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해외 입양’이 과거의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한국전쟁 이후의 특수한 시대 상황에서 발생했던 일이라고만.... 책은 한 노르웨이 입양모의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두 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한 후, 수십 년이 지나 아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시작하면서 “나는 과연 무엇에 가담했던 것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 저자! 단순히 한 아이를 가족으로 맞이한 것이 아니라, 국제 입양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 참여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는... 이 책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이유는, 입양을 ‘선의’로만 바라보던 기존의 시선을 뒤흔들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흔히 입양을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이 책은 그 이면에서 벌어진 불편한 일들을 이야기해요. 기록 조작, 출신 불명 처리, 부모가 있음에도 고아로 만들어진 아이들. 그리고 그렇게 해외로 보내진 아이들이 평생 안고 살아가는 정체성의 혼란과 상처까지! “아이를 뿌리째 뽑아 옮겨 심는 일”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오래 남네요. 입양의 본질을 너무도 정확하게 드러내는 문장같아요. 새로운 환경에서 자란다는 것이 단순한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의 삶과 관계, 정체성을 잃는 과정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생각하게 되네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질문은 “왜 아이를 데려오는 대신, 그 부모를 돕지 않았을까?”에요. 이 질문을 마주하면서, 입양을 개인의 선택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확장해서 생각하게 되더군요. 한 아이가 해외로 보내지기까지, 그 배경에는 빈곤, 사회적 낙인, 제도의 부재가 있기 때문이죠. 책을 읽으며 입양을 바라보는 기준이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결과’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과정’과 ‘구조’를 보게 되었어요. 한 아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선택이 강요되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남기는지까지! 이 책은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문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네요. 해외 입양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해외로 보내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잖아요. 그들에게 이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이야기일테니! 이미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넘겼지만, “우리는 정말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해왔는가?”그리고 “선의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지만, 적어도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입양이란 주제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봐야겠어요. 추천!!!
|
|
#서평단 #너의한국엄마에게 #크리스틴몰비크보튼마르크 #푸른숲 #국제입양 예전 살던 동네에 한 기관이 있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그곳을 지나게 되면 안내 방송에 꼭 그곳에 대한 멘트가 나왔었다. 아동과 복지를 대대적으로 내건 이름에 당연히 좋은 일을 하는 곳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 동네를 떠난 지 오래되었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그곳은 내게 이전과 같은 인식의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 수년 전, 우연한 기회로 해외입양아들의 이야기를 연달아 접하게 되었다. 미국과 프랑스로 각각 입양된 쌍둥이 자매가 SNS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만나는 이야기와 고아가 아니었음에도 서류를 조작당해 해외로 강제 입양된 피해자들의 이야기, 그 와중에 씻을 수 없는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의 이야기 등등이다. 어쩌다 보니 이 주제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것을 아는 상태로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102p 메이드 인 코리아 올림픽을 앞둔 10여 년 동안 한국은 매년 4천 명에서 8천 명 사이의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도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팔아치웠다. 그 배경에 앞서 언급한 기관이 있다. 67p 동방에서 온 씨앗 中 홀트 부부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국제 입양을 '잉태'한 예언적 인물로 칭송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계획 속에서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굳게 믿었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보내셨다고 확신했다. 작가는 입양아를 둔 엄마이자 사회학자이다. 본인의 아이를 입양한 경험과 양육하는 과정 등을 담은 에세이 형식의 글과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본 입양 산업의 구조와 역사, 실상을 설명하는 글이 혼재되어 있다. 얼핏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전 정보가 전혀 없다고 해도 술술 잘 읽히도록 쉽게 쓰인 책이다. 18~19p 이게 전부일까? 너는 소리 없는 이주를 겪었다. 즉 한국 입양인 디아스포라에 속하는 셈이다. "이게 전부인가요?" 하고 네가 묻는다. 나는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을 떠올리며 키보드 앞에 앉는다. 네 아버지와 내가 너의 부모가 되기 전의 시간을 더듬어 가며 이야기를 펼쳐 나가다 보면, 한국이 지난 70년 동안 자국 아이 25만 명을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아이들은 그렇게 유럽과 서구 여러 나라에 흩어졌다. 그리고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갔다. 40~41p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이들 우리는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한 아이를 가족으로 맏아들이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태어난 나라의 과거와 역사까지 함께 껴안는 것임을.