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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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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께 처음 제가 선생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단지 국어학자이고 가끔 신문이나 잡지에서 선생님 글을 마주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차음으로 선생님이 쓰신 책을 보았습니다. 처음 이 책을 보게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뜻을 같이해 창작공부를 하는 조그만 모임이 있습니다. 그 모임에서 겨울방학을 맞아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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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께 처음 제가 선생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단지 국어학자이고 가끔 신문이나 잡지에서 선생님 글을 마주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차음으로 선생님이 쓰신 책을 보았습니다. 처음 이 책을 보게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뜻을 같이해 창작공부를 하는 조그만 모임이 있습니다. 그 모임에서 겨울방학을 맞아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실제로 여러가지 글도 써보고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군가가 이오덕 선생님 책을 교재로 한번 해보자고 했습니다. 처음 책을 대할 때에는 책이 일단 두꺼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어려우면 어떡하지, 그리고 국어학자인 분이 쓰신 책인데 너무 학술적인 부분을 다루어 우리들이 따라가지 못해 지쳐 버리면 어떡하지' 하지만 책을 읽어보고는 이런 걱정들이 다 부질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참 쉬웠습니다. 다른 글쓰기 책들처럼 마치 바른길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는 그것에 맞추어 모든 것을 끼워 맞추는 글쓰기 방법을 요구하는게 아니라 선생님께서는 글쓰기에 대한 마음가짐을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바라셨습니다. 그러니까 기술보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예시 글들을 많이 보여주시면서 글에 대해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어긋난 글쓰기 습관을 바로 보게되고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전에는 선생님 말씀대로 유식병에 걸린 글쓰기를 해왔습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쉽게 쓸 수 있지만 괜히 어려운 표현을 일부러 찾아서 그걸 골라서 쓰고 그래서 제 글을 읽어보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비난하기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고 참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을 지금껏 쓴 것이죠. 평소에 생각한 글은 진실되게 솔직하게 써야한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솔직함이 지나치게 되면 혼자만이 가지는 상상이나 생각에 빠져 도저히 그글을 읽는 다른 사람이 봐서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게 되어버리는 거죠. 제 글이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가졌던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자신의 생각을 담아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단계 뛰어넘어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미쳐 깨닫지 못했습니다. 덧붙여 자신을 표현할 때는 유식병에 걸린 글쓰기를 해서는 더욱더 남들이 알아줄리 없는 것인데 저는 지금껏 너무나 몰랐었고 그래서 유식병에 걸린 글들을 아무 생각도 없이 지금까지 끊임 없이 쓴 것입니다. 또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남의 글체입니다. 그전에는 내가 글을 쓰고 읽고 있으면서도 이게 순수한 우리나라 글체인지 그리고 이 말이 서양글체인지 일본글체인지 알지 못했는데 선생님이 쓰신 책을 읽고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남의 글체를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내가 글을 쓰고 읽는 데 좋은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쓴 글속에서도 저는 이 부분은 일본글체다 그리고 영어글체다 라고 얘기해줄 수도 잇게 되었습니다. 최근 문화관광부의 한자병용이라는 얘기를 신문과 텔레비젼을 통해 들었습니다. 우리 말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지금에 한자를 우리가 다시 접하게 된다면 소중한 우리말글은 어떻게 될지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예시글들을 책에 많이 실어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좋은 글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입니다. 보통 다른 글쓰기 책속에서는 예가, 오직 예을 위한 예가 전부였는데 선생님이 드신 예 속에서는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좋으 글, 그리고 교육, 문학, 환경, 사회 각분야에 대한 생각과 선생님이 가지시는 생각들을 조금씩 나타내어 예를 읽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게 하고 아울러 우리 어린 친구들 글을 많이 들어 제가 잃어버렸던 동심까지고 다시금 생각나게 했습니다. '나도 어렸을 때에는 이런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을까?' 잠시 동안이지만 많은 것을 떠올려 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아주 작은 부분까지 마음 쓰시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무척 흐뭇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렵게만 생각되던 글쓰기를 던져버리고 마음으로써, 진실로써, 쓰고 싶을 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다가서서 가슴으로 글을 전한다면 우리는 최고의 글을 쓸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배운 것이 이책에 대한 가장 큰 배움입니다.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을 하루 빨리 모든 사람들이 알고 같은 뜻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더러는 어떤 이들이 선생님 글이 조금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요즘 세상모습에 맞지 않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선생님이 하신 말을 너무 한쪽으로 오해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가지신 뜻을 조금만 크게 생각하고 오늘도 엉터리 우리 말글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그런 말을 함부러 하지 못할 것입니다. 더욱이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고 다가올 새로운 날들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말글이 가지는 힘을 안다면 더욱 그런 말들을 함부러 하지 못할 것입니다. 책 앞날개에 있는 선생님 사진과 알림글을 잠깐 보았습니다. 저는 선생님 나이가 칠순을 넘으셨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진 속에 있는 선생님 얼굴이 잠시잠깐 아쉬운 제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건강하시고 좋은 생각들을 많이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말 : 금방 마친 편지 속에서도 한자어를 쓰지 않고 예전부터 쓰는 우리말만 하기는 제마음을 나타내는 것에 많은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게 모두 우리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이런것 같습니다. 우리말 공부 좀 해보아야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9년 4월 1일
p****1 2002.03.05.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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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솔직한 말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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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지 1년이 되었다. 선생님은 한 평생을 시골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시며 우리 말글 바로 세우기와 참된 글쓰기에 힘쓰신 분이다. 우리 시대에 이 분 만큼이나 말과 삶이 잘 어울렸던 분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20여년전,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때 잡지에 실린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처음 접했고, 나는 아직까지 그 때의 충격을 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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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지 1년이 되었다. 선생님은 한 평생을 시골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시며 우리 말글 바로 세우기와 참된 글쓰기에 힘쓰신 분이다. 우리 시대에 이 분 만큼이나 말과 삶이 잘 어울렸던 분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20여년전,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때 잡지에 실린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처음 접했고, 나는 아직까지 그 때의 충격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될 수 있는대로 내가 아는 가장 어렵고 가장 현학적인 말들을 줄줄이 이어 붙이면 그게 좋은 글이나 좋은 시가 되는 줄 알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랬던 내게 이오덕 선생님이 펼쳐 보이는 초등학생들의 꾸밈없는 시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 뿐 만 아니라 불행한 글쓰기 교육을 받아온 대부분의 학생들이 삶과 글쓰기를 따로 따로 생각해왔다. 우리의 글쓰기 교육은 나를 드러내기 보다 나를 감추도록 강요하고 있다. 입으로 하는 말과 글로 쓰는 말은 당연히 다른 줄 알고 있었다. 구어체니 문어체니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들의 말과 우리들의 글은 서로 따로 놀고 있다. 우리의 삶과 우리의 글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놓여져 있다. 위선을 가르치는 글쓰기 교육, 쉬운 것은 유치한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현학적인 글들, 그리고 그들이 써내는 온갖 문장작법이니 수능대비 논술이니 하는 쓰레기들....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삶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젖히고 직접 글을 만나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생활인의 글쓰기다.

