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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맹인모상'에 관한 글이 있다. 맹인들이 코끼리의 서로 다른 부위를 만져보고 코끼리의 생김새를 설명하는 이야기다. 누구는 다리를 만지고 '기둥 같다'말하고, 누구는 코를 만지고 '뱀 같다' 말한다. 귀를 만진 사람은 '부채 같다' 말하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빗자루 같다' 말한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한치 거짓없는 명백한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진실'이라 하여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진리'의 일부분일 뿐 일부만 정확하게 꿰뚫어본다하여 그것이 '본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맹인모상'에 따르면 인간이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더 정확하게 더듬어 볼 것이 아니라 감고 있는 눈을 떠야 한다. 대상을 가만히 지켜보고 옆으로, 앞으로, 뒤로 심지어는 그 속과 외면, 내면, 행동을 포함하여 완전한 해체 상태를 인지하는 것을 두고 '안다'고 할지 모른다.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고 할 때, 그 '앎'이 피상적인지, 본질적인지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사과'를 보고 '사과'를 안다, 말할 수 있지만 사과가 어떤 토양에서 자라는지, 어떤 계절을 견뎠는지, 왜 붉은 색을 띄게 됐는지,는 알지 못한다. 사과의 표면에 튕겨나온 광자가 전달한 피상적 정보를 가지고 '안다'고 말할 뿐이다. 이것은 눈을 감고 코끼리를 면밀하게 뒤적거리던 여러 맹인 중 하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 'TV'나 '책', '교과서'에서 보면 '가족'을 그리는 통상적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 아버지는 양복을 차려 입으시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넥타이를 고쳐 주신다. 아버지가 출근 할 때, 구두를 신고 '다녀오겠소' 하면, '잘 다녀오세요' 하고 아이와 어머니가 배웅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 사회가 정답으로 정해둔 정상적 가정의 '형태'가 아닐까, 다른 가족과 달리,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두 분 다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셨다. 해가 뜨면 농사일은 진행하기 힘들기에 부모님은 새벽처럼 밭일을 나가셨다. 일을 마치면 땀에 젖은 작업복을 보며 우리집은 '비정상인가',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어느 가정과 다르지 않게 부모님은 자상하셨고 책임감 있는 분들이셨다. 가정의 모습은 모두 다를 수 있다. 그것을 어린 시절 한번 피상적으로 이해했고 이후 나이를 조금 먹고 다시 알게 됐다. 고등학교로 입학을 하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의 범주가 넓어졌다. 모든 아버지가 책임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모든 어머니 역시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아이들은 친척에 의해 길러졌고 어떤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서울로 혹은 해외로 일하러 가신 아버지를 수년간 보지 못한 아이도 있었고 지금 생각하기에 '학대'라고 생각이 드는 집도 있었다. 그닥 헌신적이지 않은 다른 아이들의 '부모'를 보며, 사실 '저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 일거야'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 안에 '가족'이라고 하는 '일반화'가 너무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가족의 보호를 받는 '아이'의 입장에서 또다른 '가족'을 형성하게 된 '성인'이 입장이 됐다. '게임에 중독된 아이', '어린 시기부터 도박을 하던 아이', '굉장히 이기적이거나 무책임한 아이'들은 어느 경계도 없이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갖게 됐다. 그들에게 아무런 가이드라인도 정해주지 않은 사회가 제대로 된 '가정'의 이미지를 전달하기란 쉽지 않았다. 각자 자신만의 가치관대로 아이를 기르기 시작했고 역시 우려하는대로 '사회'는 '아동학대', '방임' 등의 문제를 '통계'로 보여주곤 했다. '에이먼 돌런'의 '가족해방'은 어느 봄날 오후 자신의 어머니와 절연하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머니의 어느 모욕적인 말에 작가는 어머니와 절연을 선언한다. 저도 모르게 '철 없는 행동'이라, '나중에 깊은 뜻을 알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 것을 봤을 때, 나 역시 눈을 감고 내 몫에 할당된 코끼리의 어느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리고 살았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세상에는 각자의 세계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여러 모양이 있다. 어쩌면 나 역시 그럴 것이고, 그들 역시 이쪽을 그렇게 바라 볼 것이다. 