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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파랑의 궤도 📕네이선 밸링루드 지음 📌요즘 sf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고 있는데, 이번에 읽은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는 그 중에서도 무척 독특하고 신선한 세계로 이끄는 듯한 이야기였다.
📌무대는 1930년대 화성이다. 지구가 아닌 낯선 행성이 배경이라는 점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와의 모든 연락과 통신이 끊겨버린 '침묵'이 시작된다는 설정이 굉장히 참신하게 다가왔다. 우주의 고립된 환경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고군분투한다는 점에서는 최근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분위기가 문득 겹쳐 떠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애너벨의 마음에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까마득하게 먼 지구로 떠난 엄마가 평소에 얼마나 그리웠을까. 유일하게 곁에서 의지되는 아빠마저 피를 흘리며 쓰러졌을때, 어린 소녀가 느꼈을 절망과 공포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애너벨은 그 두려움에 먹히지 않고 일어선다. 무법지대로 변해버린 화성의 사막을 향해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런 모습이 안쓰러움을 넘어 기특하고 대견하기까지 했다. 엄마의 음성이 담긴 실린더를 찾기 위해 사막으로 뛰어드는 애너벨의 고군분투를 보며 저쯤되면 포기할 만도 한데 싶으면서도, 목소리를 통해서라도 엄마를 어떻게든 기억하려는 그 간절한 마음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책을 읽으며 애너벨을 둘러싼 어른들이 참 가혹하다고도 느꼈다. 위기 앞에서 이기적으로 변화는 어른들의 모습은 씁쓸한 인간의 본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오히려 기계인 로봇 왓슨이 그 어떤 인간 어른들보다도 애너벨에게는 진정한 보호자이자 든든한 동반자였다. 📌이 소설은 나에게 묻는 것이 있었다. '인간은 사랑했던 그 기억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가.' 이다. 앞으로 닥칠 험난한 위험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단지 그 따뜻한 기억 하나를 안고 기꺼이 불안전한 길을 걸어가는 존재, 그것이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책은 상실과 절망 속에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온기를 좇는 이야기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고, 다 읽고 난 후에도 화성의 모습이 마음에 남는 책이었다. 소설 후반부의 애너벨을 떠올리면 어쩐지 쓸쓸하고 고독해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언제나 그래왔듯 용감하고 씩씩하게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고 행동해 나갈 애너벨이니까 말이다. 화성의 거친 붉은 모래 속에서도 부디 잘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마션]처럼 미지의 행성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sf 모험물을 좋아하는 분은 이 책을 함께 읽어보시면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묵직한 여운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밑줄 한문장 🏷나는 한 줄기 타오르는 희망을 품고서 엄마에게 다가갔고, 엄마는 내 나이의 절반밖에 안 된 어린아이를 다루듯 날 번쩍 들어 무릎에 앉혔다. 난 엄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엄마의 따스한 피부가 느껴지면서 바름 내음이 담긴 깨끗한 머리카락 향기를 들이마셨다. 지구에 갔다오면 이 냄새가 변할까. 그 생각에 두려워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문명이란 실은 얼마나 위태로운지 내가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침묵'이란 것 역시, 알고 보면 그저 단순하고도 지극히 평범한 무능함에서 비롯된 재앙이거나 치명적인 실수는 아닐까. 🏷"좀 봐줘. '침묵' 때문에 사람들이 온갖 모습으로 망가졌어. 우리 속에 있는 나쁜 것들이 더 나빠졌다고."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 했다. 내 삶의 모든 게 답 없는 질문 같았는데, 마침내 그중 하나는 답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의견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불가능한파랑의궤도 #네이선밸링루드 #문학수첩 #서평 #서평단 #도서협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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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선 밸링루드의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는 우리를 1930년대의 황량한 서부극 감성이 감도는 가상의 화성으로 데려간다. 이 생경한 무대는 기술의 진보 대신, 고립된 인간의 본질을 더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야기는 지구와의 통신이 끊긴 채 화성에 고립된 이들의 비극에서 출발한다. 14세 소녀 애너벨에게 남은 유일한 흔적은 고향을 떠난 엄마의 목소리가 담긴 낡은 실린더뿐이다. 무법자들에게 이를 빼앗긴 애너벨이 가사 로봇 왓슨과 함께 붉은 사막으로 뛰어드는 여정은 표면적으로는 복수극이다. 그러나 이 궤도는 상실을 겪은 아이가 세상의 냉혹함을 마주하며 단단해지는 숭고한 성장 서사이다. 미지의 광물 스트레인지는 인간의 정신을 뒤틀어버리지만, 애너벨은 그 기괴한 풍경 속에서도 엄마의 목소리라는 온기를 나침반 삼아 나아간다.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거친 세상에서 부딪히며 자라나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화성이라는 차가운 공간이 무색할 만큼 이 소설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다. 단순히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서사의 재미를 넘어,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이들의 마음을 다정하게 어루만져 준다. 