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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외면하는 대가로 유지되는 기괴한 낙원, 우리는 이 거대한 거품 속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책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읽는 사람의 배꼽을 잡는 소설이다. 마치 스탠드 업 코미디 무대에서 한 개그맨이 사회와 정치를 대놓고 조롱하고 풍자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뉴로어노크라는 가상의 세계가 지닌 사회적 모순과 정치적 분열 등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비틀면서 독자들을 웃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이 가상의 세계 ‘뉴로어로크’는 낯설기보다는 어딘가 익숙하게 다가온다. 줄거리를 말하자면, 인류 최초의 목성 유인 탐사선인 SS 딜레이니 호에 오른 사회학자 날리니 잭슨. 뛰어난 관찰력과 비상한 지능을 가진 그녀는 우주선 안의 승무원들을 끊임없이 관찰한다. 최고의 엘리트라 불리는 이 사람들은 밥 일당과 드웨인으로 대표되는 유치한 파벌싸움과 정치질에 몰두한다. 한편 지구에서는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납치된 전 부인을 구하기 위해서 체이스는 우주로 향한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오래전부터 가끔 상상하던 내 머릿속의 기묘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쩌면 이 세상 전체가 사실은 외계인이 세운 거대한 실험장이나 세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자유롭고 주체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겠지만 사실은 거대한 사회 실험 혹은 인류학적 연구 프로젝트 속에서 움직이는 피실험체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자꾸 떠올랐다. 목성의 위성인 에우로파에 지어진 거대한 돔 도시 ‘뉴로어노크’ 이곳은 노골적으로 독실한 기독교가 지배하는 한 미국의 남부 주를 풍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독실한 신앙심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정보가 철저히 통제되는 곳. 사람들의 신앙심과 불안을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곳. 보이지 않는 힘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안락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침묵을 선택하는 바로 그곳. 이 책이 진짜 재미있는 이유는 우선 인물 묘사가 기가 막힌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갠다고 우주선에서 하던 짓을 그대로 반복하는 인간들. 사람들을 괴롭히고 정치질을 하던 밥과 그의 일당은 ‘뉴로어노크’에서도 권력층과 결탁해 기득권을 독차지하고 언론까지 통제한다. 날리니는 여전히 냉정하게 인간 사회를 관찰하고 아흐메드는 자기 살 길 찾기에 바쁘다. 반면 드웨인은 끝까지 모순과 불의에 맞서며 충돌한다. 결국 배경이 우주든 지구든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웃기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들은 희화화 기법과 냉소적 태도를 통해 우리 시대의 사회와 정치를 비판한다. 상당히 깊이 있고 철학적이며 지적인 이야기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실컷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엄청난 지식인이 무대 위에서 농담을 던지면서 인간 사회의 위선과 어리석음이라는 민낯을 드러내는 느낌이다.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어떤 규칙으로 세상이 움직이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곳 ‘뉴로어로크’ 그러나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힘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책의 제목인 ‘보이지 않는 힘’ 사람들을 공중에 매달기도 하고 내던지며 공포를 자아내는 이 힘을 사람들은 ‘신의 힘’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한다. 이는 사람을로 하여금 진실을 파헤치기보다는 침묵하면서 안락한 질서에 머무르기를 선택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독재 국가나 종교 단체에서 이런 인간 심리를 잘 이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과연 ‘뉴로어로크’의 납치된 사람들과 딜레이니 호의 승무원들은 이곳을 탈출하여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읽다 보니 커트 보니것 작가의 유머러스한 문체를 떠올리게 했단 책 <보이지 않는 것들> 이 소설은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정말 자유로운 존재일까?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과연 우리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일까? 