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사실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과제라고 설명한다. 9~10p 한국어판 서문 저는 오랫동안 저 역시 그 일부였던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입양은 무엇보다 선한 일이며 필요한 일이었음을, 아이들에게는 부모를 그리고 부모에게는 아이를 안겨주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초국가적 입양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있었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했습니다. 나의 바람, 아이를 갖고자 했던 그 간절한 마음 때문에 입양의 결과와 그 영향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왜 저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어떻게 보호받는지 질문하지 않았을까요? 왜 저는 그 어머니들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까요? 마치 다른 지역의 어머니들은 서구에 사는 우리보다 아이를 덜 사랑하거나 더 쉽게 아이를 놓아줄 수 있다고 믿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13p 한국어판 서문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들을 개인이 홀로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 질문들은 사회로서의 우리, 제도로서의 우리, 그리고 국경과 경계를 넘어 이어진 공동체로서의 우리 모두가 함께 짋어져야할 과제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소롭게도 가슴이 자주 아팠다. 세상이 휘두른 주먹 아래서 고스란히 상처받은 입양 당사자와 가족들을 생각하니 그랬다. 국가 경계를 넘나드는 입양으로 인한 인종차별 문제들도 남일 같지 않았다.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들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며 앞으로는 남겨진 과제들을 같이 고민하며 나아가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
|
이 책은 국가폭력을 다룬 책들이 대개 그러하듯 누구에게 책임을 묻거나 잘못을 따지기 위한 폭로가 아니다. 이 책은 의도적으로 삭제되고 조작되었으며 오류가 많았던 '생모'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현욱이가 어느 노르웨이 부부의 아들이 되었던 구조적 설명을 시도한다. 국제 입양이 어떻게 국가와 조직의 경계를 넘나들며 형성되고 정당화되어 왔을까. 어느 경험들은 부각되고 어느 경험들은 의도적으로 침묵 당했을까. 이차 불임으로 고통을 받던 한 노르웨이 부부는 임신을 시도한 지 거의 3년이 지나도 성과가 없자 입양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노르웨이 부부에게 입양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불임 클리닉에서 시험관 시술을 받았고, 몇 해가 흐른 뒤 마침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진단서를 받게 되었다. 이 진단서와 함께 여러 서류들을 준비했고 입양에 필요한 행정 절차들을 밟아 나간다. 부부는 러시아 출생의 아이를 입양할 뻔도 했지만 실패했다. 이런저런 일 끝에 부부는 두 아이를 각각 입양하게 된다. 첫 번째는 남자아이였다. 부부의 아들이 된 박현욱, 이 아기의 생모는 한국의 남부 지방 중산층 가정의 세 딸 중 하나로 태어난, 충동적으로 맺은 육체적 관계로 생긴 아이를 입양 보낸 어느 열여섯 소녀이다. 이 책의 아주 초반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쓴 것은 해외 입양을 하는 가정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느 한 가족의 '서사'라고 하자. 그래, 그렇다. 노르웨이 부부의 서사는 인간적으로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열여섯 살 먹은 생모의 정보는 너무 적다. 우리는 정보는 부족하고 편견은 가득하다. 무책임한 미혼모는 아이를 입양 보낸다는 서류에 별 고민 없이 사인을 했을까? 당시 한국 보다 훨씬 잘 사는 선진국에 입양을 보냈으니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까? ❝ 여러 한국 여성들은 1980~1990년대에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 출산 관리를 받으려면 먼저 입양 서류에 서명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출산 직후에 홀트아동복지회가 아이를 빼앗아 갔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회 측은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니며, 다한 한국의 사회 문화적 환경이 달랐다면 많은 여성이 아이를 직접 키우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전통과 수치심이었다. 전쟁도. 빈곤도, 죽은 부모 때문도 아니었다. ❞ 두 한국 아이의 엄마, 즉 이 책의 지은이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는 한국에서 1998년과 2002년에 각각 아들 안데르스와 딸 셀마를 입양했다. 저자는 입양한 아들 현욱이의 생모를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초국가적 입양 산업의 실태를 알게 된다. 먼저 용어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국제 입양', '해외 입양', '초국가적 입양'이라는 종종 혼용되지만, 각각 다른 뉘앙스와 맥락적 함의를 가진다. '국제 입양'은 법적 사회적 요소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두 나라 이상이 관여하는 입양 절차를 가리키고, '해외 입양'은 '국제 입양'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는 비공식적 표현이다. 마지막 '초국가적 입양'은 문화적-사회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며, 출생국과 수용국 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드러낸다. 이 책은 바로 이 초국가적 입양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국제 입양은 어떻게 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을 형성해 왔을까. 이 책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회의 문제를 폭로하는 책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사적인 것이 아니다. 입양인들, 시민사회, 대한민국 정부의 입양의 역사를 살펴나가면서 알게 된 거북한 진실, 이 거북한 진실을 구성하는 한 조각이 된 자기의 가족의 삶과 이를 둘러싼 거대한 구조를 이해하려는 이야기다. 한국은 해외 입양을 제도화했고, 오늘날 국제 입양의 전형을 만들었다. 한국은 지난 70년 동안 25만 명의 아이를 지구 곳곳으로 보냈다. 국제 입양의 발전과 제도화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한 것은 홀트아동복지회다. 미혼모를 위한 복지제도와 지원 체계가 거의 전무했던 한국 정부는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미혼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해외 입양이 더 바람직하는 인식을 만들어서 전파했다. 가부장적 질서를 그르친 미혼모와 형편이 어려운 부모는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대안적 보호 체계를 마련할 책임을 방기했고, 그렇게 아이들은 해외 곳곳으로 보내어졌다. 한국 입양인 디아스포라에 속하는 아들의 삶은 어땠을까.