글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것을 완벽하게 현실로 가져온 듯한 그런느낌이었다.
내가 알음알음 만난 최윤교수님은 늘 문학상에서 심사위원으로 자리매김을 하던 그런 분이었는데 소설로서 만난 그 분의 글은 내게 말 그대로의 감동을 주신 분이다. 온전히 산문의 형식이었지만 그것은 시에서나 느낄만한 그런 문장들이었다. 좋은 소설... [인상깊은구절] 이십오 년의 사계를 지나쳤지만 내게 그것은 첫번째 맞는 봄이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으로 맞는 일들이 있다. 처음으로 맞는겨울, 처음으로 해보는 여행, 겨울을 수없이 지나쳤으면서, 수없이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의 자리를 떠나보았음에도 말이다. (당신의 물제비 중 p.12) 그러나 삶의 단계에 정말 완성이라는 것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아. 그때........하고 가볍게 일축해 버릴 수 없는 과거의 시기가 있다. 짧은 시기지만 일생을 두고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시기. |
| 소설 속 이야기는 모두 세 명이 돌아가며 읊는다. 여자아이, 여자아이의 오빠 친구들, 그리고 남자를 바라보는 화자 이렇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꽃잎과 검은 휘장은 계속 여자아이와 같이 한다. 여자아이는 미쳤다. 엄마와 오빠의 죽음, 이것이 그녀를 미치게 했다. 그런데 이 소녀를 미치게 만든 엄마와 오빠의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단지 눈을 똑바로 뜨고 엄마 복부의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액체를 바라보았고 갑자기 주위의 아우성 소리가 선명하게 가락가락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으며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고통 때문에 더욱 움켜쥐고 있던 엄마손, 돌처럼 순식간에 굳어져 버린 것만 같았던 엄마 손아귀에서 손을 빼려고 소녀는 미친 듯이 팔을 휘둘렀을 뿐이다. 쓰러지는 얼굴, 일어서다가 다시 억하고 쓰러지는 얼굴, 신음하고 다시 일어서다가 소리도 없이 풀썩 쓰러지는 얼굴, 잠시 땅바닥에 내던져진 붕어처럼 팔딱거리며 경련 하다가 소리지를 시간도 없이, 고통스러워할 시간도 없이 굳어져 버리는 얼굴들, 영원히 굳어져 버린 얼굴들, 깔린 얼굴, 얼굴 없는 얼굴들만이 그 상황을 대변할 뿐이다. 어쩌면 작자는 구체적이고 치밀한 묘사 대신 나열만을 통해, 우리의 상상력을 증폭시켜 그 때의 상황을 더욱 선명하게 전달하려했는지 모른다. 소녀가 만난 남자는 처음 소녀를 봤을 때 가학적인 충동을 느꼈고 또 그렇게 했다. 헝클어진 머리, 비쩍 마른 몸, 움푹 들어간 볼, 이 모든 것이 그로 하여금 그런 충동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는 서서히 감정이 변한다. 소녀가 왜 그런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점점 관심을 갖고 되고, 당황해하면서도 조금씩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사연에 대해 얼추 짐작만 할뿐이다. -그녀의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통해 모든 의미가 비어 버린 실성한 웃음을 통해 흔적이 없이 지워져 버린 인격의 모든 부재를 통해서 남자는 점점 더 자세히, 점점 더 강한 증폭과 깊이로 그녀가 겪었을지도 모르는 소문의 도시 전체를 보았다. 소문이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사건, 꼭 그 사건이 아니었다 해도 그에 버금가는 어떤 것을 그녀가 경험하지 않고는 저러한 상태에 다다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이와 같이... 소설 속의 남자는 우리 모두일 것이다. 80년 그 곳에서 있었던 일을 우리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저 소문으로만 폭동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허위의식 속엔 언제나 소녀가 미친 이였다. 하지만 미친 건 소녀가 아니라 80년 그 곳에서 대살육을 지시했던, 아직까지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우리는 궤도 수정을 해야 한다. 광기를 여실히 보여준 그놈들을 미쳤다고 再정의 내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소녀를 보듬고 감싸안아야 한다. 이게 주변 언저리에서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죽음은 죽은 자에게는 사건이 아니고 남아 있는 사람에게만 혹독하게 생생한 사건이 된다'고 한다. '죽음은 대답이 없기에 모든 죽음은 완성되어야 할 것의 미완성이기 때문'이란다.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녀에게는 깊은 슬픔이 혹독한 사건이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녀가 검은 휘장을 벗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도록 우리는 똑똑해져야 한다. |
| 얼마 전 「꽃잎」이라는 영화를 뒤늦게 본 기억이 있다. 자주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엔 시든 꽃 한 송이를 꽂은 소녀의 영상이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영화였다.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그 영화의 원작이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는 -어쩌면 나에게만 인지도- 너무도 익숙한 80년 늦봄의 광주를 그린다. 작품은 처음 시작부분과 각각의 숫자가 붙은 10개의 장으로 나뉘어진다. 도입부분은 '우리'의 목소리이다. 우리의 목소리는 아직 어디에서 헤매고 있을지 모르는 소녀를 부탁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각 장이 각각 소녀와 남자, 우리의 시점으로 나뉘어 극을 꾸려나간다. 이 작품에는 대화체가 없다. 대화가 없다는 것은 사람사이의 의사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 다들 혼자 생각하고, 혼자 답을 찾으려 한다. 실제로 작품인물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소녀는 자신의 죄의식으로 인한 '검은 휘장'에 둘러싸여 있고, 남자는 그 자신의 피폐한 삶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소녀 오빠의 친구들인 우리는 소녀의 방랑의 길을 뒤쫓는 -조금은- 이성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상처받은 소녀를 그리면서 작가는 소녀의 기억과 회상을 사용하여 글을 이끌어 나간다. 