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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학교 1학년 교양 수업에서 이방인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뫼르소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그 다음 날 연인과 수영을 즐기며, 살인의 이유를 '태양이 눈부셨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인물. 교수님은 그를 실존주의와 부조리의 상징이라 설명했고, 나는 그 말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시험에 나올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사회에 나온 지 몇 해가 지나,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예상치 못한 감각과 마주했다. 뫼르소가 낯선 인물이 아니라, 어딘가 익숙한 존재처럼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그가 느끼는 피로, 무료함, 그리고 세계가 자신에게 특정한 감정을 요구한다는 그 압박감. 나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카뮈는 서문에서 뫼르소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거짓말하기를 거부한다. 거짓말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아니 무엇보다도, 실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일이며, 인간의 마음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일이다." 학생 때 이 구절을 읽었다면 나는 아마도 '그래, 진실을 말하는 용기 있는 인간'이라고 개념적으로 정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 문장이 가슴을 건드리는 이유는, 내가 매일 그 반대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장님의 아재 개그에 웃고, 전혀 공감되지 않는 회식 자리에서 즐거운 척하며, 실은 대단히 피곤한 금요일 오후에도 '한 주도 수고하셨어요'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건넨다. 느끼지 않은 것을 느낀 척하는 일. 카뮈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이야말로 거짓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거짓말을 매일 연습하며 살아간다. 뫼르소는 그것을 거부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은 그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순간 자신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이 눈물의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애도를 모르는 인간이 아니다. 다만 그는 사회가 요청하는 형식의 애도를 수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은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사회에 나온다는 것은 수많은 형식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실망했을 때도 어떤 말로 포장해야 하는지, 분노가 치밀어도 어떤 온도로 말을 낮춰야 하는지. 나는 그것을 사회화라 부르며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러나 이따금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 형식들이 나를 부드럽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내 안의 무언가를 조금씩 지우고 있는 것인지. 뫼르소의 재판은 그 의문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이야기다. 법정에서 심판받는 것은 그의 살인 행위가 아니다. 실제로 재판의 핵심은 그가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 장례 다음 날 여자를 만났다는 것, 커피를 마셨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의 형식을 위반한 죄로 죽음을 선고받는다. 그 논리는 소설 속에만 있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어떤 사람이 충분히 슬퍼 보이지 않으면 그 슬픔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충분히 후회하는 표정을 짓지 않으면 그 후회의 진정성을 박탈한다. 형식이 곧 진실이 되는 세계. 뫼르소는 그 세계 안에서 형식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진실을 지키려 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가혹했다. 카뮈는 뫼르소를 '가난하고 벌거벗은 인간'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이 표현이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그것은 무언가를 덮지 않은 인간, 포장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감정 위에 적절한 포장을 얹어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예의이고, 때로는 배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포장이 두꺼워질수록, 우리는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느끼는지 점점 모르게 된다. 뫼르소는 그 포장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추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었고, 그 시선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심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인간이었다. 알제의 태양, 바다의 냄새, 마리의 웃음. 그는 그것들을 가감 없이 받아들였다. 때로 나는 내가 마지막으로 어떤 감정을 가감 없이 느꼈던 게 언제인지를 떠올려본다. 기쁠 때 충분히 기뻐했는지, 슬플 때 스스로의 슬픔을 허락했는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조금 멈추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뫼르소는 신부의 위로를 거부하며 폭발한다. 그 장면을 다시 읽으며 나는, 그것이 분노가 아니라 해방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오랫동안 세상이 그에게 씌우려 한 의미들을 거부한다. 신의 은총도, 회개의 서사도, 죽음 앞에서의 극적인 각성도. 그는 끝까지 자기 자신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두고 그는 이렇게 느낀다. 밤 냄새와 흙 냄새, 소금 냄새가 관자놀이를 식혀주고, 잠든 여름의 경이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온다고. 그것은 패배의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와, 그리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장면이다. 대학 때 나는 그 장면을 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눈부시다. 