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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흐름을 통하여 그 사상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좀 단순한 관점에서 보자면 중화사상의 역사이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시대의 흐름속에 그 모양새가 다른 여러 중화사상의 흐름이 전개되었음을 짚어 보아야한다. 소위 소중화사상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 과정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여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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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동아시아는 단순한 지리적 명칭 또는 역사적 명칭이 아닌 지향을 가진 지역 질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기 시작하고 있다.
중국 주변 국가들 가운데에서 가장 엄격하게 이 조공질서에 편입된 것은 한반도의 여러 왕조와 월남으로서 19세기 말 중국 밖의 힘이 작용하여 소멸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월남에서는 대외적으로 중국에 대하여 충실한 조공국의 형식을 갖추었으나 대내적으로는 황제를 칭하여 다른 나라 민족에게는 조공을 받아 스스로 하나의 작은 조공 질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중국의 주변국이 중국 중심의 조공 질서에 참여하는 가장 주된 동기는 자기 지역에서의 지배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아 이민과 경쟁자에게그것을 과시하는 일이었으나 그밖에 그 조공질서가 갖는 문화적 경제적 기능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고구려에 대한 수당의 무력 침공은 수당의 황제 권력 찬탈 과정의 정당성 결여를 분식하여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현실적 필요에 따른 선택적인 중국 중심 질서 편입을 강요했던 것이다.
조공질서가 중국쪽의 일방적 구심적 질서가 아니라 그에 편입된 이의 자기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힘의 강약의 원리까지 작용하는 것이라면 조공질서 안의 소천하질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소중심 질서와 중심 질서 또는 소중심 질서들 사이에는 힘의 충돌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하여 침략과 저항이 빈번하게 되풀이되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서의 침략전쟁은 중국 한무제의 고조선 침략이래 단속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침략과 저항의 밀도있는 교착이 동아시아가 공유하는 또 다른 역사 경험인 것이다.
19세기 말에 들어와서 설정된 주권선을 지키기 위한 이익선의 겨념의 한국 만주로의 확대는 풍신정권이 조선 침략 때처럼 한국과 중국이 연대하여 일본에 저항하는 항일연대 의식을 이루게하였다. 1911년에 중국에 공화혁명이 일어나 2천년래의 제정을 타도한 것을 본 조선의 망명 독립운동 지사들은 한중연대를 통한 항일의 가능성을 비로소 발견하였으여 이 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해 많은 피를 중국 대륙에 흘렸다.
일본의 조선 침략과 중국 침략의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일본의 이같은 침략이 조선의 약체성을 지렛대로 하여 중국에 대한 침략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중국 중심의 중심 질서의 바탕인 중화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힘의 대국주의, 일본 중심의 관념적 우월 의식을 근간으로 하는 팽창주의는 부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의 안정 통일은 한국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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