그런 모습들은 가끔씩 '사회'를 보여주겠노라, 조사하는 어느 기관에 의해 한번씩 공개 되는데, 서로가 가지고 있는 카드를 열어 보이며, '아, 저런 패를 들고 있었구나'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어느 책에서 보건데 이런 말이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폭력적인 관계를 포함하여 다양한 문제로부터 가족을 떠나는 사람을 보면서 가지고 있는 세계가 이렇게 작다는 또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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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노년의 부모님을 부양하고 아픈 엄마의 병간호를 도맡아 하는 내 삶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이가 있는 한편, 왜 자신의 삶을 살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도 있다. 당연히 받아들여 온 가족의 형태이기에 가족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궁금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편집자 중 한 사람인 저자는 가족을 무조건 회복해야 할 관계로 보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 가족 내에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목인 <가족 해방>은 가족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온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을 보여준다. 저자는 학대, 죄책감, 침묵, 화해의 강요가 어떻게 피해자를 다시 가족 안에 묶어두는지 차분하게 보여준다. 가족과의 절연을 불행한 결말이나 도덕적 실패로 보지 않고, 더 이상 자신을 해치는 관계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판단으로 설명한다. 가족이니까 이해해야 하고, 가족이니까 용서해야 하며, 가족이니까 끝까지 곁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얼핏 당연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 말이 반복될수록 피해자의 고통은 쉽게 지워진다. 가해자의 책임은 흐려지고, 피해자는 관계를 끊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죄책감을 떠안게 된다. 이 책에서는 가족을 감상적으로 미화하지 않고 가족이 언제나 안전한 장소라는 믿음을 의심한다. 이러한 주장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 역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으니까. 특히 가족 중심의 정서가 강한 사회에서는 가족과의 절연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는 모든 가족 관계를 끊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관계는 회복보다 단절이 더 정직한 선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그 관계가 한 사람의 삶을 실제로 지탱하는지, 아니면 계속 훼손하는지의 문제다. 지금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족의 형태는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피해자에게 끝없는 이해와 용서를 요구하는 대신, 떠날 권리와 살아남을 권리를 말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한 사람을 계속 상처 입힌다면, 그 이름에서 벗어나는 일 역시 하나의 회복일 수 있다. 가족 안에는 저마다의 상황이 있고, 감당해야 하는 관계의 무게가 있다. 그 모든 선택을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누군가의 고통을 지우는 말로 쓰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서제공 #도서리뷰 #서평 #가족해방 #에이먼돌런 #복복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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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가족을 부양하고 아내는 집안일을,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아이로 구성된 이성애 혈연 중심의 핵가족을 '정상가족'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이데올로기는 문제가 있다. 성역할을 당연시하고 입양, 동거, 재혼, 한부모, 조부모가 부모를 대신하는 등 여러 가족 형태를 결핍된 것으로 낙인찍는 차별 때문이다. 이건 가족의 구성 형태 측면에서 바라본 문제점이고 이들 가족 내부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가족 내부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학대 말이다. 정상가족에서는 학대가 없고 비정상 가족에서는 학대가 있을까? 오히려 정상가족이 가부장적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정상가족에서 더 학대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까? 게다가 정상가족이라는 포장 때문에라도 가정 내 학대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쓸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편집자로 알려진 에이먼 돌런은 자신의 첫 책 <가족 해방>에서 본인이 유년 시절과 그 이후에 겪은 가족 내 학대 이야기를 솔직하게 내어놓는다. 그리고 (이 책의 특별한 점이기도 한데) 문제가족으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으로 '절연'이란 답을 내놓는다. 절연하는 것만이 '가족 해방'이라고 정의한다. 가족 내 학대로 보통 네 가지를 꼽는다. 우선 우리에게 익숙한 신체적 학대와 성적 학대가 있다. 그리고 심리적 (또는 정서적) 학대와 방임이 있는 데, 이 둘은 우리 사회가 쉽게 지나쳐버린다. 학대라는 인식이 부족한 결과다. 에이먼 돌런은 주로 심리적 학대와 방임에 초점으로 맞춰 이야기를 풀어간다. '처음에는 우리 집이 정상적이라는 착각이 나를 침묵하게 했고, 그다음에는 내 처지가 비정상적이라는 부끄러움이 나를 침묵하게 했다. (p. 34)' 침묵은 학대자가 학대를 멈추지 않도록 돕는다. 