형식을 걷어낸 자리에 남은 것, 냄새와 온도와 감각으로 이루어진 날것의 삶. 그것이 뫼르소가 끝끝내 놓지 않은 것이었다. 이방인을 다시 읽으며 나는, 이 소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 아님을 알았다. 뫼르소처럼 모든 형식을 거부하며 살 수는 없고, 어쩌면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나는 지금 내가 실제로 느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느껴야 한다고 배운 것만을 느끼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그리고 그 멈춤이, 이 책을 다시 읽은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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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정말 안타깝네요" 혹은 "너무 축하드려요"라는 말을 내뱉고 뒤돌아서서 공허함을 느낀 적이 없으신가요? 80여 년 전 알베르 카뮈가 세상에 내놓은 문제적 인물, 뫼르소는 거짓 감정의 연기를 거부했습니다. 부조리 철학의 정수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세상의 관습적 도덕과 충돌하며 파멸해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리프레시판 『이방인』은 감각적인 흑백 일러스트를 통해 작품의 독특한 정서를 시각적으로 잘 드러냅니다.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알베르 카뮈. 아버지를 전쟁터에서 잃고 청각 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함께 궁핍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카뮈의 인생은 찬란한 지중해의 빛과 죽음의 그림자가 공존하는 모순 그 자체였습니다. 축구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폐결핵이라는 질병으로 꿈을 접어야 했고, 철학자 장 그르니에를 만나며 사유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정치적 추방을 겪기도 하고,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하는 등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지만, 정작 본인이 "가장 부조리한 죽음"이라 말했던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한 그의 생애는 그 자체로 하나의 부조리극과도 같습니다.
소설의 포문은 문학사상 가장 논쟁적인 문장으로 열립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패륜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카뮈가 창조한 뫼르소는 사이코패스가 아닙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기를 거부하는 인물일 뿐입니다.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을 흘려야 하고, 부모의 죽음 앞에서는 무너져야 하는 게 정상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뫼르소는 요양원에서 온 전보의 날짜가 어제인지 오늘인지가 사실관계로서 중요할 뿐, 그것을 슬픔의 크기로 환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겪는 감정 노동에 대한 카뮈 식의 원형적 저항입니다. SNS에 올릴 슬픈 사진을 고르는 우리보다 어쩌면 뫼르소가 훨씬 더 투명한 영혼을 가진 것은 아닐까요? 그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도, 시신을 확인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바로 다음 날, 해변에서 전 직장 동료인 마리와 데이트를 하고 희극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후 뫼르소는 이웃인 레몽의 치정 싸움에 휘말리게 됩니다. 레몽은 아랍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었고, 뫼르소는 그와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뒤쫓아온 아랍인들과 마주칩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과 아랍인이 든 칼날의 번뜩임에 압도된 뫼르소는 권총으로 아랍인을 사살합니다. 뫼르소가 겪은 감각의 폭주는 태양 때문입니다. "햇볕, 가죽과 말똥 냄새, 니스 냄새와 향 냄새, 그리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피로가 뒤섞여 시야와 생각을 흐리게 했다."라든가 "나는 오직 이마 위에서 울려 퍼지는 태양의 징 소리와, 여전히 내 앞에서 번뜩이는 칼날의 섬광만을 희미하게 느낄 뿐이었다. 불타는 칼날이 속눈썹을 파고들며 아픈 눈을 찌르는 듯했다 그 때 모든 것이 흔들렸다."라고 말이죠. 카뮈는 인간이 얼마나 환경과 우연에 취약한 존재인지를 드러냅니다. 뫼르소의 총신이 흔들린 것은 계획된 범죄가 아니라, 우주적 부조리와 개인의 감각이 충돌한 찰나의 사고였던 셈입니다. 『이방인』의 후반부는 본격적으로 사회적 부조리를 다룹니다. 검사는 뫼르소의 살인 행위 자체보다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 날 여자친구 마리와 수영을 하고 희극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에 더 집착합니다. 법과 도덕이라는 이름의 사회 체계가 사실은 개별 인간의 진실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이라는 대본을 얼마나 잘 따랐는지를 심판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뫼르소는 살인자라서 사형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슬퍼하는 아들의 연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카뮈는 서문에서 뫼르소에게 씌워진 오해를 끄집어냅니다. 뫼르소는 죽음을 앞두고도 끝내 자신의 진실(거짓 감정을 연기하지 않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짓말하기를 거부한다. 거짓말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아니 무엇보다도, 실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일이며, 인간의 마음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일이다."라고 말이지요. 뫼르소는 그 '조금 더 말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라는 성벽 밖으로 밀려난 이방인이 됩니다. 우리가 적당한 감정적 타협에 얼마나 안주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뫼르소의 행보를 목격하다 보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상동기범죄의 가해자가 떠오르는 건 막을 수 없습니다. 태양 때문에 죽였다는 뫼르소의 답변이 그저 무책임한 가해자의 변명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뮈는 범죄보다 더 위험하게 취급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사회적 기대에 맞춰 슬퍼하지 않는 태도. 