혹시 더 거대한 존재가 이미 짜놓은 판 위에서 그동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매우 독특한 유머감각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SF 소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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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프레첼이 꼭 안경처럼 보여서,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은 지구와 꼭 닮은 또 다른 행성을 배경으로 합니다.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곳으로 이주해 살아가게 되고, 그 안에서 여러 인간 군상이 부딪히며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설정만 보면 가볍고 기묘한 SF처럼 느껴지지만, 읽다 보면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사회와 정치,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계속 생각났어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장소만 바꾼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표지에는 코미디라고 적혀 있지만, 마냥 유쾌하게 웃기보다는 씁쓸하고 허탈한 웃음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문장 곳곳에 재치 있는 표현과 유머가 숨어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가벼운 SF를 기대하고 펼쳤다가, 예상보다 묵직한 질문을 받아들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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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였다. 도시 하나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교외 지역도 보였다. 그 너머로는 숲의 녹색 지붕이 보였다. 고속도로가 신경망처럼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강줄기가 곡선을 이루며 도심지의 고층 건물 사이를 휘돌아 흘러가는 모습도 보였다. 42" 어느날 갑자기, 아니 어느 순간 갑자기 세상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본인 조차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낯선, 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곳으로 옮겨지는 사람들. 왜, 누가, 어떻게 이들을 이주시키는 것일까? '뉴로어로크'의 존재와 그곳으로 옮겨지는 사람들. 너무나 거대하고 이해되지 않아 읽을수록 궁금증이 커지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으며 몇 가지 질문들을 생각했다. 처음엔 우주와 외계의 존재를 궁금해했다. 그 뒤엔 삶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다른 세상으로 지금까지의 삶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음에도 층을 나누고, 맹목된 규칙과 믿음을 만들어내는 이기심과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벗어남으로써 얽매임에 대해 질문하도록 만드는, 멀어짐으로써 다시 살피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해 '보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첫번째 질문,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대상에게 우리는 어떤 의미일까? 우주와 외계 존재가 우리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만큼, '진실'에 대해 궁금해하는 만큼 우리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야기할까. 우주의 어느 행성, -목성의 115여개 위성 중 하나인 에우로파(16)-에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두고, 심지어 세차장, 칙필레(137)가 있는 '진짜' 도시의 형태 그대로 구현해두고 그 안을 인간으로 채우는 일을 실현할 수 있는 쪽에게 과연 의미가 될까? 우리에게나 경악과 흥미를 주는 것이지,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에게 있어 이런 사건은 그저 여흥거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우리가 개미굴을 관찰하거나 벌집을 찾아 꿀을 얻는 것처럼, 길 한편에 난 꽃을 반대로 옮겨 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을수록, '왜'를 생각할수록 지구에서의 인간이 우주에서는 타 생명체들의 입장이 되기 때문에 더 두려워하고 의심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답을 몇 가지 얻는다해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라고요. 그 답은 더 많은 질문만을 불러올 겁니다. 해답 없는 수수께끼라고요. 그걸 신경 쓰느라 남은 평생 정신이 나가버리거나 아니면 흐름에 순응해서 최대한 이 상황을 이용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곳 주민들처럼 사세요. 받아들여서 자기 삶을 꾸리라고요. 여러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신들 모두 앞으로 이곳에서 살게 될 겁니다. 87" 두번째 질문, 순응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 모두는 결국 우리 앞에 놓여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뉴로어로크'에 거두어지는 것은 태어남과 그리 다르지 않게 보인다. 