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은 답을 찾는 학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질문을 던지는 법이야말로 과학의 출발점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장하석 교수는 교과서 속에서만 보던 포퍼, 쿤 같은 과학철학자 이야기를 생활 속 사례와 연결해 풀어낸다. 예를 들어 “물은 항상 100도에서 끓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이 사실 얼마나 복잡한 과학적·철학적 배경을 품고 있는지 차근차근 보여준다. 온도계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도 얼마나 많은 가정과 해석이 들어가는지 듣고 나면,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과학 지식들이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책의 문장은 학술서처럼 딱딱하기보다 대화하듯 풀어가는 편이라, 과학철학에 문외한인 나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철학적 깊이가 깊어져서, 잠깐 멈춰 곱씹게 되는 구절이 많았다. 오히려 그 ‘멈춤’이 이 책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
|
어린시절 공상과학만화를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 과학자가 되기를 꿈꾼적이 있을 겁니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어느 정도 충족 시켜 주는 듯 합니다 기본 원리라고 생각됩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독선적인 종교,사상이나, 철학으로 인류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했는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책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
|
일단 아쉬움부터... 전자잉크 기반의 전자책은 우려하던대로 삽화들이 흑백이라는 한계가 명백하더라. 화보/삽화가 아주 많은 건 아니지만, 그걸 흑백으로 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흑. 그렇다고 패드/태블랫을 들고 보는 건 아직 그리고 점점 더 눈에 안 좋을 것 같고. 흠... 살짝 고민이다. 몇년 전 장하석 선생이 EBS에서 강의를 하는 것을 얼핏 봤을때 정말 꽤나 놀랬다. 그 얼마전(1~2년 남짓 전)에 그의 '온도계의 철학'을 보고서 정말 감동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 인물이 한국적 토양에서 TV 매체를 통한 대중강연을 하다니. 잘난체를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사회를 무시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도 아닌 과학철학자가 이런 대우를 받게 되다니... 내가 그쪽 사람들을 잘 알지 못하니, 이 분의 책이 나오고 강연이 있은 후 한국사회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에 대한 정보나 판단들을 알지는 못한다. 다만, 얼핏 어떤자리에서 만난 과사철 대학원을 졸업했다는 이의 말을 통해, 전공 분야에선 이 분의 저작들도 레퍼런스로 사용되고 있다는 정도(이전부터)를 추측할 수 있었다. 내가 그의 온도계의 철학을 왜 그리 좋아했을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면서 본 저작을 읽어나갔다. 강의내용을 바탕으로 해서인지 더욱 쉽게 읽혔고, 소위 엑기스들이 잘 정리되어 있단 생각을 하게 되더라. 꼭 이 사람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나름 자연과학을 전공한지 30년이 좀 못 미치는 인생을 살아온 나로서 100% 동감할 만한 이야기가 "과학자에게 과학방법론에 대해 물어보라. 아마 그는 엄숙하면서도 도피성을 띤 표정을 보일 것이다. 엄숙한 것은 자기가 의견을 표현해야겠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고, 그러나 사실 정리된 의견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감출 수 있을까 궁리하느라 겸연쩍어지는 것이다."라는 인용이었다. 영국의 생리학자 메다와라는 이의 말이란다. 우리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고, 거론 될 것으로 예상되는 몇몇 키워드들이 있으나, 그걸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는지?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될 핵심어는 '성실과 꾸준함'일 것이다. ... ㅎㅎㅎ 여기 어디 일반인들이 말하는 '과학'이 있냔 말이다. 대부분 '실재론'이라고 표현되는 '궁극적인 진리의 실재'에 대해 철썩같이 믿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그 '시재'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하면 오만가지 추상적인 너스레를 떨어대는 이들이니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의 발전 과정은 단순한 진보가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융합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기준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보수적 의무감과, 그러나 옛날보다는 더 잘해야 한다는 진보적 의무감을 동시에 소화해내야 합니다. 