『이방인』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가 한 인간을 심판하는 방식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연기하느라 잃어버린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지, 사회가 규정한 정답이 과연 나의 진실보다 중요한지 묻고 있는 『이방인』. 하지만 뫼르소처럼 태양 아래에서 온전히 눈을 뜨고, 세계의 부조리를 기꺼이 껴안아 볼 자신은 솔직히 서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단 한 번뿐인 인생의 주인공으로 남고 싶으면서도 말이지요. 생각할수록 이 괴리 또한 참 부조리하게 다가옵니다. #이방인 #알베르카뮈 #리프레시 #세계고전문학 #고전소설 #부조리 #거짓감정 #인디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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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통해 작성한 리뷰 〉 《 이방인 》_알베르 카뮈 (지은이), 랭브릿지 (옮긴이)/리프레시(2026)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를 매장해서 기소된 겁니까, 사람을 죽여서 기소된 겁니까?” _뫼르소의 변호인 요양원에서 전보가 왔다. 엄마가 죽었다. 뫼르소는 그저 담담하다.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마치 출장을 가서 건조한 일을 처리하듯이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올라왔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만약 눈물을 흘렸으면 결말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그 눈물은 매우 귀하고 값 비싼 눈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익히 알고 있듯이 소설은 두껍지 않다. 거의 모든 출판사마다 이 소설의 판형을 작게 잡았다. 핸디한 사이즈다. 그러나 소설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무엇이 진실인가?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가? 카뮈의 말마따나 사회통념에 잘 맞춰 살아야만 반드시 정상인가? 너무 솔직한 것이 탈인가? 1부는 템포가 느린 편이다. 뫼르소의 일상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업무시간엔 사장에게 잔소리 듣지 않을 만큼 일도 깔끔하게 잘 처리하기 위해 신경 쓴다. 엄마 장례식을 치르고 올라온 후, 다시 반복되는 일상이다. 변화가 있었다면, 트렘을 타고 종종 들르곤 했던 항구의 해수욕장에서 예전에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동료 마리를 만난 것이다. 그 때 서로 호감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녀가 먼저 회사를 떠났고, 함께 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해수욕장에서 마리를 다시 만나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날 저녁 영화를 보고, 뫼르소의 집에서 함께 밤을 보냈다(이 하루의 일은 나중에 법정에서 검사의 입을 통해 뫼르소에게 불리하게 작동된다). 2부는 템포도 빠르고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얼떨결에 주머니에 든 총을 꺼내 아랍인을 쏘아 죽였다. 총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1부 마지막). 아무튼 뫼르소의 죄명은 ‘살인죄’이다. 그 아랍인과는 개인적인 감정이 없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 날 그 순간 태양의 빛과 열기가 상당했다. 아랍인이 칼을 꺼내 햇빛 속으로 내미는 순간, 그 빛은 강철 위에서 튀어 올라 번뜩이는 칼날이 되어 뫼르소의 이마를 향해 날아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뫼르소는 총을 쏘았다. 자기방어로 해석될 요지도 충분하다. 그러나 판사는 첫 번째 총을 쏘고 나서 왜 나머지 네발을 쏘기 전, 텀을 두었냐는 질문만 한다. 그리고 불리하고 불리한 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위해 갔을 때, 요양원장을 비롯한 그곳 직원들의 증언이 그에게 좋지 않게 적용된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얼굴)모습을 보지 않았다는 점, 눈물도 흘리지 않더라는 이야기 등등. 그리고 예심판사나 부속사제가 하느님을 인정 하냐고 반복해서 물었을 때, “아니요” 라고 답한 점 또한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정에선 피고인 뫼르소를 앉혀놓고 거의 배제시킨 상태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날 동안 계속 되풀이된다. 뫼르소는 다시 그의 방에 붙은 발코니에서 교외의 큰길을 내려다보며 앉아있을 수 있을까? 마리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결혼은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이 사람이 범죄자의 심장을 가지고 어머니를 묻었기에, 그를 고발하는 바입니다.” _담당검사 #이방인 #알베르카뮈 #소설 #고전소설 #리프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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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오늘은 이방인을 읽고 느낀 점을 조금 더 깊이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 작품은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으로, 겉으로 보면 단순한 사건 중심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읽을수록 인간의 존재와 감정, 그리고 사회의 기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는데, 이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슬퍼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눈물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뫼르소는 그런 사회적 기대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인물로 보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연인 마리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이웃 레이몽과 어울리며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해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건으로 인해 한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게 되고, 그의 삶은 급격히 변화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범죄라기보다, 뜨거운 태양과 순간적인 감각이 만들어낸 충동적인 사건처럼 묘사되어 있어 더욱 인상 깊었다. 재판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느껴졌다. 법정에서는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보다도,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보인 태도가 더 큰 문제로 다뤄진다. 