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초국가적 입양 시스템보다는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한국 방송사들이 이 주제는 꽤 좋아했으니 말이다. 입양인과 원가족의 재회를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며 무지한 우리들은 눈물을 흘린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사회적 포르노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자 다시 한국 입양 기관들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입양 기관들은 군사 정권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사회에 짐이 된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입양을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짐에는 미혼모의 자녀들도 포함되었다. 한국 아이들은 고아 혹은 길에서 발견된 유기 아동으로 등록되어 있곤 했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가족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경우였다고 한다. 당시 제도는 입양 기관이 서류를 조작하고 아무런 심사 없이 아이들을 내보내는 일을 가능케 했다. 입양 절차 중 아이가 아플 경우 기관은 그 사실을 숨기려 했고, 일부 아이들은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죽기도 했다. 무사히 해외에 도착한 아이들의 삶은 해피엔딩이었을까? 우리는 미혼모들의 사정은 모르지만 입양 아동들의 삶에 대해서는 안다. 이 아이들의 삶, 미세 공격과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로 얼룩진 이 아이들의 삶을, 한국 시청자들에게 불편하지 않게 각색된 TV 프로그램에는 많이 노출되었으니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폭로하는 글이 아니다. '사회로서의 우리, 제도로서의 우리, 그리고 국경과 경계를 넘어 이어진 공동체로서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과제'를 함께 감당하자는 글이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사적일 수가 있을까. 이 세상에 과연 사적인 삶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우리의 대화가 어떻게 사적인 영역에만 머무를 수 있을까. 사적인 삶이란 것이 없는데 말이다. 우리는 모두가 고통과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우리는 보다 공적인 자리에 나와서 이 모든 이야기를, 불편한 이야기를, 거북한 이야기를, 슬픈 이야기를, 언어의 너머에 존재하는 그 고통들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이해하고 화해로 나아가야 한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
|
"이 글은 푸른숲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2023년 출산율이 0.7명대로 떨어지며 '국가 소멸 위기'라 불릴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출산율이 이렇게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고 유지되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이 있으니 바로 '최대 아기 수출국'이라는 오명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에도 해외로 가장 많이 입양을 보낸 국가 3번째에 오르며 여전히 불명예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6·25전쟁 이후인 1953년 이래 약 20만 명의 한국 아이가 해외로 보내졌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세계 최대의 디아스포라를 가지고 있다"라며 우리나라의 해외입양 실태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막상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공공연하게 진행되었던 아동을 해외로 사고팔던 그 '선의'라는 이름의 행위에 대해서 "나도 모르게 아이를 사고파는 일에 가담했다"라며 자신과 아이, 그리고 입양을 둘러싼 국가와 사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났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이다. 사회학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였던 저자는 바라고 기다렸던 둘째를 얻지 못하자, 해외입양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입양으로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기까지 바람과 다르게 지난하게 기다렸던 시간을 뒤로 새롭게 그들 곁으로 사랑스럽게 다가온 아들 안데르스와 이어 같은 한국에서 온 딸 셀마까지 입양하며 온전한 가족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생각과 다르게 '다르게' 생긴 외모로 인해 노르웨이에서도 한국에서도 속하지 못한 채 차별을 받아야 했던 아이를 걱정하며 아이의 뿌리, 그리고 아이를 데려오게 된 '해외 입양 산업'의 민낯을 알게 되며 그동안 선의와 사랑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뿌리를 찾아가고자 하는 아들과 함께 조적과 오류로 덧칠된 '초국가적 입양 산업'에 대하여 파헤치고 고백하는 글을 담아 이 책을 썼다. 우리나라에서 '입양'을 보는 시선은 썩 곱지 않다. 공개입양을 꺼리는 이들이 대부분인데다가, 입양을 했다 하더라도 특정 성별을 선호한다거나 입양 이후에 다시 파양을 하는 등 '순혈 중심의 단일민족국가'라는 고정관념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를 가족으로 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지속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발생하는 소외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해외 입양으로 방향이 틀어지게 됐다. 전쟁 이후 먹고살기 힘들어서, 혹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미혼모라는 낙인으로 인해 갓 태어난 아이들을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국가에 수출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발걸음은 20만 명이라는 아이들을 한국을 벗어난 해외로 보내게 했다. 어렸을 때 〈수잔브링크의 아리랑〉이라는 영화를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었다. "어떻게 아이를 다른 곳에 보낼 수 있지?"라는 마음과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지만 특수한 케이스의 희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많은 시간이 지나고 출생률이 떨어져 국가 소멸 위기에 처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는 현실 앞에서 또 알음알음 들려오는 부모님 또래의 해외입양 이야기 앞에서 내가 우리와는 먼 이야기라고 단정 지었던 해외 입양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원하는 가족에게, 가족을 잃은 아이를 보내는 것. 그래서 새롭게 가족이 된 이들이 이전의 힘들었던 시간을 잊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 우리가 흔히 생각해 온 입양이라는 것의 청사진이었다. 