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도 빠짐없이 인터넷에 접속해서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시대. 이제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은 대지주도, 왕족도, 자본가도 아닌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집단으로 변하고 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인터넷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너무나 순종적으로 인터넷이라는 괴물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인터넷 사업의 성공담을 장밋빛 신화처럼 동경하고, 또 인터넷에서 받는 정보침해나 폐단들에 대해서는 섣불리 겁을 먹으면서도 정작 그 괴물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적극적인 생각들은 하지 않는 것 같다.
홍성욱, 백욱인이 엮은 2001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창작과 비평사) 는 이러한 인터넷 시대의 현 지형도이다. 저자/역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 책은 세 가지 문제의식을 갖고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 첫 번째는 인터넷 혁명과 그 영향에 대한 깊이가 있으면서도 다양한 주제를 통괄하는 '읽을거리'를 만들어보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낙관적이고 유토피아적이기만 한 인터넷 혁명론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보자는 것이다. 마지막은 현재 인터넷혁명에 나타나고 있는 양 측면, 즉 '열린 측면'과 '닫힌 측면'을 분석하여 앞으로의 작업을 '열린'것으로 만들어나가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국내외 논문들을 모아서 일곱 개의 장으로 나누고 있다. 정보통신혁명과 인터넷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하여, 인터넷 내부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와 사회운동 또한 그에 대한 권력의 규제문제, 싸이버 스페이스 내의 열린 공동체와 그 가능성, 인터넷기술과 자본과의 상관관계, 인터넷상의 윤리문제, 정보격차와 심리적 문제,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 격인 향후 전망과 실천적 과제에 이르기까지 각각 장 마다 한 편에서 세 편 가량의 구체적인 글들로 채우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성급하지만 이 책의 말미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대안적 네트워크'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인터넷 혁명 시대의 실천에는 두 가지 다른 방식이 있다. 하나는 네트에서 분리된 '코뮨(commune)'을 만들어 네트의 논리와 힘이 아닌 다른 논리와 힘이 지배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코뮨은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심리적 안정감과 확실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네트워크혁명 시기의 코뮨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이 취하는 보수적인 방법이다. (중략) 또다른 방식은 열려 있는 대안적 네트워크를 만듦으로써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이점과 기회를 살리고 동시에 자본의 네트워크를 견제하는 것이다. (중략)시민운동, 환경운동, 페미니즘의 크고 작은 네트워크들은 이러한 대안적 네트워크의 맹아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상호의존성이 증대되는 경향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사회의 양극화 및 자본의 이윤만을 위한 네트워크의 확장과 이를 가능케하는 기술적 디자인과 법적 제도에 반대한다. (중략) 지금은 이러한 대안적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이를 통해 구체적인 사회적 프로그램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적이고 진보적인 실천이다. |
|
인터넷, 디지털 혁명 등에 의한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외국 번역 책들을 몇 권 읽어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책들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그 책들이 국내 사정에는 맞게 집필 되지 않아서 사뭇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디지털 변화에 대한 설명은 우리 나라의 사회에서의 변화와 사정 등에서 다른 점은 일반인들이 읽기에 다소 까다로웠다. 하지만 이 책은 머리말에서도 밝히듯이 국내 사정에 맞게 집필해서 보다 쉽게 인터넷 혁명의 영향력 이해하게 해주었다. 인터넷 혁명에 있는 두 가지 측면인 열림과 닫힘의 철학은 인터넷 혁명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길러주었고 그것에 대한 분명한 분별력 또한 만들어 주었다. 또 사람과 과학 기술의 피드백 관계를 설명한 것, 인터넷의 자유와 규제 등의 여러 주제들은 상당히 수준 있는 내용이었다. 인터넷의 역사를 설명한 것부터 현대 사회의 특징인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사회 운동, 정보 공유와 정보 격차 등에서 용어의 정의를 분명히 알지 못하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조금은 힘들 것 같다. 인터넷 혁명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골고루 볼 수 있었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인터넷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지 이 책에서 말해 주었다. [인상깊은구절] 마지막 세번째 문제의식은, 인터넷혁명에 ‘열려 있고’ ‘닫혀 있는’ 두 가지 측면이 얽혀 있으며, 이제부터의 이론적ㆍ실천적 작업은 이를 더욱 ‘열린’ 것으로 만들면서 이것이 수반하는 ‘닫힘’을 극복하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보기술혁명이 열어주는 권위주의의 붕괴, 지식 생산과 유통의 변화, 새로운 공동체와 사회운동의 가능성, 권력에 대한 효율적인 감시, 지식기반 경제의 활성화를 통한 경제구조의 개혁과 같은 ‘열린’ 측면을 확대하고, 정보격차의 확대, 전자감시의 악용, 개인 프라이버시의 침해, 허울뿐인 닷컴(.com)신화 이데올로기, 인터넷 중독, 익명성의 뒤에 숨은 폭력과 같은 ‘닫힌’ 측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부터 우리는 인터넷혁명의 무분별한 찬양이나 감정적인 거부를 지양하는 정교한 인식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