거두어짐과 태어남은 선택의 여지없이 존재하게/태어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만 전자가 지구에서 새로운 시작점으로 옮겨왔음을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머리 강사의 조언을 우리 인생과 겹쳐보면 존재와 근원에 대한 질문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고 어울려 살아가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다만 이것이 진실을 외면한 도망침이었을때, 아무리 진짜처럼 보이는 새로운 세상으로 갔을지라도 거짓과 기만에 순응하지 말고 저항과 진실을 향해 나아가라는 메세지가 된다. 삶에는 순응하되 거짓에는 질문하고 저항하고 선택해야 한다. " 상륙한 순간부터 마음속 짐이 떠내려가는 것 같더라니까. 내 모든 스트레스, 모든 초조함, 모든 학자금 대출, 모든 신용카드 영수증이...... 그냥 흘러가버린 것 같았거든. 내가 여기 도착한 순간에 말이야. 거짓말은 안 할게.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몽롱하기도 했지. 그래도 지금까지 행복했어. 그러니까, 진짜로 행복했다고. 난생처음으로 말이야. 그건 장담할 수 있어. 처음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으니까. 233" 세번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되고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잃고서 새로 시작하게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해방감. 우리는 가끔 어떤 것들에 얽매인다. 그건 자신의 신념일수도, 돈이나 옷, 작은 액서서리에서 LP나 조립식 장난감, 캐릭터 상품처럼 물질적인 것들일수도,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기지개를 핀다는, 걸음을 걸을 때 오른발부터 내딛는다는 사소한 반복행동일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자신이 선택해서 얽매이는 긍정적인 것들이고 나쁘게는 빚이나 책임져야 하는 책무(내가 아니면 어떻게 돌아가나 싶은 업무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돌봐야 하는 가족일수도 있다. 이 얽매임은 절대로 벗어나서는 안될 것 같은 압박이나 강박이 되기도 하고, 우리를 자신의 삶에 발 붙이고 살아가도록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곳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떨까. 많은 인물들이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뉴로어로크'에 거두어졌을 때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 '죽음의 5단계'*를 거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에이다는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들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대해 말했다. 붙잡고 있는 것을 놓았을 때, 너무 소중해서 절대 버리거나 잃을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을 허무하게 놓쳤을 때 처음엔 충격을 받고 괴로웠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고나니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절대'라는 것도 없고, 그것 아니면 안될 것 같아도 또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세상이 달라지는 일 없이 살아가게 된다. 오히려 무엇에 그렇게 얽매여있었나 가벼워지는 기분도 들었던 것이라 에이다의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읽는 내내 대체 무엇이, 어떻게, 왜 하는 질문과 생각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것은 '뉴로어로크' 자체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고, 거두어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진 도시의 사회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진실을 직시하고 진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항하는 이들과 순응하는 수많은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라진 사람들과 숨겨진 비밀에 대해 마음껏 궁금해하고 의심하고 놀라며 읽어보면 좋겠다. *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죽음과 죽어감] 1969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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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존슨 / 보이지 않는 것들 "위대한 주님의 선택을 받은 '뉴로어노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국의 천재 작가 #매트존슨 빈부, 인종, 정치, 종교 등 인간 집단 내의 온갖 갈등을 SF판으로 그려낸 소설 #보이지않는것들 장기간 격리된 #우주선 내의 집단 역학을 연구하기 위해 탐사선에 오른 사회학자 날리니는 지구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 좁은 우주선 안에서 인간이 사회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관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승무원들과 함께 지내면서 날리니는 학문적으로 공정한 기록을 남기기 어렵다는 한계에 봉착하고 설상가상으로 이들은 목성의 위성 에우로파의 거대한 투명 돔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12p 인류가 항성 간 이주에 성공한다면, 앞으로 수천 년에 걸쳐 우주에 지성체의 씨앗을 피트리고, 서식지 다양화 전략으로 멸종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42p 딜레이니호의 승무원들은 화면에 떠오른 다른 세계, 거품 속의 세계를 그대로 들여다봤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더니, 그들 또한 그 안에 있었다. 