[인상깊은구절]
"문제는 작법-쓰는 법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데 있다.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그래서 다른 어떤 사람도 하지 않았던 말을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믿고, 자기가 아니면 아무도 그 말을 해줄 사라이 없다는 생각만 가졌다면 다 되는 것이다. (중략) 쓰지 않으면 안되는 말이 있으면 쓰는 법은 저절로 찾게 된다."
i*****0 2004.08.2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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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삶을 이야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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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었다. 글을 잘 쓴다는건 무얼까하고 생각해보니, 유식한 어휘들을 맵시있고 세련되게 늘어놓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 그랬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 것은 남들이 써 놓은 유식한 글을 보고 따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니까. 먼저 작문법을 익혀야 할것 같아 인터넷 서점에서 작문과 관련된 책을 검색해 보았다. 대부분 영작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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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었다. 글을 잘 쓴다는건 무얼까하고 생각해보니, 유식한 어휘들을 맵시있고 세련되게 늘어놓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 그랬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 것은 남들이 써 놓은 유식한 글을 보고 따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니까. 먼저 작문법을 익혀야 할것 같아 인터넷 서점에서 작문과 관련된 책을 검색해 보았다. 대부분 영작문책이어서 찾기가 어려웠지만 어찌어찌하여 찾은 책이 바로 이 책 <우리문장쓰기>이다. 책을 받아보니,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학습서여서 그런지 꽤 두껍다. 목차를 보니 더 아찔하다. '글이란 무엇인가'부터 서사문, 설명문, 감상문, 일기, 편지, 시까지 다룬 '여러가지 글쓰기'까지 학교다닐적에 충분히 겪어봤던 학습서의 딱딱함이 그대로 느껴져 왔다. 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어려운 문법따위를 늘어놓은 내용을 상상하니 막막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책 처음부분을 읽으면서 사라졌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교과서같은 종류의 책이 아니었다. 대부분 학습서들은 어려운 전문용어라든지 한자어를 섞어 써서 글의 목적(내용)보다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알아내는데 진을 빼는 것이 흔한 일인데, 이 책은 너무나 쉽게 술술 읽혔다. 마치 동화책 읽듯이. 들어놓은 예들도 많고 적절해서 글의 내용을 더욱 잘 살려주고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바는 책 두께완 달리 간단하다. '우리말로 삶이 묻어나는 글을 쓰자.', 바로 이것이다. 우리말을 쓴다는 것과 삶이 묻어나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 쉬운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미 일본식, 서양식, 중국식 말과 글이 우리말과 글을 많이도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책에 나온 보기를 하나 들어보면 "-적, -에 대한, -의, -로서의..."들은 일본글체이고, "...었었다. ...되다.(수동태)"들은 서양글체라는 것이다. 중국글체는 참 많이도 쓰고, 쓰지 않으면 무식한 놈으로 여겨지는 건 보통이니 다시 말하면 입아픈일이라 하겠고, 요즘은 서양글체도 중국글체 못지 않게 심각하다. 사실 글체에서 끝나는 일이라면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글이 곧 말을 바꾸고 말이 곧 생활을 바꾸어서 우리의 삶이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본래는 그 반대가 되야 하는데, 삶에서 생각이 나고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며 그 말을 그대로 글이 되는 것이라야 한다. 글은 말로 옮겼을때 어색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야 어린아이나 나이드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한번에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글이 되며, 이런 글이 꾸밈없이 삶을 드러낼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유식한 글과 세련된 글이라 생각하는 요즘 글들 모두가 세련되고 유식한 글들로 거짓된 삶을 꾸미고 가리면서 읽는 이에게 공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나조차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달마다 받아보는 전문잡지에서 새로나온 용어(대부분 영어)를 익히고, 한자를 배워 쓰고, 고사성어를 마구 쓰며,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할때도 좀 더 어려운 용어를 경쟁하듯 쏟아내는 내자신이 그랬다. 쏟아지는 번역물들은 원서가 일본책이면 일본식으로 서양책이면 서양식으로 토만 한글일뿐 낱말이나 문체는 원서그대로여서 차라리 사전을 펴놓고 원서를 읽는 편이 낫다고들 한다. 그럴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나를 포함해) 울며 겨자먹기로 알송달송한 문장들을 읽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데, 이 쪽 분야는 대책이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당장 컴퓨터 프로그래머란 직업을 한글로 바꿔 말하기가 어렵다. 달마다 수십번씩 있는 세미나와 컨퍼런스, 워크샵들은 그 용어도 우습거니와 그 속에서 주고받는 말들은 더욱더 웃기고 재밌다. (사실 세미나는 세미나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적어도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는, 세미나는 그저 발표회라고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시쳇말로 왕초보였을때 한 세미나에 참석해서 겪은 일인데, 한국사람을 대상으로한 발표에서 MS(마이크로소프트 한국지사)의 직원이 순 영어로만 된 슬라이드 몇장과 한글과 영어가 섞인 슬라이드 몇장을 가지고 말은 토만 우리말이고 모든 단어를 영단어로(전문용어도 아닌) 발표를 하는 것을 보았다. 대부분의 세미나에서 이런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 때는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워 보였는지,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그걸 떠나 그저 우스워 보일뿐이었다. 모르는 사람입장에서는 무슨 암호를 주고 받는 것 같지만 그 내용을 알고나면 피식 웃어버리고 말 정도의 쉬운 내용들인데, TV 개그맨들이 모 패션디자이너를 흉내내며 하는 개그와 다를바 없는것이다. 결국은 몇 년이 지나 나 역시 그렇게 변해가고 있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싶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아니 중간쯤 읽었을때부터, 이오덕선생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좋은 뜻을 펼치고 있는 분이라면 이름이 알려져 있어야 하지않나, 그러니까 나도 어디선가 들어본적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였다. 찾아보니 꽤 유명한 분이란걸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분이고, 그 뜻을 따르는 사람도 많아 보인다. 작년에 돌아가신걸 알고는 많이 안타깝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이야기는 권정생작가와의 인연이었다. 이오덕선생님이 40대 중반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쯤에 권정생작가의 동화를 읽고 감동을 받아 맺은 인연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줄곧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이어져왔다는 것인데, 결핵을 앓고 종지기로 연명하며 동화를 써나가는 권정생작가를 도와, 대신 출판의 길을 트며 세상에 알리기를 발벗고 해오신 이오덕선생님의 진심이 묻어나는 이야기였다. 그 편지의 일부를 어느 포스트에서 읽고는 가슴이 울컥해져왔다. 한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받고 열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하며, 말뿐아니라 마음으로 존경을 담아, 그 사람대신 발벗고 작품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것이 아동문학을 살리는 길임을 신념으로 삼고, 30여년이 넘게 줄곧 한결같은 마음으로 삶을 이루셨을 모습이 떠올라서 감동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까지 몰랐고 그래서 계속 잘못된 말을 하고 글을 쓰며, 내 아이들에게 잘못된 말과 글을 가르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던 나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지금당장 이 책에서 말하는데로 오로지 우리말만 쓸수는 없다. 지금까지 물들어 있던 것이 있고, 어찌해야할지도 사실 모르기때문이다. 하지만 노력을 하겠지. 계속 내 머리속에서 맴돌테니까. 그리고 내 아들놈들에게도 가르칠것이다. 이미 빗나간 학교교육(앞으로 나아질지 모르지만)에만 의존하지 않을테고, 좋은 글들을 찾아 읽힐 것이며, 나또한 좋을 글을 써서 아들들에게 전해줄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부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시작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m****a 2004.10.0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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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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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신문에서 연재된 이오덕 선생님의 글들을 본적이 있다.그때 참 많은 걸 배웠는데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우리는 한자어나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면 유식해보인다고 생각한다. 특히 법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용어하나하나가 모두 한자어이거나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법조문을 우리말로 다시 쓰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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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신문에서 연재된 이오덕 선생님의 글들을 본적이 있다.그때 참 많은 걸 배웠는데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우리는 한자어나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면 유식해보인다고 생각한다. 특히 법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용어하나하나가 모두 한자어이거나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법조문을 우리말로 다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이 책은 나의 그런 답답함을 그나마 시원하게 들어주는 것 같아 좋았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우리말 사랑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동안 겉치레에 치중했었던 습관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조금씩 우리말 사랑을 키워가면 어떨까..
m******1 2003.12.3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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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을 때에 글을 쓴다 (우리 문장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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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을 읽는다삶을 지을 때에 글을 쓴다― 우리 문장 쓰기 이오덕 글 한길사 펴냄, 1992.3.30.※ 책풀이 ※1992년에 처음 나온 《우리 문장 쓰기》는 《우리 글 바로쓰기》를 1권과 2권을 펴낸 다음에 선보인 책이다. 《우리 문장 쓰기》에서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글에 담는 길을 밝힌다.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는 글이란 무엇인지 밝히고, 갈래에 따라 글을 어떻게 쓸 때에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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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을 읽는다



삶을 지을 때에 글을 쓴다

― 우리 문장 쓰기

 이오덕 글

 한길사 펴냄, 1992.3.30.



