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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푸르스트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먹으면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게 됩니다. 미각이 오래된 기억을 소환하는 촉매제가 되는 셈입니다. 제 경우에는 폴 모리아 악당의 <Song for Anna>를 들으면 언제나 대학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니 청각이 기억을 소환하는 촉매제임 셈입니다. <새의 선물>은 서른여덟의 중년 여성, 진희는 연인과 점심을 먹다가 쥐와 눈이 마주치자 열두살 적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나옵니다. 그러니까 시각이 기억을 소환하는 촉매제입니다.
쥐와 눈이 마주치면서 ‘혐오감과 증오,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복의 대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곤 하는’ 오랜 습관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20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12쪽)”라고 적었습니다. 두 개의 나를 병립시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 경우는 하나의 내가 내 삶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한데는 일찍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적에 친가와 외가를 오가면서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만, 어린 마음에도 눈치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 역시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눈치가 빨라지고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대를 곤경에 빠트리기를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면서 열두살짜리가 그렇게 심한 짓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건, 특히 이승복 소년이 집에 찾아온 공비(共匪)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죽음을 맞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1968년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후반에 등장하는 아폴로 11호가 달착륙에 성공한 것은 1969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도라 도라 도라>가 개봉한 것은 1970년이었고 지방 상영은 그보다 더 늦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산성이 있고 읍내에서도 조금 떨어진 곳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읍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읍성으로는 고창읍성, 해미읍성 그리고 낙안읍성이 있는데 성안에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은 낙안읍성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고향이 고창인 점을 고려해보면 고창읍성일 수도 있겠습니다.
1969년에 화자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아마도 은희경 작가가 그해 초등학교 5학년이었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새의 선물>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해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건 사고, 혹은 영화, 노래, 심지어는 국민교육헌장에 이르기까지 제가 겪었던 일들이 고스라니 떠오르게 되니 이야기 속에 쉽게 빠져 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잊고 살던 아버지가 찾아와 주인공을 데리고 가는데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작가는 후기에서 “세상이 내게 훨씬 단순하고 그리고 너그러웠다면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인생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390쪽)”라고 적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을 살아내면서 세상의 복잡한 내막을 소상히 적어낸 것을 보면 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야기도 만만치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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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장편소설을 처음 읽었다고 하면 나보다 앞서 80편의 리뷰를 쓰신 분들이 그동안 뭐했냐,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동안은 소설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아예 단편을 읽던지 아니면 삼국지나 태백산맥처럼 아주 긴 책을 읽던지 그랬던 것 같다. 주변에 은희경씨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종종 대화에서 소외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책은 아주 재밌고 유쾌하게 읽었다. 등장 인물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꽤 많은 분량의 책을 일필휘지로 쓴 것 같은 작가의 통 큰 배포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도 재미 있었고, 살아 있는 듯한 등장 인물들도 정말 이웃 사촌들 같아 정겨웠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1. 정말 저 나이에 저렇게 조숙한 아이가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실 나도 어릴 적 쓰던 일기장을 아직도 가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참 조숙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내 또래 애들을 좀 우습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면 애는 애다. 그렇게 따진다면 이 꼬마는 너무나 조숙하고 너무나 영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랑 질녀가 바뀐 것처럼... 물론 그렇다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저 나이게 나는 뭐 했나, 뭐 그런 생각을 문득 문득 했다는 거다. 2. 시대와 역사는 없는가? 사실 어쩌면 이것도 강박관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를 이야기하고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는거... 