그곳은 미국의 평범한 소도시를 세세한 부분까지 똑같이 복제해 놓은 도시 뉴로어노크. #지구 로부터 7억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반구 안에 외계인으로부터 납치된 최소 100만 명이 갇혀 살아가고 있다. 멀리서 보면 유토피아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조악한 장난감 같은 낙원. 63p "미국의 카운티 하나 크기의 인공 에코시스템 안에 있습니다. 미국 도시와 똑같은 모습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곳이고, 에우로 파라는 이름의 목성의 위성 표면에 있지요. "체이스는 로이드 탤벗 쪽으로 멍하니 시선을 향하더니, 그를 진지하게 훑어본 다음 말했다 "빌어먹을, 그럴 줄 알았어요." 74p 납치범의 정체도, 납치한 이유도 아직은 모르오. 그곳에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 옷에 내장된 카메라로 모든 것을 기록한 계획이오. 그곳에 도착하면 주민들에게 탈출용 냉동수면 우주선을 제작할 수 있는 다년 계획을 제공하고, 딜레이니호의 승무원을 구출해 즉시 귀환할 거요. 그리고 내가 국제연합을 대신하여 저들과의 첫 외교적 접촉에서 선봉을 맡을 것이오. 한편 NASAx에서는 딜레이니호 승무원의 무사 탈출을 계획하며, #외계인 납치 피해자 체이스를 영입하고, 체이스는 고민 없이 외계인에게 납치된 전처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뉴로어노크로 향한다. 결국 돔을 탈출하려는 자들, 눈을 감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들, 그리고 혼란을 틈타 새로운 권력을 쥐려는 자들의 욕망이 뒤엉키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게 된다. 진실을 외면하는 대가로 유지되는 이 기괴한 낙원에서, 과연 이들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폴라북스 #현대문학 @hdmhbook #도서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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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 / 매트 존슨 / 현대문학
목성 탐사를 위해 떠난 SS 딜레이니호에는 행성지질학과 응용사회학을 공부한 날리니 잭슨이 탑승하고 있다. 수개월간 우주선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인간의 행동을 탐구하려던 그녀의 연구는 시작부터 심각한 난관에 부딪힌다. 바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MIT 출신들이 소수의 칼텍 출신들을 상대로 세력 싸움과 짓궂은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참고로 날리니는 칼텍 출신이다.) 특히 MIT 무리의 수장인 밥 시포드는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하여 동료들의 추앙을 받고 상대의 굴복을 받아내는 데 타고난 인물이었다. 날리니와 동료 드웨인은 출신 학교가 같을 뿐만 아니라 성향도 비슷해 밥 일당의 정치질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다. 특히 불의를 참지 못하는 드웨인은 번번이 밥과 충돌한다. 이들의 사태는 날리니 팀이 목성의 위성 에우로파에서 반구형 바이오돔의 존재를 확인한 후 급속도로 반전을 맞이한다. 탐사 드론이 보내온 영상 속에는, 놀랍게도 미국의 한 도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마을과 사람들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갑자기 지구에 있는 한 리무진 운전기사의 시선으로 전환된다. 체이스 유뱅크스는 거대한 모의전투장을 만들어 운영 중인 자산가 해리 브렘너를 모시고 있다. 해리는 세계 각지의 피난민들을 받아들여 그들이 고향과 같은 방식으로 마을을 짓고 살아가게 한 뒤, 그 인공 도시를 군인들의 전투 훈련장으로 제공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한편, 체이스에게는 전처가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고 굳게 믿는 남다른 사정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에게 국제연합(UN) 사무총장 특사인 로이드 탤벗이 찾아와 사진 한 장을 내민다. 그 안에는 체이스의 아내가 있었다. 사진의 출처를 묻는 체이즈와 해리를 로이드는 은퇴한 NASAx 제독 에설 도트슨에게 데려간다. 제독은 그 사진이 에우로파의 바이오돔 내부에서 찍힌 것이며, 실종되었던 SS 딜레이니호의 승무원들도 그곳에 생존해 있음을 알려준다.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비밀리에 SS 어슐러 50호가 편성되고, 자금을 댄 해리와 그를 보좌할 체이스가 구조대에 합류한다. 체이스는 내키지 않았지만, 아내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우주선에 오른다.