※ 책풀이 ※

1992년에 처음 나온 《우리 문장 쓰기》는 《우리 글 바로쓰기》를 1권과 2권을 펴낸 다음에 선보인 책이다. 《우리 문장 쓰기》에서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글에 담는 길을 밝힌다.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는 글이란 무엇인지 밝히고, 갈래에 따라 글을 어떻게 쓸 때에 제대로 ‘한국사람이 쓴 글’이 될 만한지 알려준다. 제아무리 손재주로 꾸민다고 해 보았자 글이 될 수 없고, 손수 짓는 삶에 따라 즐거움과 기쁨을 담으려고 할 때에 참다우면서 아름다운 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 책 한 권으로 들려준다.



..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내 마음입니다. 내가 하는 말마다 그때그때 어떤 마음인지 환하게 드러납니다. 마음을 즐겁게 가누는 사람은 언제나 즐겁게 말을 하고, 마음을 맑게 가다듬는 사람은 언제나 맑게 말을 합니다.


  거칠게 말을 한다면, 마음이 거칠다는 뜻입니다. 짜증을 섞어서 말을 한다면, 마음이 짜증으로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거친 말이든 짜증 섞인 말이든 나쁘지 않습니다. 좋지도 않으나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때그때 내 마음이 말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러니 나는 내 말을 찬찬히 살피면서 그때그때 어떤 마음인지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적에 비로소 말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말은 언제나 마음을 나타내기 마련이니,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홀가분하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기쁨을 나타내고 슬픔을 나타내지요. 놀라움을 나타내고 아쉬움을 나타내지요. 서러움을 나타내다가는 쓸쓸함을 나타내고, 반가움을 나타내다가는 사랑을 나타내요.


  어떤 마음이든 나타낼 수 있는 말입니다. 어떤 마음이든 나타내는 말이기에 내 삶은 날마다 새롭게 빛납니다. 말 한 마디를 하면서 마음을 살피고, 말 두 마디를 하면서 마음을 북돋우며, 말 세 마디를 하면서 마음을 가꿉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글을 함부로 쓰지 말고(꼭 할 말만 쓰고), 깨끗한 말로 쓰는 일이다 … 농민도 어민도 노동자도 상인도 공무원도 교원도, 누구나 써야 한다. 마치 말을 누구나 하듯이, 모든 사람이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말이 살아나고 글이 살아난다. 사람이 살아나고 문학이 살아난다 … 대관절 ‘문학 문장’, 곧 문학이 될 수 있는 글이 따로 있을 수 있는가 … 글은 말보다 어렵게 써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쉽게, 더 친절하게 써야 한다 … 될 수 있는 대로 중국글자말을 쓰지 말고 우리 말로 써야 한다 … 중국글자를 섞어서 쓴 글은 반민주의 글이다. 그리고 쉬운 우리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을 안 쓰고 어려운 말, 보통 사람들이 잘 안 쓰는 말, 유식한 중국글자말이나 일본글에서 나온 말, 쓰지 않아도 되는 서양말을 쓴 글은 모두 반민주의 글일 수밖에 없다 ..  (14, 16, 18, 32, 198쪽)



  더 좋다 싶은 말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잘못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지 않아도 됩니다. 글을 쓰다가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릴 수 있습니다. 말을 하다가 혀가 꼬일 수 있으며, 때로는 헛말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아, 내가 이런 말을 이런 마음으로 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슬기롭게 갈고닦으면 됩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새파랗게 눈부신 하늘이기에 새파랗구나 하고 느낍니다. 매캐한 하늘이기에 매캐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구름을 볼 수 있고, 해를 볼 수 있으며, 하늘을 가르는 새를 볼 수 있어요. 무엇이든 내가 스스로 보는 대로 느끼고, 이 느낌을 고스란히 말과 글에 담습니다.


  냇물을 바라보면서 냇물 빛깔과 냄새를 헤아립니다. 냇물에서 사는 물고기를 느끼고, 냇물에 있는 돌멩이와 모래를 느낍니다. 냇물이 흐를 적에 반짝이는 물결을 느끼고, 냇가에 찾아와 물을 쪼는 멧새가 몸을 터는 몸짓을 느낍니다.


  요모조모 짜맞추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틀이나 저런 짜임새를 살펴서 글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마음을 나타내도록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됩니다. 우리는 늘 우리 마음을 꾸밈없이 아끼고 사랑하면서 말과 글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니, 문예창작을 배워야 문학을 하지 않아요. 시론을 배우거나 이론을 익혀야 시나 소설을 쓰지 않아요. 대학교를 다닌 사람이 문학을 하지 않습니다. 문학을 바라는 사람이 문학을 합니다. 문학을 꿈꾸는 사람이 문학을 해요. 노래를 꿈꾸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꿈꾸는 사람이 춤을 춥니다. 흙을 꿈꾸는 사람이 흙을 짓고, 삶을 꿈꾸는 사람이 삶을 짓습니다.



.. 사물을 보는 그대로 나타내도록 해야지, 요란한 글 때문에 사물이 흐리게 보이도록 해서는 안 된다 … 좋은 글은 일하면서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도 쉽게 읽히는 작품, 그래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 글의 마지막 심판자는 백성들이다. 책과 학문과 추상논리와 관념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과 사실 속에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닌 가장 소박한 느낌과 생각이 글의 가치를 매기게 되어야 한다 … 살아 있는 말이란 어떤 말인가? 사물과 사실을 바로 보여주고 바로 느끼게 하는 말, 바로 가슴에 와닿는 말, 진실이 차 있는 말이다 … 말이 없으면 글도 없다. 글은 없어도 견딜 수 있지만, 말이 없으면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 … 말은 생각(의식)에서 나왔다. 생각은 삶에서 나왔고, 삶은 바로 살아 있는 목숨이다 ..  (24, 25, 40쪽)



  나무 한 그루를 심습니다. 씨앗을 심을 수 있고, 어린나무를 얻어서 심을 수 있습니다. 크게 자란 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꺾어서 심을 수 있습니다. 벼락을 맞고 쓰러진 나무를 안쓰러이 여겨 작은 가지 하나를 잘라서 심을 수 있어요. 어떻게 심든 모두 나무입니다. 어떻게 심든 모두 아름답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나무는 백 해를 살고 오백 해를 살며 즈믄 해를 사는 동안 우람하게 큽니다. 나무 한 그루는 열 그루로 퍼지고, 열 그루는 백 그루로 퍼집니다. 모든 숲은 나무 한 그루에서 비롯합니다. 지구별 푸른 숨결은 씨앗 한 톨에서 비롯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보듬는 사랑은 바로 말 한 마디에서 태어납니다. 내가 나를 아끼고, 내가 너를 아끼며, 내가 우리를 아끼는 따사로운 마음에서 말이 태어납니다. 이 따사로운 마음과 말은 따사로운 숨결이 되고, 어느새 따사로운 노래로 퍼집니다.


  아이와 나누는 자장노래가 아이한테 놀이노래로 거듭납니다. 놀이노래는 놀면서 부르는 노래이면서 언제 어디에서나 기쁜 내 마음을 드러내는 노래로 달라집니다. 자장노래는 놀이노래이면서 기쁨노래이고 삶노래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셔요. 내 말 한 마디가 노래로 거듭나서 퍼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내가 하는 말 한 마디가 이웃과 동무한테 맑은 웃음과 노래로 스며들 수 있으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말 한 마디로 사랑을 짓고, 글 한 줄로 꿈을 지으면, 우리 삶은 얼마나 맑고 밝을까요.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니까 말을 하고 글을 써요. 서로 돌보고 보살피니까 말을 하고 글을 써요. 내 사랑이 내 말로 나타나고, 네 사랑이 네 말로 드러나요. 우리는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말을 나누고, 우리는 언제나 활짝 웃고 노래하면서 말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 글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 글을 독차지하는 관리들과 지식인들과 돈 가진 이들이 움직이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글을 모르면 사회에 나가 활동할 수가 없고, 여행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사람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 … 가정에서 살아 있는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더 철저한 글말을 배우게 된다. 교과서만 읽고 쓰고 외우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살아 있는 말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 우리가 남의 나라 글을 따라서 쓰고, 그렇게 쓰는 글을 따라서 말을 하게 된다면, 그 말이 다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의 삶을 움직인다 … 글이 이렇게 오염이 되고, 말이 글 따라 병들었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우리들 생각이 병들고 삶이 변질된 것을 어찌 깨닫겠는가 ..  (41, 42, 44, 45쪽)



  이오덕 님이 쓴 《우리 문장 쓰기》(한길사,1992)를 읽습니다. 이오덕 님은 두툼한 책 한 권을 써서 우리들한테 ‘우리 마음을 담아서 나누는 글이란 무엇인가’ 하는 실마리를 밝히려 합니다. 글을 쓰는 즐거움과 보람이 얼마나 큰 사랑인가를 넌지시 보여주려 합니다. 글을 써서 나누는 기쁨과 뜻이 얼마나 예쁜 노래인가를 찬찬히 알려주려 합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써야 바로 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써야 말과 글이 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우리 마음 쓰기’를 이야기하고, ‘우리 생각 밝히기’를 이야기하며, ‘우리 사랑 나누기’를 이야기합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해야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해야 삶을 잘 가꾼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말과 글을 가꾸면서 내 넋을 가꾸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 말과 글을 가꾸면서 내 넋을 가꿀 때에 내 삶을 어떻게 가꿀 수 있는지 찬찬히 밝힙니다.