결국 그는 범죄자이기 이전에 사회의 규범과 감정 표현 방식에 맞지 않는 사람으로 판단받는다. 이 모습을 보며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 작품은 실존주의와 부조리 철학을 잘 보여준다. 인간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세상은 그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런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뫼르소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자유를 느끼게 된다. 이 장면은 역설적이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나는 정말 나답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대에 맞춰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한다.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는 것조차 어쩌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뫼르소는 사회 속에서 고립된 인물이지만, 동시에 가장 솔직하게 살아간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의 행동을 모두 이해하거나 옹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나에게 익숙한 가치관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가볍게 읽히는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읽고 난 뒤에는 오랫동안 생각이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인간의 본질과 사회의 기준 사이에서 고민해보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110페이지 / 나는 그에게서 열 걸음 남짓 떨여져 있었다.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그의 시선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은 불타는 공기 속에서 그의 형상이 흔들리며 일그러져 보였다. 파도소리는 정오보다 더 느리고, 더 평평하게 들렸다. 같은 태양과 같은 빛이 같은 모래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미 두 시간째, 하루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금속 같은 바다 위에 닻을 내린 듯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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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단지, 이 책의 주인공이 규칙대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는다는 점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이방인이다. (-6-) 무언가 스치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인지, 방은 전보다 더 눈부시게 하얗게 느껴졌다. 내 앞에는 그림자 하나 없었고, 사물 하나하나, 모서리 하나, 모든 곡선이 눈을 찌를 듯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22-) 햇볕이 너무 강해지자 그녀가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나도 뒤따랐다. 나는 그녀를 따라잡아 허리에 팔을 둘렀고, 우리는 함께 헤엄쳤다. 그녀는 계속 웃고 있었고 부두 위에서 몸을 말리면서 말했다. (-40-) 레몸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를 괴롭히는 건 '아직도 그 여자한테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벌하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호텔로 데려가 풍속반을 불러 소란을 피우고, 그녀를 등록 명부에 올리게 만들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해보았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59-) 마리가 나에게 다가와 물속에서 몸을 밀착시켰다. 그녀는 입을 내 입에서 가져다 대었다. 그녀의 혀가 내 입술을 식혀주었고 우리는 잠시 물결 속에서 서로 얽혀 있었다. 해변에서 옷을 다시 입을 때, 마리는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64-) 막 출발하려는 순간, 레몽이 갑자기 맞은 편을 보라고 손짓했다. 나는 담배 가게 앞에 기대어 서 있는 아랍인 몇 명을 보았다. 그들은 우리를 말없이 기대어 서 있는 아랍인 몇 명을 보았다. 그들은 우리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돌이나 마른 나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레몽은 왼쪽에서 두 번째 사람이 바로 그 남자라고 말했다. (-86-) "진정한 후회라기보다는, 좀 귀찮은 일이 되었다는 기분입니다." 그는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날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 뒤로도 예심 판사를 자주 봤다. 하지만 매번 변호사가 동석했다. 그들은 내 진술의 특정 부분을 분명히 하거나, 혐의 내용을 두고 토론했다. (-118-) 소설 『이방인』의 겉표지에는'우리는 왜 진실보다, 적당함에 더 쉽게 안도하는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실존주의 창시자 알베르 카뮈는 이 세상이 부조리하고,허무하다는 것을 소설에서, 뫼르소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 뫼르소가 보여준 행동과 말과 무덤덤한 태도에 대해서, 본인 스스로 이방인을 자쳐하고 있으며,장례식에서 보여준 행동은 그를 사형애 처해 마땅하다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이 소설은 진실보다 적당한 태도와 행동에 대해서, 인간에게 말과 행동, 태도가 자신을 살아남게 하거나, 죽음으로 내몰리게 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뫼르소는 거짓보다,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그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 태양이 따가워서, 총을 쐈고,사람을 죽였다.그것이 재판으로 이어졌고, 국선변호사를 써서, 스스로 구제하려 한다.하지만, 그는 결국 사형이 되고 말았다. 이 소설에서, 부조리한 세상은 언제든 우리 앞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잇다. 내가 가지고 있느 것들은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다. 살아가면서,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람들, 인간미가 없는 이들의 말과 행동, 태도를 보면 , 우리는 정떨어진다고 생각하고,경계한다. 정떨어지는 사람은 서구에서. 이방인이라 부르고 있었고, 우리는 흔히 그런 사람을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뫼르소와 같은 사람들을 보면,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비인간적이고, 냉혈한 사람,차가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그런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우습게 들리지 않으며,우리는 뫼르소를 통해서,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제2의 뫼르소를 소환할 것이다.