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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 불교 연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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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문고의 가치는 여타 많은 문고판들을 능가한다. 항상 작지만 가치 있는 책들을 펴 낸다.   책은 정체성을 잃은 우리 불교 연구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조선 시대를 거치며, 일제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우리 만의 불교 연구 방법을 잃어 버렸다. 급기야 일본에서 수입한 서양의 문헌학적 연구 방법을 어설프게 흉내내며 그것이 근대적 방법론이라고 주장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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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문고의 가치는 여타 많은 문고판들을 능가한다. 항상 작지만 가치 있는 책들을 펴 낸다.

 

책은 정체성을 잃은 우리 불교 연구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조선 시대를 거치며, 일제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우리 만의 불교 연구 방법을 잃어 버렸다. 급기야 일본에서 수입한 서양의 문헌학적 연구 방법을 어설프게 흉내내며 그것이 근대적 방법론이라고 주장했다. 그 어설픔은 다시 어설픈 민족주의로 빠져 든다.

 

우리의 전통적인 불교 연구 방법인, 부처님의 말씀을 일관된 체계로서 이해하고 그것이 실수행에 도움이 되게 한다는 방법론은 서양의 문헌학적 방법론 입장에서는 근거없는 생각의 나열일 뿐이다. 정확한 언어학적 근거가 있고, 그 근거하에 부처님의 원래 말씀을 찾으려고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양의 방법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급기야 우리 불교학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서양 근대 이성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의 전통적인 불교학 방법론은 비이성이나 비합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주체적 불교 방법론을 세우지 못 하고, 서양의 연구자들이 연구한 자료들을 따라 읽거나, 서양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그치고 만다. 우리 불교를 우리 눈으로 보지 못 하고 서양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가 전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못 하지만, 마지막에 이한정이라는 분의 연구 방법론을 예로 제시하고 있다. 예스이십사에서는 따로 책이 없고 논문만 존재하는 것 같은 데, 나 같은 비전문가가 논문까지 찾아 읽을 자신은 없어 무척 아쉽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간단하게 얘기하면 학문적 정밀성을 지키는 전제하에서 불교 연구가 실수행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뭐 그런 얘기 같다.

 

좋은 책이다. 강릉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신다. 이 저자는. 전국 방방 곡곡에 좋은 학자들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g********m 2012.1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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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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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침략으로 식민지배를 경험한 사람들이 85%에 이른다. 2차세계대전이 종결되어 많은 나라가 제국주의 식민 통치에서는 독립하였지만 아직도 제국주의의 직접 통치는 받지 않더라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영역에서 간접통치를 받고 있다.   근대문물은 대부분 제국주의에 의하여 유입과 강요를 통하여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지 1500년이 넘은 불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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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침략으로 식민지배를 경험한 사람들이 85%에 이른다. 2차세계대전이 종결되어 많은 나라가 제국주의 식민 통치에서는 독립하였지만 아직도 제국주의의 직접 통치는 받지 않더라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영역에서 간접통치를 받고 있다.


 


근대문물은 대부분 제국주의에 의하여 유입과 강요를 통하여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지 1500년이 넘은 불교도 마찬가지다. 불교가 들어온 지는 오래 되었지만 '불교학'은 우리가 만든 독특한 것은 아니다. 심재관이 쓴<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은 이런 면에서 식민시대 이후 우리나라 불교학에 대한 작은 소고가 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전후 일본을 통해 들어온 근대 불교학의 학문적 방법이 나라 안에서 제대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불교학이란 불교라는 종교에 대한 연구다. 불교 승려들은 불교 연구를 위하여 천국까지 가서 경전을 가져왔고 연구했다.


 


심재권은 불교가 인도에서 태동한 종교이지만 불교학은 서양에서 연구되어왔다고 주장한다. 서양에서 연구된 불교학을 수입하지만 토착화시키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한국 불교는 결국 주체도, 타자도, 전통도 근대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다고 주장한다.


 


제1장에서는 서구 불교학을 설명하기 전에, 약간의 혼동을 방지할 목적으로 전통적 불교학과 근대 불교학이 전혀 다른 성격의 학문임을 밝혔다. 한국에서 불교학 연구는 40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제2장과 3장에서는 문헌의 수집과 편집에서 선점권을 누릴 수밖에 없었던 유럽의 불교학이 어떻게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인 영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살폈다. 서구 사회의 문헌연구는 구체적이며, 체계적이었다. 제국주의가 나은 수탈이지만 그들은 문헌을 통하여 연구하고 탐구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훌륭한 자료를 유산으로 물려 준 것이다. 안타깝고, 부당한 일일 수 있지만 학문적 역량 축적은 순수한 학자들의 노력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인 배경이 중요함을 말한다.