  마음이 있으니 글을 쓰지요. 생각이 있으니 글을 쓰고 싶지요. 사랑이 있으니 글을 써서 책을 엮은 뒤 널리 나누다가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지요. 말은 언제나 넋이 되고, 넋은 고스란히 삶이 됩니다. 말을 가꾸는 일이란 넋을 가꾸는 일이요, 넋을 가꾸는 일은 삶을 가꾸는 일입니다. 거꾸로, 삶을 가꾸는 일은 넋을 가꾸는 일이면서, 넋을 가꾸는 일은 말을 가꾸는 일이 됩니다.



.. 말을 살리는 글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가? 한자말·일본말·서양말 같은, 밖에서 들어온 말을 안 쓰고, 쉬운 말과 순수한 우리 말을 찾아 쓰면 된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쓰면 된다 … 우리가 하는 말은 농사일에 쓰이는 말이 많고, 사람과 자연의 모습과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 … 말이 이렇게 풍성하니 그 말을 적어 보이는 글자가 또 거기에 걸맞게 창조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배달글은 세종대왕이 지었다기보다 풍성한 말을 가진 우리 온 겨레가 지어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 같다 … 이야기하기에 알맞는 말, 노래하기에 알맞는 말이기에 영어같이 ‘과거완료’나 ‘과거진행완료’ 따위의 때매김이 소용없는 것은 당연하다 ..  (51, 52, 53쪽)



  토박이말을 살려야 하니까 토박이말을 쓰지 않습니다. 영어를 쓰지 말아야 하니까 영어를 쓰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넋을 홀가분하게 살찌우거나 살려서 기쁘게 노래하고 싶기에 말을 깊이 생각하고 널리 헤아리면서 말을 합니다. 나는 내 얼을 아름답게 보듬거나 살가이 보살피고 싶기에 차근차근 생각을 짓고 삶을 일구어 글을 씁니다.


  밭을 가꾸면서 글을 씁니다. 아기를 돌보면서 글을 씁니다. 밥을 지으면서 글을 씁니다. 옷을 기우면서 글을 씁니다. 빨래를 하면서 글을 씁니다. 나무를 베거나 장작을 패면서 글을 씁니다. 길을 걸으면서 글을 씁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글을 씁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귀여겨들어요. 그러고 나서 글을 써요. 나비와 새가 날갯짓하면서 하늘을 가르는 모습을 지켜봐요. 그러고 나서 글을 써요. 소나기가 내리고 무지개가 뜨는 마을에서 이웃과 오순도순 어우러져요. 그러고 나서 글을 써요.


  우리가 쓰는 글은 얼마나 고운가요. 우리가 주고받는 글은 얼마나 알찬가요. 우리가 빚어서 책으로 엮는 글은 얼마나 따스한가요. 우리가 읽는 글은 얼마나 값진가요. 글줄마다 이야기가 흐르고 노래가 감돕니다. 글월마다 꿈이 깃들고 사랑이 피어납니다.


  손수 씨앗을 심어 보셔요. 씨앗 한 톨이 어떻게 깨어나서 자라는지 바라보셔요. 깨어난 씨앗 한 톨이 흙을 어떻게 바꾸고, 둘레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셔요. 씨앗 한 톨이 자라서 줄기가 오르고 잎이 오르는 동안, 둘레에 어떤 바람이 흐르는지 헤아리셔요. 씨앗 한 톨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적에 어떤 기운이 감도는지 느끼셔요. 말 한 마디는 씨앗입니다. 말씨가 생각을 짓습니다. 글 한 줄은 씨앗입니다. 글씨가 이야기를 짓습니다.



..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고받는 말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우리들의 말,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길은 단 하나뿐이다. 삶을 찾아 가지는 것이다. 기계가 되지 말고,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 체험과 행동은 없고 책만 읽어서 이른바 ‘상상’이란 것으로 적어 놓은 말들이 살아 있는 겨레의 말이 될 수 있는가? 없다 … 오늘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이다. 잃어버린 삶을 도로 찾아 가지는 일이다. 삶을 찾아 가지려고 하는 노력이 그 어떤 노력보다도 앞서야 하고, 그 노력을 바탕으로 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쓴 글을 다듬기도 해야 비로소 제대로 글이 씌어질 것이다 …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중국글을 우리 글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글 틀에 잡히게 되어도 그것을 깨달을 줄 모르고, 영어 틀에 빠져 있는 줄도 모른다 ..  (54, 55, 66, 80쪽)



  글을 쓰는 사람은 삶을 씁니다. 글쓰기는 늘 삶쓰기입니다. 삶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고, 삶이 있기에 글을 쓸 기운이 납니다.


  글은 머리로 지어서 쓰지 못합니다. 때때로 머리로 글을 지으려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억지를 부려서 머리로 글을 쓰면, 이 글은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삶이라고 하는 숨결이 없는 글은 힘도 기운도 사랑도 꿈도 없습니다. 삶이라고 하는 숨결을 담아서 쓰는 글일 때에 비로소 참다운 힘과 착한 기운과 맑은 사랑과 밝은 꿈이 깃듭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머리로 짓는 글은 제대로 살지 못할까요? 머리로 짓는 글, 이른바 이론과 학문이나 지식으로 짓는 글은 아무것도 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료와 농약과 항생제는 흙을 살리지 않습니다. 비료와 농약과 항생제는 흙을 망가뜨리거나 괴롭히면서 곡식과 열매를 땅에서 더 뽑아내는 구실을 합니다. 그러니, 이런 것으로는 흙을 못 살리고 못 가꾸고 못 북돋웁니다.


  풀 한 포기에 바치는 사랑스러운 손길은 흙을 가꿉니다. 흙을 가꾸려는 손길을 받고 자란 풀포기는 겨울이 되어 시들 적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나무가 떨구는 가랑잎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풀줄기와 나뭇잎은 흙을 되살리면서 흙이 됩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풀줄기나 나뭇잎과 같이 마음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밑거름이 될 수 있어야 싱그럽습니다. 살아가는 결 그대로 글을 쓰고, 사랑하는 마음씨 그대로 글을 쓰며, 꿈꾸는 무늬 그대로 글을 씁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따로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삶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가꾸면 됩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학교를 다니거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하루하루 기쁨으로 맞아들이면서 즐거움으로 노래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살림을 다스리고 하루를 노래할 때에 비로소 글을 씁니다.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는 삶이 그대로 글입니다.



.. 우리가 일본글을 배우지 않고 일본글에 빠지지 않았다면 진작 중국글자체에서도 벗어나 있었을 것이다 … 자기가 쓰고 싶은 절실한 생각이나 이야기를 자기 말로 아무 형식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게 되었을 때 그 결과가 저절로 어떤 글의 맵시를 갖추게 된다면 그때는 그것을 가지고 문체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눈으로 살펴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일을 해 보고 몸으로 겪어 볼 필요도 있다. 그래야 마굿간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소 한 마리도 제대로 볼 수 있고, 도랑에 버려진 농약병 이야기도 진실 그대로 꾸밀 수 있을 것이다 … 글을 쓸 때는 아주 결심을 단단히 해서 커다란 자기혁명을 한다는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런 몸가짐을 가지고 쓰는 글 속에 새로운 자기가 태어나게 해야 한다 … 서로 삶과 마음을 나누는 편지 쓰기를 하면 좋겠다 ..  (94, 157∼158, 179, 188, 477쪽)



  삶을 지을 줄 알 때에 비로소 글을 짓습니다. 군사독재 서슬이 퍼렇던 지난날 제도권 학교교육에서 억지로 시키던 ‘글짓기’가 아닌, “삶을 짓다”와 같은 “글을 짓다”일 적에 수수하면서 고운 글이 태어납니다.