여기까지만 읽어보면 미스터리한 우주 납치극이나 아내를 되찾는 모험 활극, 혹은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대결을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이후의 서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첨단 미래도시일 줄 알았던 바이오돔 내부는, 먼저 납치되어 정착한 자들의 후손이 기득권이 되어 설립한 '건국자당'이 실권을 쥐고 있는 미국을 베낀 듯한 사회였다. 이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었고 누구에 의해 통제되는지 명백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지만, 건국자당은 눈앞에 존재하는 기이한 현상들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암암리에 금지하며 이를 '보이지 않는 것들'로 치부해버린다. 대중 역시 현상 유지를 위해 이에 맹목적으로 동조한다. 사회에 노동력을 공급하면서도 영원히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하층민들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취급된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가진 SS 어슐러 50호가 등장하자,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지키기 위해 협박과 회유 등 온갖 정치적 공작을 펼치며 이 기술을 획득하고자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자꾸만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과 맞물리는 날카로운 블랙유머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 뉴스에서 보았던 기만적인 장면들이 자꾸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 현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혹은 정치가 가진 생리가 인류 보편의 속성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대 정치의 부조리함을 뼈저리게 느껴보고 싶다면, 에우로파로 납치된 인물들의 기묘한 삶을 들여다보길 권한다.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해, 우리가 지금 당장 ‘봐야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서늘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13p 남은 의문은 인류의 다양한 집단적 죄악 중 어느 조합이 마지막 일격을 날릴지 정도일 것이다. 기후 파괴, 최후의 핵전쟁, 만연한 외부자 혐오, 치명적인 극단주의, 인간이 만들어내거나 퍼트린 유행병 사태. 그 모두가 강력한 경쟁자였다. (중략) 그러나 인류는 그런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괜찮다는 환상을 품는 능력이 있다.
34p 지구 멸망 이후의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끊임없이 카펫의 먼지를 빨아들이면서 돌아다니는 자율주행 로봇 청소기 같은 거 말이야.
45p 완전히 돌았거나 잠시 돌아서 그 주제를 꺼냈건, 둘 중 하나로 간주하는 것이다.
74p 상당수의 부자는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독하게 혐오한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97p 모든 지옥은 개개인에 맞춰 섬세하게 세공되기 마련이며, 날리니로서는 그가 어떤 부류의 지옥에 사는지 추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10p 밥은 선주민 중심주의 정당 내부에서 이민자의 상징이 되겠다고 자원한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상당한 수익성을 자랑하는 직위였다.
185p 인구의 90퍼센트가량을 차지하는 나머지 집단과 연대하거나 외연을 확장하는 대신, 인민당 당원들은 끊임없이 내부를 비판하며 하부조직의 순수성을 강화하는 일에 매진했다.
238p ‘반대파 섬멸자’중 상당수는 그저 자신들의 충동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방식으로 분출하는 사디스트에 지나지 않는다.
243p “아니, 저들은 단순히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냐.” 드웨인이 말했다. “자기네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거야. 이건 상당히 다른 문제라고.”