자녀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학대는 이어진다. 가족 내 학대에 관한 가혹한 진실을 감추는 데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무조건 칭송하는 종교 사회적 가르침이 한몫한다. 저자는 왜 학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화해가 아닌 절연을 말했을까? 학대자가 학대를 멈출 가능성이 희박해서이다. 혹시 가해자가 뉘우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저자는 대부분 그러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절연은 쉽지 않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절연 규칙을 정해 학대자에게서 힘을 빼앗을 것을 권한다. 그래야 절연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절연으로 되찾는 기쁨과 강점, 자기인식을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절연으로 인한 크나큰 어려움을 여기에 기대어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p. 251)' 절연함으로써 가족 해방을 이루어냈을 때, 학대자로부터 그동안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죄책감 같은 아픔이 뒤따를 수 있다. 이럴 때는 나를 학대함으로써 내게 진 빚에 비하면 내가 받은 건 너무 변변찮고, 우리가 받은 고통에 대한 배상이라고 여길 필요가 필요하다. '이 책의 중심 주제 중 하나는 우리 생존자들이 어떻게 학대받았으며 그 학대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밝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치유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족의 학대에 집중했지만, 이제 그 '학대자'의 범위를 사회까지 확대해야 한다. (p. 330)' 추천의 글에서 정희진은 '가족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상가족이든 비정상가족이든 생물학적 가족 이데올로기는 근대의 신화이자 규범일 뿐이다. 절연을 통해 나를 지지하는 이들과 사랑, 돌봄, 정서적 유대로 선택 가족으로서 친밀함을 유지한다면 또 하나의 방식으로 가족 구성을 실천하는 셈이다. 학대자와 절연은 생물학적 가족 이데올로기와 절연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행복한 가정 서사는 생물학적 가족에게만 적용되어왔다. 그런 왜곡이 가족 내 학대 문제를 흐리게 만들기도 했고. 그런 면에서 에이먼 돌먼의 '절연'은 가정 내 학대를 벗어나는 해결책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가족의 개념을 재정립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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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때로는 가장 은밀한 지옥이 되기도 하는 가족이라는 거대한 환상을 해체한 책 『가족 해방』. 우리는 흔히 천륜을 말하며 가족 간의 갈등은 무조건 화해와 용서로 풀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미디어가 보여주는 눈물겨운 화해 극본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그래도 부모인데 네가 참아야지"라는 주변의 은근한 압박(가스라이팅)에 숨이 막혀본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은 마음을 뻥 뚫어줄 지적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에이먼 돌런 저자는 미국 출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베테랑 편집자입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편집하며 종교적 도그마에 균열을 내었고,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통해 거대 자본이 숨겨온 먹거리의 추악한 민낯을 폭로했습니다. 사회적 통념에 맞서며 대중의 생각의 틀을 바꿔온 그가, 이번에는 가족이라는 거대한 우상에 날카로운 기획의 메스를 들이댔습니다.
놀랍게도 저자 스스로가 자신과 형제자매를 수십 년간 학대한 어머니와 단호히 관계를 끊어낸 실제 '생존자'입니다. 수년 동안 자신과 같은 문제의식을 대변해 줄 학자나 전문가를 찾아 헤맸지만, 유독 가족 문제에서만큼은 학계와 사회가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답답해서 내가 직접 썼다"는 당사자의 생생한 목소리와 30년 넘게 명저들을 만들어오며 다듬은 탁월한 집필 능력이 결합되어 이 책 『가족 해방 The Power of Parting』이 탄생했습니다. 에이먼 돌런은 그동안 외면해 온 가정 내 폭력의 지표를 보여줍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빈번하고 잔인한 신체적, 정서적 학대의 가해자는 원가족이습니다. 학대는 신체적 학대, 심리적 학대, 성적 학대, 방임으로 나뉩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까지 행동해야 학대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여전히 모호합니다. 내가 겪은 일이 학대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 마음이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가에 주목하라고 조언합니다. 많은 피해자가 성인이 된 후에도 "내가 너무 예민한가?", "부모님도 그때 힘들어서 그랬겠지"라며 가해자의 입장을 대신 헤아려주곤 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며 불안해하는 그 성격적 특성 자체가 이미 어린 시절 겪은 유년기 트라우마의 명백한 증거인 셈입니다. 생존자들을 더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시스템의 배신입니다. 