| 사람들은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거대한 우주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체험한다. 이 별에서 저 별로 이동하듯이 여기에서 저기로, 이런 모습에서 저런 모습으로 이동하고 변화하고 뛰어다닌다. 많은 이들이 이 매력적인 세상에 빠져들어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땅을 잊었다. 꿈속의 삶이 더 즐겁운데 왜 깨어나야 하냐고 물었던 어떤 이야기의 소녀처럼, 사람들은 '저 모퉁이만 돌면' 더 환상적인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모퉁이를 돌고 또 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심스레 '사이버 중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인터넷이라는, 이 새로운 세계가 어쩌면 하나의 괴물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점차 네트워크, 인터넷을 외면한 채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고 그러므로 네트워크의 빛과 어둠을 살펴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나에게 이 책을 펴게 했다. 이 책은 사이버 스페이스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짧막한 파트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책 자체도 무척 얇고, 각각의 파트 별로 이미 한 권의 책을 이룰 수 있는 주제들이다. 그 중에 내가 관심있게 지켜본 것은 컴퓨터 속의 커뮤니케이션과 네티즌들의 참여 문제, 그리고 정보 격차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기업의 CF에서 '사람과 사람,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했던 말에서 보듯이 어느 시대에서건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감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주변세계와의 관계에서 고립된 채 심리적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존재 의미마저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이버 세계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사이버 스페이스는 우선 차별이 없고 열려진 공동체라는 면에서 매력적이다. 사실 대부분의 인터넷 공동체는 가입과 탈퇴가 간편하며 구속력이 약하다. 이런 자유도 덕분에 사람들은 부담없이 인터넷 공동체에 참여하며 차근차근 사람들을 만나는 가운데 공동체에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단의 공동체적 체험은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커뮤니타스를 제공하며 이 경험이 반복되면서 참여자들 사이에서 열린(약한 연줄의) 공동체적 모습이 점점 구체화된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간 지연, 학연, 혈연 중심의 닫힌 공동체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었던 것을 볼 때 대단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전문가들의 참여가 배제된 채 일반인들의 친목 도모 정도의 성격이 대부분인 점은 아직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인터넷이라는 열린 네트워크 안에서도 나이, 성별 등을 드러내는 장치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점 때문에 아직도 여러 가지 차별과 비방이 난무하고 있는 점 등은 부정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으로 보여지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은 많은 남성 유저들의 원치 않는 접근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익명성의 보장과 충동성, 표현욕등은 사람들을 쉽게 난폭하게 만들기도 한다. 군 가산점 문제를 비롯 대부분의 여성주의 관련 게시판이나 동호회 등에는 대개 호기심과 마초근성이 얽힌 시선들이나 도배, 비방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학력 콤플렉스가 가장 극렬히 드러나는 곳도 인터넷으로서 이른바 '훌리건'들이 난무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체면을 중시하고 소심한, 현실에서는 더없이 상식적인 사람들이 사이버 스페이스 상에서는 가장 저열하고 지저분한 말투와 사상을 내뱉어 게시판을 더럽히고도 오히려 자랑스러워 한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게시판은 본래의 목적을 완전히 상실한 채 네트워크 상의 배설구가 될 뿐이다. 일부 논리적인 주장들은 난잡한 도배 행렬 속에 파묻히거나 원색적인 인격 모독의 타겟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의 반복은 어느새 사람들에게 '인터넷 게시판은 별로 믿을 게 아니다'는 식의 고정관념을 심어주게 되고 인터넷이 새로운 언론으로서 정착하는 데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제기되고 있는 사이버 세계의 문제점은 정보격차 문제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극빈층을 비롯 정보 접근이 힘든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러한 면에서의 정보 격차 역시 시급하고 중대한 사항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내가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일단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라 해도 정보 이용 방법이나 깊이, 유용성 면에서 그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터넷 사회에서는 정보 지식이야말로 재화이므로 정작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제대로 찾아내어 활용할 능력 유무는 다가올 미래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보력에 있어서의 격차 문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오로지 유흥의 도구로서만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자칫 외부 권력에 장악되고 좌우되며 민중을 취하게 만드는 과거 3S(Speed, Sports, Sex)와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 열린 네트워크를 만들며 그 안에서 규제와 권력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대안적 네트워크의 개발, 이론가와 실천가들의 생산적인 상호 교류가 시급한 것이다. 또한 정보 격차를 보완하기 위한 평생 교육 등 소외층을 포용하는 정책과 관심이 필요하며 네티즌들 스스로의 자정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발달은 여러 면에서 예측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손길에 의해 순간순간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갑작스럽고 거대한 사이버 세계는 그리하여, 많은 이에게 '유토피아'를 꿈꾸게 하고 또한 많은 이에게 '디스토피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모든 기술이 양날의 칼이게 마련이듯 사이버 스페이스 역시 그렇다. 책의 제목의 '오딧세이'의 여행이 그저 긍정과 낙관의 의미만은 아니며 동시에 부정과 절망의 의미만은 아니었듯이. 그러므로 나는 그가 멀고 먼 길을 돌았고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모험을 했지만 결국에는 그의 고향, 이타카로 들어섰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그 자신이었음을 기억해내려 한다. 신 유목시대라고까지 불리는 사이버 세계의 네티즌, 모든 이방인들은 이제부터 고향을 찾는 긴 오디쎄이아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