그리고,그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멀리 볼 것 없이,2002년 이후, 20여년째,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유승준만 보더라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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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카뮈 #리프레시 #고전소설 #카뮈 #소설 #이방인리프레시 #이방인줄거리 #리프레시출판사이방인 #신간도서 #도서리뷰 #책리뷰 #서평 #책읽기 #베스트셀러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방인을 이번에 처음 읽었다. 책을 덮고 난 뒤 묘하게 아쉬움이 남는 느낌이었다.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로 남았다. 처음에는 이 작품이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본질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다소 강한 메시지를 가진 이야기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보니 그 예상과는 달리 차분하고 건조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었고, 오히려 그러한 점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주인공 뫼르소는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감정 표현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큰 슬픔을 보이지 않고, 장례식 이후에도 담담한 태도를 유지한다. 심지어 다음 날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여자를 만나고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가까운 가족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뫼르소의 태도는 쉽게 이해되지 않으며, 때로는 비정상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오히려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의 표현 방식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그리고 그러한 기준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일까. 뫼르소는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꾸미거나 사회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살아갈 뿐이다.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솔직함에 가깝지만,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후 뫼르소는 아랍인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강조되는 것은 살인의 구체적인 경위나 이유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보였던 그의 태도이다.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보다 슬퍼하지 않았다는 점이 더 크게 문제시되는 모습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장면은 사회가 개인의 행위 자체보다도 그 사람의 성격과 태도를 통해 ‘어떤 인간인가’를 판단하려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사회가 요구하는 감정의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은 그 자체로 위험한 존재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방인”이라는 제목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뫼르소는 특별히 악의를 가진 인물이라기보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기존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결국 그를 배제한다. 그는 사회 속에 존재하지만 결코 그 안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 즉 ‘이방인’으로 남게 된다. 이 작품은 그러한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간극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사회의 부조리를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드러내고 있었다. 읽고 난 뒤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여운이 남았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느껴졌다. 한 번의 독서로 끝내기보다는 다시 읽으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인상 깊게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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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소설 #고전소설 #이방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알베르 카뮈 작가님의 <이방인>은 이제 단순한 ‘세계문학 고전’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작품 같습니다. 워낙 유명한 첫 문장 때문에 무감각한 인간의 이야기처럼 알려져 있지만, 다시 읽어보면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뫼르소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지 않은 감정을 거짓으로 연기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프랑스령 알제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의 삶은 극적이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지만 이상할 만큼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특히 카뮈 작가님은 인간이 세상과 완전히 합의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사실을 아주 건조한 문장으로 보여줍니다. 이번 리프레시판은 이러한 작품의 핵심을 현대 독자들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한 판본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번역을 맡은 랭브릿지 번역팀 역시 지나친 번역투를 줄이고 읽기 편한 문장으로 카뮈 특유의 공기를 잘 살려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방인>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살인 사건 자체보다 재판 장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뫼르소가 왜 총을 쐈는지보다, 왜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는지를 더 집요하게 문제 삼습니다. 