  글은 짓습니다. ‘독후감 숙제 따위 글짓기’가 아닌, ‘삶을 노래하는 글짓기’입니다. 이오덕 님은 ‘글쓰기’라는 낱말을 따로 빚어서 쓰셨어요. ‘글짓기’라는 낱말이 나쁘지 않으나, 군사독재 총칼을 내세운 앞잡이와 꼭둑각시 때문에 아이들이 아프고 다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낱말에 새로운 숨결을 담아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랐기에, ‘글스기’라는 낱말을 빚었어요.


  그런데 오늘날 학교교육이나 사회를 보면, 낱말은 ‘글짓기 → 글쓰기’처럼 바뀌었으나, 속내는 예전과 똑같습니다. 삶을 쓰려고 하는 글쓰기가 아닌, 억지로 짜맞추거나 이론이나 지식으로 얽어매는 글쓰기입니다.


  글은 허울로 쓰지 않습니다. 글은 껍데기가 아닙니다. 글은 속내요, 알맹이입니다. 글짓기라는 이름이든 글쓰기라는 이름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삶을 드러내고 사랑을 밝히며 꿈으로 나아가는 숨결을 담을 수 있는 글이면 됩니다.


  이리하며, ‘삶말’과 ‘삶글’이라는 낱말이 새롭게 태어나요. 삶을 그리는 말이기에 삶말이면서, 삶을 짓는 말이기에 삶말입니다. 삶을 노래하는 글이기에 삶글이요, 삶을 꿈꾸는 글이기에 삶글입니다.


  밥 한 그릇을 나누는 삶입니다. 나무를 심고 풀을 뜯는 삶입니다. 바람을 쐬고 햇볕을 쬐는 삶입니다. 냇물을 마시고 들을 돌보는 삶입니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삶입니다. 아이와 함께 뛰노는 삶입니다. 옷을 지어 함께 입고, 이불을 빨아 함께 덮는 삶입니다. 삶을 노래합니다. 삶노래이지요. 삶을 이야기합니다. 삶이야기입니다.



.. 원고료 수입이 많다 보니 삶의 현장에 나가 일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래서 늘 방안에서 제멋대로 장난처럼 글재주 놀이를 하기 쉽기 때문 … 일과 놀이가 따로 나누어진 오늘날 사회에서는 사람의 표현조차 순수한 자기 표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회의 요구에 따라 한갓 직업으로써 하는 표현활동이 되어 있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고, 따라서 표현이 어떤 틀에 박히고, 기계로 찍혀 나오듯하여 표현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되어 있기가 예사다 … 자기를 정직하게 쓰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기뻐질 터인데, 이렇게 겉모양만 괴상하게 꾸며 보이는 글을 무슨 보람으로 쓸까 … 글과 사람은 따로 볼 수 없고, 따로 보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글과 사람이 다른 것처럼 보는 것은 우리가 글을 바로 보지 못했거나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243, 318, 355, 425쪽)



  글을 쓰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삶을 쓰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글을 노래하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글을 슬기롭게 읽어서 생각을 슬기롭게 밝히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삶을 슬기롭게 읽어서 마음을 슬기롭게 밝히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글만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삶을 잘 가꾸면서 추스를 적에 글을 잘 가꾸면서 추스릅니다. 글만 멋지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겉보기로 번드레하게 보일는지 모르나, 겉을 꾸미는 사람은 이내 시듭니다. 겉을 내세우려는 사람은 속이 곪습니다.


  사람은 쭉정이가 아닌 알맹이를 먹습니다. 사람은 밥알을 먹지, 쌀겨를 먹지 않습니다. 쌀겨를 가루로 빻아서 먹을 수 있겠지요. 쌀알과 쌀겨를 통째로 먹을 만하겠지요. 그러면, 달걀 껍데기와 달걀이 있을 적에, 껍데기만 먹으면 될까요, 달걀을 먹으면 될까요.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란 없습니다. 껍데기는 무엇인가 하면, 알맹이를 감싸는 옷입니다. 알맹이를 감싸는 옷은 옷대로 잘 가꾸면서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알맹이를 감싸는 옷만 헤아리다가 정작 알맹이는 돌보지 못하거나 가꾸지 못하면 어떻게 될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바로 ‘알맹이’를 밝히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껍데기를 꾸미거나 치레하는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 ‘사색’은 아주 깊은 생각이고 ‘생각’은 얕은 것이라 여긴다면 잘못이다. 사람들이 모두 어려운 말을 쓰고 싶어하는 버릇이 들어서 자꾸 그렇게 쓰다 보니 그만 쉬운 말은 뜻이 얕고 어려운 말은 고상하게 여기게 되는데, 이런 잘못된 버릇은 글을 쓰는 사람부터 깨뜨려 나가야 하겠다 … 꼭둑각시로 자라난 사람은 그 자식을 또 꼭둑각시로 만들고 싶어 한다. 이 나쁜 되풀이를 그만두도록 일깨우는 것이 글쓰기가 아닌가 … 어른들이 그릇된 교육으로 아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그 심성을 병들게 하지만 않는다면, 모든 아이들은 마치 산과 들에서 자라나는 풀과 나무같이 바르고 싱싱하게 자라날 것이다 … 교회에서나 절에서 아이들에게 교리를 외우게 하고 예수님, 부처님을 넣어서 글짓기를 시키는 어른들의 신앙이란 것이 참으로 어리석고 거짓된 습관에서 하는 짓이라고 본다 … 땅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트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잎을 피우고 하여 반드시 일정한 날과 달을 보낸 다음 꽃을 피울 만한 속 기운이 찬 때라야 비로소 피어난다 ..  (488, 541, 549, 558, 568쪽)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겉을 치레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겉을 치레하는 삶으로 나아갈밖에 없습니다. 겉만 매만지는 글을 쓰는 삶은 겉만 매만지는 삶으로 흐를밖에 없습니다.


  눈을 감고 바라보아요. 내 이웃과 동무를 마음으로 바라보아요. 눈으로도 바라보되, 마음으로도 함께 바라보아요. 내 이웃과 동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겉모습만 살피지 말고, 내 이웃과 동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열고, 어떤 마음으로 삶을 누리며, 어떤 마음으로 이 땅에 서는지 차근차근 바라보아요.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썰미를 기를 적에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될 적에 글을 빛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매를 갈고닦을 적에 글이 아름다운 씨앗 한 톨로 이 땅에 드리울 수 있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으려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려고 글을 씁니다. 꿈이라는 씨앗을 심으려고 글을 씁니다. 삶이라는 씨앗을 심으려고 글을 씁니다. 글을 수수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글을 착하고 참답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글을 따스하고 너그럽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빙그레 웃으면서 노래합니다. 4348.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이오덕 책읽기)



h*******e 2015.01.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 글 쓰기의 기본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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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언젠가 서점을 돌아보다 글쓰기 책만 모아둔 곳에 멈춰선 적이 있다.  글쓰기에 관한 모든 비밀이 그곳에 숨어있기라도 하듯 여러가지 글쓰기 책들이 나와 있었다.  예전에는 글은 특별한 사람만 쓰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소설가,수필가, 시인 같은 작가들은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었고,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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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언젠가 서점을 돌아보다 글쓰기 책만 모아둔 곳에 멈춰선 적이 있다.  글쓰기에 관한 모든 비밀이 그곳에 숨어있기라도 하듯 여러가지 글쓰기 책들이 나와 있었다.  예전에는 글은 특별한 사람만 쓰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소설가,수필가, 시인 같은 작가들은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었고,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글을 썼다하면 소설가처럼, 수필가처럼, 시인처럼, 써야 글을 잘 쓴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정도로 쓰지 못하면 글을 쓸 자격도 없는 것이니,  간혹 어렵게 쓴 글 한 편을 쳐다보고  얼굴이 따갑고 창피해 하는 경우가 있었다.   글을 왜 쓰는가 ?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제쳐두고, 오직 작가들처럼 `글을 잘 쓰기'위한 것이 글쓰기 교육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내가 지금껏 읽어왔던 몇 편의 글쓰기 책도 마찬가지고,  내가 그러한 책을 읽어온 이유도 그와 같다.  