막상 열어본 해외 입양의 현실은 아이들을 위한다는 최선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을 사고팔며, 새로운 사업 모델 위에 세워진 하나의 시장 구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자신의 의지에 관계없이, 선택조차 할 수 없이 거래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뿌리를 욺겨야 했던 이들의 아픔은 고스란히 입양아들의 성장통으로 평생을 따라다닐 뿐이었다. 절차는 깔끔하고 문제가 없다는 말만 믿고 아이를 키우며 보냈던 시간들 앞에서 저자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내가 한 이 선택이 최선이었는가?라고 말이다. 원치 않는 이별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아이를 빼앗긴 엄마의 마음을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겹쳐 보이며 사회와 국가가 외면한 입양 제도에 대해서도 따끔한 현실을 내보이며 독자들에게도 미처 몰랐던 현실을 고발한다. 사랑하는 아이를 만나기까지의 조심스러웠던 감정, 아이를 데려오고 가족이 되기까지 애썼던 시간, 그리고 아이가 자라나면서 '다르다'는 차별 아래 놓일까 걱정했던 마음들은 점차 자라나며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 하는 아들의 마음과 함께 그녀와 가족들을 한국으로, 또 무언가 썩은 냄새를 풍기는 입양산업의 진실 속으로 이끈다. 뿌리에 대한 원초적인 이끌림, 그 궁금증에 대한 애달픔과 함께 입양 이후에 고통 속에 보내야 했던 어쩌면 지금도 지속되고 있을 그들의 아픔 앞에서 평범하게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친부모와 함께 내 나라에서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나의 시간이 굉장히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제도적인 개편뿐 아니라, 아이들을 '입양'하고 키워내며 가족으로 살아가는 모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함을 체감했던 시간이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아기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이제는 정말 벗어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입양인들과 입양가족들의 시선에서 또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의 현실까지 초국가적으로 벌어지는 입양 산업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내가 보았던 〈수잔브링크의 아리랑〉이 개봉한지도 3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변치 않는 그 현실을 앞으로는 누구도 그 고통을 겪지 않게끔 바꿔야 할 기회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다. 만들어지는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을 좀 더 자연스럽게 누구도 힘들지 않게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그 사이에서 희생되는 시장의 물건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나는 1989년 MBC에서 방영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보고 처음으로 해외 입양에 대해 알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받은 충격은 강력했다. 서양 가정에 입양된 한국 아이가 겪는 정체성 혼란과 인종 차별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그것이 생모를 찾는다 해서 나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잔이 생모를 찾는 과정을 응원했다. 더 놀랐던 건 한국 전쟁 때 시작된 해외 입양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해외 입양 관련 기사나 책이 나오면 찾아 읽었다. 그럴 때마다 분노가 일었다. 한국 이젠 선진국이라며? 그런데 여전히 수잔 같은 이가 있다고?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아이를 수출하는 나라라는 오명이 부끄러웠다. 내 삶과 실질적 연관이 없는 일이지만 나는 이 문제에 촉각이 곤두섰다. 일반인인 내가 뭘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이번에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된 <너의 한국 엄마에게> 책 소개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그간 잊고 있던 해외 입양 문제를 오랜만에, 것도 전문가의 시각으로 만나겠구나 싶어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당첨되었다. 먼저 출판사에 고맙고 송구스럽다. 관심 있는 분야라고 해놓고선 사지 않고 무료로 받다니... 그래서 집 근처 도서관 세 군데에 희망 도서 신청을 했다. 역자 손화수씨 덕분에 술술 읽을 수 있었다. 한국인이 쓴 책인가 싶을 정도였다. 번역서의 경우, 이 책처럼 분량이 400여 쪽에 달한다면 읽다가 덜컥덜컥 걸리는 부분이 꼭 있다. 그런데 문맥이 이해가 안 되어 여러 번 읽어야하는 문장이 전혀 없었다. 노르웨이의 기사나 자료, 통계가 있었음에도 가독성이 떨어지지 않았다. 찾아보니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도 손화수씨의 번역이었다. 이 소설도 인상 깊게 읽었는데 번역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재확인했다. 저자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은 사회학자의 저서인데 어렵지 않으며 자신의 경험이 일정 부분 들어 있지만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한 때 내가 꾸던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무슨 소리냐 싶고 뇌피셜이라 욕해도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반가웠고 책을 덮으면서는 뿌듯했다. 내가 사회학자가 되어 쓰고 싶은 글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대리만족했으나 이렇게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난 건 처음이다. 저자의 아들(한국 이름-박현욱)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장하다!” 이렇게 짧으면서 너른 품을 지닌 비슷한 낱말이 노르웨이어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심지 굳게 잘 자라준 것에 어울리는 한국어라 생각했다. 책 속에서 ‘너’로 등장할 때마다 체념한 듯, 달관한 듯 보여 마음이 아팠다. 친모와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그제야 편안해 보였다. 텍스트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그의 얼굴에 자연스럽고 편안한 미소가 피어올랐을 것이다. 저자는 노르웨이의 사회학자이자 입양모이다. 첫 딸을 낳고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입양을 준비했다. 힘든 시간을 거쳐 한국에서 남자 아이를 입양했다. 그 아이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2년 후 여자 아이를 또 한국에서 입양했다. 절차가 까다로웠지만 참고 기다려 남매를 두게 되었다. 노르웨이인 엄마는 한국인 남매에게 무한 사랑을 쏟고 싶었다. 