사회는 종종 행동보다 ‘감정의 형식’을 먼저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퍼해야 할 때 슬퍼 보이지 않으면 비정한 사람으로 판단하고, 후회하는 표정을 짓지 않으면 진심조차 부정해버립니다. 카뮈 작가님은 바로 그 지점을 날카롭게 건드립니다. 뫼르소는 사회 규칙을 적극적으로 부수는 혁명가도 아닌데, 사람들은 그를 위험한 존재로 여깁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는 모두가 공유하는 감정의 연극에 끝내 참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단순한 실존주의 소설이라기보다, 인간 사회가 얼마나 ‘정해진 감정’을 강요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읽는 동안 제 자신의 경험도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실 별 감흥이 없는데도 예의상 웃거나, 크게 슬프지 않은데 적당히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야 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는 공동체를 위한 필요라고 생각하지만, 반복되다 보면 가끔 ‘나는 지금 진짜 감정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적절한 반응을 수행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뫼르소는 현실적으로는 꽤 위험한 인간이지만, 동시에 묘하게 부러운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의 태도가 정답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그는 최소한 자기 감정을 속이지는 않았습니다. 현대 사회는 솔직함을 미덕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측 가능한 감정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이방인>이 지금까지 계속 읽히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카뮈 작가님이 이 작품에서 단순히 허무주의를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흔히 카뮈를 ‘인생은 의미 없다’고 말한 작가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인간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니체의 문제의식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인간 탐구와도 어딘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알제리의 뜨거운 태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 이성을 압도하는 세계의 감각 자체처럼 묘사됩니다. 뫼르소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조차 논리보다 햇빛과 열기, 눈부심 같은 감각이 먼저 작동합니다. 인간이 늘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믿는 근대적 사고를 카뮈 작가님이 조용히 흔드는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유명한 고전 한 권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접근해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특히 인간관계와 사회 속 역할에 피로를 느끼는 분들에게 더 깊게 다가갈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과 실제 자기 감정 사이의 거리감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뫼르소를 완전히 남처럼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철학책처럼 어렵게 읽히지는 않지만, 다 읽고 나면 꽤 오래 생각이 남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사건보다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방인>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다시 펼치게 되는 책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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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꼼꼼하게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고전 문학이자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인 『이방인』을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던 이유로 이야기가 시작하고 총 2부 11장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서는 읽기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에 표지는 다크한 배경의 고급스러움과 차분함을 담아냈고, 글은 가독성 좋은 폰트와 간격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뫼르소는 잔잔한 일상 속에서도 주변 인물과 상황들을 꾸준히 관찰하며 섬세히 관찰한 사실을 한 치의 거짓 없이, '말했다, 달렸다, 없다, 아니다'처럼 짧고 건조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인물입니다. 이처럼 사건이나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는 건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격하게 적용되었는데요. 처음에는 거짓 감정을 만들어 내지 않는 표현 방식에 꽤나 솔직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불편함과 이질감이 공존하는 무심함처럼 느껴졌습니다. 살아 숨쉬는 생명체라면 본능적으로 느껴야 할 슬픔과 아픔, 상실감과 같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애써 감정을 연기하지 않는 건조함이 책을 읽는 내내 몰입도를 상승 시켰던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감정을 겉으로 표현할 필요를 찾지 못하는 뫼르소에게도 그의 성격을 매력적으로 바라보고 다가오는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다만, 눈앞의 부조리함을 무심하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던 그의 성격은 감정에 휘말리는 것보다도 훨씬 치명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해 왔는데요. 혹시나 사건에 휘말려 감정을 표현해내야만 하는 환경이 놓여지면 내면도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뫼르소에게는 너무도 불리할 것만 같이 느껴졌습니다.