 

이오덕의 <우리 문장 쓰기>를 읽은 것도 글을 잘 써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재주를 가르쳐주는 여타의 책과는 달랐다. " 왜 글을 쓰는가 ?" 라는 본질을 먼저 가르쳐준 것이다.  난 조금 충격을 받았다.  이오덕은 어떤 분인가?   43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던 시골 학교의 교사요, 동화,수필,동시 등을 발표하고 평론까지 썼던 작가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분의 이력은 평생 우리말과 글 살리기를 실천한 일이다.  이 책이 내게 충격을 준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내가 지금껏 글이라고 썼던 게 `거짓'과 `흉내내기' 로 일관해 왔단 생각 때문이다.  우리 글을 버리고 멋을 부리기 위해 한자어를 골라 쓰고, 작가들의 글쓰기를 본따 문장을 비틀고, 일본어의 어법인 것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일본어식으로 썼던 글쓰기의 못된 버릇을 이 책을 통해 거울처럼 비춰볼 수 있었다.

 

흔히 글은 말보다 어렵게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잘 쓴다는 것은 어렵고 유식하게 쓴다는 말과 동격이 되었다.  책을 많이 읽고 어휘력을 늘리는 것은 곧 어려운 한자말을 골라 쓰는 재주를 늘리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우리가 대화에 사용하는 어휘는 무척 쉽다.   만약, 대화체에 글을 쓸 때처럼 유식한 한자말을 많이 넣는다면 이해가 어렵고 뜻 풀이가 잘 안 돼, 대화가 안될 것이다.  모국어를 쓰지만 대화가 안돼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언어는 쓸모가 없다.   이오덕은 주장한다.   글과 말은 하나요, 글을 쓸때도 말을 할 때 처럼 쉬운 우리말로 쉽게 쉽게 풀이해 써야 한다.  언어의 기본은 언어를 통한 정보의 교환이나 전달이다.  글이 어려울 필요가 없는 것은, 이 기본 목적 때문이다.  어렵게 써서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멋부리고, 유식하게 쓴 글 한 편의 가치가 어딨겠는가?  이오덕은 이 문제를 글쓰기의 기본문제로 내세운 것이다.

 

새해 첫 날 발표하는 신춘문예의 당선작들을 몇 해 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봐 왔다.   영화평론이나 문학 평론으로 당선된 작품들을 읽은적이 있는데, 한마디로 악몽이다.  대학 교육을 받은 평균치의 시민인 내가 신문에 발표된 이러한 당선작들을 도무지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엔 내 공부의 양이 한참은 모자란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이오덕의 주장대로라면 그런 글들은 `쓰레기 잡탕'과 불과하다.  글의 1차적 목적은 전달과 이해에 있다.  특수한 직업 세계의 전문용어를 담고 있지 않다면, 글은 써놓고 일반 시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평론 당선작들을 보라.  한국말을 썼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지나간 일이지만, 당선작을 낸 신문사와 심사위원들, 혹은 그 글을 쓴 작가 본인도 자신이 무슨 소리를 주절거린건지 모르긴 마찬가지 아닐까, 의심이 간다. 

 

"그 첫째는 `글은 말보다 어렵게 써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쉽게, 더 친절하게 써야 한다'는 사실이고, 다음 또 하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중국 글자말을 쓰지 말고 우리 말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오덕 <우리 문장 쓰기>, p.32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언어 교육이 초등학교 때부터 잘못됐단 생각을 했다. 요즘 아이들이 쓰는 글을 보면, 어른들처럼 유식하고 멋부린 문장들을 쓴다. 즉 흉내내기에 앞장서는 것이다.  교과서에 실리는 문장들은 어른 작가들이 쓴 글이고, 잘 쓴 글은 어른처럼 글을 유식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어릴때부터 새겨주었기 때문이다. 이오덕은 글쓰기의 기본은 문장에 있질 않고, 한 사람의 삶 안에 있다는 말로 이 잘못된 교육을 비판한다.  좋은 글은 자기가 사는 생활 안의 사실적인 사건들을 우리 말로 정직하게 써 내는 것이 기본이다. 소설가나 시인이 쓰는 언어는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글이 될 수 없다.  창작글은 작가들이 쓰는 글이기 때문에, 생활글과 갈라지고 그것이 글쓰기의 모범이 될 수가 없다.  굳이 우리가 작가들의 글쓰기를 흉내낼 필요가 없는 이유다.

 

이 책에서 얻은 다음 소득은 좋은 우리글이 되기 위한 요건들에 관한 것이다.  중국 문화권의 영향을 오랜시간 받아왔기 때문에, 일부에선 우리말과 한자말은 갈라설 수가 없고, 우리말을 잘하기 위해선 한자를 잘 알아야 한다, 라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다.  나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 왔던 것 같다.  우리말로만 글을 쓰기엔 어휘가 부족하기에, 중국글자말을 섞어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오덕은 이 책에서 수많은 예시문을 들고와 이런 주장의 허무맹랑함을 야단친다.   생각보다 굳이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우리글을 충분히 잘 쓸 수 있었다.  예시문에서 확인한 바로는 우리글로만 쓴 문장은 이해하기가 쉽고, 글도 훨씬 맛깔스러웠다.  즉,  잘 쓴 글은 유식한 중국글자말을 가져온다거나,  글의 멋부리기에 기대지 않는다는 거다.

 

고등 교과서에 나오는 기문독립선언문의 문장을 기억할 것이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로 시작되는 이 글은 우리 글인가?  일제 시대 민족 독립의 희망을 품고 써낸 이 글은 번역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요즘 학생들이 이 문장을 국어책에서 보고 이 한자 범벅인 이런 글을 왜 배워야 하는지?  묻는 학생은 없을 듯 하다.  우리가 이런 문장 교육을 받고 어른이 된 것이다.  문제는 100여년 전이나 오늘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데 있다.  중국과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지나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런 글을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며 한자말을 섞어 뜻도 알아볼 수 없는 문장들을 써 내고 있지만, 누구하나 반성하는이가 없다.   이 책에서 이오덕의 반복되는 주장은 한결 같다.  쉬운 우리말을 놔두고, 왜 번역이 필요한 한자어를 쓰고 그것을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것의 수치스러움을 깨닫지 않는 낯 두꺼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한자어를 쓰는 것은 말의 경제에서도 몹시 낭비되는 일이다.   우리말로 쓰면 될 것을 어려운 한자말로 쓰면서 해석이라는 또다른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보고 듣고 일한 것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 된다는 믿음을 거의 모두 잃어버리고, 글이라면 보통사람들이 쓸 수 없는 것으로, 거짓 얘기 잘 만들어내고 유식한 말재주 잘 부리는 특별한 재질을 가진 사람만이 쓰는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p.162

 

요즘 많은 글쓰기 관련 책이 출판되고,  글쓰기 교육이 활성화 된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책과 강의에선 글을 어떻게 잘 쓰느냐? 하는 기교나 기술을 가르치는데 힘을 모은다.  이런 모든 교육은 이오덕의 책을 읽고 난 후, 앞 뒤가 바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쓰는 민족은 다양하지만, 일본어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일본인과 중국인이 대다수다.  한국어는 말할 필요가 없다.  한글 속에는 민족과 문화라는 큰 뿌리가 심어져 있다.  한글을 빼고 한국인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이유다.  굳이 한글이 품고 있는 위대성에 관해 세계 석학들의 최근 연구 결과를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글이 오염되고, 훼손되면 민족 혼이 오염된다.   그래서 한글 속에는 한국이란 민족의 미래가 담겨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의 가치를 깨닫고 바른 한글 사용을 주장했던 이오덕과 쉬운 세벌식 자판 보급운동에 앞장섰던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 같은 분은 나라의 언어가 외국의 지배와 종속을 거치면서 오염된 현상을 고발하신 분들이다. 그들의 고발 내용은 그간 작은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염의 실상은 심각했고 그것을 알고 있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 오염을 주도했던 이들이 내노라하는 지식인들였단 사실은 실망스럽다.  지식인들은 대표적으로 한국어를 망치는 이들이다. 지식인은 글을 쉽고 쓰고, 이해할 수 있게 쓸 것을 이오덕은 이 책에서 몇 번이나 강조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글의 본래 목적은 이해와 소통이기 때문이다.