어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대나 정치를 논한다기보다는 하루하루 일상을 사는 것일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나 역시... 지독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대학생인 삼촌이나 그의 친구가 보여주는 모습이라는지... 이모나 그 주변 사람들의 모습들이... 어찌 보면 참 현실적이고 공감이 가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참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 말로 외딴 섬에 사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세상과 동떨어져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서둘러 끝맺는 것같은 결론이라든지... 공장에 불이 나는 설정 등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뭐랄까? 1000미터를 열심히 달려왔는데 골인 지점 바로 앞에서 다리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랄까? 그래서 정말 유쾌하고 즐겁고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앞으로는 은희경의 장편소설들도 탐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작가들이 많다는 건... 독자로서는 아주 큰 행운이다. 이것이... 백수가 되고도 내가 그나마 삶을 즐겁게 사는 이유이다. ^^ |
| 스물두살이었나...이제는 그때가 언제였나조차도 가물가물하지만 이모와 눈보라치는 밤길을 가는 장면은 늘 겨울, 눈오는 날에는 떠오릅니다. 내용조차도 희미하고 제목도 여태껏 "작은 새"로만 알고있다가 이제 칠팔년만에 다시 이 책을 읽고싶고 내 책장에 온전한 내 책으로 꽂아두고싶어서 사려고 합니다. 늘 책을 사면 읽고서 친구에게 선물삼아 주곤했는데 "새의 선물"은 살면서 가끔씩 생각이나서 뒤늦은 책욕심이 생겼습니다. 다시 읽고 다시 가슴에 담겠습니다. 그리고 또 몇년이 지난후에 읽겠습니다. 세 살짜리 아들이 사춘기가 될쯤엔 읽어보라고 줘야겠습니다. 설명할순 없겠지만 똑같이 느끼고 싶습니다. |
| 예전에 <상속>으로 단번에 은희경에 반했었다. 누구나 책을 읽을 때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감흥을 느끼는 것도 다른 것 같다. 어떤 작품으로 제일 먼저 그 작가를 만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상속>은 그닥 큰 특징이 있는 작품도 아니었는데, 난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느꼈었다. 보통 애증으로 점철되기 쉬운 부모님에 대한 얘기가 무척 잔잔해서 맘에 들었다. 부모님에 대한 얘기를 그렇게 건조한 문체로 한 것도 좋았다. <새의 선물>은 일단 재밌었다. 가족 이야기, 주변 인물들 이야기, 사랑 이야기 등등, 한 시대를 여러 캐릭터를 통해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소설적 기법이 좀 식상했다고나 할까... 이런 류의 소설 기법은 기존에 많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처음에 읽을 때의 느낌이 잘 만들어진 파워포인트의 틀에 이야기만 갖다 잘 배열해 놓은 듯 했다. 예를 들면 <마당 깊은 집>의 주인공이 어린 남자아이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라는 것이 다른 점이랄까. 하지만 은희경의 대단한 점은 작품 중간 이후부터였다. 기존의 틀을 따라오다가 중간 이후부터는 나름의 독자노선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한 이야기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의 색을 나타냈다. 이 작품에는 조숙한 여자아이의 눈에 비친 인간군상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그 이면의 이야기들이 재밌고 즐겁게 펼쳐져 있다. 책이 두꺼웠음에도 지루한 줄 모르고 단숨에 읽었다. 재 밌 었 다... 비록 틀은 빌렸을지 모르지만 그 내용은 은희경의 독특한 맛이었다. 이 작품은 은희경이 남들과 똑같은 모양으로 잘 빚은 떡이다. 하지만 상큼한 맛으로 출출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떡을 빚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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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두께에도 불구하고 여름방학때 하루만에 쭉 읽어내려간 책입니다. 우선은 너무나 재미있었거든요. yes24의 독자게시판에서 종종 추천되고 하는 책이기에 골라보았는데 읽어보고 나니 역시 추천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진희'라는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 해야겠네요.작가의 심리묘사가 정말로 집요합니다. 몇몇 대목들은 마치 내 맘속에 들어왔다 간 것같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보편적으로 다들 수긍하고있던 생각들이었지만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내보지는 않았던 생각들을 끄집어낸 작가는 특유의 냉소한 시각으로 그 생각들을 글로 표현합니다.
열두살때 세상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 알았기에 성장을 멈췄노라고 하는 주인공 소녀, 광진테라 아줌마, 장군이 엄마, 이모, 외할머니, 순정한 깡패하며, 진희가 이모를 두고 경쟁했던 허석,, 등장인물들마다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을 보는 재미또한 쏠쏠합니다. 누가 나를 쳐다보면 우선 두개의 나로 분리시킨다는 생각을 보면서 너무 읽찍 많은 것을 알아버린 12살 여자아이의 이야기라 가끔 과장되지 않았나싶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더군요. ^^
이 책 읽으면서 어린 아이라도 무시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머릿 속엔 얼마나 복잡한 생각들이 담겨있는지요,,, [인상깊은구절]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손해이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삶을 알게된만큼 삶에서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 -감정이 균형을 유지해야만 타인에게 굴복당하지 않는다. -대체 우리들이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라는 존재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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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쏟아졌으면 좋겠다.
아니 비가 내려야 할 것 같다.
96년 여름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날카롭지만 여름의 고온다습한 날씨에 지친 내게 소나기 같은 시원한 상쾌함을 안겨줬던 소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다시 읽었다.
예전만큼 상쾌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 맘에 잔잔한 파도가 인다.
마음을 두드리는 글을 읽을땐 한장한장 책 장이 넘어가는게 안타깝기만 하다.
내가 읽은 부분이 늘어나고 앞으로 읽을 부분이 줄어드는 것 자체가 얼마나 서운한지...