양육하기 힘든 사연이 있었을 게 분명한 미혼모(서류상 미혼모라고 쓰인 친모)의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면 그 미혼모에게도 좋은 일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북유럽 가정에 입양된 동양인 아이가 성장하며 받게 될 차별과 배제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가족, 친척, 학교, 사회까지 전방위적으로 벌어졌다. 게다가 입양한 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그 아이를 케어하는데 온 신경을 쏟게 되었다. 먼저 입양한 아들에게 가는 손길과 마음의 빈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입양 가정이 아니어도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형제가 있을 때 그렇지 않은 아이는 조숙해진다.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하며 스스로 마음을 단속하는 법도 일찍 깨친다. 현욱을 이방인으로 대하는 백인의 눈빛을 견디면서 괜찮으냐고 자꾸 묻는 노르웨이 엄마에게 아무 일 없다고 말해야 했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랬던 현욱은 2020년 1월, 의문을 품는다.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올 때(1998년) 자신에게 딸려 온 몇 안 되는 정보를 보며 묻는다. “정말 이게 전부인가요, 엄마?” 저자는 아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하기로 한다. 그리고 자문해보았다. 아들을 낳은 친엄마에 대해 왜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한국은 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을까? 노르웨이는 어째서 입양 가정이 겪을 어려움에 대해 아무런 준비나 대책도 없이 입양을 허가했나? 이런 의문을 해결하는데 저자의 전공이 큰 역할을 했다. 해외에서 노르웨이로 입양된 아동에 대해 조사하고, 한국의 해외 입양사 대해 알아본다. 문제점을 찾아냈고 신문에 그것을 알리는 기사를 냈다. 노르웨이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해외입양 사례를 찾아 인터뷰하며 자신이 무지하고 무신경했음을 깨닫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해외입양’이 몇 십년간 두르고 있던 ‘선의’라는 옷을 벗겨냈다. 실체 없는 ‘선의’를 입고 있던 국가와 입양 알선 단체, 벌거벗은 줄 알면서 말하지 못한 채 눈 가렸던 우리는 모두 벌거벗은 임금님이었던 게 아닐까. 나는 이 책이,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한 아이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해외입양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와 어쩔 수없이 그에 속해버린 개인의 상황을 씨실과 날실로 촘촘하게 엮였다. 특히 당사자가 내는 목소리이기에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엄마이기에 친모가 겪었을 고통에 비중을 두었다. 박현욱이 궁금해 했던 것들을 한국에 와서 찾게 되었는지, 한국 정부와 노르웨이 정부, 그리고 홀트 아동복지회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면 <너의 한국 엄마에게>를 필독하시길! 나는 ‘대한민국 해외입양 숫자 0명!’이라는 통계를 빨리 보고 싶다. 사회과학 서적의 전문성을 충분히 확보하면서도 개인의 경험이 잘 녹아든 이 책이 노르웨이와 한국을 넘어 다른 나라에도 많이 번역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
|
" 너를 향한 내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너는 내 사랑하는 소중한 아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한국의 여성들을 외면했을까? 346" 정확한 기억이 있다. 스무살 때 홍대에 갔다가 한국홀트아동복지회 건물을 보고 뭐하는데지? 하고 가벼운 의문을 가졌다가 일행이 입양기관이라고 알려준 말에 가벼운 충격과 같은 인상이 남았었다. 그 전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기관이었다는 점에서 오는 부끄러움, 입양기관이라는 말에 따라붙는 어딘지 모르게 부정적인 감상 같은 것들이 그날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었다. 인식 이후에는 의식이 따라왔다. 어쩌다 기관 이름이 보이는 기사나, 입양과 관련된 사건들이 크게 불거져 나올 때면 전보다 조금 더 길게 눈길이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는 유리된 감각으로 낯설게 보았고 입양에 따르는 돌봄/양육자의 부재와 구원/시혜적 대상으로의 인식 같은 전형적인 감상에 머물렀다. 그러다 1980년대 활발히 진행된 해외 입양이 효자 수출 품목이나 다름없는 외화 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부모가 있는 아이도 고아로 둔갑시켜 졸속으로 입양시켜 버리는 등의 문제가 고발*되면서 입양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이고 고착적인 인식이 깨지는 일이 생겼다. 가난한 나라의 어려운 사연이 있는 아기들이 부유한 나라의 행복한 가정으로 입양되는 것은 부모를 잃은 아이, 아이를 원하는 가정,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생물학적 부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순진한 믿음은 대체 누가 만들어냈을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양을 인도주의적 선행으로 여겼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부부와 노르웨이에서 더 나은 삶을 약속받은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이라는 이상적인 조합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이들을 받아들인 가정들은 대체로 충분한 지원이나 준비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사실상 운에 달린 일이었다. 246" 게다가 입양의 과정만이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입양 이후의 생활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고발이 연이어졌다.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건 중 하나가 외국의 유명 감독인 우디 앨런이 입양한 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고발과 함께 마찬가지로 딸인 한국계 입양인 순이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그저 부유한 서구 가정으로 입양되어 새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돌봄,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학대 등의 위험에 놓여서도 아무런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을 입양아동들이 너무나 많았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따라왔다. 하지만 '입양 산업'에 얽힌 문제에 대한 관심은 우디 앨런과 순이의 스캔들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놀랍도록 짧고 적었다. " 수십 년이 흐른 뒤, 구매력을 지닌 서구의 부부들이 원하는 아기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카탈로그를 통해 선호하는 조건을 가진 여성을 대리모로 선택할 수 있었다. 미리 수정한 자신의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켜 그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하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163" 입양이라는 수단을 버린 서구의 '아기를 원하는 개인과 가정'은 그보다 더 비인도적인 여성 착취를 거래로 삼기 시작했다. 