정신의학계의 바이블로 통하는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은 복합 PTSD(지속적인 학대로 자아 정체성과 인간관계 능력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질환)의 등재를 거부해 왔습니다. 유년기 내내 이어진 학대로 뇌 구조 자체가 변형되는 이 중대한 질환을 단 한 번의 큰 충격으로 생기는 일반적인 PTSD 범주로 대충 묶어버린 것입니다. 여기에 대중문화와 소셜미디어를 장악한 유해한 긍정성(Toxic Positivity)은 결정타를 날립니다. 과거를 용서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라는 자기계발식 압박은 고통의 원인을 똑바로 바라보기보다 생존자의 입을 막아버립니다. 결국 이는 상처를 준 가해자와 이를 방치한 학대 사회를 보호하는 비겁한 방패막이가 될 뿐입니다. 천륜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왜 해롭기만 한 관계를 끈덕지게 붙잡고 있었을까요? 돌런은 의무감과 금기라는 가짜 신화가 우리의 시야를 흐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베푼 물질적 지원을 '기르는 데 든 비용' 혹은 '은혜'라는 채무 관계로 둔갑시키는 영악한 가스라이팅이 있습니다. 학대자들은 결코 쉽게 피해자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카멜레온처럼 태도를 바꾸며 생존자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가족 해방』은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존자가 주도권을 쥐고 명확한 규칙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타인의 변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정서적 안전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 이 단호한 규칙을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생존자는 비로소 "내가 너무 매정한가?"라는 소모적인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치유 주체로 우뚝 서게 됩니다. 마침내 물리적, 정서적 절연을 감행했다 하더라도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진짜 힘든 싸움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학대 부모가 육체적으로는 내 곁에 없을지라도, 그들이 유년기 내내 심어놓은 저주의 말들은 우리 내면의 독백이 되어 끊임없이 스스로를 갉아먹습니다. 돌런은 이 위선적인 내면의 목소리를 식별해 내는 것이 회복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인지행동치료적 도구인 반대행동을 제안합니다. 내면에서 "넌 꼴불견이야"라는 메시지가 울려 퍼질 때, 책 속의 수많은 생존자들이 실천했듯 무조건적인 수용 대신 예민하게 그 주파수를 감지하고, 의도적으로 "아니오"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대접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는 연습입니다. 에이먼 돌런은 절연이 가져다주는 찬란한 해방감을 감정적 호소가 아닌, 압도적인 통계와 임상 데이터로 증명해 냅니다. 부모와 천륜을 저버리면 평생 불행하고 죗값을 받으며 살 것이라는 세상의 저주가 얼마나 거대한 기만이었는지 낱낱이 깨부숩니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가족과 절연한 생존자들은 이후 자신의 삶을 '해방, 축하, 안도' 같은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무려 80%에 달합니다. 가족과 인연을 끊은 대다수의 생존자가 오히려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했다는 이 수치는 절연이 비극적인 결말이 아니라 영혼을 구하는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저자 역시 마흔이 넘은 나이에 어머니와 결별한 후 "마치 키마저 자란 것 같은" 신체적 해방감과 안도를 느꼈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합니다. 물론, 해방의 공기 속에서도 가끔은 묵직한 슬픔의 파도가 밀려옵니다. 가해자가 여전히 살아 있고 관계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현재 진행형의 상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미해결된 슬픔과 주변 사람들의 무례한 오지랖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가족의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라고 권고합니다. 우리에게 나를 학대하는 원가족은 필요 없지만, 인간으로서 온기를 나눌 공동체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환대하는 사람들을 직접 발굴해 내어 구축하는 선택 가족의 개념을 제시합니다. 상처 입은 생존자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연대할 때, 우리는 원가족이라는 좁은 감옥을 넘어 온 세상과 깊고 안전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무한한 힘을 얻게 됩니다. 『가족 해방』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신성가족 우상을 완벽하게 해체한 지적 투쟁의 결과물입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화해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신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길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짜 위로와 무조건적인 긍정 압박에 깊은 피로감을 느끼는 트라우마 생존자들을 위한 책입니다. #가족해방 #김은지 #복복서가 #인문 #사회문제 #원가족 #선택가족 #가스라이팅 #학대 #트라우마 #인디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