그래도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고 잠시 멍~하니 앉아서 깊은 한숨을 한번 들이쉬고 일어서면 잠시나마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수십년 째 자리에 누워 지내는 귀가 어두운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는 옆집 아줌마,
변변한 놀이터가 없어 우리 빌라 주차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동네 꼬마들,
내 방의 하얀 벽지,
벽에 걸린 나무테 벽시계, 그 똑딱거림,
세이코 수미의 '유칼리 나무'...
그냥 지나쳤던 많은 일들이 사뭇 다른 느낌으로 선명하게 와닿는데 어쩌면 나 자신이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보이지 않게 마음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감동을 연장하기 위해서...
마음에 파도가 일었음을 증명하고 오래 느끼기 위해서.
[인상깊은구절]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 온 사람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자기 삶을 바라 볼수 있는 거리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어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p.224 고달픈 삶을 벗어난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확신도 없지만 더 이상 지금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p.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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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진희는 성숙하고 이지적인 아이다. 스무 살이 넘은 제 이모 영옥이보다도 먼저 삶에 대한 통찰력과 삶의 이면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릴 줄 아는 이 이지적인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는데, 아마 누구라도 새의 선물를 읽게 된다면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다운 발랄함과 순수함, 사랑스러움이 아닌 이지적이고 위악스럽기 까지 한 이 아이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미쳐버린 엄마는 어린 진희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가 자살을 해버리고, 아빠는 잠적해버리고, 결국 진희는 외할머니 손에 맡겨져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삶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일찍 깨달아버린 진희는 자신이 삶에 대해 집착하면 할 수록 자신은 자신이 가진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열두 살의 통찰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런 부분이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진희라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잡은 건 아주 매력적이지만, 진희를 너무 성숙한 어른처럼 그려놓았다는 게 흠이라면 조금의 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어른 같은 아이 진희의 눈으로 치밀하게 관찰되는 진희네 동네사람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다. 특히 난 장군이엄마와 장군이 이야기가 나오면 더 흥미진진하게 읽곤 했다. 역시 이야기속에는 얄밉고 멍청한 악역정도는 꼭 등장해줘야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장군이가 똥간에 빠진 이야기다. 장군이 엄마에게 모욕을 당한 복수로 장군이를 똥통에 빠지게 해 장군이 엄마를 곤욕스럽게 할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멍청하고 순진한 장군이가 진희의 계획대로 결국 똥간에 빠지고 장군이 엄마가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을 읽으며 장군이에겐 미안했지만 무척이나 통쾌하고 재미있었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하고는 잽싸게 집어들어 내 것이 된 새의 선물. 동네 도서관에선 찾을 수 없어 궁금하기만 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정말 재밌고, 정말 매력있으며, 정말 잘썼다. 이렇게 좋은 소설을 읽으면 이제는 부럽다는 생각보다 난 이렇게는 못쓸거야 라는 좌절감이 먼저 드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것도 같다. 이렇게 긴 장편소설에 그렇게 많은 등장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도 끊기지 않는 흐름을 이어가는 건 정말 치밀하게 계산하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역시 소설을 쓰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는가. 은희경님의 다른 책 타인에게 말걸기, 태연한 인생도 빨리 다 읽어야 겠다. |