그리하여 거친 붉은 먼지 너머로 마침내 마주하게 될 푸른빛의 여운이 가슴속에 길게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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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을 통해 읽게 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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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찾아 삼만리의 SF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린 소녀 애너벨이 엄마의 목소리가 담긴 실린더를 찾기 위해 주방 엔진 왓슨과 함께 화성의 붉은 사막으로 발을 내딛는다. 푸르게 가라앉은 화성의 어두운 면에 정면으로 맞서는 소녀와 그를 지키는 왓슨, 밝은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이 아름답고 잔혹한 세계에서 끝내 놓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애너벨의 언동은 어린아이에게 걸맞는 그것이라 답답하고 슬플 때도 있지만, 그 어린 영혼이 화성의 날카로운 모래바람을 맞으며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괴롭고도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며 아련하게 회상하게 하는 그런 힘이 있었다. 아시모프와도 브래드버리와도 다른 화성이 여기에 있었다. 침묵의 화성에서 엿볼 수 있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 애너벨의 모험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 생각해봐야 할까.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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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장르 속에 등장하는 행성들은 지구를 포함해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설령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라도 해도 충분히 변형이 가능해 완전히 낯선 세계로의 설정이 가능하고 탐사가 이뤄져 어느 정도 알려진 행성이라 해도 충분히 상상에 의한 새로운 모습으로 셋팅이 가능한 것인데 이 작품에선 지구와 화성 개척지가 그렇게 묘사된다. 주인공인 애너벨은 이제 경우 열네 살의 소녀지만 지구로 떠난 엄마의 목소리를 의지해 화성 개척지에 있는 식당을 주방 엔진과 함께 지키고 있다. 하지만 유일한 엄마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목소리가 담긴 실린더를 사일러스 먼트 일당이 쳐들어와 훔쳐가면서 애너벨은 그 실린더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나마 평온을 유지하던 애너벨이지만 이젠 스스로가 화성의 붉은 먼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인데 이후 펼쳐지는 화성 개척지의 모습들은 작가의 상상력이 굉장히 돋보이는 모습들이다. 낡은 실리던 속 엄마의 목소리는 단순한 추억을 넘어 어떻게 보면 애너벨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그리움을 생각하면 애절하게 느껴진다. 무법지대에서 홀로 싸우는 소녀의 모습은 희망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과 함께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런 용기를 주는 것일까를 동시에 생각하게 만드는데 절망 뿐인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녀의 모습은 참 대견하게 여겨진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녀를 돕는 이들이 분명 있고 자신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계속되는 모험 속에 조금씩 성장해가는 애너벨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SF소설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지구 밖의 행성, 주방 엔진이라는 식의 기술적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오히려 황무지 속 자신의 소중한 것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서부극이 떠오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스페이스 웨스턴이라는 표현이 왜 쓰였는지를 알 수 있었던 흥미로운 작품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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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이라는 신 앞에서, 인간은 무엇이 되는가 네이선 밸링루드의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모험소설이자 성장소설이며, 동시에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식민지 상상력, 그리고 새로운 생명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윤리를 탐구하는 SF다. 언뜻 보면 황량한 화성을 무대로 펼쳐지는 우주 서부극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이 작품은 인간이 낯선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점유하며 신화화하는가를 다루는 이야기로 읽힌다. 소설의 중심에는 어린 소녀 에너벨이 있다. 에너벨은 단순한 성장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녀는 화성이라는 거대한 세계 속에서 화성의 떠난 엄마의 실린더와 감옥에 갇힌 아빠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선택한 모험 속에서 생존과 정의 사이를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인물이다. 독자는 에너벨의 시선을 따라가며 화성 사회의 구조와 인간 군상을 마주하게 된다. 