이 징그러운 아기 쇼핑을 적당한 댓가를 주고 받은 거래 명목으로 전시하는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의 삶을 SNS***로 지켜보게 된 사람들은 '차라리 입양을 하라'며 비난한다. 책을 읽기 전 그 비난이 언뜻 대리출산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대안은 입양에 대한 맹목적이고 느슨한 믿음,까지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감상에 지나지 않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진보 성향의 잡지 <더 프로그레시브>든 1월호 표지에 '한국인이 만들고, 미국인이 산다'라는 충격적인 문구를 실었다. 이 잡지는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입양 사업을 통해 매년 1500만에서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비평가들은 입양 사업을 두고 민간 자금을 바탕으로 한 '경제 외교'라고 불렀다. 100" 이 돈벌이 산업을 위해 여성들은 입양 기관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야 했고, 기관은 생물학적 부모에 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때로는 동의조차 없이 입양이 결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내질 곳과 예비 보호자에 대한 검증과 준비 교육은 물론, 입양 후의 관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가 한국의 입양 사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40년이 지난 지금, 2011년 한국은 경제규모 17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해외 입양 1위 자리에 올랐고, 2020년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순위에 꼽혔다. 2025년 여전히 과거부터 이어져 온 '아동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체계적 관리****를 주장하는 등 인간과 삶에 대한 존중과 한국 사회 안의 문제적 인식 개선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는 적었다. 물론 모두가 마치 쇼핑을 하듯 혹은 시혜적인 마음으로 과시하듯 해외의 아이를 구매한 것은 아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의 저자처럼 아이를 원하는 상황에서 기관의 안내를 신뢰하고 입양을 결정하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입양 산업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에 알게모르게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국 입양 산업의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보고도 망설였으며(237), k98-135 현이 겪을 인종 차별과 미시적 공격, 그리고 배제와 소외의 경험(188)에 무지했다. 그가 의지할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K-1112-유경/셀마를 입양한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위화감이 드는 결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기로 한다. 중학생 때 한국행을 권유하자 한국에 관심이 없다며 뉴욕에 가고 싶다고 했던(166) 현은 대학 진학 후 스스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석증을 앓고 난 뒤 자신의 유전적 질환을 찾아보다 마주한 기록없음 앞에서 "꼭 알아내고 싶어요."(220)라고 다짐한다. 그 후 연락이 닿은 생물학적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직접 방문하기에 이른다. 어느 4월 1일 토요일 서울 시내 어딘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관광객 일행의 모습이었을 그들의 방문(331)을 떠올려본다. 스스로를 사과 바구니 안의 바나나,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존재라 생각하던 사람이(209) 자연스럽게 바나나 상자 속에 있다는, 길을 묻고 자연스럽게 사과가 아닌 바나나를 향해 '우리'임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태도에서 얻어지는 감각이 어떠했을까. 책을 읽을수록 처음 느꼈던 건조한 문장들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아동의 최선의 이익', '입양인들의 서사를 대리하거나 빼앗지 않으려는 시도'로 이루어졌음이 느껴졌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파고든 입양 산업과 생물학적 모친, 입양인, 입양 가정과 사회 문제를 내밀한 고백과 더불어 아울러 낸 책의 모든 이유가 그의 아이 현을 위해서였다는 것에 마음이 울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사는 세계는 한정적이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눈 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외면하지 않는 것, 볼 수 있으나 보지 않았던 세상을 보려하는 것, 본 것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그로 인해 나의 세계를 넓히는 것을 경험토록 해주는 시간이었다. " "제 서류에 동의서가 있나요?" 네가 물었다. "아니, 없단다." 387" * "전두환 정권, '아동 수출'로 한해 200억 벌었다" [심층취재 -한국 해외입양 65년] 2.입양의 정치경제학 ② 20170912 프레시안 전홍기혜 ** 우디앨런 근황에 순이 프레빈에 관심 UP “동거했던 배우 미아 패로우 양녀…치명적 스캔들” 20130830 아시아투데이 우디 앨런 “한국서 거리의 고아였던 순이, 나와 결혼 후 꽃 피워” 20160505 아시아투데이 *** 대리모의 출산일에 '출산 연출'사진을 찍은 매건 트레이너 10명 동시 대리모 출산으로 논란을 일으킨 갈립 오즈터크 인도, 우크라이나 등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 출신의 여성들이 대리모 산업에 내몰려 공장과도 같이 대리 출산을 행하고 있는 현실 - KBS1 세계는 지금 20120602 “한국서 아이 입양해오던 미국, 이제는 전세계 대리모 출산 천국” 20140707 경향 **** 美입양 한국아동 수, 17년만에 다시 부끄러운 세계 1위… 왜? 20111121 조선 세계 아동 수출국 3위 오명 벗을까…변화하는 '해외입양' 20230511 복음기도 국가·지자체가 입양 체계 관리…아동 수출국 오명 벗을까? KBS 9시뉴스 20250717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