248p ‘기회주의적 과잉 보상자’들은 외부에 집단의 다양성을 선전하는 역할이자, 그와 같은 부류를 더 많이 끌어들이는 모집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 혹한 이들은 결국 배신당할 수 밖에 없다. ‘기회주의적 과잉 보상자’들은 문을 열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을 지키기 위해서 있는 거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73p “실패한 사람들이 아니야. 실패하도록 내몰린 사람들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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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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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존슨 지음/ 폴라북스(펴냄) 단순 미스터리라기보다 “현실 아래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구조와 인간 심리”를 건드리는 제목 자체가 굉장히 상징적이다. 과연 무엇이 보이지 않는가?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 소설의 첫 문장 ) 작가는 우주를 동경의 공간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사회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해부하기 위한 거대한 실험실처럼 사용한다. 작품은 목성 탐사선 SS 딜레이니 호의 비극에서 출발한다. 냉동 수면 상태의 우주선 참사, 그리고 3년 후 이어지는 조사와 탐색. 2장에서 갑자기 시점이 전환되며 사건 파일과 보고서가 퍼즐처럼 끼어드는 순간, 이 소설이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독자는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단서들을 조립하며 세계의 실체를 추적하게 된다. 등장인물 역시 흥미롭다. 딜레이니 호의 행성지질학을 공부한 응용사회학자 날리니 잭슨, 천체지질학자 드웨인 커즈웰 등 과학자들이 중심에 서 있지만, 이 작품은 과학기술 자체보다 인간 집단과 심리를 더 깊이 파고든다. 우주란 건 사실 천상의 거대한 공동묘지인 거지 라는 문장은 이 소설 전체의 정서를 압축하는 표현처럼 느껴졌다. 우주는 미지의 낭만이 아니라, 인간 문명의 폐기물들 그리고 욕망이 혼재하는 장소로 묘사된다. 심지어 우주선 안에서도 그러하다. 이후 도착하게 되는 뉴에어로크는 이 작품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이 공간이 주는 상징성은 뭘까? 노숙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거주민들이 “약속의 땅”이라 부르는 도시. 겉으로는 완벽한 공동체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지나치게 정돈된 느낌, 비현실적이다.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소설에 언급되는 포템킨 빌리지였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며진 가짜 마을, 정치적 속임수의 상징. 뉴에어로크 역시 현실의 불편한 요소들을 제거해 만든 거대한 쇼윈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 #트루먼쇼 가 떠오르는 소설이라고 했나 보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탐사선 인물들이 이 세계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다. 작가는 이를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애도 단계 모델 ( 소설 챕터에 번호를 붙여서 1부정, 2분노, 3협상, 4우울, 5수용 ) 이런 식으로 서술하는데 이 부분에서 와! 이 작가!!! 천재인가! 거대한 SF 사건을 심리학적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이 놀랍다. 이 세계는 단순히 외계 도시가 아니다. 외부인을 천천히 흡수하고, 기존 가치관을 무력화하며,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다. 읽다 보면 이 소설이 왜 “SF 판 『트루먼 쇼』”라고 언급되는지 이해된다. 현실과 연출, 진실과 조작의 경계가 계속 흔들린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무서운 건, 황당한 상황들이 실제 현실을 너무 닮아 있다는 점이다. 인종, 계급, 권력, 정치, 집단 심리. 매트 존슨은 우주라는 무대를 빌려 현대 미국 사회의 균열을 풍자한다. 특히 존슨 특유의 블랙코미디는 강렬하다. 웃긴데 불편하고, 매 페이지가 장난 같은데 가만 생각해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는 그의 전작들에서도 이어지는 특징이다. 그는 흑인 정체성, 사회적 위선, 미국 문화의 균열을 유머와 불안 속에 섞어냈다. 이 소설은 사회 풍자, 심리소설, 미스터리, 블랙코미디가 뒤섞인 형태다. 하나의 장르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복잡한 미국 사회의 현재 모습을 상징한다. 누가 보이지 않는 존재 취급을 당하는가? 사회는 무엇을 외면하는가? 우리는 어떤 진실을 못 본 척하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제목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란 단지 초자연적 존재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인간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워온 구조와 폭력,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게 된 현실 자체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주라는 거리감을 통해 오히려 현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간만에 만난 “SF다운 SF”였다. 단순한 우주 모험이 아니라, 사회와 인간 존재 자체를 질문하는 철학적 SF. 사회 이슈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해학과 풍자로 세태를 비트는 작품. 