작가는 기억과 회상에 의존하여 서사를 진행시켜 나감으로써 한 개인의 내면에 얼룩진 상처의 실체를 추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대상과 거리를 취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은 철저히 배제하는 것도 작가는 잊지 않는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서술이기 때문에 극중 인물들의 모습은 더욱 건조하고, 때론 황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소녀는 자신을 덮고 있는 '검은 휘장' 때문에 혼란스러워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두렵고, 죄스럽다. 하지만 결국 소녀는 어느 샌가 '검은 휘장'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낸 것임과, 자신이 본 어머니의 죽음을 기억해낸다. '검은 휘장'은 그녀의 죄의식이었던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삶 속에 뛰어든 소녀를 바라본다. 자신이 그녀의 오빠를 닮았다는 사실 따위는 그는 모른다. 그는 소녀를 바라보고, 보살피다가 연민의 감정이 생기게 된다. 무엇이 소녀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녀를 위한 심인 광고를 낸다. 우리는 소녀의 흔적을 찾으며 소녀의 방랑길을 되짚어나간다. 그녀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헤매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간다. 우리는 그녀를 본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그리고 결국 지친 우리는 소녀의 뒤를 쫓는 것을 포기한다. 이 세 등장인물 -'우리'라는 집단도 한 인물로 본다면- 은 서로 미묘하게 겹쳐진다. 하지만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며 겹쳐지진 않는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 소녀의 현실과 소녀 자심만의 세계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
| 이 소설에 대한 사전 지식을 이미 습득한 후에 책을 들었는데도, 나는 책 속에서 거의 끝무렵에 가서야 광주 민중 항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광주' 또는 '민주화' 와 같은 단어들이 단 한 번 등장하지 않고도 그 일에 관한 원죄 의식을 나로 하여금 느낄 수 있게 하였을까. 최윤의 데뷔작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는 광주 민중 항쟁에서 한 소녀가 겪은 이야기를 서정적인 필체로 다룸으로써 오히려 더욱 처절한 소녀의 내면 의식을 묘사한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비롯해서 주인공 소녀의 시점, 그녀와 동거하는 한 남자의 시점, 그리고 그녀를 찾아 나선 그녀의 오빠 친구들의 시점 등 여러 각도로 소설의 시점이 변모한다는 점이다. 특히 소녀의 시점에서는 정신 이상의 자신의 내면을 적절하게 묘사하여, 나의 경우에는 도입부의 소녀의 시점 부분을 읽다가 정신이 혼미해져, 책을 편 채로 잠이 들기도 하였다. 그 정도로 소설이 역사적인 내용 보다는 세 부류의 사람들의 내면 의식을 충분히 드러내 놓고 있다. 또한 상징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때로는 신비롭고, 때로는 서정적으로 광주 민중 항쟁이라는 듣기만 해도 피비린내 나는 사건을 완곡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필체가 완곡하다고 해서 나의 마음도 감상적이거나 헤이해진 것은 아니다. 이상하리만큼 끌리는 것은 이러한 완곡한 어조 속에 숨어 있는 더욱 처절한 모습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소설 전반에 걸친 빈번한 시점의 이동과 그에 따른 문체의 전환들이 이를 더욱 뒷받침해 주고 있다. 어린 소녀의 여린 내면은 무형, 유형의 폭력 앞에 너무도 허무하게 허물어지며 한번 파괴된 인간성은 영원히 복구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손길이 그 소녀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손길이 그 소녀에게 이중의 폭력을 가한 그 사내의 죄의식과 뒤늦은 참회를 위로해줄 수 있을 것인가. 남자는 소녀에게 엄청난 폭력을 가하다가도 소녀를 생각해서 선물을 사다주고 소녀에게 따뜻한 말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면서도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호의는 때늦은 것이며, 이미 소녀에게는 온몸이 멍 투성이며, 그녀의 정신도 온전하지 못한 뒤다. 이 작품은 역사적인 소재를 통하여 리얼리즘 소설의 명칭을 갖게 되는데, 이제까지 내가 읽어 본 염상섭의 ≪삼대≫와 같은 리얼리즘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아마도 리얼리즘 소설 특유의 표현 기법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칭과 관점의 변화, 모호한 상징성 표현, 반 리얼리즘 문체들은 나의 경직된 리얼리즘 세계관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였다. 어렸을 적부터 광주 민중 항쟁에 관한 이야기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많이 접해 왔지만, 내가 태어난 해에 일어난 그 사건에 대하여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작품을 접하고 난 후, 나도 역시 피해자들에 대한 잠재적인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어떠한 고통을 당하든지간에 상관없는 일로 치부해 버리는 나의 잘못들이 내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꿈틀대는 듯 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나는 든든한 권력자를 곁에 둔 가해자였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라는 주체는 빼로 그들을 대한 대가인 듯 하다. 마음의 참여, 공감, 동조.. 이러한 것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해자의 편에 서느냐 피해자의 편에 서느냐 하는 실로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광주 민중 항쟁에서 죄없이 쓰러져 간 소녀를 보면서 2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마음만으로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실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