|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이런 책이 나오길 오래 기다렸다. 입양인의 서사는 꽤 알려 졌지만 그들을 입양한 '입양 부모' 의 관점에서 국제 입양에 대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마침 또 그 부모가 '사회학자' 라니! 뭔가 인연과 인연이 닿아 쓰여진 책이라는 예감이 출간 포스팅을 봤을 때 부터 들었다. 저자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는 노르웨이인으로 사회학을 전공했고 현재 대학에서 리더쉽 및 조직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들과 딸을 입양 했으며 아들 '현 몰비크 보튼마르크' 를 입양하고 키우면서 겪고 느끼고 분노하고 기뻐했던 일을 엮어낸 책이 바로 이번에 푸른숲에서 출간된 <너의 한국 엄마에게> 이다. 이 책은 입양아가 친생 부모를 찾고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 않게 해주는~ 그런 (뻔한) 스토리가 아니다. 애초에 국제 입양이 '어떻게', '왜' 시작 되었으며, 입양 과정의 불법성에 대한 사후 조사, 아이를 입양 보낸 친모의 인권과 선택의 정당성 그리고 입양후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노르웨이 정부나 입양 기관 으로부터 받아야만 했던 문화적, 인종적, 역사적 조력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제 입양은 단순히 (상대적으로 못 살던) 개발 도상국가 출신 아이가 북유럽 선진국에 입양되어 그들의 조력으로 물질적 혜택을 누리며 아름답게 커 간다는 시혜적 스토리가 아니라는 것. 아이를 소유 하고자 하는 입양 부모측의 강한 욕망+서구와 개도국의 경제 불균형×여성 인권의 부재+혼외자를 수치로 여기는 문화+독재자와 돈×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 등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관습이 복잡하게 얽힌 하나의 현상이자 사건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두꺼운 볼륨과 학술서 같은 수치들의 빼곡함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놓지 못하고 완독 했는데 바로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 진실에 점점 가까이 갈수록 엄마로서 입양 부모로서 (설령 입양 당시에는 몰랐다 하더라도) 자신 또한 이 잘못된 입양 관행의 일부이며 가족의 일원인 아들과 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부모로서, 노르웨이 人으로서 고민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 아팟다. 단순히 아이의 출처(?)에 대한 고의적 누락과 서류 조작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 유전적 질환은 있는지, 노르웨이로 오기 전까지 어떤 환경에서 지냈는지, 알레르기는 무엇인지, 식습관 이나 배변은 어떤 루틴인지... etc. 정보 없이 아이를 인계받은 부모들도 난감 하기는 마찬기지 였으리라 짐작된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너무나 알기 쉽게 왜 제도와 협약이 중요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이행하는 일이 꼭 필요한지 조목조목 짚어 주셔서 읽는 동안 든든했다. 그간 당사자 이지만 들어볼 일이 없었던 입양 부모의 이야기를 써 주셔서 감사했고 이런 책을 유려한 번역으로 읽을 수 있게 출간해 주신 도서출판 <푸른숲> 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일독을 권합니다! |
|
#도서협찬 📚 너의 한국엄마에게 by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 조작과 오류로 덧칠된 초국가적 입양 산업의 민낯! 한 사람의 뿌리를 지구 반대편에 옮겨 심는 국제입양, 아동의 이익은 '선의' 라는 가치 아래 어떻게 외면되어 왔는가? 🌱 ~'입양' 이라는 말은 좋은 말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없는 아이와 아이가 없는 부모가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이야기인가? 그런데 '입양' 이라는 단어에 '산업' 이 붙으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산업이란? 기본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고, 돈을 주고받는 거래가 있다. 그런데 아이를 주고 돈을 받았다는 것은 '야만'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오랜시간 우리나라에 있어왔다. 한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아이를 해외로 보낸 나라이다. 그중에서도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로 간 아이들이 많았다. 그 시절,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국민들은 자신의 아이를 잘 산다는 유럽의 백인 가정으로 돈을 받고 보냈다. 그곳 사람들은 그저 서명만 하면 먼 나라에서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출산률이 높았던 당시의 대한민국 정부는 아이 한명을 키우는 비용은 줄이고, 아이 한명을 보내는 댓가로 돈을 받는 비양심적 산업을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곱게 포장했다. "어떤 권리로 아이들을 그들이 속했던 가족과 문화로부터 떼어 놓았는가? 입양은 정말로 아이를 위한 최선이었을까, 아니면 아이 없는 이 들에게 아이를 공급하기 위한 사업 모델 위에 세워진 시장 구조였을까?" 이 책을 쓴 저자는 노르웨이 사람으로 한국에서 아들과 딸을 입양했었다. 친모를 찾아주는 과정에서 입양산업의 실태를 보았고 그것을 사회학자이자 입양모로써 기록했다. 그녀는 국제입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기는 일은 사회적이자 세계적인 규모의 실험이며, 막대한 인간적 위험을 내포한 행위이다" 낯선 나라에서 전혀 다른 외모로 성장하면서 그들이 겪었을 정체성의 혼란문제는 국제입양으로 생기는 문제들 중 약한 부분이다. '가슴으로 낳은 아이' 라며 미화하지만 국제입양에는 분명히 돈이 오고 갔고, 그 아이들 중 상당수는 낯선 외국인들에게 팔려가 학대당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책은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담담하게 쓰여졌지만 나는 도저히 담담히 읽을 수 없었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으로써 폭풍우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책을 덮고도 계속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건 인간이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prunsoop 🔅<푸른숲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너의한국엄마에게 #푸른숲 #크리스틴몰비크보튼마르크 #국제입양 #노르웨이 #입양산업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
|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억나는 점이 있다면, 그 프로그램에서 해외로 입양 간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한 모습이었다. 부유한 집에 입양 가서 전문직 직업을 갖고 살고 있었다. 어린 나는 생각했다. '아! 해외로 입양 가면 오히려 더 좋은 곳에서 잘 먹고 잘 배우고 잘 살 수 있구나!'. 이것 또한 방송에서 보여준 왜곡된 진실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
어쩌다가 아동을 사고파는 '선의'가 하나의 산업이 되었을까? 어쩌다가 그 주축에 한국이 있게 된 것일까? 왜 한국의 해외입양산업은 점점 더 커져만 간 것일까? 과연 우리는 해외입양산업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에 조금씩 가까워 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해외입양산업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를 포함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한국의 해외입양산업에 더 깊은 관심이 쏟아 해외입양이라는 제도가 사고파는 행위에 집중된 일이 아니라 언젠가 진짜 진짜 가족을 만들어주는 '선의'에 집중된 입양제도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진심을 담아 작성해보았다.