무엇보다 우주라는 거리감을 통해 인간 사회를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현대 SF가 여전히 왜 중요한 장르인지 다시 증명해내고 말았다!!! 책 마지막 장면을 보면 왜 제목이 보이지 않는 것들인지! 무엇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알게 된다. 덧: 덮고 나니 표지가 더욱 눈에 띈다. 표지화 제목 찾아보니 “Brezel im Weltraum”은 독일어로 “우주 속의 프레첼”이라는 뜻이다. 우주라는 거대한 SF 적 배경 속에 너무나 일상적인 프레첼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소설의 분위기를 압축한다. 거대한 우주 서사 속에서도 인간은 결국 익숙한 사회와 욕망, 우스꽝스러운 일상을 반복한다는 것. #보이지않는것들 #매트존슨 #폴라북스 #SF소설 #철학SF #사회풍자SF #디스토피아소설 #블랙코미디 #트루먼쇼같은소설 #미국사회풍자 #우주S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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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규칙이 된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외면되었다는 고백에 가깝다. 인간은 진실을 몰라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지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침묵한다. 그리고 어떤 사회는 정의보다 그런 침묵 위에서 훨씬 안정적으로 굴러간다. 흥미로운 점은 그 침묵이 점차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으로 굳어진다는 데 있다. 반복적으로 외면된 진실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 바로 그 공백이 공동체의 질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서로가 서로의 침묵을 확인해주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충분히 유지된다. 어떤 침묵은 총칼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그런 침묵은 눈에 잘 띄지 않기에 더욱 견고하고, 오래 지속되기에 더욱 위험하다. 인간은 언제나 불편한 진실보다 견딜 수 있는 거짓을 사랑해왔다. 진실을 직면하는 순간 지금의 삶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입을 다문 채 익숙한 하루를 반복한다. 자유보다 안락을, 질문보다 질서를 선택한다. 인간은 폭력적인 억압에만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적당한 안전과 익숙한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가두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견고한 감옥은 종종 스스로 납득해버린 세계 안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통제라는 것이 반드시 공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안정된 일상을 얻는 대신, 점차 자기 안의 의심을 포기한다. 그렇게 길들여진 삶은 언젠가 스스로를 보호하기보다 체제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인간은 억압받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질서를 유지하는 공범이 된다. 이 작품은 이러한 공포를 무겁고 비극적으로만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저자는 블랙코미디 특유의 냉소와 유머를 통해 인간 사회의 우스꽝스러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우스운데 웃을 수만은 없는 기분. 그 웃음에는 이상하리만큼 현실적인 질감이 묻어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부조리를 비웃으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불합리하다고 말하면서도 익숙해지고, 잘못되었다고 느끼면서도 결국 순응한다. 그런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서늘하다. 그래서 이 소설의 블랙코미디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확대경처럼 기능한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마다 문득 깨닫게 된다. 지금 웃음을 자아내는 대상이 결국 우리 자신의 초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보지 않기로 결심하며 살아가는가. 어떤 사회는 진실을 외면하는 대가로 유지된다.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모른 척하며, 누군가는 그것을 언급하는 사람을 불온한 존재로 취급한다. 그렇게 오래 지속된 침묵은 마침내 질서가 되고 문화가 되며, 결국 하나의 세계를 완성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들이 아니다. 진짜 공포는 이미 모두가 그것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의 평온을 잃지 않기 위해 침묵하기로 합의해버린 인간들에게 있다. 지금 살아가는 세계에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진 않을까. 지금 누리고 있는 평온 역시 누군가의 침묵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닐까. 침묵은 언제나 비겁함의 형태로만 남지 않는다. 때로는 성숙함과 현실 감각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회 속에 스며든다. 그래서 더 쉽게 의심받지 않고, 더 오래 지속된다. 