| 일단 글의 서두로 감탄으로 할까한다. 그리고 더불어 앞으로의 가장 선호하는 소설장르분야를 성장소설로써 한동안 그 웅덩이에서 헤어나오질 못할것으로 난 호언장담한다.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읽었던 소설중에 가장 그 잔상이 뚜렷하면서도 희미하게 남은 유일의 책으로 꼽을 것이다. 책을 덮은 이 순간도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환영과 실재를 구분하기 힘들정도다. 세상이 나에게 호전적이지를 않다는것을 깨닫고 12살에서 성숙을 멈추어 버린그녀. 이 책을 비판하는 모든책에서 그러하듯, 그 12살의 숫자에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게 좋을것이다. 다만 아직 세상의 진정한 `먼지`를 겪지 못했을 나이란것만 주시하고 접하는것이 훨씬 나을것이다. 무슨말로써 이 책을 감히 평가하며 전개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내 머릿속에는 내 머리의 용량에 과부하가 걸릴만큼의 회백색의 작품들이 걸려있다. 그 작품들을 일일이 들추며 말할자신은 없다. 그저 봄으로써 도취되어 버릴뿐 무슨 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나만의 소유하고픈 나름의 이기심도 든다. `새의 선물` 지금의 작가 은희경을 있게 해준 작품으로써 모든지 `처음`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때묻지 않은 풋풋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 작품역시 은희경님의 풋풋함과 더불어 그녀의 통찰력을 마음껏 아주 여실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레 드러내어 준다.잠깐 그 느낌을 살펴볼까? 모든말을 제쳐 두고 일단은 `재미있게 읽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가장 손쉽게 얻을수 있는 감정인 재미는 이 소설 곳곳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수 밖에 없게 장치되어 있다. 그 실로 너무나 애틋하지 않을수 없다. 그리고 이제 그 재미를 벗어나서 느낀점이라고는 `차가움`이란것이었다. `12살 진희`의 시각에서만 이 책을 바라본다면 정말이지 차가움을 느낀다. 진희의 시각에서는 이 세상이 온통 짙은 푸른색으로만 도배가 되어 있는듯한 착각이 느껴지기도 한다.(다행이 주변인물들이 이 짙은 차가움에 물을 희석하여 연한 하늘색으로 자주 대체시켜준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어릴적 자주 생각한, `아버지 세대는 모든 사물도 흑백이었을것 같다`라는 느낌도 들게 해 주었다. `광진테라 아주머니`가 버스정류장에서 지나간 버스의 먼지속에서 멍하니 지나간 버스를 바라보는 장면이란~~ 사람이 흥분을 해서 말을 하면 그것이 좋음에서 오는 흥분이든 나쁨에서 오는 흥분이든간에 이성을 누르고 허둥대기 쉽상이다. 지금의 나 역시 일종의 흥분상태라고 표현하고 싶다. 저의 이 벅참에 의한 흥분으로 허둥댐을 이 책을 읽으시고 이미 초월하신분들에게 한 `애교`로써 보여지길 바랄뿐이다.. 잠시 흥분을 가라 앉히자. 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개성이 특출하다. 같은 개성을 가진 인물은 한명도 등장하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 인물 역시 단 한사람 그 인물만을 지칭하지도 않는다. 세상의 풍파를 모든 인물에 담아 표현하는 `새의 선물` 여러분은 이 소설의 어떤 인물에 해당되는지 궁금하시지 않으신지요? 당장 달려가서 이 책을 집고 읽으세요. 귀찮다구요? 자~ 그런분들 따라해보세요. 주먹을 불끈쥔다! 팔을 치켜 든다! 그리고 자기 머리를 세차게 내려친다!! 자 이제 정신이 번쩍 드시면 얼른 뛰어가세요! 후다닥~ 그래요 바로 그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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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이 책은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읽은 소설 책 중에서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아직까지 책 제목의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누구나가 한 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만큼 너무나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책이다.
부모님과 떨어져서 아니 버림받아서 외할머니와 이모와 셋이서 살고 있는 12살의 주인공 강진희! 정말 내가 봐도 어린 나이지만 생각하는 것이 깊은 소녀이다. 어쩌면 자기의 슬픔을 맛보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냉소적으로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두려움이나 슬픔이 다가오기 전에 미리 자기 스스로가 아픔의 근원인 싹을 싹둑 잘라버린다. 그 방법으로는 슬픔을 느끼게 되면 '슬픔을 느끼는 나'와 '슬픔을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켜서 '바라보는 나'는 일부러 '슬픔을 느끼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그 슬픔을 느낀다. 무섭고 두려웠던 존재인 쥐나 벌레들을 대할 때조차도 그 방법은 사용되었다. 조그마한 어린 아이의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내용들은 너무나도 기발하고 때로는 웃음도 피식나온다. 물론 진희네 이모나 장군이 만큼 웃기지는 않다. 진희네 이모와 장군이는 하는 짓이 어설프고 마땅치 않게 느껴지지만 너무나도 천진하고 순수하다는 것은 진희도 인정하는 점이다.
'새의 선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다. 그래서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나는 지루함없이 슬슬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재미난 책이다.^^
소설의 주인공 진희를 바라볼때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사고 방식이라든지 성숙된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운 반면에, 외롭게 자라서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진희를 볼 때면 가슴이 시리기도 했다. 항상 치밀한 계산 속에 모든 일을 생각해야 했던 진희!
