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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서류를 발급받았다. 한글과 한문이 섞여 있는 서류에는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어준 많은 이들이 적혀 있었다. 몇몇 이들은 기록이 단출했다. 오로지 성만 적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이름은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지극히 한정된 범주 안에서만 기록은 이루어졌다. 우선 지배층이어야 했고, 남성일 필요가 있었다. 서구 사회가 백인 남성의 이야기를 역사라 칭했던 걸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변화의 폭은 컸다. 옛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경을 칠지도 모르겠으나, 여성, 그것도 연세 지긋한 할머니들을 전면에 내세운 책의 등장은 신선했다. 여성이라면 모두가 언젠가는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할머니가 되는 게 인생임에도 그랬다. 제목이 그래서 ‘모르는 할머니’인 모양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할머니이지만 책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남달랐다. 단지 나이 들고 무대에서 밀려난 듯한 이미지의 소유자였던 할머니는 저자들의 섬세한 시선에 힘입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부각되었다. 사실 이는 없던 무언가의 창조는 절대 아니어서,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을 뿐이다. 첫 번쨰 이야기에서 저자는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에 대해 기록했다. 1930년생, 이름은 박난수. 어른들의 뜻에 따라 스무 살 무렵 혼인을 한 거까지는 그 시대에 누구나 겪었을 법했지만, 내가 지니고 있던 신사임당과도 같은 어머니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이후 삶에서 펼쳐졌다. 박난수는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남편과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유형은 결코 아니었다. “밥해 먹는 게 귀찮으면 죽어야지”라는 무심한 말 한마디에, 그렇다고 사랑이 아니 담겼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여든에 이르렀을 때도 이 모습은 변치 않았다. 화려한 한복으로 한껏, 그것도 친구들까지 다 함께 치장하길 바랐던 마음을 저자는 이모의 말을 빌려 설명했다. “짱질하는 스타일”이었다고. 언제고 믿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 여리여리한 모습으로 늘 할머니를 그려왔던 나는 이 대목을 읽기가 무섭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신학생이자 전도사, 그러면서도 활동가. 한 개인에 대해 쉬이 평해선 안 되겠으나, 인물 김유미에 대한 소개를 읽으며 나는 ‘이 삶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시니어 취향’의 소유자라고 말하는 그는 사랑과 애정으로부터 출발한 관계가 어느 순간 돌봄으로 뒤바뀌는 경험을 하는 일이 잦다. 진작 지인들이 다 떠나고 홀로 남은 삶, 살아 있는 친구들일지라도 언제든 자신을 떠날 수 있어 불안해하는 삶.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마냥 슬프게만 그려내진 않았다. 이미 떠난 이들을 한껏 비웃고, 슬퍼서 우는 때도 있겠지만 그보다 좀 더 웃으며 살겠다고 말한다. 먼저 할머니가 된 이들의 뒤를 따르며... 항시 가족이라 애틋한 건 아니다. 남에게는 못할 가시 돋힌 말들을 유독 가족에게만큼은 양껏 쏟아붓는 이들도 상당하다. ‘과수원 과부들과 나’라는 제목이 덧붙은 글에서 만난 할머니는 할머니답지 못했다. 분명 엄마를 기른 경험이 있을 텐데도 마치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시선 의식 않고 내뱉는 말에 외려 주변 사람들이 움츠러 들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직접 포도를 팔아야만 하는 순간에도 이 인물은 자존심을 챙겼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지닌 억척스러움을 전혀 보이지 못하는, 그 마음을 알아줄 리 없는 세상 탓에 그날 포도는 단 한 상자도 팔리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를 비롯한 노인들이 목사 남편을 잃은 여인(사모)을 살려냈을 때, 나는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방식의 연대 의식을 엿보았다. 남자들이 죽은 후에도 주어진 삶을 꿋꿋하게 살아간 끝에야 비로소 주어지는 왕관과도 같은 이름이 ‘할머니’였다. 난 한 차례도 할머니의 손길을 느껴본 바 없다. 나의 조부모는 내가 태어나기 전, 아니, 나의 부모가 서로의 존재를 깨닫기도 전에 이미 먼 길을 떠나셨다. 나에게 할머니는 엄연히 존재했을 테지만 없는 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였다. 구체적으로 무얼 그리기 힘든 할머니에게까지 굳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다가 중단했다. 일흔을 넘긴 나의 어머니에 대해서조차도 난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로서의 삶이 어떤지, 그대에게 물어야겠다. 내가 어떤 할머니가 되어갈지에 대해서도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