이방인을 읽으며 내가 뫼르소 같은 인물을 만난다면, 그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지에 대해 깊게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끊임없이 재단하고 단정 짓는 세상 속에서 어쩌면 뫼르소 같이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더 솔직한 태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론 감정 없는 태도가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생길 지도 모르겠지만, 저라면 그 다름을 애써 이해하고 정의 내리기보다는 하나의 방식으로 남겨둔 채 판단을 유예하려 합니다. 『이방인』은 얇은 분량의 도서이지만 읽을 때마다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감정보다 이성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나, 분석하고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추천드립니다. #이방인 #알베르카뮈 #랭브릿지 #리프레시 #카뮈 #소설 #고전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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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은 꼭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고, 반성해야 할 때 반성하는 표정을 지어야만 정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방인』을 읽는 동안 이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처음에는 뫼르소가 조금 거만하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최소한의 태도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읽을수록 뫼르소의 태도는 단순한 거만함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는 일부러 차갑게 굴거나 누군가를 무시하려는 인물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느끼지 않은 감정을 느낀 척하지 않는다.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고, 마리에게 사랑을 확신하듯 말하지도 않는다. 직장 문제에서도 큰 욕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사회가 원하는 대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말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이상하게 걸리는 부분은 뫼르소의 범죄만이 아니다. 재판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가 저지른 살인보다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크게 반응한다. 한 사람을 죽였다는 죄보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기대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더 강하게 문제처럼 다뤄진다. 그 장면을 보면서 사회가 사람을 판단할 때 실제 행동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까지 함께 따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를 하나 고른다면 ‘감정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슬픔, 후회, 사랑 같은 감정은 개인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방인』에서는 감정에도 정해진 모양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죽었을 때는 울어야 하고, 죄를 지었을 때는 괴로워해야 하며, 사랑을 말할 때는 확신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뫼르소는 그 방식에 맞추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점점 이상한 사람이 된다. 뫼르소의 선택은 계속 비슷하다. 그는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장례식에서도 슬픔보다 피곤함, 더위, 빛 같은 감각에 더 많이 반응한다. 이런 태도는 무책임하게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행동이 모두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고, 타인의 죽음 앞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뫼르소를 그냥 나쁜 사람이라고만 정리하게 두지 않는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뫼르소가 세상을 감정보다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그는 어떤 사건을 설명할 때 마음속 이유보다 햇빛, 땀, 더위, 눈부심 같은 몸의 반응을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그의 세계는 차갑다기보다 건조하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감정이 아예 없는 사람이라기보다, 감정을 말로 꾸미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뫼르소는 불편하지만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인물이었다. 이번 판본에서 좋았던 점은 삽화가 함께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전에 읽었던 다른 출판사의 『이방인』은 글만 따라가야 해서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런데 이번 책은 삽화가 있어 뫼르소가 놓인 공간과 분위기를 더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특히 햇빛, 더위, 거리의 공기처럼 감각이 중요한 장면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뫼르소가 사회적 의무를 무시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오히려 사회가 한 사람의 마음보다 정해진 태도와 표정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정말 보고 판단하는 걸까. 아니면 그 사람이 슬퍼 보이는지,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확인하고 있는 걸까. 『이방인』은 살인 사건을 다룬 소설이지만, 읽고 나면 단순히 사건의 흐름보다 뫼르소가 왜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으로 몰렸는지가 더 신경 쓰인다. 인간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감정 연기를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뫼르소는 끝까지 불편한 인물이다. 쉽게 이해되지도 않고, 쉽게 좋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된다. 이 소설은 뫼르소를 이해하라고 말하기보다, 우리가 타인을 판단할 때 무엇을 먼저 보고 있는지 묻는 책처럼 느껴졌다. #카뮈 #알베르카뮈 #소설 #고전소설 #이방인 #리프레시 #리뷰어스클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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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보며 이방인이 던지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진실에 대한 집요한 태도’예요. 