에너벨의 마음 속에 분노와 편견을 가진 채 위태로운 동행을 하는 조, 샐리 그리고 단순 기계가 아닌 그 이상의 감정을 갖게되는 엔진 왓슨과의 사막의 여정에서 화성의 비밀이 점점 걷혀진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어쩌면 화성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작품 속 화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화성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자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인간은 그 위에 도시를 세우고 자원을 채굴하며 살아가지만, 화성은 결코 인간에게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화성을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마다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며 인간의 인식 체계를 흔든다. 흥미로운 점은 화성이 로마 신화의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이름을 가진 행성이라는 점이다. 작품 속 화성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폭력, 생존 본능을 시험하는 신적 존재처럼 기능한다. 인간은 화성을 개척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신의 몸 위에서 살아가는 미약한 존재에 가깝다. 이러한 설정은 SF가 종종 보여주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전복한다. 개척의 대상이었던 행성이 오히려 인간을 관찰하고 변화시키는 존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 작품이 화성을 단순한 식민지나 개척지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새로운 생명체와 인간의 윤리라는 주제로 확장된다. 소설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로 하여금 인간 중심주의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화성의 생태적 변화와 스트레인지의 존재는 모두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기존의 틀을 흔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질문을 모험담의 형식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또한 등장인물들에게 '지구' 가 갖는 의미 역시 인상적이다. 지구는 단순한 행성이 아니라 기억과 신화, 상실된 고향의 이미지로 존재한다. 어떤 인물에게 지구는 돌아가야 할 원형의 세계이지만 화성의 생명체가 다시 지구로 돌아갔을 때 벌어질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설정은 이주와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은 새로운 세계에 적응했음에도 여전히 사라진 고향을 중심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결국 이 작품은 화성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이 끊임없이 '고향'과 '정체성'을 갈망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편 작품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스트레인지(Strange) 는 SF 독자라면 자연스럽게 프랭크 허버트의 《듄》을 떠올리게 한다. 스트레인지와 버섯은 인간은 새로운 생명체로 움직이거나 조종하는 화성의 일부이나, 눈 색의 변형 등은 《듄》의 스파이스(멜란지)에 대한 오마주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물론 밸링루드는 이를 화성 생태계와 결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주하지만, 세계관의 핵심 동력이라는 점에서는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가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한 우주 모험담을 넘어 인간의 정체성과 도덕성, 그리고 식민지적 상상력을 성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시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작품이 제시하는 프런티어 신화와 식민지 상상력의 재해석이다. 소설 속 화성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연상시키는 광산촌과 무법지대, 정착촌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작가는 단순히 개척 신화를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신화가 가진 폭력성과 모순을 드러낸다. 역사적으로 프런티어 신화는 '미개한 땅을 문명화한다'는 논리로 정당화되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존재의 삶과 문화가 지워졌다. 작품 속 화성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은 화성을 비어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지만, 작품은 그 세계가 결코 비어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만약 이 소설을 전시로 재해석한다면 "누가 세계를 발견했다고 말할 권리를 갖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미지의 공간을 발견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언어로 이름 붙이는 행위일 수도 있다. 결국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는 화성을 개척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낯선 생명과 세계를 마주했을 때 스스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며, 인간이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식민화하며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 온 역사를 되비추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질문은 화성보다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를 향하고 있다. 한줄평 "화성이라는 신의 몸 위에서 성장하는 소녀 에너벨의 이야기. 낯선 생명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윤리와 식민지 상상력을 되묻는 우주 서부극." 