과학뿐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도...." 허허, 이게 뭔 공자님 말씀이랍니까? 오히려 정치하는 사람이 좋아할 말인 듯도 하다. 하지만, 이도 심히 공감하게 되더라. 오죽하면 이 책을 보면서, 언제 기회가 되면 장하석 교수를 WMO 회의의 초청연사로 모셔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나마 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과학과 정치가 가장 난맥처럼 얽혀있는 국제조직 사람들과 성찰을 공유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또한 저자는 "인간이 진리를 갈구하는 것은 종교적 열망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한다. 과학에 대한 열망 또한 이같은 정서적 기반이 있다는 이야기. 과학자들이 들으면 펄쩍 뛰면서 '몰라도 한참 몰라서 하는 얘기다'라고 할 것도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맹목적인 팩트들의 배경을 추적해나가려는 미시적 과학자의 시도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무엇이냐? 강박이냐 진리추구냐? 와 같은 식으로 물어보면 후자라고 99% 말할 것으로 보이고, 그것은 종교적 열망과 다르지 않다고 나는 동의할 수 있겠다. 물론 그 99% 보다 많은 대답을 거부하는 생계형 과학자, 공학자들이 더 많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이를 중재하기 위해서랄까? 나름의 합리적 대안을(과학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한)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에선가 저자는 "과학의 임무는 자연에 대한 '진리'가 아니라 '진상'을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좀 더 냉정하고 합리적인 입장을 취하는 과학자들은 정말 절충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다. 이 즈음에서... 장하석이 하는 이야기가 새로운게 별로 없다는 생각들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지식과 그리고 과학행위와 관련된 의지와 의식, 노력에 대한 설명을 이처럼 조근조근 합리적으로 해내는 사람이 또 어디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힘과 견고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러한 태도와 문체가 내가 그의 책과 글에 열광? 동감!!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더라.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저자가 다소 우호적인 입장으로 소개하는 인물이 노이랏이더라. 노이랏의 과학통일운동(unity of science movement)에 대한 소개, 즉 과학이 어떻게 하면 사회를 정의롭고도 효율적으로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는 운동이다. 이는 단순 통일이론 이야기가 아니고, 또한 생산력 발전의 원동력으로서의 과학기술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맥락애서 종교적 혹은 윤리적 목적론과 연결되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열망을 말하려는 움직임이었다고 본다. 이는 다소 과학지식의 발전 메커니즘을 기계적/논리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을때 가능한 주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그 논리에서 도덕적 선언과 정치적 행위로 전환하는 것에는 갭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와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정합주의'라는 철학적 이야기는 하는데, 이는 "지식의 정당화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이 서로 잘 맞아떨어지는가를 보는 것 이상은 없다"라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비트켄슈타인을 인용하면서 "정당화가 잘 된 믿음의 토대에는 정당화가 안 된 믿음이 놓여있다"라는 말도 하니... 그 정합이라는 것의 한계 또한 장하석은 지적한다. 역시 과학과 사회를 논리적으로 연결하기는 쉽지 않은 듯 한다. 이렇게 요원하기만 한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설명시키기 위한(그 이상을 위한) 철학적 관점을 발달시키는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자가 하는 모든 연구행위는 '지식이란 무엇인가?' 하는 기본적 입장을 기반으로 합니다. 대개의 과학자들이 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특정한 과학철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이 과학자들의 순순하 연구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마치 자유시장경제를 무정부상태와 동일시하는 것과 같은 착각입니다. 