책은 크게 6부로 나누어져 있고, 처음 1부~3부까지는 실제 저자의 경험담을 녹여 한국인 아이를 입양하기까지 본인이 겪었던 과정과 아이를 데려오는 장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 1부~3부를 읽는 중에는 나 역시 한 아이를 아기 때부터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한국인 아이를 입양하기까지의 어려웠던 과정을 겪은 엄마의 심정, 그리고 한국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 낯선 사람들과 하루아침에 함께 살아야 하는 아이의 심정까지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이 흘렀다. 저자는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감정적인 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책에 묘사된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해외입양이라는 것 자체가 행복한 새로운 가족을 찾는다는 것과 동시에 한국 땅이 아닌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는 그 생각에 나의 가슴이 아팠다.
4부 ~ 6부에서는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이 입양된 국가에서도 완벽하게 소속되지 못하고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살아가는 모습들, 그리고 그 모습들을 통해 엄마인 저자가 과연 한국아이들의 해외입양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한국이라는 나라는 발전을 하는데도 해외입양산업은 왜 점점 커져만 갈까? 한국입양산업의 과연 진실되게 운영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그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소 무거운 내용이면서도 꼭 우리가 알아야 할 한국의 해외입양산업의 실태를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저자가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찾아봤고 한국 입양산업에 대해서 연구하여 이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책 내용에 적힌 입양인들의 인터뷰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과 함께 자랄 기회, 자신의 문화, 그리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 기회조차 잃었다. 위원회가 인터뷰한 여러 입양인들은 자신의 삶을 서로 다른 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며 살아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분열된 정체성을 이해하려는 고된 내적 싸움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었다'. 나 어릴 적 TV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국에 가고 싶다는 한 해외입양인의 울먹이며 말하던 모습이 이 글을 읽으면서 오버랩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알지 못할 그런 말. 그들의 마음을 내가 100% 이해할 순 없겠지만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한 그들이라도 입양가족의 삶에 완벽하게 소속되기 힘든 삶을 살아온 그들은 정말 강인한 사람, 아니 강인해지려고 노력한 사람들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모두가 이 책을 한 번쯤 읽고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모두에게 추천한다. ** 좋은 기회로 푸릎숲으로부터 책을 선물받아 직접 읽고 진심을 담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
이 책은 한국이나 노르웨이 뿐만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에겐 제법 특별 할 것이다.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보낸 나라가 한국이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입양아를 받은 곳 중 하나가 그 곳이다. 저자는 한국아동을 입양한 노르웨이 여성이며 아들이 크면서 겪었던 아픔들과 사회적 문제, 국가와 기관의 외면과 방관, 친모를 찾아가는 과정 등을 그린 에세이다. ‘어쩌면 잘못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문학소설이나 교양서를 읽을 때와는 다르게 우리가 지내는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았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처럼, 우리 삶 바로 곁에 항상 있는 일이지만 우리가 관심이 없었고 모른채하지는 않았는지, 또 알아서 해결되겠지라는 그런 생각들. 해외입양되는 아이들은 보수적인 유교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웠고 친부나 가족들로부터 거부당했을 것이다. 친모는 혼자 키우기 버거웠을테고 결국에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입양됐다. 그들은 뿌리를 찾을 수 없었고 입양국가에선 인종차별을 겪는다. 입양가족에게 학대를 받기도 한다. 친부모에겐 들추기 어려운 과거이며 한국에서는 이방인으로 취급받는다. 무서운건 우리나라는 국제법을 인정하나 최근까지 비준하지는 않고 있는것으로 안다. 우리의 무관심이 불법과 강제에 의해 아직까지도 우리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고 있다. 우리는 부끄러운 과거를 사과하고 바로 잡았으면 한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 서평을 쓰면서 하나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저자의 사랑과 헌신과 책임감이다. 그녀 덕분에 이런 용기 있는 고발, 훌륭하게 큰 아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멋진 책도, 만날 수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