 

우리 말이 아닌 것으로서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의, ~ 적, ~ 등 은 일본말의 잔재다.  되도록이면 쓰지 않아야 한다.  `우리 미래, 창조, 생물학, ~ , 은 안 쓰고도 충분히 글을 쓸 수 있다.  특히 ~적 이란 말은 지식인들이 주로 많이 쓰는데 이건 명확한 일본말 어법이란걸 명심해야 한다.  ~적이라고 쓰는 대부분의 글은 유식한 말투로 쓰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영어 번역체의 문장들인 수동태 형식의 어법은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한다.  일본말과 중국말에 오염된 우리글은 또다시 영어 교육을 통해 번역체라는 괴물에게 피해를 입었다.   ~의하여, ~하여지다, ~되어지다, 그녀(이오덕에 따르면 그녀란 대명사는 우리말이 아니다. 오직 영어 번역체이므로 그녀를 쓰지 말고, `그'라는 한국어를 써야 한다), 완료형의 번역투인 ~였었다. 이었었고, 는 우리말이 아니다.  절대로 쓰면 안 된다.  다음으로 무수한 한자어들은 쉬운 우리말로 바꿔써야 한다.  한자말을 대체할 수 없다면 쓸 수 있겠지만, 가능한 글은 우리말로 쓰는 것이 맞다.  유식하게 보이려고 한자말을 골라 쓰는 것은 거짓 글쓰기에 앞장서는 것이다.  연근(蓮根)을 풀이한 국어사전에는 "연의 지하경"이란 괴상한 글이 나온다. 쉽게 풀이한 것이 아니라, 더 어렵게 쓴 것이다. 국어 사전이 일본의 책을 단순 번역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이오덕은 설명한다.   `연뿌리'라는 쉬운 우리말이 있는데, 연의 지하경이라니...?   국어 사전이 우리말 망치기에 앞장섰던 거였다.

 

~에로의, ~로서의, ~으로부터의, ~와의, 유년과 역사에로의 여행,  이런 글은 대표적인 영어 번역투이므로 쓰면 안 된다.  무수한 한자어들은 다 예로들수조차 없다. 몇가지를 들면,  종언(끝장, 마지막), 진화(불끄기), 노정(길), 화훼(꽃), 화제(얘깃거리), 전범(본보기), 사고(생각), 무수하게 많다. 우리말로 풀어 쓸 수 있다면 풀어써야 한다.  그게 훨씬 말의 경제를 위한 길이고, 글을 읽는 이를 배려하는 일이다.  한자어를 아무런 생각없이 가져다 쓰고, 한자 공부를 해야 우리말의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앞뒤 바뀐 주장을 하는건 잘못이다.  한자어를 쓰기전에,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로 쉽게 쓰려는 노력을 지식인부터 앞장서 실천해야 한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조금도 불리지않고,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쓴 글, 이런 글이 좋은 글이다.  생활감상문은 이런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드물다.  모두가 허세를 피우고 유식한 척, 잘난 척하는 속임수로 글을 쓰는 것 아닌가 ?  문학이고 뭐고 하기 전에 사람부터 되고 볼 일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학이라는 글들이 얼마나 말재주만 부려 놓은 글이고 거짓으로 차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p. 293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내가 써왔던 글들을 되돌아 봤다.  창피하고 수치스런 글을 써왔다.  책에서 읽은 작가들의 글을 흉내내고, 어려운 한자어를 섞어 유식한척 멋을 낸 경우가 흔하다.  일본어와 영어번역투, 한자어와 외래어의 무분별한 잡탕이 곧 내 글이었다.  이오덕의 <우리 문장 쓰기>는 내가 지금껏 읽은 그 어떤 글쓰기 책보다 훌륭한 우리글 쓰기의 교과서가 될만한 책이다.  글은 멋내고 과시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이오덕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사람의 일 세가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는 일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생활인은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소재를 발굴 할 수 있다. 골방에 들어앉아 책만 읽고 글만 쓰는 작가들은 반성할 일이다.  둘째는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오덕이 말하는 자기 표현이란 학자부터 노동자, 농민, 주부,어린이 모든 영역의 사람들이 자신의 정직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사회가 글쓰기의 바른 방향임을 의미한다.  세번째는 남들의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책읽기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의 삶이 일하고, 쓰고, 읽기라는 세가지로 돼 있다는 이오덕의 주장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삶 안에서 읽고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새삼 이 책에서 발견하고 내 생활가운데 글쓰기와 책읽기가 차지하는 남다른 비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 오직 살아 있는 우리 말을 쓴다는 것, 이것 만은 절대로 잊지 말고 ! "  이오덕 선생님의 한글 사랑이 책안에 절절하다.  한글을 바르게 쓴다는 것은 중국과 일본 미국이란 강대국의 지배와 통제끝에 남은 글의 오염을 고치는 일이었다. 이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다.   나라는 독립되었지만, 글은 식민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고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몰라서야 말이 되는가?   글쓰기의 목적을 제대로 알고,  우리 문장을 올바르게 쓰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2003년에, 한글을 사랑했던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님은 1995년에 돌아가셨다.  그분들은 죽었지만, 그들이 평생을 추구했던 한글 사랑의 뜻은 위대하다.  수많은 예시문이 함께 담겨 있는 500 페이지의 두툼한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이 책은 우리 글 바로 쓰기의 최고 교본이다.

 

 

 

 