진실보다 안락한 침묵이 더 오래 살아남는 사회를 낯설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 조지 오웰식 디스토피아와 커트 보니것 특유의 블랙코미디를 사랑하는 SF 독자, 인간은 왜 스스로 체제에 순응하게 되는지 그 심리를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이 책은 단순히 기괴한 우주 도시를 보여주는 소설이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끝내 입 밖에 내지 않는 것들,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조용히 묻어두었던 감각들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이야기이다. 익숙한 세계를 의심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설명되지 않는 불안이 왜 오래 마음속에 남아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침묵은 무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침묵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매트 존슨은 웃음과 불안을 뒤섞은 방식으로 독자에게 체험하게 만든다. ✏️도서출판 현대문학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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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44th #서평단 #보이지않는것들 #매트존슨 #현대문학 🍬352번째 도서제공 서평단 모집으로 현대문학 출판사로부터 @hdmhbook 도서를 제공받아 서평작성하였습니다 🍀나의 의견 𝕞𝕪 𝕠𝕡𝕚𝕟𝕚𝕠𝕟 날리니 잭슨에게 주어진 것은 목성 궤도로 최초의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역사적인 임무였다 밥 일당은 다수를 차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새롭고 자의적인 규칙을 창조할 권한을 지니게 된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도시 하나가 이 모든 것이 목성의 위성 에우로파에 있는 유리 돔 안에 존재했다 딜레이니호의 승무원들은 화면에 떠오른 다른 세계,거품 속의 세계를 그대로 들여다봤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더니, 그들 또한 그 안에 있었다 뉴로어노크에서의 진실을 외면한 사회상의 비꼼을 알아채기가 어렵지 않다 블랙 코미디로 전달되는 사회와 정치의 불평등과 분열을 닮은 그 곳에 웃다가고 이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우주에서의 색다른 SF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에 담긴 블랙코미디를 좋아하시는 분에게 취향저격 소설 💬 가능한 대재앙의 스펙트럼이 너무 현란해서 눈이 아릴 정도였다. 그러나 인류는 그런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괜찮다는 환상을 품는 능력이 있다 💬 드웨인은 절대 정당한 분노를 삭이지 않았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카타르시스를 위해 연소시켜야만 하는 부류였다는 뜻이다 💬 문제란 기회의 다른 이름일 뿐이야. 💬 차라리 자신을 책망하는 편이 훨씬 쉬웠다. 💬 날리니 쪽은 우울을 하나의 독립적인 단계로서 겪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다른 모든 단계를 하나로 엮어주는 결합 조직의 근섬유처럼 경험했다 💬 지금은 이상주의와 석회화된 희망에 매달려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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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을 본 딴 우주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자. 각종 문화생활과 편의시설이 보장된 그곳의 시민들은 기본적으로 주거지와 식량을 제공받는다. 그런데 심지어 직장까지 제공한다면? 조금 구미가 당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날리니는 NASAx라는 가상의 항공우주국 소속 과학자다. 보통 SF 소설 속 주인공이라 하면 물리학이나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태반일 텐데 그녀는 드물게 사회학자로서의 토대를 밟은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그녀가 왜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설계됐는지 톡톡히 보여준다. 이 책은 SF 장르의 탈을 쓴 사회 풍자극이다. 과학기술보다는 인간 군상과 부조리에 초점을 둔 소설이며, 탐사 도중 발견한 뉴로어노크라는 유리 돔 형태의 도시에 빨려 들어간 과학자들이 그곳의 시민이 되어 살아가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사회학자답게 주변인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한다.
밥도 주고, 집도 주고, 직장도 주는 등 겉으로만 봤을 땐 유토피아가 따로 없다. 그런데 사실 뉴로어노크의 실상은 처음부터 다 까발려진다. 만약 이런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는 구조였으면, 아마 분위기가 더 암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초반에 이 도시의 부조리함을 공개함으로써 블랙 코미디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독자들로 하여금 날리니와 똑같은 '관찰자 역할'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읽으면서 누군가의 인생 시뮬레이션을 엿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원래라면 감정 소모를 했을 구간을 현실에 대입해 보거나 냉소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직설적인 문체에 냉소적인 유머를 곁들여 지루할 틈이 없다. 일반적인 SF 장르 속 복잡하고 난해하게 느낄 수도 있는 과학 이론의 비중을 줄이고, 인간 탐구의 목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SF 입문자나 인문학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도서제공 #서평단 #보이지않는것들 #매트존슨 #폴라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