역시 진희가 말했던 것처럼 삶은 양면적인가보다. 진희에 대한 나의 생각도 이렇게 양면적인 것처럼... [인상깊은구절] 슬픔. 그렇다. 내 마음속에 들어차고 있는 것은 명백한 슬픔이다. 그러나 나는 자아 속에서 천천히 나를 분리시키고 있다. 나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슬픔을 느끼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극기훈련이 시작된다. '바라보는 나'는 일부러 슬픔을 느끼는 나를 뚫어져라 오랫동안 쳐다본다. 찬물을 조금씩 끼얹다보면 얼마 안 가 물이 차갑다는 걸 모르게 된다. 그러면 양동이째 끼얹어도 차갑지 않다. 슬픔을 느끼자. 그리고 그것을 똑똑히 집요하게 바라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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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새의 선물』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한 신인이었던 그녀에게 작가적 명성을 안겨준 소설이니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선물’인 작품이다. 익히 이름은 들어왔으나 유명세를 타거나 유행의 중심에 있는 것은 뭐든지 일단 관심권 밖에 두는 까칠한 내 성미 탓에 18년 전에 발표된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좀 실망스럽다.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때(아니 어쩌면 지금도) 많은 독자들이 열광했고 평론가들도 상찬했으며 또 몇 해 전에는 개정판까지 펴냈다고 하길래, 나도 이 소설에서 뭔가 건질 ‘선물’이 좀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서사도, 문장도, 구성도, 주제도 어느 하나 내게 ‘선물’이 되기에는 좀 미흡했다. 특히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삶과 사랑에 대한 통찰을 담은 잠언성 문장들은 아무리 조숙하다고는 해도 열두 살짜리 소녀의 머리 속에서 흘러나온 생각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인 것으로 여겨진다. 열두 살짜리 1인칭 화자의 시점이라기보다는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 더 입각해 있는 그런 문장들은 관련된 서사의 의미를 지나치게 깔끔하게 해석하고 정리해 버려서 독자의 상상력에 공명하는 서사의 여운을 박탈하고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신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123쪽) 구국의 영웅이 되는 것과 살인자가 되는 것의 차이는 그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지는가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살인자가 되는 것은 그에게 살인을 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고 배신자가 되는 것 역시 배신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므로. 그 기회를 받아들이느냐 물리치느냐 하는 선택은 스스로가 하는 것이지만 선택의 전 단계에서 어떤 기회를 제공하느냐는 순전히 삶이 하는 일이다. 배신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배신을 하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언제나 삶의 짓인 것이다. (325쪽)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소설의 앞뒤에 붙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스물두 장(章)으로 이루어진 본문과는 시간적으로나 이야기의 성격으로나 너무 단절된 느낌을 주어서 사족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현재 시점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서른 중반의 분방한 불륜녀로 등장하는 화자와 과거 시점인 본문에서 열두 살짜리 조숙한 소녀로 나오는 화자는 동일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너무 느슨하고 또 느닷없어서 독자들의 마음 속에 동일 인물로 떠오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삶과 사랑에 대한 잠언성 문장들에서 느껴지는 시점의 파탄에 논리를 제공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이 아니었나 싶은데, 내가 보기에는 악수(惡手)로 여겨진다. 내 마음에 든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작가가 이 소설의 표제로 삼은 자끄 프레베르의 시였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 자끄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전문 의미심장한 이 짧은 시를 책의 속표지 다음에 친절하게 수록해 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처럼 소설 제목의 의미를 소설의 내용과 관련지어 심각하게 따지는 독자들은 꽤나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거의 400쪽에 육박하는 소설의 본문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새의 선물’이라는 단어는커녕, 그것을 암시하는 에피소드나 실마리가 될만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제목으로 삼은 이 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은 ‘삶’이라는 늙은 앵무새로부터 ‘운명’이라는 해바라기 씨앗을 건네받은 한 소녀가 시골 마을에서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열두살 짜리 어린 소녀가 유년의 한 시절을 보냈던 그곳을 감옥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로부터도 버림받아 어쩔 수 없이 시골 할머니집에 몸을 의탁해야만 했던 소녀의 삶의 조건을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만큼은 어쩌면 감옥에 갇힌 수인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감옥에 갇힌 수인처럼, 어린 소녀는 그 순수한 동심의 시절을 물들이는 천진난만함과 발랄함 대신에 위악과 냉소로 자신을 무장한다. 자신의 취약한 삶의 조건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채택한 이 위악과 냉소는 삶의 온갖 굴곡을 다 겪은 성숙한 어른에게나 어울리는 세련된 정장이나 우아한 드레스와 같은 것이어서 열두 살짜리 어린 소녀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라는 소녀의 당돌한 고백은 그래서 너무 슬프다. 소녀는 삶의 선물을 너무 일찍 받았다. 그리고 뒤늦게 『새의 선물』을 읽은 독자인 나는, 소설 속 화자이자 주인공인 이 어린 소녀가 너무 일찍 받은 선물 탓에,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누리고 싶었던 선물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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