이 내용을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릴 내용으로 500자로 축약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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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도서입니다 화성을 배경으로 한 미래 공상과학 소설이지만,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러 신식민지 개척시대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 소설이다. 놀라운 과학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은 없지만, 또한 예측불허의 상상력을 담아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정말 멋진 영웅이 나오거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소설은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어쩌면 영웅이 없어서, 멋진 유토피아의 세계를 보여주지도 않고 소설 속 주인공이 원하는 바를 얻고 해피한 미소를 지으며 끝을 맺지도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곱씹어보니 이 소설의 이야기는 정말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이며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을 멈출수가 없다. 이 이야기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화성으로 이주해 간 애너벨 크리스프에게 닥친 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엄마가 갑자기 지구로 떠나갔고, 그 이후 시작된 '침묵'의 시간은 지구에서 화성으로 오기로 한 비행선이 오지 않음으로 인해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화성으로 왔다가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로 한 이들 역시 화성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엄마의 부재속에서 애너벨은 식당을 운영하는 아빠를 돕는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식당에 침입자가 생기고 그 이후 싸움에 휘말리게 된 애너벨의 아빠는 사람을 죽인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식당은 온 마을 사람들에 의해 약탈당하고 완전히 망가져버리고 만다. 애너벨은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고, 무너져가는 아빠를 지켜내기 위해서, 식당에 침입해 식량 뿐만 아니라 엄마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유일한 실린더를 훔쳐간 사일러스에게서 실린더를 되찾아올 결심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애너벨은 실린더를 찾기 위해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알려진 사막으로 떠난다. 그닥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주방 엔진 왓슨과 화성의 유일한 우주선 조종사 조와 사일러스 일당과 같이 식당을 약탈했던 샐리와 함께, 아니 함께라기 보다는 애너벨의 협박과 위협에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되지만 사실 엄마의 목소리가 담긴 실린더를 찾기 위해 떠나는 애너벨의 조력자가 되어주는 어른의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애너벨의 결정으로 여정이 시작되고 그 여정의 선택으로 인한 대가와 책임은 사춘기 소녀가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보잘것 없는 주방 엔진 왓슨이 사막을 건너며 무엇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애너벨의 가드 역할을 하며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으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는 이야기의 흐름은 이 소설이 단지 한 소녀가 엄마를 추억하기 위한 실린더를 찾아가는 모험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버섯, 전쟁 엔진, 스트레인지, 사일러스, 침묵... 언급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뤄본다. 왠지 애너벨의 그 다음 이야기가 있어야만 할 것 같아서. 지금 이 단어들은 내게 섬뜩함을 떠올리게 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 소설이 공상과학 소설이지만 과거를 투영하고 현재를 보여주며 미래를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전쟁 엔진을 적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결국 그 엔진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임을 떠올린다면 과연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폐허를 만들어. 계속해서 빼앗고 또 빼앗기만 하지. 뒤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밖에 있는 전쟁 엔진 좀 봐라. 화성이 우리를 그렇게 인식하는 거야. 살인자, 파괴자라고." 전쟁 엔진이 우리를 뭐라고 불렀는지 떠올려다. '더러운 것들'이라고 했다. (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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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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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수첩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지구에 살던 사람들이 일부 화성으로 이주한 세계관으로 193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애너벨은 5살까지 지구에 살다가 엄마, 아빠와 함께 화성으로 이주해서 14살인 현재 아빠와 함께 '마더 어스 다이너'를 운영하고 있다. 엄마는 병에 걸린 자신의 엄마 즉 애너벨의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다시 만나기 위해 지구로 떠났고 '침묵' 이후 단절되었다. '침묵' 이전에는 시간이 걸릴지언정 행성 간에 우주선을 타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침묵' 이후에는 지구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는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소식 자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마더 어스 다이너'라는 이름처럼 어머니와 지구는 그리운 존재이다. 