 


"사실 발견과 편집, 번역은 쉽사리 도외시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문서의 소유와 보관은 번역과 편집에 의한 학문적 자부심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문서를 소유하지 못한 제3세계의 학자들은 결과적으로 제1세계 국가들이 고문서 보관소에서 편집해낸 원전들을 참고함으로써 그들의 편집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서지학적 사항들이나 판본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제3세계 학자들이 끼여들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45쪽)


 


제4장에서는 근대 불교학의 탄생과 연구 원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럽의 불교학이 식민지 근대화를 통해 일본과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그려보았다. 상당히 빠르고 정확하게 불교학의 문헌학적 방법을 모방한 일본과는 달리, 피상적인 근대화에 머물렀던 한국 불교학의 근대화 문제를 짚어보았다.


 


"식민화된 불교는 가장 열정적인 민족적 개혁주의자의 목소리에도 숨어 있다. 그들의 민족주의적 불교 이해는 식민 종주국에 대항하면서 그 대항의 근거로 제시된다. 근대화를 빌미로 종속이 강요될 때, 이에 대항하기 위한 근거로 그들이 끌어온 기준이 제시되는데 이 역시 그들이 말하는 근대화를 보여주려는 노력의 일환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식민주의 논리가 피식민지의 저항체에게 남겨놓은 함정이다. 그 함정에 빠지는 순간, 전통의 고유성은 피식민주의 개혁가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근대화의 괴변에 가려지기 때문이다."(81쪽).


 


제5장에서는 근대 불교학의 특성과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식민지적 성격과 문제를 현재 한국을 중심으로 노출시켰다. 이것은 식민주의는 식민통치 기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불교신자가 아니라 불교에 대한 지식도 미천하고, 더구나 불교학에 대한 지식은 더 미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서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은 조금 충격이었다. 기독교를 동양에서 먼저 연구하여 서양이 동양이 연구한 기독교를 통하여 자신들 신앙을 조명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서양제국주의가 불교문헌을 찬탈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먼저 연구했을 수도 있다.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은 제국주의에 찬탈된 문헌과 불교학 연구가 서양에서 시작되어 동양이 받아들이는 구조는 매우 아픈 제국의주 역사를 새삼 깨닫게 한다.  이제 주체적인 연구를 통하여 불교는 자신들을 바로 알고, 연구하는데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k****e 2007.12.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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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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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불교학에 대학 이야기이다. 불교학은 불교라는 종교에 대한 배움과 이해의 학문으로, 흔히 알고 있는 전통적인 불교를 배우는 것과는 다른 방법이다.    불교학의 시작은 근대 유럽에서 시작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 통치를 잘 할 수 있게, 그 지역정보를 수집하게 된 것과, 문헌학의 발달로 불교학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인도 산스크리트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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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불교학에 대학 이야기이다. 불교학은 불교라는 종교에 대한 배움과 이해의 학문으로, 흔히 알고 있는 전통적인 불교를 배우는 것과는 다른 방법이다.

 

 불교학의 시작은 근대 유럽에서 시작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 통치를 잘 할 수 있게, 그 지역정보를 수집하게 된 것과, 문헌학의 발달로 불교학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인도 산스크리트 언어학과 그 문자로 시작하여 불교학으로 이행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불교학이 근본적으로 식민시대의 학문으로 시작함을 알 수 있다.

 

 근대의 불교학은,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 의해서도 수행된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지냈고, 일본의 문물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구조이므로 일본의 근대 불교학을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근대 불교 교육을 시작하지만, 불교 학교에서 일반 과목을 가르치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불교에 있어서도, 아직 우리는 우리 자체의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 있어 보이며, 아직도 서구 문헌에 의존하고, 절대화시키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즉 아직까지도 불교학에 있어서는 식민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해방후에도 군사 정권과 결합된 호국 불교, 민족 불교로 불교의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성찰을 통해서 바른 길로 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학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접할 수 있었지만, 배경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이 책을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또한 이렇게 한번 쓸쩍 보았다고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저 불교학이 있고, 불교학은 유럽 제국주의의 문헌학에서 시작되고, 우리나라의 불교학은 일본으로 부터 받아 들이는데, 지금까지도 학문 수행에 있어서는 식민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z******g 2009.10.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