2010. 4. 22

s*****7 2010.04.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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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써야 합니다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써야 합니다" 내용보기
시를 쓰던 버릇 때문인지 긴 문장의 글보다는 짧은 문장의 글에 익숙합니다. 쓰는 것은 물론 읽는 것도 마찬가지라서 한 문장이 여러 줄이거나 심지어 여러 쪽에 이르면 숨이 턱턱 막힙니다. 그러면서도 긴 문장의 글을 보면 글쓴이가 부럽습니다. 시를 쓰려고 하다 보니 호흡이 아주 짧아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만연체나 간결체, 강건체나 건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써야 합니다" 내용보기
시를 쓰던 버릇 때문인지 긴 문장의 글보다는 짧은 문장의 글에 익숙합니다. 쓰는 것은 물론 읽는 것도 마찬가지라서 한 문장이 여러 줄이거나 심지어 여러 쪽에 이르면 숨이 턱턱 막힙니다. 그러면서도 긴 문장의 글을 보면 글쓴이가 부럽습니다. 시를 쓰려고 하다 보니 호흡이 아주 짧아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만연체나 간결체, 강건체나 건조체 같은 구분은 우리 글의 현실에 아직 맞지 않으며 더구나 글쓰기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거의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이오덕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어떤 사건이 진행되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글이 만연체로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심리나 정신의 세계를 말하려고 할 때는 저절로 말이 길어집니다. 글을 군말 없이 간결하게 써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 모든 글이 지향해 가는 길입니다. 신문 잡지에 광고로 나오거나 거리에 나붙은 성명서 따위 글은 강건체일 것이고, 사전의 설명문이나 과학에 관한 해설이라면 저절로 건조체가 될 것입니다. 길게 쓰나 짧게 쓰나, 힘찬 글이 되나 부드러운 글이 되나 따위는 글에 담을 내용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이지 개성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자기가 쓰고 싶은 절실한 생각이나 이야기를 자기 말로 아무 형식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게 되었을 때 그 결과가 저절로 어떤 글의 맵시를 갖추게 된다면 문체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개성이 담긴 문체를 말할 단계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밖에서 들어온 남의 나라 말과 말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이 급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우리말과 짓밟혀 있는 우리말을 도로 찾아내어 글에서 살려서 써야 제대로 우리 글이 됩니다. 그러니 남의 문체인 중국글체, 일본글체, 서양글체를 똑똑히 알고 쓰지 말아야 합니다. 중국글체는 쓰지 않아도 될 중국글자말을 많이 쓰고, 거기에 따라 중국글을 읽는 말법으로 쓴 글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써 온 글은 소설이나 아이들이 읽는 글이 아니고는 거의 모든 글이 중국글체로 되어 있거나 중국글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정쩡한 문체로 되어 있습니다. ‘廣義’, ‘上昇’ 같이 중국글자로 적었거나, 우리 글로 적혀 있지만 ‘발화’, ‘귀의’ 같이 알아보기 힘든 말을 들 수 있습니다. ‘유일’, ‘회화’처럼 알아볼 수 있지만 ‘단 하나’, ‘그림’처럼 얼마든지 쉬운 우리말이 있는 경우도 들 수 있습니다. 일본글체는 일본식 중국글자말을 그대로 따라 쓰거나 일본글법을 그대로 옮겨 쓰는 데서 생겨났습니다. 많이 쓰는 일본식 중국글자말은 무슨 ‘- 적 ’, 무슨 ‘ - 적’하는 말이 있습니다. ‘ - 에 있어’( -에 있어서, - 에 있어서의), ‘ - 으로서의’, ‘- 에 의하여’, ‘보다’(어찌씨로 쓰는), ‘다름아니다’ 같은 말은 일본글법을 그대로 옮겨 쓰는 데서 생긴 것들입니다. 연달아 나오는 매김자리토(관형격 조사) ‘ -의’도 문제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말일 수 없고, 우리 글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일본 문체인 것입니다. 서양글체는 영어를 우리말로 옮겨 쓰면서 우리말을 살리지 못하고 그만 영문법을 따라 쓴 것이 버릇으로 되어 널리 퍼졌습니다. 성경에서 쓰는 ‘나의 하느님’ 같은 말은 ‘우리 하느님’으로 써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우리 어머니’이지 ‘나의 아버지’‘나의 어머니’란 말은 쓰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그녀’란 대이름씨도 쓰지 말아야 할 말입니다. 우리 우리말법에 없는 ‘ -었었다’같은 말, 그리고 ‘사용받게’ 같은 말처럼 입음꼴(被動形)으로 쓰는 말도 몰아내야 할 서양글체입니다. 남의 문체를 쓰지 않고 우리 문체로 글을 쓰는 지름길이 있으니 입말체가 그것입니다. 입말체란 입으로 하는 말을 잘 살려서 쓴 문체입니다. 입말체 문장은 그것을 읽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읽는 것을 귀로 들었을 때도 바로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글입니다. 입말체로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글은 아무래도 소설과 동화입니다. 하지만 소설과 동화도 글말체로 많이 오염되었으니 온전한 입말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필이고 논문까지 모든 글을 입말로 쓰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g*******g 2004.1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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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죠..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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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님의 우리 문장 쓰기 책은 매우 훌륭하다. 일종의 우리말 쓰기와 실례에 대한 매뉴얼 북이다. 저자이신 이오덕 선생님은 한글, 곧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고 좋은 문장은 사람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한국 근대 역사 속에서 오도된 글의 남발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데 그것은 우리말에 대한 부족과 이해력이 모자라서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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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님의 우리 문장 쓰기 책은 매우 훌륭하다.

일종의 우리말 쓰기와 실례에 대한 매뉴얼 북이다.

저자이신 이오덕 선생님은 한글, 곧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고

좋은 문장은 사람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한국 근대 역사 속에서 오도된 글의 남발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데

그것은 우리말에 대한 부족과 이해력이 모자라서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글은 누구나 쓸 수 있고 남겨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t 2022.08.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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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의 참 맛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우리말과 글의 참 맛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내용보기
논문준비 중에 산 책이다. 논문을 쓰려다 보니 책을 볼일이 많았다. 남이 쓴 논문도 '어떻게 썼나' 하고 좀 보아야 하고 여러 전문서적도 보아야하는데 글을 어찌나 어렵게 썼는지 전공자인 나도 어려워서 책을 덮었다, 펼쳤다했다. 은, 는, 이, 가, 빼놓고는 다 한자만 쓴 책도 많고, 문장도 길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한참이나 생각해야 될 경우가 많았다. 나라도 누구나 쉽게 읽
"우리말과 글의 참 맛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내용보기
논문준비 중에 산 책이다. 논문을 쓰려다 보니 책을 볼일이 많았다. 남이 쓴 논문도 '어떻게 썼나' 하고 좀 보아야 하고 여러 전문서적도 보아야하는데 글을 어찌나 어렵게 썼는지 전공자인 나도 어려워서 책을 덮었다, 펼쳤다했다. 은, 는, 이, 가, 빼놓고는 다 한자만 쓴 책도 많고, 문장도 길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한참이나 생각해야 될 경우가 많았다. 나라도 누구나 쉽게 읽고 논지를 이해할 수 있게 써보자는생각에서, 배우려고 산 책이다. 글쓴이 이오덕선생님은 평생을 바쳐 우리말과 글을 살리는데 애써오신 분이다. 책이 두껍고 제목이 '우리 문장 쓰기'여서 좀 어려워 보이지만 내용은 절대 그렇지 않다. 한자어나 일본, 중국식 말을 빼고 알아듣기 쉬운 우리말로 다듬어쓰신 글이 소설책읽듯이 쉽게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여러가지 예문을 통해 그동안 우리말과 글이 어떻게 오염되어 왔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관해 진지하면서도 냉철하게 써내려가셨다. 배운점이 많다. 내가 써온 글이 그동안 좀 배웠다고 너무 어렵게만 써 온 것은 아닌지. 또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우리말인줄로만 알고 당연하게 써 온것은 부끄러웠다. 지금 이 글도 마찬가지겠지만. 논술준비를 하는 수험생이나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우리말 바로쓰기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꼭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태어난다는 말도 그렇다. '출생' '탄생' 같은 중국글자말을 쓰지 말고 '났다.' '태어났다'로 쓰는 것이 좋다. 그밖에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길을 가고, 일을 하고, 얘기를 하는 데 쓰는 모든 말을 쉬운 우리 말로 쓰면, 말이 찢겨져 서로 맞서 부딪히지 않고 하나의 세계에서 더욱 넉넉해진다. 물론 어른들에게 쓰는 존대말은 그대로 써야 옳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아이들에게 '아빠'라고 말하게 해놓고는 그때마다 '-께서'를 붙이게 하는 괴상한 말하기 교육은 고쳐야 하겠다.
q********1 2000.1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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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을 바르게 쓰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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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글쓰기 시간이 괴롭고 싫었다 기계처럼 은유법과 상징을 찾고 서론과 본론을 나누고 느끼기 보다 막연히 외우는 것이힘들었다 글쓰기는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상을 하고 멋을 부리고 하는 글을 쓰는게 어려웠다 그런데 글은 으례히 그렇게 써야 한다는 내생각이 잘못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이선생님 책을 읽고서다 처음엔 글쓰는 것에 대해 어렵고 딱딱한 개념들을 설명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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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글쓰기 시간이 괴롭고 싫었다 기계처럼 은유법과 상징을 찾고 서론과 본론을 나누고 느끼기 보다 막연히 외우는 것이힘들었다 글쓰기는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상을 하고 멋을 부리고 하는 글을 쓰는게 어려웠다 그런데 글은 으례히 그렇게 써야 한다는 내생각이 잘못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이선생님 책을 읽고서다 처음엔 글쓰는 것에 대해 어렵고 딱딱한 개념들을 설명을 해놓는 책인줄 알았다. 잘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형식을 지루하게 늘어놓는 그런 책들말이다 그런데 이선생님의 글은 쉬웠다 너무나 옳으신 말씀들이라 가슴에 속속 들어왔다 쓸때는 쉽게 풀어서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이 잘 드러나도록 써야 한다는 간단하면서도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책이다 지금 우리에게 우리말을 사랑하는 모습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한자에 치이고 영어에 밀리고 TV방송과 신문에서 잘못쓰여진 말들을 보면서 옛날에는 이상하거나 부끄럽지 않은 일로 느끼고 살아왔다 아니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먹을거리를 먹거리라고 쓰고 걱정이나 부끄럽다는 말 대신 약속이나 한것 처럼 다들 우려니 민망하다니 하는 말을 쓰고 있는 걸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고 된다 이책은 우리말에 대한 조그마한 관심이 있거나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낀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면 한 번쯤 읽고 우리말과 글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선생님이 보여주신 우리말에 대한 사랑과 이해 그리고 평생을 교육과 우리말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오신 점을 본받았면 싶다.
a***a 2002.05.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