그런 애너벨에게 엄마의 생전 목소리를 담은 실린더와 실린더를 재생할 수 있는 주방용 엔진인 왓슨은 보물과도 같다. 애너벨이 살고 있는 뉴 갤버스턴에는 조 라일리라는 유일한 조종사도 살고 있다. 우주선의 연료는 지구에 편도로 갈 수 있는 양만 남아 있다. 이전과 달리 행성 간에 이동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물자도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정확히 물자가 얼마나 부족한지는 모르지만, 작물도 언제까지 재생산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불안이 팽배하다. 우주선에는 화성에 이주한 지구인 모두가 탈 수 없고,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며, 지구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모두의 마음에는 불안이 스며들었고, 타자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조 라일리는 유일한 조종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유들로 지구로 운항하기를 거부해서 마을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미워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소설 초중반부는 정보가 비어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어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미스터리하고 수상한 현상들이 나중에 서서히 밝혀지는 게 이 소설이 가진 장르적인 특성이자 매력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 등장인물들을 믿어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이 어려운 긴장감이 있었다. 뒤로 갈수록 서스펜스 영화를 볼 때처럼 '헉' 소리와 함께 입을 가리며 읽어 나갔다. 장르물이라서 그런지 영화적인 장면을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애너벨이 다이너에서 일하거나 학교에 있을 때는 하이틴 영화를 떠올렸다. 우주선과 화성을 배경으로 한 부분에서는 SF 영화들을, 모래언덕을 건너 여정을 떠나는 대목에서는 서부극을 떠올렸다. 우주와 사막과 로봇을 상상하니 스타워즈가 떠오르기도 했다. 매드맥스 같은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은 아포칼립스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아포칼립스는 일반적으로 사회 시스템이 붕괴한 세계관을 뜻한다. 이 소설에서는 사회 시스템이 서서히 붕괴해 가고 있다. 그런데 그 세계의 균열이 애너벨이 일하고 있는 다이너에서 10센트짜리 커피 한 잔으로 인해 시작된다. 책을 읽기 전 소개만 접했을 때는 이런 위험한 세상에서 엄마의 흔적을 위해 떠난다면, 불가피한 상황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읽고 나니 애너벨은 그 무서운 세상 안에서도 용감했고, 그녀 스스로 한 선택이 대부분이었다. 보호받아야 할 14살 소녀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은 충분히 안타까웠지만, 내가 보기에 애너벨은 무모하기도 했다. 내 개인의 취향일지 한국인 특유의 정서일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먼치킨처럼 능력과 도덕성마저도 완벽하길 바라는 은연중의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심청이처럼 말이다. 장르물 안의 용감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너벨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이 갈린다면, 또 국가별로도 선호도 차이가 있다면 흥미로운 지점이 될 것 같다. 애너벨을 '장르물 안의 용감한 캐릭터'라고 단순하게 표현하기에는 14살 특유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예민한 마음이 다면적으로 잘 표현되었다. 각 캐릭터에 대한 묘사나 세계관은 뒤로 갈수록 설명이 덧붙여져서 생생하고 입체적이었다. 특히 샐리라는 퓨리오사 같은 멋진 무법자도 있었다. 서부극 요소에 비해 각 인물들을 선악으로 단순하게 구분 짓기 어려운 점도 매력이었다. 원제는 'The Strange'로 화성에서 채굴하는 미지의 광물 스트레인지를 강조했다. 번역한 제목은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로 지구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을 더 강조한 듯하다. 'The Strange' 제목 그대로 기이한 사건들이 펼쳐지기도 하고, 지구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애너벨의 무모함으로 애간장을 녹이면서도 뒷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읽게 되는 소설이었다. #문학수첩 #불가능한파랑의궤도 #네이선밸링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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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배경은 화성 개척지이고, 인간들은 실린더를 넣어 사용하는 엔진 로봇과 함께 살아간다. '침묵'이 내려앉아 더욱 삭막해진 사막에서 '스트레인지'라는 광물로 인해 모든 존재는 점점 이상해지고 뒤틀려간다. 살아남기 위해 소중한 것들도 기꺼이 버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인공인 에너벨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잊지 않고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에너벨의 위험천만한 여정을 안전한 곳에서 따라가는데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불안과 위험을 보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가는 곳마다 폐허를 만들고 모든 것을 뺏고 빼앗기는 존재.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가, 또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가. 도덕도, 윤리도, 가끔 주인공의 가치관마저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꺾이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 책이었다. |