뫼르소는 흔히 생각하는 도덕적인 기준이나 사회적 기대에 맞추지 않아요. 인상 깊었던 부분은 “거짓말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관점이었어요. 문장을 읽고 나서 저는 그동안 너무 쉽게 감정을 과장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상에서 “괜찮아요”, “슬퍼요”, “기뻐요” 같은 말을 습관처럼 사용해요. 하지만 그 감정이 진짜인지, 아니면 상황에 맞추기 위해 만들어낸 표현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뫼르소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는 후회해야 하는 순간에도 후회한다고 말하지 않고, 단지 자신이 느끼는 ‘무료함’을 그대로 말해요. 이 지점이 바로 사회가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라고 느꼈어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내가 느끼는 감정만큼만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더 많이 말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게 하는 점이었어요. 인간관계 속에서 상대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감정을 과장하거나 숨기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도 떠올랐어요. 물론 모든 상황에서 솔직함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지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인간이 감정보다 ‘감각’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이었어요.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조차 슬픔보다 태양의 열기, 눈부신 빛, 피로감 같은 물리적인 감각에 더 집중해요. 실제로 그는 장례 행렬 속에서 감정적인 고통보다 햇볕과 더위, 육체적인 피로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곱씹어볼수록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고 느껴졌어요. 우리 역시 중요한 순간마다 감정보다는 몸의 상태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 피곤하면 슬퍼할 힘조차 없고, 몸이 힘들면 감정을 제대로 느끼기조차 어려워요. 그런 자연스러운 반응을 억누르고 ‘지금은 슬퍼해야 하는 상황이야’라고 스스로를 통제하려고 해요. 뫼르소는 그런 억지스러운 통제를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는 단지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에요. 장례식 다음 날,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영화를 보며 웃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어요. 이 장면 역시 그의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슬픔을 억지로 끌어내지도 않고, 기쁨을 일부러 억누르지도 않아요. 그저 그 순간의 감각과 상황에 충실하게 반응할 뿐이에요. 이 모습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또 다른 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이 부분을 통해 저는 ‘나는 감정을 느끼는 방식조차 사회에 맞춰 조정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퍼야 할 때 슬퍼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고, 기뻐도 되는 순간에도 주변 눈치를 보며 감정을 숨겼던 경험이 떠올랐어요. 결국 우리는 감정조차 자유롭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낯설게 보여주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느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남았던 감정은 불편함이었어요. 그 불편함은 단순히 이해하기 어려워서 생긴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었어요. 뫼르소는 사회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 번쯤은 해봤을 생각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그의 태도는 단순한 정직함을 넘어선다고 생각했어요. 흔히 거짓말을 나쁜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작은 거짓말’을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혹은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을 바꾸는 일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뫼르소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요. 그는 자신의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요. 이 지점에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우리가 모두 뫼르소처럼 살아간다면, 이 사회는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어요. 어쩌면 사회는 ‘적당한 거짓말’ 위에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의 태도가 더욱 위험하게 느껴지고, 동시에 더욱 순수하게 보이기도 했어요. 그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작가가 뫼르소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인 진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어요. 그것은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얼마나 솔직할 수 있는가에 가까운 개념이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나는 지금 솔직하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어요. 그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여운이라고 느꼈어요. 마무리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의 타협과 연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까지 잃어버리고 있다면, 이미 스스로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이 책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맞춰가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뫼르소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속이지 않는 태도는 한 번쯤 고민해볼 가치가 있어요.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적어도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가’라는 생각하게 되었어요. #카뮈 #소설 #고전소설 #이방인 #리프레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