과학자가 과학연구를 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사회적 제도가 뒷받침 해주어야 합니다. ... 과학정책과 과학교육" 이 이야기가 새로운가? 그럴 리는 없다. 하지만, 역시나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정리하는 글쓰기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장 혹은 철학체계를 주장하기 위해 패러다임이 아닌 '실천체계'라는 개념으로 과학하는 스타일을 이야기한다. 그 실천체계의 바탕으로 '관용의 이득'과 '상호작용의 이득'을 이야기하며, 각각 또 다음과 같은 이점을 주장한다. * 관용의 이득 - 예측불허를 대비하는 보험, 지적 분업의 가능, 다발적 성취, 여러가지 목적의 달성 * 상호작용의 이득 - 다른 체계간의 융합, 교류를 통한 채택, 경쟁을 통한 발전 나의 거칠은 표현으로 과학은 어쨌거나 프로세스고, 그 객관성이 다른 지식체계에 비해 강점을 가지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저자는 나의 그 나이브한 주장을 조목조목 보강해주는 것 같아 좋다. 건방지게 '보강'이라고 했으나, 솔직히는 그의 주장에 부합할 것 같은 내 나름의 과학관이 있다는게 기쁘다. 어쨌건, 저자는 은근 슬쩍 다음과 같은 강력한 주장을 한다. "과학의 독재도 독재다"라고. 그래, 나쁜 건 나쁜거다. 살다보니 과학자들이 모여있는 집단들은 은근히 뉴아틀란티스 같은 모델을 통해 자기 밥그릇을 챙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도 같다. 그에 대해 일침을 놓을 수 있는 건강한 철학이 바로 장하석의 철학이 아닌가 싶었다. ** Jean-Andre De Luc이란 제네바 사람의 물끓이기 실험 사례에 대한 소개는 여전히 감동적이다. 특히 이 사람은 기상학 관측법의 역사에서도 언급이 되어야 할텐데... 역시 WMO에서 장하석을 소개시켜야 할 것 같다. ㅎㅎㅎ |
|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장하석/지식플러스/2015
모든 것에 역사가 있듯이 과학에도 역사가 있으며 과학 그 자체가 철학에서 나온 것인만큼 과학이 철학을 만났다는 제목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이 철학이라는 것이 지금 보면 과학과 신학이라는 양 극단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었으니 흠...제가 딴지 건거 같네요. 1장의 제목은 어렵게도 과학지식의 본질의 찾아서입니다만... 내용은 흥미롭게 시작합니다. 도대체 과학이 뭐가 그렇게 잘났느냐, 그럼 잘난 이유는 무엇이냐, 굳이 들자면 그 이유는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계속되는 논쟁 포퍼의 반증주의와 쿤의 정상과학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사람이 뭘 알다라고 하는 걸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가 연역이거나 귀납이거나 다 한계가 있고, 뭔가 정확하게 수치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과학적 방법인데 그 수치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정확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도대체 수치화 할 수 있는 것을 수치화 한 것인가.... 라는 그야말로 근원적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자칫하면 환원주의에 빠지기 쉬운 과학의 세계에서 진보란 과연 있긴 한 것인가 하는 고뇌에 이르기 까지 저자의 질문은 이어집니다. 과연,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과학적 사고라는 거겠지요. 2장은 좀더 실재적입니다. 과학적 사고가 역사적으로 어떤 연구 결과를 가져왔고 그 오류들이 어떻게 수정되어 온 것인지, 그리고 그 오류로 인해 사라진 이론들 중에는 그 오류만 제외하면 다른 사고의 방식들은 얼마든지 좋은 영향을 주어 다른 쪽으로 유용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도 이야기하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과학사를 읽으면서 늘 느끼는 것은 과학은 삽질의 역사라는 겁니다. 아니, 학문 중에서 그렇지 않은 것이 도대체 뭐가 있단 말입니까!
온도계의 철학보다는 조금 덜 어렵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책들이나 저자들에 관해서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
|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반인의 과학에 대한 태도와 접근법인 것 같다. 전문가의 의견에 무조건 맹신하지 말고, 한번쯤 의심도 해보고 공부도 함으로써 성찰능력을 키우라고 강조한다. 과학의 권위에 저항없이 순종하는 것은 결국 권력 수용적인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최소한의 과학적 수양 및 과학사의 탐구를 통해 성찰하고 전지의 발명, 끓는점의 논쟁 등등 과학사의 한 단편에 불과한 사건들이 반세기동안 입씨름과 연구의 주제였다니
솔직히 말해서 강력하게 권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일독을 하는 것이 분명 일반인의 지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삽화를 통해 과학사의 흐름과 발전을 이해하는 데도 솔솔한 재미를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